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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문서] [괴문서] 트레이너를 깨우는 그라스 원더

Mikkya(147.47) 2023.07.19 00:21:22
조회 3926 추천 92 댓글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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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담당 트레이너의 방에 우마무스메가 찾아오는 것은 그리 드문 일이 아니다.



 다른 곳이었다면 무단 침입으로 기소가 되어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지만, 이곳, 중앙 트레센에서는 이상하리만치 그런 것에 관대하다.



 그렇기에 자기 방을 사수하기 위한 트레이너들의 노력도 무던히도 발달했지만, 그런 것쯤, 우마무스메의 근력과 근성 앞에서는 별 소용 없는 것뿐이었다.



 일례로, 골드 십의 담당 트레이너는 그의 방을 튼튼한 나무판자와 얇은 철판으로 든든하게 방비했지만, 망치와 드릴과 그리고 이해할 수 없는 고루고루 에너지를 이용한 골드 십의 힘에 너무나도 쉽게 뚫려버린 적이 있었다.



 마찬가지로 파인 모션의 트레이너는 온갖 전자장비를 동원한 잠금장치 및 동작 감지 센서 등등을 백 개에 가까울 정도로 설치해 두었지만, 파인 모션의 친구인 에어 샤커의 도움으로 인하여 이틀 만에 모조리 해킹당한 전적이 있었다.



 그래서, 어찌 보면 부득이한 이유로, 트레이너들은 대충 포기해 버렸다.



 에어 그루브의 트레이너는 담당 우마무스메에게 기숙사 열쇠를 넘겼다. 담당 우마무스메가 종종 들러 청소를 해 주고 가기 때문에, 나름의 공생이 아닐까 하고 정신 승리하는 그의 모습을 보며, 트레이너들은 쯧쯧 혀를 차기 일쑤였다.



 에이신 플래시는 담당 트레이너의 기숙사 여벌쇠를 가지고 있다. 물론 그녀의 트레이너가 여벌쇠를 준 적은 없다. 어떻게 입수했는지는 비밀이다. 처음에는 무단 침입이네 뭐네 하며 화들짝 놀라기도 했지만, 지금은 에이신 플래시가 방에 다녀가는 것을 너무 당연하게 생각한다.



 그리고 의외로, 정말 의외로, 그럴 것 같지 않은 트레이너도 담당 우마무스메에게 열쇠를 준 적이 있다. 하지만 왜 주었느냐에 대한 답변을 듣는 트레이너들마다 의외라는 생각을 고이 접어 머리 한구석으로 치워두었다.



 담당 우마무스메의 칼날에 할복 당하느냐, 아니면 열쇠를 바치느냐의 양자택일이라면 누구라도 후자를 택하리라.



 그나마 작은 위안이라면, 야마토 나데시코, 요조숙녀를 표방하는 담당 우마무스메이기에 아직까진 한 번도 대놓고 무단 침입을 한 적은 없다는 것이다.



 그럴 거면 왜 달라고 한 걸까, 작은 의문을 품고 있는 그는 당분간 모를 것이다. 그가 출장 등으로 며칠 자리를 비울 때마다, 그의 담당 우마무스메가 그의 방을 방문한다는 것을.



 아무튼, 그 의문의 주인공은 주말 내내 업무에 찌들어 이틀 밤을 새워버렸고, 월요일 오전임에도 불구하고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침대에서 대자로 뻗어 도로롱 드르렁 코를 골고 있었다.



 그래, 월요일 오전이다. 매주 월요일 오전에는 그의 담당 우마무스메, 그라스 원더와의 미팅이 있다. 한 주간의 트레이닝 스케줄과 더불어 지난주 트레이닝에서의 문제점, 그리고 트레이닝 성과 등을 확인하고 토의하는 자리다.



 그라스 원더와 단둘이서 일 대 일로 미팅하는 자리이니만큼 그도, 그리고 그라스 원더도 굉장히 신경을 많이 쓰고, 중요하게 생각하는 시간이다.



