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수말들은 동일한 조건에서 평가받기가 힘들다.

일단 현역시절에 끝장나는 성적을 내고 화려하게 은퇴한데다 부모한테서 받은 혈통도 튼실하면 무수한 교배의 요청이 쏟아지는 건 당연.

성적이 좋지 않았다면 입질도 당연히 별로 없겠지만 성적이 좋더라도 혈통면에서 봤을때 돌연변이 수준이면 일단 생산자들부터 교배 전에 한번 멈칫하는게 당연지사다.

싼 교배료로 유도한다고 하면 결국 돈없는 생산자가 끌고오는 변변찮은 실적의 번식암말들뿐. 애초부터 기울어진 땅에서 싸우는 싸움이고, 후자가 전자를 누르고 '표면상으로' 두각을 보일 확률은 적다. 획득 상금 총량으로 평가하는 리딩 사이어 순위에선 결국 양적 질적으로 우세한 전자들만이 고평가를 받을수밖에 없는 것.

그러나 모든 생산자가 -샤-라던가, 유럽의 쿨모어나 두바이의 고돌핀처럼 돈이 썩어나지는 않는법. 낮은 확률이라지만 조금이라도 더 효율을 올리기 위한 노력은 씨수말들을 최대한 공평한 기준에서 놓고 누가 더 효율적일까를 평가하려는 고민으로 이어졌고, 그렇게 해서 나온 스탯이

AEI(Average Earning Index)다. 1948년 미국의 블러드호스에서 일하던 Joe Estes가 개발했지만, 컴퓨터의 발달로 상금과 승수 집계가 간편해진 70년대 이후에 제대로 정착하기 시작한 물건.

이 스탯은 특정연도나 특정 생산연도에 같은 지역에서 활동한 모든 말들의 평균 획득 상금을 1.00으로 잡고, 해당 씨수말의 자마들이 획득한 평균 상금을 대입해 수치화한 것이다. 어떤 씨수말의 AEI가 1.50이라면 자마들이 전체 평균 대비 1.5배 더 벌어다주는 실적을 냈다는 것.

AEI 계산공식 = (자마들이 거둔 총상금/자마 출전두수) / (모든 경주마가 획득한 총상금/총 출전두수) 

그럼 이걸 머리에 넣어두고 2005년의 일본 리딩 사이어 데이터를 보자.

혼자 다른 세상에서 놀고 있는 일본의 위대한 수령 선데이 사일런스님은 제껴놓고(연간 중상 33승)

리딩 3위인 후지 키세키의 어닝 인덱스는 1.38로 리딩 8위인 타이키 셔틀의 1.46보다 쳐지는걸 볼 수 있다.

리딩 5위 박신 선생님은 상금도 대회도 짠 단거리만 쭉쭉 뽑아냈으면서도 1.31의 괜찮은 효율을.

리딩 7위 일본 총대장님은 세자리오가 활약하던 시절이지만 1.21

9위인 엘 콘도르 파사는 1.09로 거의 전체 평균에 수렴하고,

0.94의 라이언은 양반인게 0.81의 어드마이어 베가, 0.61의 그래스, 0.70의 우리킹, 0.77의 마블러스 선데이 같은 경우도 있다. 이 넷은 평균에도 못미치는 자마성적을 내고 있다는 의미.

물론 이 AEI도 빠따에서 보는 BABIP처럼 단일년도 데이터로 평가하기에는 bias가 개입하기가 쉽다. 

1. 외국 수입말의 아버지처럼 도입 두수는 적은데 평균 성적이 높다면, 짤에서의 엔드 스윕(2.09)이나 킹맘보(3.46)처럼 수치가 확 튈 수 있고, 

2. 낮은 등급 경주에서 꾸준하게 뛰며 상금을 긁은 하급 말이 부상으로 공백기를 길게 갖는 중상급 경주마보다 수치에 더 공헌하는 경우가 생기며,

3. 전체적인 평균이 낮은 씨수말인데 갑자기 돌연변이로 걸출한 자마가 나타나는 경우에도 왜곡된 결과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3번의 대표적인 케이스가 바로 딥 임팩트의 전형(全兄)인 블랙 타이드다.

GI은 커녕 GII(스프링S) 1승따리였지만 딥가랑 부모 혈통이 완벽히 같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대체 씨수말로 도입,

당연히 딥가 교배료를 낼 일이 없는 히다카쪽 수요를 소화하며 평균 이하의 AEI를 기록하고 있었는데

2015년부터 2017년까지 3년간 갑자기 상금액의 자릿수가 달라지더니 특히 2016 2017년은 2년 연속 리딩 10위를 기록하고 AEI가 1.5가 넘는 고효율을 달성한다.

그러나 연도에서 이미 짐작깐 사람들도 있겠지만

오로지 얘 하나만 가지고 만들어낸 업적이다.

저 3년간 블랙 타이드 자마들이 벌어들인 상금은 약 42억엔. 그중 18억 7천만엔을 혼자 벌었으니....

