전투의 공포와 스트레스로 인한 ptsd는 인류의 역사와 함께 쭉 존재해왔고, 로마군도 물론 예외가 아니었다.
로마시대의 기록에 남아있는 ptsd환자의 대표적인 예는 포에니 전쟁의 전설적 영웅,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의 아버지인 푸블리우스 스키피오다.
2차 포에니 전쟁의 첫 전투였던 티키누스 전투에서 카르타고 기병대의 공격을 받아 중상을 입고
아들의 도움으로 겨우 탈출한 그는, 다른 병사들은 다시 설욕전에 임하려 하는데도 혼자만 줄곧 반대해
동료 집정관에게 '육체보다 마음에 깊은 상처를 입어, 부상당한 공포가 그를 겁쟁이로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그는 훗날 재기해 이베리아 반도 전역에서 많은 공훈을 세우다 장렬히 전사했으므로

기록 자체가 왜곡이었거나, 그렇지 않다면 시간이 지나면서 ptsd를 극복해낸 것으로 보인다.)



역사가 아피아노스는 마케도니아 전역에 종군한 뒤, 예전에 자신이 소속되어 있던 군단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자마자
집에 불을 질러 분신자살해버린 케스티우스라는 병사의 이야기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런 군단병의 ptsd증세 - 한밤중에 갑자기 벌떡 일어나거나, 작은 소리에도 겁을 먹고 마구 날뛰는 등 - 는
로마 중기의 군의관들에게 이미 "전투피로증"의 개념으로 인식되어 있었고,
도저히 더는 복무가 어렵다고 여겨질 경우 여러 명의 군의관들이 내린 진단 결과를 교차검증하여
군법재판관이 의병제대 여부를 결정하였는데, 판단 기준이 무척 모호하긴 했지만
군의관들의 의견이 '이새끼 실은 멀쩡한데 쇼하는 겁니다'라 일치하는 경우만 아니면
웬만해선 온정어린 판결을 내려, 비록 20년 근속을 채우지 못했을지라도
퇴직금(물론 전액은 아니겠지만) 등 퇴역 군단병의 권리를 보장해주는 명예제대로 처리해주는 경우가 많았다.




- 오사다 류타 저 "고대 로마 군단의 장비와 전술"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