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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문서] [괴문서] 아그네스 타키온과 에스프레소의 맛

Mikkya(147.47) 2024.02.06 12:41:44
조회 1562 추천 57 댓글 7
														


이전글 : 아그네스 타키온과 커피와 독점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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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은 언제나 힘든 법이다.



트레이너로서의 일도 그렇고, 연구자로서의 일 또한 그러하다. 양쪽 모두를 양립하려 하니, 힘에 부치는 것이 사실이다.



이십 대 초반에는 밤을 새워도 팔팔했는데…지금은 밤을 새우기는커녕, 새벽 한 시 정도만 되어도 골골거리는 것이 일상이다.



그래도 그는 중앙 트레센의 베테랑 트레이너요, 아그네스 타키온의 연구 멘토이자, 아그네스 타키온과 맨하탄 카페의 트레이너이다. 책임감이 막중한 것이다.



그 책임감은 어제도 그를 야근과 야근, 그리고 더 많은 야근의 수렁으로 밀어 넣었고, 그 결과는 참담하리만치 밀려오는 졸음이었다.



아침까지는 괜찮았다. 하지만 점심을 먹고 나니, 식곤증과 더불어 어젯밤의 가시지 않은 피로가 그를 덮친다. 눈꺼풀이 스르르 감기고, 이성으로 어떻게든 본능을 억눌러보려 하지만, 본능이 본능인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게다가 다른 본능도 아니고, 인간의 3대 욕구 가운데 하나인 수면욕이 아닌가. 그렇게 몽롱해지는 가운데에도 그는 머릿속으로 최근에 본 논문을 떠올렸다.



쥐를 72시간 이상 잠을 자지 못하게 만들어 두었더니, 쥐의 여러 장기에서 세포사멸이 일어나며 쥐가 죽었더라…그런 내용의 논문이었던 것 같았다.



그래, 잠을 자지 않으면 죽는 것이다. 그러니 이 졸음은 살기 위한 신체의 저항이다. 그는 잘못이 없다. 생각해보니 아그네스 타키온과 맨하탄 카페의 파워 트레이닝이 오후에 있었던 것 같지만―



“……젠장.”



트레이닝을 빼먹으면 안 된다. 마지막 이성으로 졸음을 이기고, 그는 허리를 꼿꼿이 폈다. 삼십 분 뒤에는 담당 우마무스메들의 트레이닝을 지도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 막중한 사명을 앞두고 쿨쿨 자 버릴 수는 없다.



담당 트레이너로서의 위엄과 자존심이 있지, 자버려서 트레이닝을 빼먹을쏘냐.



“…….”



―라고 생각했지만, 그가 두 가지 깜박하고 있는 것이 있었다.



첫째로, 그는 베테랑 트레이너답게 개인 사무실을 가지고 있었으며, 지금은 그 말고 아무도 없기에 매우 조용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둘째로, 그의 의자는 침대 대용으로도 사용할 수 있을 만큼 편안한, 어드마이어 베가 조차 탐낼 정도로 푹신푹신한 의자였다는 것이다.



기지개를 켜기 위해 잠시 몸을 뒤로 뉘었고, 등이 쿠션과도 같은 의자의 등받이에 닿는다.



“……!!”



거부할 수 없는 편안함이다. 그렇지 않아도 야근과 과로 때문에 피곤했던 그에게, 의자의 푹신함은 절대로 거부할 수 없는 유혹과도 같았다.



그래, 아직 시간은 삼십 분가량 남았다. 10여 분 정도 자고 일어나는 것이 오히려 더 도움이 될 것이다. 잠깐만 눈을 붙이자, 아주 잠깐만.



그런 생각을 하며 잠시 눈을 감는다. 형언할 수 없는 보드라움과 편안함이 그를 감싸 안았고, 그의 입가에는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창밖에서 따스한 햇볕이 그의 볼을 쓰다듬는다. 여기가 천국인가, 속으로 중얼거리는 것이 그의 마지막 의식이었다.




