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신문에 나오는 빈도수가 가장 잦은 김정숙평양방직공장은 군복을 만들며, 종업원 수는
약 1만명 전후로 추산된다.
1948년 김일성이 공장 터전을 잡아주고 창립한 이래, 북한에서 가장 큰 방직공장으로
성장하였으며, 2014년에는 합숙소를 건설하는 등 특별한 국가적 관심대상인
대표 군수공장이다.
이처럼 묵묵히 일하는 노동자들은 옆에서 노래를 부르거나 깃발을 흔드는
선전선동대들의 생산성 독려활동에 대해 속으로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이에 대한 한 신세대 노동자의 목소리다.
“모든 북한 사람들이 다 그러는 소리예요. 저 필요 없는 기 흔들지 말고 와서
삽 한 삽 더 뜨고… 일하는 사람 옆에 짜증나게 와가지고 노래 부르고 이게
짜증 나는 거예요. 사람들 입장에서는.”(사례12)
청년은 쓸데없이 깃발을 흔들기보다는 한 삽이라도 더 뜨는 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평양지역에 거주한 중장년 노동자도 청년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이런 깃발에 대해서 사람들의 속생각은 굉장히 짜증난다. 한 삽이라도
더 퍼야 되는 거 아니냐. 나뿐만이 아니고 이구동성으로 다 얘기한단 말이예요.
그 사람들 그냥 먹여 살리냐.” (사례11)
이처럼 북한에는 ‘일하지 않고 먹고 사는’ 선전선동원이나 관련사업에 대한
인민들의 반감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당경제나 군수경제 산하 공장 기업소들은 지방산업에 비해 가동율이
높을 뿐 아니라 삼엄한 경호와 출입 통제를 받게 된다.
이 공장에는 공장 당 위원회와 행정사무실 건물,여러 가지 제품을
생산하는 건물들이 있다. 지상에 있는 것이 공장의 전부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그것은 껍데기에 불과할 뿐 지하에 더 중요한 생산라인이 있다.
이 지하생산직장들은 ‘종합직장’이라고 불리웠다. 지하의 면적도 지상 면적의
거의 2배나 되며 입구는 하나이지만 안에 들어가면 거미줄처럼 연결통로가 나있고
각종 제품을 생산하는 직장들이 곳곳에 위치해 있다. 입구에서 보위대의 신원확인을
거쳐 지하의 내부로 들어갈 수 있고, 지하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8호보안국에서
발급한 출입증을 소지하고 있다.
이 공장의 분위기는 한마디로 ‘조직생활체계가 마치 쇳대와도 같았고 규율이 억수처럼
셌다’고 한다. 무엇보다 직장 자체가 갱도 안에 있어, 지하 40~50미터 안에 있는 갱도에서 일해야 했다.
왜 지상공장을 놔두고 이들은 이렇게 지하에서 일해야 했을까? 여기서 일했던 한 노동자에 의하면,
지하에서 일한 이유는 전시생산을 위해 작업장을 지하에 둔 것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일하는 노동자라 할지라도 출입증을 15일마다 기간을 연장하여야만 작업장에 들어갈 수 있고,
출입증과 함께 관련 신체검사 통과증들을 더 요구하기도 한다. 노동자들은 통과증을 받기 위해서
신체검사 등 다양한 검사를 받으며, 만약 신체검사에서 한 가지라도
비정상적인 수치가 나온 경우에 작업현장에 들어가지 못하고 한 번의 재검사를 받는다.
재검사에서 반복되어 비정상수치가 나타나면 공장에서 해고되기도 한다.
이러한 삼엄한 경비와 절차는 특수공장의 독특한 풍경이다.
공장 건물 자체가 밖에서 들여다 보이지 않으며 그 동네에 사는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그 공장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무엇을 하는지 알 수 없다.
(중략)
식량공급이 되지 않던 그 시절에도 특수기관 기업은 노동자 자신뿐 아니라 가족까지
식량공급을 해주었기 때문이다. 핵심군중만이 들어갈 수 있었던 그 기업에서는 입직시
노동자들에게 공장의 내부 비밀을 단 한 건이라도 발설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쓰고
입직하였으며, 발설하는 경우 엄중한 법적 책임을 져야 했고 점심시간을 제외하고 온종일
지하에서 일하는 날들이 지속되었다. 만약, 노동자가 조절행위(절도)를 하다 걸렸을 경우에는
이는 정치행위로 간주되어 자기비판은 물론 해고된 후 엄격한 법적 처벌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통일연구원 북한주민의 직장생활에서 200~204p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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