 정례 미팅의 시간은 오전 열 시. 그리고 지금, 코를 골며 자는 트레이너의 옆에 놓인 시곗바늘은, 오전 열 시 반을 가리키고 있었다.



 인생을 한량같이 사는 그라스 원더의 트레이너였지만, 의외로 시간 약속은 잘 지키는 사람이었기에 지금까지 지각이라는 것을 해본 적이 없다. 다시 말하면, 최초로 늦잠 지각을 해버린 것이다.



 아니, 지각이라고도 할 수 없다. 아직도 잠에서 깨어나지 못했는데 무슨 지각이란 말인가. 오늘 하루가 저물어도 그는 일어나지 않을 기세였다.



 이대로 있으면 틀림없이 결근이 되어버릴 것이다. 그리고 그의 담당 우마무스메, 그라스 원더는 혼자 그의 사무실에서 나기나타의 칼날을 삭삭 날카롭게 갈고 있으리라.



 “……그랬어야만 했을까요.”



 작게 중얼거리며, 그라스 원더는 가지고 있던 여벌쇠를 열쇠 구멍에 꽂아 넣었다. 철컥, 하는 쇳소리가 생각보다 컸기 때문에 트레이너 씨가 일어나셨을까 하여 조심스레 트레이너 기숙사 안으로 들어갔다.



 열 시 정각에 트레이너가 얼굴을 보이지 않자, 그라스 원더는 뭔가 잘못되었다는 우마무스메의 직감으로 하야카와 타즈나에게 연락을 취했고, 그녀의 담당 트레이너가 주말 내내 밤새워 업무를 보았다는 말을 들었다.



 그렇다면 과로로 쓰러졌거나, 피로를 이기지 못하고 아직 수면 중인 것이리라.



 전자라면 응급상황이고, 후자라면 다행인 것이다. 그런 생각들이 떠오름과 동시에, 그라스 원더는 어느새 트레이너 기숙사로 전력 질주하고 있었다.



 달리다가 마주친 엘 콘도르 파사가 ‘그라스와 병주인가YO!’ 하고 달리는 것 따위 가볍게 따돌려버릴 정도의 속도였다.



 호흡을 가다듬고 담당 트레이너의 방 앞에 도착한 뒤, 담당 트레이너를 (나기나타로) 잘 구슬려 받은 여벌쇠로 문을 열고 들어간 것이다.



 트레이너 씨가 출장 중일 때 몇 번 들어와 보았지만, 언제 들어와도 혼자 사는 남성의 냄새가 퀴퀴하게 후각을 자극한다. 그다지 좋아하는 냄새는 아니다. 탈취제라도 좀 사서 뿌릴까, 중얼거리며 트레이너 씨의 안위를 살피기 위해 방을 둘러보았고,



 “아, 다행이네요.”



 침대 위에서 이불을 돌돌 싸맨 채로 세상 모르게 코를 고는 담당 트레이너를 보며, 그라스 원더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과로로 쓰러진 것이라면 업무를 보던 책상 근처에서 쓰러져 있어야 했다. 그러나 침대에서 달콤한 잠에 취해 있다는 말은, 어쨌건 별다른 이상 없이 스스로 잠을 청했다는 뜻이니까 말이다.



 게다가 조금 걱정했던 것, 그러니까 다른 암컷의 흔적이 있을까에 대한 것도 기우였다. 우마무스메의 민감한 후각으로도 느껴지지 않았고, 방 곳곳을 둘러보아도 트레이너 씨 이외의 흔적은 존재하지 않았다.



 역시 트레이너 씨. 한량이니 뭐니 해도 문란하게 놀아나는 사람은 아니라는 것이다. 게다가 트레이너 씨 침대 옆 탁자에 놓인 그라스 원더의 봉제 인형과 사진들은, 그가 뭐라뭐라 해도 담당 우마무스메를 얼마나 아끼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평소에 보여주던, 그라스 원더에게서 도망치려는 것과는 반대되는 것이 아닌가. 이것이 츤데레라는 걸까, 오싹오싹해지는 기분을 잠시 즐기다가, 문득, 자명종 시계가 눈에 들어왔다.