* * * * * * * * * *




아그네스 타키온과 맨하탄 카페는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그야 당연하다. 트레이닝을 하기 위해 점심을 먹고 트레이닝 룸으로 모였지만, 정작 그녀들을 지도해 줘야 할 트레이너 군이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원체 시간 약속을 잘 지키는 그였기 때문에, 무슨 일이 있어서 잠시 늦나…? 하고 생각하며 십여 분가량 기다려 보았지만, 트레이너 군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렇게 기다린 것이 삼십 분이다. 삼십 분 동안 아그네스 타키온과 맨하탄 카페는 적당히 몸을 풀며 강도 높은 트레이닝을 받을 준비를 마쳤지만, 트레이너 군은 오지 않았다.



삼십 분이 넘은 시점에서, 아그네스 타키온은 걱정이라는 것을 했다. 혹시 트레이너 군이 오지 못할…그런 불상사를 당한 것이 아닐까.



하지만 맨하탄 카페는 달랐다. 트레이너 씨가 오지 않은 지 십여 분이 되던 시점에, 그녀의 ‘친구’에게 트레이너 씨의 상황을 알려달라고 부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십여 분이 더 지난 시점에서, 트레이너 씨가 그의 트레이너 사무실에서 곤히 잠들어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뭐, 조금 있다가 일어나시면 오시겠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하지만 맨하탄 카페가 잘못 생각한 것이 하나 있었으니, 트레이너 씨가 일어날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삼십 분이 조금 넘은 시점에, 맨하탄 카페는 아그네스 타키온에게 조심스레 트레이너 씨의 상황을 추측성으로 이야기했다.



트레이너 씨가 자느라…오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당연히 아그네스 타키온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일축했지만, 한 시간이 넘도록 트레이너 군이 오지 않자, 맨하탄 카페와 함께 트레이너 사무실로 찾아간 것이다.



그리고 애석하게도, 우마무스메의 그 뛰어난 청각은 트레이너 사무실 안에서 작게 들려오는 규칙적인 숨소리를 듣고야 만 것이다.



맨하탄 카페는 알고 있던 일이었기에 살짝 인상을 찌푸리는 정도로 끝났지만, 아그네스 타키온은 아니었다.



아무래도 트레이너 군에게 뭔가 문제가 있던 것일까, 혹은 자신이 뭔가 트레이너 군에게 미움받을 짓을 했던 것일까, 그렇게 전전긍긍하며 기다렸기 때문에 트레이너 군이 자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자마자 그 걱정이 분노로 바뀌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리라.



“이…모르모트 군이…!”



“진정하세요…타키온 씨.”



콧김을 씩씩 내뿜으며 트레이너 사무실의 문을 박살 내고 들어가려는 아그네스 타키온을, 맨하탄 카페가 조용히 말린다.



“진정? 이건 모르모트 군의 명백한 잘못이네. 우리는 화를 내도 된다고.”



“그렇긴 하지만…트레이너 씨에게도 뭔가…사정이 있었을지도 모르잖아요.”



“자는 데에 무슨 사정이란 말인가.”



“최근 들어 과로하신 거…알고 있잖아요.”



“…….”



그래, 트레이너 군의 업무량을 아그네스 타키온이 모를 리가 없다. 아그네스 타키온의 담당 트레이너로서의 업무도, 그리고 아그네스 타키온의 연구 멘토로서의 업무도, 거기에 트레이너 군 개인 연구자로서의 업무도 전부 소화해야 했으니, 잦은 야근으로 인한 과로는 어찌 보면 당연하다.



그리고 그렇게 쌓이고 쌓인 것이, 오늘 터진 것으로 생각한다면…이해하지 못할 것은 아니다.



맨하탄 카페의 말이 옳다. 아그네스 타키온은 그녀의 가슴에 불을 지피려고 들었던 분노를 천천히 잠재우고, 트레이너 사무실의 손잡이를 잡았다.



