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xtent of the Anglo-Saxon deployment depends in large measure upon the strength of their army at the start of the battle. The size of the armies engaged at Hastings has been the subject of considerable research and conjecture, but it is now accepted that chronicle estimates ranging from an Anglo-Saxon host of between 400,000 and 1.2 million men and a Norman army of 60,000 can be ignored. It is in fact probable that neither side exceeded a figure of approximately 8,000 fighting men. Clearly Harold was forced to leave a significant proportion of his infantry and archers in the north after Stamford Bridge, and he may have fielded the smaller force at Hastings with perhaps no more than 5,000-7,000 men under his command. There is, however, no reliable evidence of exactly how many men fought in the battle.
앵글로색슨 군대의 배치 정도는 전투가 시작될 때 그들의 군대의 힘에 크게 좌우된다. 헤이스팅스 전투에 참여한 군대의 규모는 상당한 연구와 추측의 대상이 되어 왔지만, 지금은 40만 명에서 120만 명 사이의 앵글로색슨 무리와 60,000명의 노르만 군대를 언급하는 연대기의 수치를 무시할 수 있다는 것이 받아들여지고 있다. 사실 어느 쪽도 대략 8,000명의 전투 병력을 초과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분명히 해럴드는 스탬퍼드 다리 이후 북쪽에 보병과 궁병의 상당 부분을 남겨두어야 했고, 아마도 5,000~7,000명 정도의 부하를 두지 않고 헤이스팅스에 소규모 병력을 배치했을 것이다. 그러나 정확히 몇 명의 병사가 전투에서 싸웠는지에 대한 확실한 증거는 없다.
------------------------
출처는 English Heritage Battlefield Report: Hastings 1066
헤이스팅스 전투의 병력은 원래 역사 기록에선 120만 대 6만이지만, 현대 연구를 통해 쌍방 8천까지 낮아짐. 동양 기록들은 이런 재구를 제대로 거치지 않은 경우가 대다수라 상대적으로 수가 많아 보이는 경우가 잦을 뿐임. 예를 들어 광무제 유수의 커리어 하이인 곤양대전의 경우 관찬사서에서는 신군 43만 대 광무제군 1만 3천~1만 4천이지만, 막상 후한대 기록에선 신군이 3만까지 줄어드는 기현상이 나타남. 아직 물리적인 병력 재구를 하지 않았는데도 이 정도니, 실제로 재구를 거쳐 보면 0 하나 빼는 수준 이상으로 병력이 줄어들 것.
댓글 영역
획득법
① NFT 발행
작성한 게시물을 NFT로 발행하면 일주일 동안 사용할 수 있습니다. (최초 1회)
② NFT 구매
다른 이용자의 NFT를 구매하면 한 달 동안 사용할 수 있습니다. (구매 시마다 갱신)
사용법
디시콘에서지갑연결시 바로 사용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