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총선에서 정의당은 쓰디쓴 고배를 마셨다. 

  솔직히 민주당 코어 입장에서 통쾌하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문재인 정권시절 그리고 이재명 대선토론회에서 보인 정의당과 심상정의 언행이 불러온 체증이 어느 정도 내려간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마냥 좋지만은 않다. 자리를 찾아서 이준석에게 빌붙고, 중대재해처벌법을 완화시킨 이낙연을 따라 나간 자들 외에 정의당에 남은 자들이 있다. 그들이 밉더라도 최소한 그들이 기회주의자가 아니라는 점은 인정한다. 그들의 정무감각 때문에 혈압이 올라도 진정성은 의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60만표. 이번 총선에서 녹색정의당이 얻은 비례정당 표이다. 21대 총선에서 녹생당이 얻은 1.5만표를 제하여도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하지만 다음 총선부터 그들의 기호는 뒤로 밀린다. 봉쇄조항을 넘을 수 없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된 정의당 지지자들은 다음 총선부터는 다른 정당에 투표하거나 투표장에 나오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그들 중 몇이나 민주당을 찍을 것인가? 내가 하고 싶은 질문은 민주당이 정의당을 완전히 고사시키면 그 표가 온전히 민주당으로 올 것인가 하는 점이다. 결국 민주당이 대선에서 안정적인 승리를 위해 미워도 다시 한번 정의당과 손을 내밀어야 하는 것은 아닌지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한다.

  하지만 정의당의 미래 움직임에 대해서 생각해봤을 때 희망적이지 않다. 이번 총선에서 민주당 위성정당에 합류할지를 두고 당 내 설문이 있었다고 알고 있다. 그 결과 민주당과 연대하지 않기로 결정이 났다. 나는 정의당 지도부의 생각을 알지 못 한다. 단지 시사 프로그램에서 느껴지는 뉘앙스로 미루어 짐작해보자면 김준우 현 비대위원장과 김종대 전 의원은 연합주의자로 보인다. 나의 가정이 맞다면, 정의당 내 몇몇 지도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자강주의자여서 위성정당에 합류하지 말자는 결론이 나왔다는 뜻이다. 이는 이상한 일이 아니다. 사회민주당처럼 연합주의자들은 이미 뛰쳐 나왔고, 당 내에는 자강주의자들만 남아 더 짠 물이 되었을 터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의당의 방향 수정에 대한 전망이 밝지 않다. 당원 민주주의가 옳은 방향이긴 하지만, 자강론으로 인해 더욱더 짜디짜진 당원 구조 속에서 방향 수정을 할 수 있을지에대해 회의적이다. 필자의 개인적인 사견으로는 정의당이 회생하기 전까진 차라리 김준우 위원장에게 전권을 맡기고 당원들이 따라주면 어떨까 싶다. 스타 정치인이 탄생할지 아니면 백마탄 초인처럼 몽상에 그칠지 걱정이 되더라도 말이다. 

  하지만 정의당이 민주당과 연합한다고 마음 먹는다고 해도 쉬운 일은 아니다. 이번 총선 공천에서 민주당은 페미 정당이라는 이미지를 벗기 위해서 칼을 들었다. 지난 대선의 경험을 바탕으로 다음 대선에서 페미 정당이라는 이미지는 표에 도움이 안 되리라는 지도부와 당원들의 공통된 생각이다. 반면 정의당은 페미니즘을 더욱더 공고히 하였다. 영페미란 분을 후원회장으로 임명하기도 하였다.

  그렇다면 다음 대선에서 민주당은 또 다시 정의당에게 일방적인 양보를 요구할 것이다. 만약 민주당이 정의당의 요구대로 페미니즘을 전면에 내세우면 국민의 힘으로 빠져나갈 표가 상당하리라 예상된다. 이는 결국 정의당과의 연대가 손해라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렇다면 정의당과 정의당 지지자들이 일방적으로 대선에서 표 몰아주기를 할 수 있는가. 민주당이 페미니즘에대해 모호한 입장을 내 걸어도 표를 줄 수 있는가. 

  정의당에 대한 비판과 비난은 쉽지만, 현실은 암담하다. 김준우 위원장은 앞으로도 뒤로도 갈 수 없는 처지다. 살고자 민주당에 굴종하자니 지지자들의 비난을 피할 수 없고, 지지자들의 손을 들어주자니 죽는 길 뿐이다. 지금 이 엄혹한 상황에서 김준우 위원장마저 떠난다면 무엇을 희망 삼아 앞으로 나갈지도 걱정이다.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 마태복음 6장 13절 

오랜 동지가 기나긴 터널의 입구 앞에 서 있다. 

p.s. 첨언하자면 정의당에 대한 걱정은 정의당에 대해 애정하기 때문이 아니다. 단지 정의당이 몰락하면 선거에서 사라질 60만표가 걱정되기 때문이다. 그들이 허무주의에 빠져 선거에서 사라지면 보수정당의 집권이 더욱더 빈번해지리라 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