“그래도, 트레이너 군의 상태를 확인해 보긴 해야겠지.”



“트레이너 씨가 깨지 않도록…조용히…들어가 볼까요.”



두 우마무스메의 생각이 일치했고, 아그네스 타키온은 천천히, 소리가 나지 않도록 조심스레 트레이너 사무실의 문을 열었다.



잠겨 있으면 어쩌나 걱정했지만, 다행히도 트레이너 사무실의 문은 열려 있었다. 하기야, 트레이너 군의 성격상 자신이 안에 있는데 굳이 문을 잠그진 않겠지.



“실례하겠네.”



“실례…할게요.”



아주아주 작은 목소리로, 듣지도 못하는 트레이너 군에게 양해를 구하고, 천천히 트레이너 사무실로 들어간다. 그리고 다시금 소리가 나지 않게 조심히 문을 닫고, 손잡이를 놓는다.



고개를 돌려 트레이너 군의 책상 쪽을 본다. 맨하탄 카페 또한 아그네스 타키온의 시선이 향하는 곳을 따라 응시한다.



트레이너 군이다. 트레이너 씨다.



그는 의자에 등을 기댄 채로 세상 모르게 자고 있었다.



“…….”



“…….”



쌕쌕거리며 가슴께가 위아래로 옅게 움직인다. 눈 아래 다크서클이 보인다. 누가 보아도 피로에 못 이겨 잠이 든 모양새다.



뭐라고 한마디 하려고 생각하면서 왔지만, 막상 지쳐 잠든 트레이너 군의 모습을 보니,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았다. 맨하탄 카페 또한 후후 웃으며 트레이너 씨에게 다가갔지만, 그를 건드려 깨우거나 하는 짓은 하지 않았다.



“이제 어쩌죠, 타키온…씨?”



“으음, 일단 사진이나 찍어두고 생각하도록 하지.”



“좋은…생각이에요.”



모깃소리 같은 자그마한 속삭임으로 대화를 나누고, 차례차례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곤히 잠든 트레이너 군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긴다. 셔터 소리에 혹여나 깨지 않을까 노심초사했지만, 다행히 손으로 스피커를 막고 사진을 찍는 정도로는 미동조차 하지 않는다.



그렇게 3분가량, 두 망아지의 촬영은 계속되었다.



“그런데…그냥 이대로 두고만 있을 수는 없지 않나.”



“……?”



아그네스 타키온의 말에 맨하탄 카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트레이너 씨가 이렇게 잠들어 있는 이상, 오늘의 트레이닝은 이미 망한 것 아닌가. 이대로 두고 보지 않는다면 뭘 하려는 걸까, 이 우마무스메는.



“트레이너 군 덕분에 트레이닝 스케줄이 날아갔으니, 응당 그에 맞는 벌을 받아야 하지 않겠나?”



“무슨…말인지 전혀…모르겠어요.”



“어떤가, 얼굴에 낙서라도 하는 게.”



“……네?”



맨하탄 카페는 경멸 어린 눈동자로 아그네스 타키온을 바라보았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걸까, 이 정신 나간 우마무스메는.



“말도 안 되는…소리 하지 마세요, 타키온…씨.”



“하기 싫으면 말게. 나는 모르모트 군의 이마에 내 이름이라도 적어야겠네.”



“…….”



투덜거리면서 말하지만, 결국 이런 기회를 틈타 트레이너 씨를 ‘아그네스 타키온의 것’이라는 표식을 남기겠다는 말이다.



뭐, 평소라면 맨하탄 카페가 신경 쓸 일은 아니다. 이름 석 자 적어두는 것 정도로 일희일비하는 성격도 아니며, 그 아그네스 타키온이 저지르는 일이라 생각하면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트레이너 씨의 책상 위에서 네임펜을 꺼내어 뚜껑을 뽑는 아그네스 타키온을, 맨하탄 카페는 제지한다.



“아, 왜 그러나 카페 군.”



“안 됩니다.”



