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왕의 레이싱 실크. 금실장식이 된 보라색 바탕에 주홍색 소매, 금테 두른 검은색 벨벳 모자.

에드워드 7세 시절부터 내려오는 국왕 소유마의 상징이다.

네살때부터 셔틀랜드 포니를 선물받아 승마를 시작했다던 엘리자베스 2세.

응애 무렵부터 말과 친숙한 환경에서 자라났다보니 

아침 식사때 레이싱 포스트(경마신문)를 끼고 밥을 먹는 악질 말박이가 되는건 운명적인 결과였다.

승마 쪽에 대해서는 여기 오는 윾동 한명이 더 썰 잘 풀어줄게 분명하니 이건 건너뛰고,

서러브레드 경마 쪽으로 한정지어서 여왕의 명예를 드높였던 명마들을 한번 보자.

오레올Aureole

아버지 조지 6세로부터 물려받은 말이다. 하이페리온의 아들.

지금은 영국 5대 클래식 중 여왕이 유일하게 못 이긴 경주가 엡섬 더비로 남아있지만, 사실 여왕은 대관식을 치룬 첫해, 1953년에 이 오레올로 더비를 거의 먹을뻔 했었다. 이때 2착할때만 해도 70년이 넘도록 더비만 못 이길거라고는 상상을 못했겠지...

1953년 3세 시즌에 더비 2착뿐만 아니라 킹조지 2착, 세인트 레저 3착으로 한끗이 모자라서(사실 전부 착차는 좀 났다) 아쉬움을 남겼지만, 이듬해인 1954년에 코로네이션 컵과 킹조지를 연이어 따먹으며 GI 2승을 챙겼다. 타임폼 레이팅 132.

킹조지 우승후 직접 오레올을 다독이는 여왕

여왕은 이 오레올의 활약으로 1954년 최다상금 수득 마주 타이틀을 획득했다. 은퇴한 후에도 하이페리온의 후계 종마로 활약, 영국과 아일랜드에서 도합 여섯번이나 리딩 사이어에 등극했다.

넷플릭스 드라마 더 크라운 시즌1 9화에서 나오는 에피소드가 바로 이 오레올의 킹조지 도전 당시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드라마에서는 여왕의 레이싱 매니저인 7대 카나본 백작(투탕카멘 발굴한 그 카나본의 손자) '포치'와의 로맨스가 있었던 것처럼 묘사하지만

실제로는 말덕후라는 것 하나만으로 의기투합한 찐텐 말박이 콤비...

카로차Carrozza

네아르코의 손녀이자 하이페리온의 외손녀. 왕실 소유인 내셔널 스터드에서 길러져, 최초로 여왕에게 클래식 타이틀을 안긴 주인공이다.

1000기니에서 4착으로 패퇴했으나 엡섬 오크스에서 1000기니 승자 로즈 로열을 물리치고 암말 챔피언에 등극한다.

카로차가 딴 상금 덕에 여왕은 1957년에도 최다 상금수득 마주 타이틀을 땄다.

여왕이 기수 레스터 피곳이 탄 카로차를 손수 고삐를 끌어 화제가 된 사진.

사실은 카로차가 위너스 서클에 안 들어가려고 개기자 여왕이 나서서 확 끌어당기는 모습이다.

2차대전때 참전해 차량정비하던 팔뚝힘이 어디 안갔는지 그 한방에 카로차가 알아서 들어갔다고.

알메리아Almeria

암말 스테이어라는 독특한 포지션을 가졌던 말.

1957년 요크셔 오크스 챔피언. 동년에 '암말의 세인트 레저'로 불리는 파크 힐 스테이크스(GII, 3세 암말 한정전. 세인트 레저와 똑같은 거리)에서도 우승했다.

1958년엔 킹조지와 돈캐스터 컵에서 2착을 기록하기도 했다.

펠 멜Pall Mall

1959년에 2000기니를 우승하며 여왕에게 두번째 클래식 타이틀을 안겨줬다. 락킨지 스테이크스는 2년 연속 우승. 타임폼 레이팅 132.

종마로도 그럭저럭 활약했지만 브루드메어 사이어로 의외로 현재까지 영향력을 남기고 있는데,

그의 딸 블러바드Boulevard에서 이어진 모계로 탄생한 말이 바로 스트릿 크라이, 샤마달, 그리고 일본의 네오 유니버스다.

호프풀 벤처Hopefull Venture

맨 처음 언급했던 오레올의 아들. 왕실 스터드 소속 말들이 바이러스에 시달리면서 침체기를 겪던 60년대에 가장 성공적이었던 말이다.

3세 때는 에드워드 7세 스테이크스 2착, 세인트 레저 2착 정도가 두드러지는 활약이었지만 고마가 되면서 도버해협을 와리가리하며 활약,

오르몬드 스테이크스, 하드윅 스테이크스, 그리고 프랑스의 생 클루 대상을 따냈다.

하이클레어Highclere

레이싱 매니저 카나본 백작의 성 하이클레어를 따서 이름지어진 암말. 

1974년 1000기니를 우승해 17년만에 여왕에게 클래식 타이틀을 안겨준다.

오크스는 거리가 길 것으로 판단해 프랑스로 원정, 프랑스 오크스인 Prix de Diane(2100m)에서도 우승했다.

킹조지에서는 전설적인 프랑스 암말 달리아Dahlia에게 패배해 2착.

타임폼 레이팅은 129를 부여받았다.

번식암말로의 성적도 뛰어나 밀포드Milford나 하이트 오브 패션Height of Fashion 같은 말을 생산했고,

둘째 딸인 버그클레어Burghclere는 이후 윈드 인 허 헤어Wind In Her Hair라는 암말을 낳는데, 윈드 인 허 헤어는

바로 딥 임팩트의 엄마다.

딥 임팩트는 죽었지만 윈드 인 허 헤어는 아직도 노던 호스 파크에서 잘 살고 있다.

던펌린Dunfermline

실버 주빌리(여왕 즉위 25주년)를 화끈하게 축하해준 여왕 소유마중 최강의 암말.

1977년 엡섬 오크스를 이긴건 그렇다 치고...

암말이면서 세인트 레저를 이기는 괴력을 보였다.

(1776년부터 따져도 고작 42마리뿐이고, 2차 대전 이후로는 단 7마리만 달성한 기록)

게다가 저때 깨버린 상대가 개선문상 2연패를 기록하는 전설적인 얼레지드 Alleged(타임폼 레이팅 138)라는게 더 대단.

얼레지의 통산 전적중 유일한 패배가 이때 던펌린에게 깨진 세인트 레저다.

에스티메이트Estimate

유럽 경마가 쿨모어와 기름쟁이들의 독과점판이 된지 오래인 마당에

오래간만에 나타난 여왕 소유의 특급 스테이어. 근데 얘도 암말.

골드 컵 역사상 처음으로 우승한 국왕 소유의 경주마. 2013년 골드 컵과 2014년 돈캐스터 컵을 우승했다.

2013년 까르띠에 챔피언 스테이어 부문 수상.

2014년 골드 컵때도 2착을 기록했지만 출전마중 다섯마리가 사료 오염으로 모르핀이 검출되는 스캔들에 휘말려 실격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