저런 bias 말고도 근본적인 문제가 하나 더 있는데,

경주마의 유전자는 아빠 엄마한테서 반반씩 받는다는 것. 샤다이 스탤리온 스테이션에서 샤다이 그룹이 열심히 수입해오는 외국 중상경력의 번식암말들과 허리운동하는 성골 씨수말들과, 저기 브리더즈 SS나 애로우 스터드에서 중앙 미승리나 지방경마 출신 번식암말과 교배하는 씨수말들을 동일한 AEI로 비교하기에는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그래서 1982년에 새로 도입된 개념이 CPI(Comparable Index)다. 씨수말이 교배한 번식암말의 질적 평가를 위한 수치로, 해당 번식 암말이 다른 씨수말과 교배해서 낳은 자마들의 평균 상금액을 전체 평균으로 나눈 수치. 어떤 씨수말의 CPI가 2.5라면 그 씨수말은 평균 대비 2.5배 많은 상금을 벌어주는 새끼를 낳는 우수한 번식암말들과 교배했다는 의미다.

??? : "그렇다면 AEI가 CPI보다 낮은 씨수말은 스찌 먹튀새끼네?"

정답! 지금부터 누가누가 스찌인지 찾아볼 시간입니다!

CPI 1.13인데 통산 AEI가 0.80인 그래스 원더. AEI만으로도 평타 이하지만

스크린 히어로와 어니스트리, 세이운 원더라는 홈런 세방을 치고 그중 스크린 히어로가 다시 모리스라는 역대급 홈런을 갈기면서 3대째 일자전승으로 대를 잇고 있다.

말딸 혈통 가운데 가장 장기생존 확률이 높은 아이러니한 결과.

통산 CPI가 1.63이지만 AEI는 1.46인 일본총대장.

걸출한 딸 둘이 열심히 벌어다주던 시절을 빼면 번식암말 투자대비 효율이 안나오는 편이었다. 이를 반증하듯 샤다이 SS를 나간 이후로는 AEI가 말그대로 떡락하는 걸 볼 수 있다. 리치 더 크라운으로 부계존속을 시도중이지만 솔직히 확률은 낮다.

단명하는 바람에 단 3세대만 자손을 남겼지만 효율이 대단하다!

번식암말의 질도 CPI 2.00으로 평균 대비 두배나 되지만 그 지원으로 뽑아낸 AEI는 2.86!

용택콘도르파사의 오명은 이제 벗어도 되지 않을까?

말딸 뉴비들의 친구 박신 선생님은 생산자들의 좋은 친구기도 하셨습니다.

거리적성도 확실하게 전달, 성적도 확실, 효율도 확실.

돈 낙낙히 벌어주는 스프린터를 얻고 싶다면 무지성 박신메타는 좋은 선택.

첫 세대 자마 부진의 여파로 이후 교배두수 자체가 떨어지는 등 굴곡을 겪었던 2기 주인공.

생을 마칠때까지 샤다이 SS에서 머물렀던것 치고는 그래서인지 CPI도 1.01로 그렇게 높지 않다.

샤다이 SS에서 테이오 옆방을 쓰고, 방목지는 그 선데이 사일런스한테 안쫄고 유일하게 생깐다는 점을 높이 평가받아 선데이 옆자리를 썼던 메지로 맥퀸.

딱 평균에 수렴한다. 하지만 맥퀸의 진정한 공적은 스테이 골드와 자기 딸의 궁합이 끝장나게 좋았다는 점이다(드림 저니, 오르페브르, 골드 쉽)

리딩 순위는 커리어 내내 10위 밖이었지만 효율은 좋았던 타마모 크로스. 외국 씨수말 3대장이 설치던 시절에 국내산으로는 쏠쏠하게 역할을 해 줬다.

혈통 대비 돌연변이라면 단연 말딸 원탑급인 오구리. 표본 자체가 적기도 하지만 번식지원 대비 자식들은 대체로 시원찮은 모습을 보이며 충실하게 평균으로 회귀했다.

브라이언즈 타임의 후계자가 될까 했지만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마야노 탑건.

오르페브르가 샤다이 SS에서 입지가 흔들흔들한 이유가 여기서 나온다.

CPI가 2.65인데 AEI는 반타작 수준인 1.39. 격이 다른 스찌력을 보이고 있다.

아직 표본이 덜 쌓였고 샤다이 SS보다 좀더 널널한 빅 레드팜에 있지만 좀더 분발이 요구되는 고루시

덤으로 둘만 더 보자.

약물로 받을수 있는 음해를 다 받고 있지만 딥가놈 자마에 대한 수요가, 샤다이가 그렇게 혹사시킨 이유가 드러나는 데이터.

번식암말의 질도 CPI 2.73으로 압도적이지만 결과물은 그걸 뛰어넘는 AEI 3.92.

좋은 암말을 넣어주면 그 이상으로 결과를 뽑아준다는데 환장 안할 인간이 어디있겠는가?

그렇게 하다보니 말년에는 야스 한번에 4천만엔을 내야 하는 지경까지 갔다.

그럼 저놈 애비는?

왜 일본 경마를 선데이 사일런스 이전과 이후로 나누는지 아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