“그래그래. 같은 담당 우마무스메인데 내 이름만 적으면 좀 그렇지. 카페 군 이름도 같이 적는 게―”



“안 됩니다.”



단호하게 말한다. 맨하탄 카페가 아그네스 타키온에게 단호하게 대하는 것이 하루 이틀 일은 아니지만, 지금만큼은 평소보다 더 강한 의지가 느껴진다. 아그네스 타키온 또한 그것을 알아차렸는지, 인상을 살짝 찡그리며 맨하탄 카페에게 설명을 요구하는 듯, 그녀를 응시한다.



그런 아그네스 타키온의 시선에, 맨하탄 카페는 작게 한숨을 내쉬곤 입을 열었다.



“그러다가 트레이너 씨가…깰 수도 있습니다. 피곤하신데 조금이라도 더 주무시도록…오늘은 그냥 돌아가는 게…어떨까요.”



“모르모트 군이 언제부터 잤는지는 몰라도, 최소한 한 시간은 넘었네. 슬슬 일어나도 큰 문제가 없어.”



“하지만 타키온 씨, 트레이너 씨를…보세요. 눈가의 다크서클…이마에 잔주름…미세하게 늘어나고 있는 흰머리…자면서도 파르르 떨리는 눈썹, 게다가…이불조차 덮고 주무시는 것이 아니라…그냥 의자에 몸을 누인 채 주무실 뿐이잖아요.”



“…….”



“입술에도 핏기가 없어…얼마나 피곤하셨으면 이렇게 초췌한 상태로…주무시고 계시겠나요.”



“……호오.”



맨하탄 카페의 말에, 아그네스 타키온은 조용히 네임펜을 내려놓았다. 흥미가 없어진 눈이다. 그런 눈동자가 트레이너 씨가 아닌, 맨하탄 카페를 응시하기 시작했다.



“카페 군. 자네, 모르모트 군을…잘 보고 있군.”



“그거야…담당 트레이너 씨니까요.”



“내 담당 트레이너 군이기도 하잖은가.”



“아니라고 한 적은…없는걸요.”



평소의 맨하탄 카페다. 하지만 아그네스 타키온은 평소와 같은 느낌이 아니었다.



미묘한 위화감, 맨하탄 카페에게서 느껴지는 아주 자그마한, 평소와 같지 않은 이질적인 느낌.



그 느낌의 정체를, 아그네스 타키온은 모른다. 하지만 우마무스메의, 암컷으로서의 본능과 직감이 그녀에게 고하고 있었다.



맨하탄 카페는, 위험하다고.



위험하다는 것은 알겠다. 제아무리 과학에 심취한 이과무스메 아그네스 타키온이라 할지라도, 아니, 오히려 그렇기에 본능의 무서움을 알고 있다. 이 정도로 본능이 강하게 경고한다는 것은 분명, 맨하탄 카페가 아그네스 타키온에게 위협이 되는 존재임이 틀림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그네스 타키온은 알 수가 없었다. 맨하탄 카페는 그녀의 동료요, 같은 담당 트레이너를 둔 막역지우와도 같은 사이다. 물론, 아그네스 타키온이 일방적으로 달라붙는 것이 없잖아 있긴 하지만, 맨하탄 카페 또한 아그네스 타키온과 다른 우마무스메들보다는 친하리라 생각한다.



그러니까 더더욱 알 수가 없는 것이다. 맨하탄 카페가 왜, 아그네스 타키온에게 있어 위험하다는 것일까. 본능의 경고를 이해했지만, 납득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아그네스 타키온의 마음 깊은 곳, 그 심연보다 더 깊은 곳에서는 이미 알고 있었다. 단순히 그렇다고 인정하고 싶지 않을 뿐이었다. 인정하게 된다면 더 이상, 이전의 관계로는 돌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사실을, 지금 아그네스 타키온을 멀뚱히 바라보고 있는 저 금색 눈동자는 모른다. 그리고 아그네스 타키온 본인의 눈동자가 흐릿하게 탁해졌다는 사실 또한, 모른다.



