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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글의 BDA 파트
(조지 "켄" 시슬러 중위, 사후 명예훈장 수훈)
B-52 폭격 후 해당 지역으로 들어가는 것은 복수를 열망하는 월맹군과 맞닥뜨릴 수 있다.
바로 그러한 상황이 SOG의 첫 명예훈장으로 이어졌다.
에드워드 레센 대위와 레오나드 틸리 중사는 폭격 직후 BDA를 수행하기 위해 40명으로 구성된 몽타냐드 소대와 동행할 여러 명의 자원자가 필요했다.
혁신과 대담함으로 명성이 높은 젊은 정찰대원인 조지 K. 시슬러 중위가 함께 가겠다고 했다.
1967년 2월 7일, B-52 폭격의 연기가 걷히자마자 6대의 킹비 헬기가 BDA 소대를 폭탄 구덩이 천지가 된 라오스 LZ에 착륙시켰다.
몇 분 후, 그들은 100명 이상의 월맹군의 공격을 받았고, 거의 전멸할 위기 속에서 격렬히 후퇴했다.
그리고 월맹군 부대가 잠시 후퇴하여 재편성을 하는 동안 시슬러 중위는 몽타냐드 두 명이 부상을 입고 남겨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혼자 정글로 돌아간 시슬러는 한 사람을 데리고 그와 함께 달리고 있었는데 월맹군이 두 번째 공격을 시작했고 그를 향해 달려왔다.
시슬러는 몽타냐드를 눕힌 뒤, 수류탄을 뽑고 기관총을 공격하여 제압한 다음 소대 경계선으로 접근하는 적 세 명을 더 죽였다.
그리고 두 번째 몽타냐드를 데려가기 위해 돌아갔고 그를 확보한 순간 다른 월맹군 소부대가 공격했다. 조지 시슬러는 CAR-15를 쏘고 수류탄을 던지고 자이로젯 로켓 권총을 쏴가며 홀로 반격했다.
주변의 SOG 대원들이 모두 죽거나 다치면서, 부상을 입은 시슬러는 거의 혼자서 월맹군 공격을 격퇴했다.
(해당 임무의 주무부사관이었던 레오나드 틸리 중사)
한편 틸리 중사는 소대를 재조직하고 해당 위치에서 50피트 이내 거리로 A-1 스카이레이더의 공습을 유도했다.
하지만 구출헬기가 착륙할 곳이 없어 SOG 대원들은 LZ까지 이동해야 했다.
레센 대위 근처에서 RPG 로켓이 폭발했고, 그는 치명적인 수준의 출혈이 발생했다.
틸리의 전문적인 공습 유도로 마침내 월맹군은 후퇴했고 킹비와 여러 건쉽 헬기가 도착했다.
허나 조지 시슬러는 건쉽을 지휘하기 위해 서 있던 중에 저격수의 총격에 쓰러졌다.
그는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
(시슬러 중위와 BDA 소가 있던 언덕으로 항공 지원을 하는 휴이 건쉽)
(연막과 탄막을 뚫고 BDA 소대 생존자를 탑승시키는 H-34 킹비)
모두가 그곳에서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틸리의 리더십과 실력 덕분이었다.
레센 대위는 "우리 모두 LZ를 향해 기어갔습니다. 어떻게 도착했는지는 모르겠지만요."라 말했다.
그들은 시슬러의 시신을 확보해서 왔다.
틸리는 두 번이나 부상자를 구하기 위해 돌아갔고 한번은 적에게 직접 돌격했는데, 이에 놀란 월맹군은 뒤로 넘어졌다.
심한 지상 사격에도 불구하고 퇴출 중에 헬기는 손실되지 않았다.
(육군장관 스탠리 레소로부터 시슬러 중위의 명예훈장을 받는 그의 아내와 두 아들)
1년 후, 미망인이 된 젊은 중위의 아내인 제인 시슬러와 두 아들 데이비드와 제임스는 군 정보 장교에게 처음으로 수여된 사후 명예훈장을 받기 위해 워싱턴으로 향했다.
레오나드 틸리 중사는 두 번째로 높은 상인 수훈십자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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