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결론적으로 카나에는 왕따 가해자고 카노는 일종의 은따를 당한 게 맞다고 생각함.

정확히 말하면 '자살의 원인' 이 이지메가 아닐 뿐, '아예 이지메가 없었던 일' 은 아니라는 것.

사실 작품 외적으로도 이 정도 묘사를 해놓고 왕따가 아니라고 하면 그것도 문제임.

자살이라는 자극적 소재와 연관시키고, 카나에의 손짓같은 암시도 부각시키고서 아니라고 한다?

그건 서술 트릭이 아니라 말 바꾸기나 미화라 부르고, 거기에 많은 애니들이 나락으로 갔음.

그리고 다이나제논은 현실적인 연출을 장점으로 삼아 주제를 표현한 작품임.

저렇게 현실적인 은따를 묘사했다면 이 장면도 그 맥락의 하나가 아닐까 생각함.

보통 카나에가 카노를 왕따시키지 않았다는 근거로 제시하는 게 1화에 나온 이 달력임.

카나에의 생일에 별표시까지 해놓았는데, 가해자에게 저럴 리는 없으니 왕따가 아니라는 얘기.

하지만 여기 왕따 피해자나 방관자였던 사람도 많을텐데 솔직히 알고 있을 것임.

왕따 피해자는 뚜렷한 자각이 없거나, 눈치채도 오히려 외면하며 친하게 구는 경우도 많음.

그리고 가해자는 그런 상황을 이용해서 양심의 가책없이 더 괴롭히기도 하고.

나중에도 밝혀졌지만 카노는 심성이 착하고 문제를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유형임.

어릴 적 유메처럼 불편한 사이도 정면으로 맞서기보다는 회피하는 타입.

그러니 왕따를 당하더라도 선배에게 원한을 드러낼 스타일은 당연히 아닐테고.

즉 저건 카노의 착한 성격과 '자살은 아니라는' 암시일 뿐, 왕따가 없었다는 단서는 아니라고 봄.

결정적으로 10화에서 나온 카노의 이야기와 그 의미를 살펴봐도 확실하다고 생각함.

카노는 자살했다는 것을 부정했을 뿐이지, 이지메를 당하거나 외로웠다는 건 부정하지 않았음.

그래서 후타바에게 의지했어야 하는데 못했으니 유메는 잘 의지하도록 당부하는 것.

이 흐름으로 유메와 요모기의 관계가 정립되며 자연스럽게 유메의 성장기가 매듭지어짐.

만약 카노가 괴롭힘도 없이 그저 즐거운 학창생활이었다면 이 서사가 제대로 형성되지 않음.

유메는 별 거 아닌 일로 뇌피셜 돌리며 끙끙댄 바보였고, 요모기는 운 좋게 낚아올린 럭키가이만 되는 거.

이렇게 캐릭터를 망치는 게 실패한 맥거핀인데, 카노가 이지메를 부정하지 않으니 그런 건 아님.

결국 카노는 이지메 등으로 괴로웠지만 그 때 얻은 깨달음으로 동생을 이끌어주는 것임.

내가 볼 때 이 카나에는 검은 닌텐도처럼 일종의 검은 트리거라고 불러야 할 존재가 아닐까 싶음.

분명히 위험한 짓을 저질렀는데 기막힌 행운과 우연으로 무사히 넘어간 럭키 빌런

행운은 이지메 대상이 착한 카노였던 거고, 우연은 그 카노가 실족사해서 말을 못하게 된 것임.

그런데 이게 다이나제논답게 현실적이라면 엄청 현실적인 묘사이기도 하다.

현실의 따돌림은 양지에 알려지고 언론에 보도되는 극단적이고 파국적인 사건만 있는 게 아님.

'아주 살인자는 아닌 가해자' 가 '자살까지는 안 할만큼' 피해자를 괴롭히는 일이 더 많지.

그리고 그 가해자와 피해자는 그저 시간이 지나며 평범한 사람처럼 살아가기도 한다.

어쨌든 사망의 원인은 왕따가 아니었고, 카노도 원한은 없으니 정말 찝찝하고 역겨운 묘사는 피함.

하지만 주인공들의 현실적 행복과는 대척점에 있는 현실적 불행의 단면을 보여준 것 같음.

물론 또 모르지. 나중에 BD 코멘트 등에서 "사실 카노는 전~혀 왕따당한 게 아닙니다!" 라고 통수칠지 어떨지.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그러면 작품 평가가 어디로 갈지 우려될만큼 이 묘사는 확실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