“카페 군.”



그래서, 아그네스 타키온은 본능에 저항하기 위해, 그럴 리 없다는 얕은 생각과 함께 맨하탄 카페에게 작은 질문을 하나 던진다. 아그네스 타키온의 부름에 맨하탄 카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녀를 바라본다.



“어차피 오늘, 우리 트레이닝은 불가능할 것 같아서, 나는 실험실로 복귀할 예정이지만…카페 군은 여기 남아 있을 건가?”



“…….”



맨하탄 카페는 바보가 아니다. 아그네스 타키온이 말한 것의 저의를 명확하게 파악한다.



아그네스 타키온은 지금, 맨하탄 카페가 그녀와 같이 트레이너 사무실에서 ‘나가’주기를 원하는 것이다. 정확하게는, 맨하탄 카페를 떠보는 것이다. 트레이너와 단둘이 남는 상황을 ‘원하는’ 것이냐고.



당연히, 맨하탄 카페는 그것을 원한다. 하지만 자칫, 잘못했다가는 아그네스 타키온의 마음 깊은 곳에 잠들어 있는 독점력을 깨워버릴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굉장히 귀찮아진다.



하지만 순순히 아그네스 타키온의 말을 들을 생각도 없다. 어딘가에서 친구가 속삭이는 듯했다. ‘그녀의 말을 듣지 마. 트레이너는 네 거야.’ 맨하탄 카페 또한 그리 생각한다.



그야 당연하지 않은가. 맨하탄 카페는 아직 아무것도 가지지 못했지만, 아그네스 타키온은 모든 것을 가졌다. 트레이너 씨와의 육체적, 정신적 관계, 트레이너 씨의 마음, 트레이너 씨와의 시간, 트레이너 씨와의…추억들. 맨하탄 카페는 가지고 싶어도 지금으로서는 가지지 못하는, 그런 것들을.



그러니, 조금쯤은 눈앞의 이 기만자를 놀려도 되지 않을까. 아직은 선전포고할 생각까진 없지만, 이 짜증 나는 우마무스메를 괴롭혀 주어도 괜찮지 않을까.



“저는…트레이너 씨에게 볼일이…있으니, 트레이너 씨가 일어나실 때까지, 기다리겠습니다.”



“……흐응.”



아그네스 타키온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는다. 강하게 의심하는 것이다. 맨하탄 카페가 트레이너 군을 ‘원하고’ 있는 것인지, 혹은…그보다 더 바라는 것인지.



그러나 아그네스 타키온은 섣부르게 덤벼들지 않는다. 강렬한 독점력이란 것을 한번 겪어봐서인지, 혹은 아직 이성적으로 생각할 머리가 남아 있어서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뜨거워지는 가슴과는 별개로 머리는 한없이 차가워진다.



맨하탄 카페의 저의가 무엇인지, 트레이너 군을 볼 일이 뭐가 있는지. 거짓말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아그네스 타키온이 떠나가면 무엇을 하려 하는지.



그리고 그것을 확인하는 가장 좋은 방법을, 머릿속으로 금세 도출해낸다.



“그래, 알겠네. 먼저 실험실로 들어가 볼 테니, 나중에 보도록 하지.”



“네. 나중에 보도록…하죠.”



“…….”



“…….”



두 우마무스메는 서로를 바라본다. 아그네스 타키온은 무뚝뚝한 표정으로, 맨하탄 카페는 입가에 옅은 미소를 띠며, 눈빛을 교환한다. 그러다가 이내, 아그네스 타키온이 몸을 돌려 트레이너 사무실을 나간다.



조용히 문이 닫히고, 맨하탄 카페는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차갑다 못해 시릴 정도의 분위기였지만, 모른 척 어찌어찌 넘어간 것이다.