 이미 열 시 하고도 삼십 분이 더 지난 상황이다. 개인 트레이닝 룸을 예약해 둔 시간이 있기에, 여기에서 더 지체한다면 오늘의 트레이닝을 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니까 트레이너 씨를 깨워야 한다. 천천히 트레이너 씨가 주무시고 계신 침대로 다가가, 그의 얼굴을 위에서 내려다보았다.



 “…….”



 깨워야 할까?



 주말 내내 밤새워 일하고, 이제야 휴식을 취하고 있는 트레이너 씨를, 그라스 원더가 무슨 자격으로 깨워야 한단 말인가.



 게다가 깊이 잠든 것처럼 보여, 어지간한 자극으로는 일어나지도 않을 것 같았다. 그렇다고 마구 흔들어 깨우거나 한다면, 트레이너 씨는 굉장히 불쾌한 기분으로 하루를 시작하게 될 것이다.



 그런 것을, 그라스 원더는 바라지 않는다. 가끔 트레이너 씨의 배를 가를까 말까 하는 그녀이지만, 그래도 트레이너 씨를 연모하는 마음이 더 크기 때문이다.



 “……에잇.”



 그래서, 아주 살짝, 그녀의 얇은 손가락으로 트레이너 씨의 뺨을 콕, 하고 찔러본다. 푸우―, 하고 바람 빠지는 소리가 들린다. 트레이너 씨의 얼굴이 조금 우스꽝스러워졌다. 하지만 일어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



 깨우지 말고 그냥 이대로 주무시게 내버려 둘까, 후후 웃으며 몸을 돌리려다가 문득, 트레이너 씨의 일정이 조금 떠올라버렸다.



 오전에는 그라스 원더와의 미팅, 그리고 그라스 원더의 트레이닝이 잡혀 있었지만, 점심을 먹고 난 오후 시간대에는 심볼리 루돌프의 트레이너를 비롯한 다섯 명의 트레이너들과 정례 미팅이 있었다.



 이대로 그라스 원더가 트레이너 씨를 깨우지 않고 돌아간다면, 분명 오후 늦게나 일어날 것이다. 그렇다면 정례 미팅은 물 건너가는 것이고, 황제의 트레이너에게 엄청나게 혼날 것이다.



 그라스 원더가 단순히 그의 담당 우마무스메라면, 그냥 모른 척해도 상관없다. 어차피 비즈니스 관계란 그런 것 아니겠는가.



 하지만 그라스 원더가 남편을 내조하는 현모양처라면, 여기에서는 남편이 조금 힘들어해도 깨우는 것이 맞다. 게다가 요조숙녀를 표방하는 그라스 원더는 사실상 현모양처가 아닌가(아니다).



 그러니 여기에서는 트레이너 씨가 조금 괴로워하셔도, 어쨌건 깨우는 것이 맞다. 트레이너 씨가 자신의 스케줄은 어떻게 알고 있었느냐고 물어볼 수도 있지만, 뭐, 독점력이 원래 그런 것 아니겠는가. 이해해 주시리라 믿는다.



 다만 고민되는 부분은, 최대한 그이를 괴롭지 않게, 편안하고 행복하게 깨워야 하는 것이다. 잠에서 깨어 하루를 시작하는데, 불쾌한 기분으로 시작하면 온종일 불쾌하기 때문이다.



