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레클리스의 등에 타는 것은 소대 차원에서 금지되었다. 하지만 규칙이란 것은 언젠가 깨지기 마련이다.

말딸갤에서 잘 알려져있는 레클리스가 군마 훈련을 받은 후 강원도 태백 화전동 근처에서 주둔하고 있던 때였다. 주둔지 근처에 소대의 무반동총이 배치된 114 고지에는 차량이 다닐 수 있는 비포장도로가 마련되어서 굳이 짐말을 쓸 필요가 없었으므로, 레클리스는 모처럼만에 방목되어 꿀같은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사육사 보조였던 아놀드 베이커 일병(PFC Arnold Baker)은 조교사인 레이텀 하사(Platoon Sergeant Latham)와 사육사인 콜먼 일병(PFC Coleman)이 부재한 사이 레클리스를 돌보는 임무를 부여받았다. 그런데 레클리스가 방목지에 편히 있는 것을 보던 베이커 일병은 운동이 더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마주이자 소대장인 에릭 페더슨 중위(Lt. Eric Pedersen)가 내린 레클리스에 기승하지 말라는 명령을 무시하고, 레클리스를 목초지까지 데려온 뒤 마치 자신이 존 웨인인 것처럼 몸을 휙 돌리며 레클리스의 등에 탔다.

그런데 베이커 일병이 간과한 사실이 하나 있었다. 레클리스는 단순한 짐말이 아니라, 한국 전쟁 발발 직전까지 데뷔전을 치를 수 있도록 훈련을 받은 경주마였다는 것이다.

등에 누군가가 올라탄 것을 느낀 레클리스는 즉시 전력질주를 하기 시작했다. 베이커 일병이 멈추라고 비명을 지르며 고삐를 당기자 레클리스는 더욱 속도를 올렸다. 자신이 데뷔전에 출전하기 한달 전인 1950년 6월 25일부터 소대에 들어온 1952년 말까지, 레클리스는 2년이 넘게 전력질주를 할 기회가 없었다. 베이커 일병은 옆으로 뛰어내리고 레클리스가 알아서 돌아오게 할 지 잠시 고민했으나, 레클리스를 잃어버렸을 때 얼마나 심한 갈굼을 당할지 떠올리고는 레클리스의 갈기를 붙들고 절박하게 매달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레클리스는 진지 주변의 양마장을 내달리며 속도를 늘렸다.

공교롭게도 레클리스가 향하는 방향은 최전선 쪽이었다. 위병들이 레클리스가 검문소를 건너뛰고 달아난다고 급하게 전화하는 동안 레클리스는 초소 바깥에 있는 아름다운 과수원으로 향했다. 과수원 바깥은 좁은 순찰로가 난 지뢰밭이었다.

과수원 반대쪽에 있는 120 고지 주변의 다른 초소에서도 레클리스가 지뢰밭 사이를 뚫고 지나가고 있다고 연락했다. 근처 고지의 중공군 또한 물개 놈들이 무슨 짓을 꾸미고 있는 것인지 궁금해했을 것이다.

120 고지에 주둔하고 있던 폭스 중대에서도 600미터 거리에서 레클리스가 자신들 방향으로 오는 것을 보았다.

"돌아가! 레클리스, 돌아가!"

"앞쪽 땅을 쏘겠슴다. 막아세워야 하지 말입니다."

"너무 위험하다."

"등에 탄 거 누구야?"

"잘 안보이는데."

"레이텀한테 잡히기만 해봐라."

500여명의 해병들이 숨을 죽이며 지켜보는 가운데, 신나게 달려가던 레클리스는 그 정도면 되었다는 듯 지뢰밭 안에서 뒤로 돌아 집으로 향했다. 과수원 길을 무사히 되돌아온 후 검문소에 되돌아오자 대대 전체가 안도하는 한숨이 산들바람처럼 여러 고지에 불었다. 얇게 땀에 젖은 레클리스는 초롱초롱한 눈으로 신나게 달리고 왔다고 말하는 듯 레이텀 하사에게 붙었다. 베이커 일병이 창백한 표정으로 후들거리며 등에서 내리자 소대의 부사관들이 베이커를 붙잡고 어딘가로 끌고 갔다.

이 사건 이후, 미 해병대 제1사단 5연대 전체에서 레클리스에 탈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루이스 풀러 준장뿐이라고 명시되었다.

상관이 하지 말라고 하면 하지 말라는 이유가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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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클리스의 일대기는 자주 다뤄졌지만 지뢰밭 에피소드는 번역되지 않은 거 같아서 적어봄

출처 1: Andrew Geer, Reckless: Pride of the Marines, 115-117

출처 2: https://web.archive.org/web/20160401075018/https://www.mca-marines.org/leatherneck/sgt-reckless-combat-veter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