하지만 맨하탄 카페는 알고 있다. 문은 닫혔고, 이 공간에는 맨하탄 카페와 잠들어 있는 트레이너 씨, 둘 뿐이지만…아직 떠나가지 않았음을 눈치챈다.



아니, 아그네스 타키온이라면 분명 그러리라 생각했고, 예상대로였을 뿐이다. 숨을 참고 귀를 최대한 기울여 보면, 들리는 숨소리는 두 개다.



크고 규칙적인 쪽은 트레이너 씨의 것, 그리고 작고 불규칙한, 오히려 조금 흥분한 것 같은 숨소리는…아그네스 타키온의 것이겠지.



그래, 실험실로 간 척을 하고, 문밖에서 맨하탄 카페의 행동을 귀로 파악하려는 것이다. 맨하탄 카페가 트레이너 씨에게 무슨 짓을 하려는지, 아그네스 타키온이 없는, 단둘의 시간에 무엇을 하려는지.



“…….”



정말로 맨하탄 카페와 트레이너 씨 둘뿐이었다면…아무것도 안 했을 것이다. 그야, 트레이너 씨 정말로 피곤하시고…괜스레 무슨 짓 해서 트레이너 씨의 달콤한 수면을 방해하고 싶지 않으니까. 맨하탄 카페는 분명 이기적이지만, 그 이기심이 트레이너 씨를 향하는 것은 아니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문밖에서 이쪽을 엿듣고 있을 아그네스 타키온에게 아무것도 안 해주는 것은 섭섭할 것이다. 독점력에 삼켜질 듯 말 듯 줄타기를 하는 저 기만자에게, 한 방 먹여주고 싶은 마음이 있다.



그래서, 맨하탄 카페는 후후, 작게 웃으며 트레이너 씨에게 천천히 걸어간다. 또각거리는 발소리가 문밖의 저 도청자에게 똑똑히 들리도록, 그리고 이후의 소리 또한 분명하게 들을 수 있도록. 트레이너 씨의 책상 위로 손을 뻗는다.



“으읏―”



입가로 새어 나오는 옅은 신음. 맨하탄 카페의, 분명한 여자의 신음을 흘린다. 밖에서 들려오는 숨소리가 더 거칠어지는 것이 들린다.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을 가까스로 참는다.



“흐읏…트레이너…씨. 후우…트레이너, 씨―”



그 신음은 어느새 헐떡이는 소리가 되어, 그녀의 담당 트레이너 씨를 부르며 위아래로 왕복하고 있었다. 후우, 하아, 규칙적으로 숨을 흘리며, 맨하탄 카페는 바깥의 소리에 다시금 귀를 기울인다.



낮게 으르렁대는 소리, 이빨을 가는 소리, 손잡이를 움켜잡고 힘을 주는 손아귀의 소리, 당장이라도 트레이너 사무실의 문을 열어젖히고 들어올까 말까 고민이라도 하는 거겠지.



그러다가 분명, 본능을 이기지 못하고 벌겋게 달아오른 눈으로 트레이너 사무실로 들어오겠지. 그리고 맨하탄 카페를 노려보며 적의를 숨길 생각도 하지 않은 채 그 질척이는 독점력을 드러내겠지.



하지만, 맨하탄 카페는 아그네스 타키온에게 잘못한 것이 없다. 아그네스 타키온와 트레이너 씨의 관계는, 아무것도 아니니까. 물론, 맨하탄 카페 또한 마찬가지니까. 그런 관계가 망가질 일은 하지 않으니까.



철컥, 하는 소리가 들렸고, 맨하탄 카페는 속으로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그녀가 들어온다는 것은, 맨하탄 카페가 아그네스 타키온에게 한 방, 제대로 먹였다는 의미니까.



얼마나 속이 답답했을까. 얼마나 무서웠을까. 얼마나 떨렸을까. 얼마나 두려웠을까. 맨하탄 카페에게 트레이너 씨를 빼앗긴다는 그 생각이 그 명석한 두뇌를 잠식해버려, 복잡한 사고 따윈 하지 못하게 만들었으리라.