 살살 흔들어 깨울까, 아니면 편안한 클래식 음악이라도 조금 크게 틀어 자연스럽게 깨울까, 아니면 창문에 처져 있는 블라인드를 걷어, 따스한 햇볕으로 깨울까. 요조숙녀 그라스 원더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독점력은 예고 없이 찾아오는 법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조금 억울하다. 그라스 원더를 방치한 트레이너 씨다. 정시에 오지 않은 것으로도 모자라, 그라스 원더가 여벌쇠를 사용하여 기숙사에 들어가기 전까지도, 그리고 들어온 후에도 계속해서 꿈나라에 출장 가 있다.



 그런데도 그라스 원더는 트레이너 씨를 위해서 편안하고 기분 좋은 기상을 어떻게든 만들어 주려 생각하고 있었다.



 물론 트레이너 씨는 사랑스럽고 소중하지만, 그라스 원더의 독점력은 그것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했다.



 조금, 뭔가, 그라스 원더 본인 또한 만족할 수 있는 그런, 이때 아니면 얻어내기 어려운, 그런 질척질척하고 짙은 감정의 조각 같은, 그런 것.



 “……후후, 우후후.”



 그런 생각들이 엉망진창으로 쏟아졌지만, 그라스 원더는 답을 알고 있다.



 입꼬리를 살며시 올리며 트레이너 씨의 옷장으로 다가간다. 그리고 그 문을 열어, 트레이너 씨의 향이 짙게 배어 있는, 그러면서도 깔끔한 옷, 하얀 와이셔츠를 집었다.



 그리고 천천히 교복을 벗었다. 사락사락하고 옷가지가 스치는 소리가 났지만, 이 정도 소리로는 트레이너 씨의 단잠을 깨울 수 있을 리 없었다.



 교복을 벗어 던지니 완전히 알몸…까진 아니었고 속옷 차림이 되었다. 그라스 원더의 성격답게 순백색인 속옷 위로, 트레이너 씨의 와이셔츠를 걸친다.



 트레이너 씨와의 체격 차이 때문일까, 소매가 아그네스 타키온이나 사토노 다이아몬드의 그것처럼 나풀거리며 흔들린다. 귀도 이리저리 쫑긋거리며 꼬리마저 그녀의 기분을 대변하듯 살랑거린다. 단추는 잠그지 않는다.



 사실, 완전히 알몸인 채로 입어보고 싶었지만, 그런 로망이 그라스 원더에게도 있었지만, 그래도 거기까지 하기에는 그라스 원더의 요조숙녀로서 가지고 있는 마음가짐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내면의 독점력과 잘 타협하여 속옷 차림으로 입은 것이다.



 이걸 입고서 트레이너 씨를 어떻게 깨우냐고 독점력이 묻는다. 그라스 원더가 어떤 대답을 내놓을지 알면서 묻는 것이다.



 어떻게 하긴, 이렇게 하지. 후후후 요염하게 웃으며 그라스 원더는 트레이너가 덮고 있는 이불의 한쪽을 살며시 치켜들었다.



 “실례하겠습니다♪”



 트레이너 씨에게 들리지 않을 정도의 아주 작은 목소리로 흥얼거리며, 그라스 원더는 이불 속으로 꼬물거리며 파고 들어갔다.



 트레이너 씨의 하얀 와이셔츠에 감싸였을 때보다 한층 더 진한, 농축된 정수와도 같은 트레이너 씨의 향기에 그라스 원더는 정신이 아찔해지는 것 같았으나, 그동안 갈고 닦은 명경지수의 마음으로 간신히 이성을 붙들어 놓을 수 있었다.



 이 시간을 즐기고 싶지만, 솔직히 말하면 이대로 생 우마뾰이 전설 라이브를 하고 싶지만, 독점력이 귓가에 속삭이는 것을 애써 무시하며, 트레이너 씨를 깨워야겠다, 다시 한번 다짐했다.



 그렇게 결심하고 나서, 음냐음냐 작은 신음을 내는 트레이너 씨의 얼굴을 잠시 바라보다가, 이내 그이의 귓가에 다정하게 속삭였다.



 “트레이너 씨, 아침이에요.”



 “…….”



