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동물들이 지표 외에 적응도나 지위를 나타내는 '배지'를 진화시켰다. 이 배지들은 과시적 낭비나 과시적 정확성에 의존하지 않고, 과시적 평판에 의존한다. 배지를 가질 자격이 있다고 사회적으로 인정받은 자들은 배지를 늘리고 관리하기 쉬울 것이다. 하지만 배지를 지닐 자격이 없는 자가 그것을 과시하면, 다른 자들에 의해 사회적 처벌을 받게 된다. 처벌은 회피와 배척에서 육체적 괴롭힘과 집단 폭력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예를 들어 쌍살벌 암컷들 사이에서 얼굴의 반점은 지위 배지 역할을 한다. 지위가 높은 쌍살벌은 입 윗부분에 검은 반점이 더 많고, 반점의 수는 머리의 폭, 몸 크기, 싸우는 능력과 관련이 있다. 검은 반점은 그것을 만드는 물질대사 비용은 별로 안 들겠지만, 쌍살벌이 그 지위 배지를 뒷받침할 싸움 능력을 갖고 있지 못할 경우 심한 사회적 처벌을 부른다. 인간에게도 이것과 유사한 배지들이 있다. 영국 공립학교의 교복 넥타이, 군대의 메달, 깡패의 문신이 그런 예들이다. 각각의 경우 자격이 없는 사람이 배지를 달고 다니면 배척에서 죽음에 이르는 제재에 처해진다.

배지가 믿을 수 있는 신호로 쓰이려면 배지 착용자가 진정 그 배지를 착용할 자격이 있는지 다른 동물들이 주기적으로 점검을 해야 한다. 이것을 배지 '유지 비용'으로 볼 수 있는데, 이 비용을 부담하는 자는 배지 착용자가 아니라 관찰자들이다. 이러한 다른 개체들은 사기, 위조, 속임수를 점검하는 수고를 해야 하고, 가짜들에게는 충분한 처벌을 내림으로써 지위가 낮은 사람들이 함부로 높은 지위를 표시하는 배지를 착용하면 금지 비용을 지불할 수 있음을 알려주어야만 한다. 여기서 신뢰성의 또 다른 문제가 생긴다. 즉 가짜를 찾아내 처벌하는 일은 한 개체가 하기에는 어렵지만(시간, 에너지, 위험 부담이 많이 들기 때문) 집단 전체에는 이익이 되기 때문에 (배지의 신뢰성을 유지해주기 때문) 가짜 적발은 엄밀히 말해 이타적 행위가 된다는 것이다. 만일 배지를 점검해 가짜를 처벌하는 자가 신호 체계를 단속하는 보답으로 사회적으로나 또 번식을 할 때 이득을 얻는다면 그런 친사회적 이타주의가 집단 내에서 계속 유지될 수 있다. 하지만 전체 시스템은 정직한 배지 착용자, 속임수를 쓰는 자, 단속하는 자, 단속하는 자를 추앙하는 자들, 단속하는 자를 따라다니는 오빠부대들 사이의 복잡한 힘과 이해관계의 균형에 의존한다. 어떤 집단이 이 균형을 잘 유지하면 배지는 적응도, 지위 등에 대한 믿을 수 있고 효울적이고 값싼 신호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만일 배지를 점검해 처벌하는 자에게 추가적인 사회적 지위, 우정, 짝짓기 기회로 보상하지 않는다면, 이 시스템은 쉽게 무너질 수 있다. 

책 [스펜트] / 제프리 밀러

====

참으로 다양한 배지들이 있당. 이미 갖춰진 체제에선 그 체제를 만든 사람들이 배지를 선점한다. 

아래 글에서 호야가 쓴 게임에 대한 글과도 맥락이 비슷하다. 

이 책 졸라 괜찮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