“카페 군―”



그러나 정작, 맨하탄 카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봐, 아그네스 타키온이 무시무시한 눈으로 노려보고 있지만, 맨하탄 카페는 당당하다.



“어라…아직 안 가셨나요…타키온, 씨.”



“자네, 내 트레이너 군에게 무슨 짓을―”



아그네스 타키온이 당장이라도 달려들 것 같이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있었지만, 맨하탄 카페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한다.



“트레이너 씨에게…무슨 짓이라니요…?”



“……어라.”



그런 맨하탄 카페의 모습에, 아그네스 타키온은 다시금 맨하탄 카페를 바라보았다.



분명, 트레이너 군의 위에서 허리를 흔들며 헐떡이고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맨하탄 카페는…손에 아령 하나를 든 채로 그것을 위아래로 흔들고 있었다.



그래, 허리가 아니라, 아령.



“타키온 씨가…무슨 말씀을 하시는지…전혀 모르겠네요.”



“그게, 그러니까…그게, 분명―”



“분명, 이상한 생각이라도 하신 거겠죠.”



“…….”



맨하탄 카페의 한 마디에 아그네스 타키온의 얼굴이 새빨갛게 물든다. 그래, 완전히 착각해버린 것이다, 라고 아그네스 타키온은 생각하겠지만…실상은 맨하탄 카페에게 속아버린 것이다.



독점력이 사르르 눈 녹듯 사라진다. 그리고 되찾은 이성은, 아그네스 타키온 본인의 꼴을 인지하도록 만든다.



그렇지만, 아그네스 타키온의 이성은 괜한 것이 아니다. 재빨리 침착하게 표정을 피고, 장난스럽게 아하하 웃으며 맨하탄 카페에게 말한다.



“글쎄, 카페 군이 말하는 이상한 생각이 뭔지, 모르겠군.”



“뭐…그렇다면 됐습니다.”



“하지만 고작 20kg도 안 되는 아령으로 헐떡이는 것은 카페 군답지 않다만?”



“좀 빠르게 움직이니…생각보단 지치더군요.”



“트레이너 군은 왜 부른 건가?”



“트레이너 씨가…일어나신 줄 알고, 그만….”



“그런 거였군, 하하, 하하하―”



멋쩍게 웃는다. 그럴 리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런 웃음밖에 지을 수 없겠지, 지금으로서는. 그런 아그네스 타키온에게, 맨하탄 카페는 재차 작은 비수를 날린다.



“그런데…타키온 씨는 왜…다시 오셨나요?”



“생각해보니 트레이너 군이 깨어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맞지 않을까 싶어서 말이네.”



“그렇…군요.”



하여간 미꾸라지처럼 잘 빠져나가는 우마무스메다. 이과 한정이라곤 해도 그 명석한 두뇌가 어디 가는 것은 아니리라.



“그런데, 타키온…씨.”



“응? 뭔가. 카페 군?”



작게 웃으며 소파에 착석하는 아그네스 타키온을 보며, 맨하탄 카페는 조용히, 마음에 들지 않았던 한 마디를 정정한다.



“조금 전에…‘내’ 트레이너 군…이라고 하셨잖아요.”



“아, 아아…그랬지. 아무래도 소중한 실험체…가 아니라 연구 멘토이기 때문일까―”



“‘저의’ 트레이너 씨이기도 하니까요.”



그 말에, 순식간에 방 안의 분위기가 가라앉는다. 아그네스 타키온의 눈동자가 살짝 흐려지는 것은 분명, 기분 탓이리라.



하지만 그제야 아그네스 타키온은 확신할 수 있었다.



맨하탄 카페는 그녀에게 있어, 결코 아군이 아니라는 것이다. 홍차의 맛과 향을 덮어씌우려는, 쓰디쓴 에스프레소와 같은 존재다. 그 씁쓸한 맛을 생각하니, 뺨이 들썩거리는 것을 가까스로 참는다.