 “어서 일어나세요. 식사하고 출근하셔야죠.”



 “…응, 으응…5분만 더, 으음….”



 “……♪”



 평소의 트레이너 씨와는 다른 모습, 어리광쟁이 소년 같은 그 모습에 그라스 원더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담당 트레이너로서 대할 때는 결코 볼 수 없는 표정이다.



 오늘따라 트레이너 씨가 늦어서 운수 없는 날이다, 라고 생각했건만, 실상은 반대였다. 이 얼마나 운수 좋은 날이란 말인가.



 “안 돼요. 오늘 미팅 있다고 하셨잖아요?”



 “……으응, 음…음음.”



 그래도 나름대로 단호하게 깨웠지만, 트레이너 씨는 여전히 일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잠꼬대라도 하는 듯, 우헤헤 웃으며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무슨 꿈을 꾸는지 모르겠지만, 이런 기회를 놓칠 그라스 원더가 아니었다. 이불 속에서 트레이너 씨에게 꼬물거리며 다가가, 그 탄탄한 몸에 살포시 안겨들었다. 꼬리가 좌우로 미친 듯이 흔들리는 것을 가까스로 참으며, 트레이너 씨의 진한 향기에 잠시 취한다.



 그 사이, 잠꼬대하던 트레이너 씨가 그라스 원더를 살며시 끌어안았다. 그런 꿈이라도 꾸는 것이리라.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을 어떻게든 가라앉히려 노력했지만, 다 허사였다.



 이대로, 그냥 이대로 영원히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 그라스 원더의 작은 바람이었다.




 *  *  *  *  *  *  *  *  *  *




 “……세요, 트레이너 씨.”



 “……?”



 “정마알, 너무 늦게까지 주무시는 거 아닌가요?”



 어디선가 들려오는 귀에 익은 목소리에, 비몽사몽 한 정신에도 불구하고 몸에 소름이 돋는 것이 명확하게 느껴졌다.



 꿈이라도 꾸고 있는 걸까…라고 생각했지만, 바로 옆에서 또렷하게 들려오는 그 목소리는, 여기가 현실임을 알려주고 있었다.



 “어서 일어나서 씻고 출근하셔야죠.”



 “……그라스?”



 “네, 트레이너 씨의 그라스 원더랍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담당 우마무스메의 목소리였다. 담당 우마무스메의 목소리가 바로 옆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서 들려온다. 통화 특유의 소리가 없는 것을 보니, 진짜 바로 옆에 있다는 말이다.



 뭐야, 그라스 원더였잖아. 그렇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감겨 있던 눈을 뜨…려던 찰나,



 “잠깐, 그라스? 그라스…라고?”



 생각해보니 오늘 분명 해가 뜨는 것과 동시에 업무를 끝냈고, 조금 눈을 붙이고 월요일의 일과를 시작하자, 라고 생각하여 침대 위에서 눈을 감은 것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



 그라스 원더가 여기에 있을 이유가 없다. 아니, 있으면 안 된다. 여기는 트레이너 기숙사. 우마무스메들이 함부로 들어올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물론 그라스 원더에게 여벌쇠를 (협박당해) 주긴 했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온 적은 없었다.



 나름대로 그 선만큼은 지키는구나, 라고 안심하고 있었는데, 우마무스메의 독점력을 너무 얕보았던 것일까. 한숨이 절로 나온다.



 그러고 보니 뭔가 따스함이 느껴지는데…라고 생각하며 눈을 뜨자.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어머, 트레이너 씨? 왜 그렇게 놀라시나요?”



 “안 놀라게 생겼냐아아아―!! 일단 옷, 옷, 옷부터 입어, 옷!”



 담당 우마무스메, 그라스 원더가 하얀 속옷 차림에 와이셔츠를 입고 바로 옆에 누워있었다. 잠이 확 달아난다. 소스라치게 놀라며 반사적으로 침대에서 도망치듯 기어 나왔다. 의외로 그라스 원더는 그런 이쪽을 잡지 않고, 그냥 후후 웃으며 놓아주었다.