언제부터? 라고 생각해도 지금에서는 소용없는 것이다. 결과가 명확한데, 과정이야 찬찬히 뜯어보면 되는 것이니까. 중요한 것은 그 결과가 퍼져나가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아그네스 타키온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맨하탄 카페가 모든 속내를, 그녀의 모든 패를 내보인 것이 아닐진대, 아그네스 타키온 또한 그녀의 밑바닥을 보여줄 이유가 없다.



독점력을 조심하자, 이성의 끈을 붙들어 매곤, 아그네스 타키온은 조용히 맨하탄 카페에게 한마디를 건넨다.



“아니라고 한 적은, 없네.”



“그렇군요, 타키온…씨.”



홍차와 커피가 만나고, 아주 조금, 섞인다. 하지만 아직은 그 경계가 뚜렷하기에, 완전히 섞이는 데에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리라.



혹은, 한쪽이 완전히 밀어 내리라.



세상모르고 자는 담당 트레이너만이, 언젠간 그 결말을 볼 수 있으리라.




* * * * * * * * * *




정신이 들었다.



정신이 들었다는 것은 정신을 잃어버렸었다는 뜻이다.



그 생각이 머리를 스치자마자 반사적으로 책상 위의 시계를 확인한다.



당근 됐다. 그 생각밖에 할 수 없었다.



트레이닝 예정 시간보다 두 시간이나 더 지났다. 담당 우마무스메 둘을 방치해버리고, 달콤한 잠을 잔 것이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라는 생각이 채 들기도 전에, 책상 너머에서 인기척이 느껴진다. 설마, 라는 생각을 하며 의자에서 몸을 일으킨다. 고개를 살짝 옆으로 빼, 소파를 바라본다.



“이제 일어났나, 트레이너 군?”



“잠꾸러기시네요…트레이너 씨.”



“…….”



아그네스 타키온이, 맨하탄 카페가 보였다. 둘 다 입은 웃고 있었지만, 눈은 아니었다. 연약한 히토미미 하나 정도는 갈가리 찢어발길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포식자의 눈이었다.



그는 책상에 대가리를 박았다. 머리라고 하면 안 된다. 지금만큼은 대가리다. 그리고 복창한다. 죄송합니다. 잘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세요.



하지만 효과는 없다. 아그네스 타키온에게 오른쪽 팔을 붙들린다. 맨하탄 카페에게 왼쪽 팔을 붙들린다.



“잘못을 했으면 벌을 받아야지, 트레이너 군.”



“저희의 시간…트레이너 씨가…벌충하셔야죠.”



“뭘 바라는 거니…이건 놓아주면 안 될까?”



그렇게 말했지만, 아그네스 타키온도, 맨하탄 카페도 그의 팔을 놓아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오늘 더 이상 못 자게 할 테니까, 기대하게.”



“어쩌면 내일까지…못 주무실 거예요.”



“뭔데, 뭔데…!! 뭘 하려는 건데―!”



“죽이진 않으니 안심하게.”



“오히려 포상일지도…몰라요.”



두 우마무스메가 히죽히죽 웃는다. 트레이너는 끌려 나간다. 어디로 갔는지는 딱히 비밀은 아니다.



그 길로 두 우마무스메와 한 명의 히토미미는 실험실에 딸린 탕비실로 끌려갔고, 그곳에서 맨하탄 카페가 내린 커피 다섯 잔, 아그네스 타키온의 생떼 하에 트레이너 본인이 직접 우린 홍차 다섯 잔, 합계 열 잔의 카페인 음료를 과다섭취하고 나서야 풀려날 수 있었다.



그리고 정말로, 다음날 자정까지 잠들 수 없었던 트레이너였다.



…아무것도 모른 채 말이다.




==========




타키카페는 중마장이 맛있다고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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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문 [괴문서] 아그네스 타키온과 에스프레소의 맛 [7] Mikkya(147.47) 02.06 1562 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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