 그리고 시야에 들어온 것은, 열려있는 옷장과 그곳에 걸려있는 담당 우마무스메의 교복, 그리고…열한 시를 가리키고 있는 자명종 시계였다.



 일단 늦잠을 잔 것은 확실하고, 그라스 원더와의 미팅이 날아간 것 또한 확실하다. 그건 그렇다 치자. 왜 담당 우마무스메, 그라스 원더가 속옷 와이셔츠 차림으로 같은 침대에 있었느냔 말이다.



 아무리 기억을 되살려봐도 생각나지 않는다. 분명 오늘 새벽에 침대에 누운 것까지는 생생하게 기억나는데, 분명 그라스 원더가 그때 있던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자던 와중에 몰래 들어온 것이리라. 미팅에 늦었기 때문에 걱정되어 찾으러 온 것이다, 좋게 생각하면 그렇겠지만,



 “우, 우우우, 우리 무, 무무, 무슨 일 이, 이이, 있었…니?”



 그런 거였다면 이미 깨우고도 남았으리라. 이 녀석, 결국 독점력에 져버려서 저질러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을 정도로 큰 충격이었다.



 그러면서 황급히 신체 이곳저곳, 그리고 잠옷이 벗겨져 있거나 흐트러져 있거나 한 것은 아닌지 확인해 본다. 그 모습에 그라스 원더의 표정이 어두워지는 것을 미처 깨닫지 못했다.



 “아무 일도 없었어요.”



 “그 말을 믿겠냐! 솔직하게 말해, 솔직하게 말하렴…지금이라면 어떻게든 할 수 있어, 그러니까―”



 “뭘 어떻게 하신다는 말씀이신가요? 아무 일도 없었어요, 트레이너 씨.”



 “…….”



 뭘 어떻게 하긴. 졸업도 하기 전에 사고 친 것을 어떻게든 수습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그라스 원더는 정말로 모르겠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 귀를 쫑긋거리기만 할 뿐이었다.



 정말로 아무 일도 없었나? 설마 하는 심정으로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그, 혹시, 우마뾰이…그런 건….”



 “트레이너 씨가 제게 손을 대시기 전까진, 결코 그럴 일 없으니 안심하세요.”



 물론 트레이너 씨 주변의 암컷들은 모조리 배제하겠지만요, 그라스 원더는 그 뒷말은 얌전히 속으로 삼킨다. 하지만 그 눈빛에서 느껴지는 나기나타의 날카로움을, 그녀의 담당 트레이너가 모를 리 없다.



 히이익, 강하게 동요했지만, 불퇴전의 사무라이에게 그런 동요를 보이면 한순간에 패배하기에 이를 악물고 평정을 지킨다. 무엇에서 패배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지고 싶지 않다.



 “그럼 도대체 그 옷은 뭔데…!”



 당연히 나올 수밖에 없는 질문. 대충은 짐작하면서도 물어볼 수밖에 없는 질문이었다. 하지만 그라스 원더는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그저 생긋 웃으며 별것 아닌 투로 말했다.



 “트레이너 씨의 옷을 입어보는 것이, 뭐가 잘못된 일인가요?”



 “……그러면 왜 내 옆에 누워있었는데?”



 “부부가 같은 침대를 쓰는 것이 뭐가 잘못된 일인가요?”



 “…….”



 그제야 그는 깨달았다.



 그라스 원더의 상식은, 독점력에 의해 비뚤어진 지 오래였음을.



 “자아, 그렇게 어리바리하게 계시지 마시고, 출근 준비하셔야죠, 트레이너 씨. 아니―”



 그리고 다시금 상기하고야 말았다.



 “―여보♡”



 자신은 그 독점력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행복한 우마무스메와 두려움에 떠는 히토미미의 하루는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다.




 ==========



 순애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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