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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스압) 정성공은 대만에서의 1년을 어떻게 보냈을까앱에서 작성

태조고황제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4.04.26 18:2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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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수복 이후, 정성공은 대만성台湾城을 동도东都로 바꾸고 대만 • 팽호를 항청의 기지로 운영하기 위한 긴박한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하빈何斌 • 마신马信 • 양상杨祥 • 소공신萧拱宸 등을 직접 이끌고, 신항新港 • 목가류 만目加溜湾 • 소룡肖垄, 마두麻豆 • 대목강大目降 • 대무룡大武垅, 타리무他里雾, 반선半线 등지를 순시했다. (대만은) "땅이 평평하고 기름진 것을 보면[见其土地平坦膏沃]" 둔전과 병사 양성에 적합했다.

당시 대만은 땅은 넓으나 인구가 희박하였고, 고산족高山族 동포들은 "사람 수만을 계산하여 심고 잉여를 탐내지 않았기에[计口而种,不贪盈余]" 토지 이용률이 매우 낮아, 백성을 옮겨 황무지를 개간하기에 편리했다. 시찰 과정에서 각지의 고산족 동포들이 대기하고 있다가 환영한 것은 다시 그로 하여금 사람들의 성품이 순박함을 느끼게 해 주었다. 그는 고산족 동포들에게 "담배와 천을 주고 좋은 말로써 위로하였[赐以烟、布,慰以好言]"으며 부하 병졸들이 그들의 이익을 침해하는 것을 엄격히 금지했다.

시찰에서 돌아온 이후 정성공은 즉시 각 제독 • 진장과 참군을 소집하여 일을 논의했는데, 회의에서 말하기를 :

大凡治家治国,以食为先。苟家无食,虽亲如父子夫妇,亦难以和其家;苟国无食,虽有忠君爱国之士,亦难以治其国。今上托皇天重庇,下赖诸君之力,得有此土。然计食之者众,作之者寡,倘饷一告匮,而师不宿饱,其欲兴邦固国恐亦难矣。故昨日躬身踏勘,揆审情形,细观土地,甚是膏腴。当效寓兵于农之法,庶可饷无匮,兵多粮足,然后静观衅隙而进取。
"무릇 가정을 다스리고 나라를 다스림에 있어서는 먹는 것이 우선시되어야 한다. 만일 가정에 먹을 것이 없다면, 비록 부자 • 부부와 같은 친족이라고 할 지라도 역시 그 가문은 화목하기 어렵다 ; 나라에 먹을 것이 없다면, 비록 충군 • 애국의 선비들이 있다고 할 지라도 역시 그 나라는 다스리기 어렵다. 지금 (나는) 위로는 하늘과 황상의 두터운 비호를 받고, 아래로는 제군의 힘에 의지하여 이 땅을 얻었다. 그러나 봉록을 받을 자는 많지만 생산자는 적으며, 만약 물자가 한번 다함을 고한다면 군사는 배불리 먹지 못하여 그 나라를 흥하게 하고 굳건히 하고자 하는 생각 또한 어려워질까 두려운 것이다. 고로 어제 몸을 낮추어 친히 (이 땅을) 답사하였는데, 정황을 깊이 탐사하고 토지도 세심히 살펴보니 심히 비옥하였다. 응당 병사를 농사에 임하도록 하는 것에 힘써야 하며, (그러면) 백성들은 식량이 다하지 않을 수 있고 병사가 많아도 식량이 충분하게 될 지니, 그런 연후에 (대륙의) 균열을 세심히 살피고 나아가 취해야 할 것이다."

이어서 구체적 안배를 제출하였다 :

留勇卫、侍卫二旅以守安平镇、承天二处。其余诸镇,按镇分地,按地开荒。日以什一者了望,相连接应,轮流造更。是无闲丁,亦无逸民。插竹为社,斩茅为屋。围生牛教之以犁,使野无旷土,而军有余粮。其火兵则无贴田,如正丁出伍,贴田补入可也。其乡仍曰‘社’,不必易;其亩亦曰‘甲’,以便耕。一甲三十一戈二尺五寸,一戈东西南北四至长一丈二尺五寸。今归版图,亦以此为则,照三年开垦,然后定其上、中、下则,以立赋税。但此三年内,收成者借十分之三,以供正用。农隙,则训以武事;有警,则荷戈以战;无警,则负耒以耕。寓兵于农之意如此。”
용위勇卫 • 시위侍卫 두 부대를 두어 안평진安平镇 • 승천承天 두 곳을 지킨다. 그 외 여러 진들은 진을 살피어 땅을 나누고 그 땅을 살피어 황무지를 개간한다. 매일 (그 사람들의) 10분의 1 정도는 멀리서 감시하고 (개간하는 사람들과) 서로 연결되어 교대하라. 한가한 병사가 없다면 안일한 백성 역시 없을 것이다. 대나무를 꽂아 공동체를 구분하고, 띠를 베어 집을 지어라. 가축을 에워싸 쟁기로서 그(개간)를 하게 하고 들판에 빈 땅이 없도록 하면 군에는 식량이 남게 될 것이다. 그 취사병은 곧 땅에 붙여지지(경작하지) 않게 되는데, 장정을 오伍로 하는 것과 같이 땅을 붙여주어 들어가 돕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향乡은 곧 "사社"라고 부르며, 꼭 다스릴 필요는 없다 ; 무畝는 또한 갑甲이라고 하여 경작을 편하게 한다. 1갑은 31과戈 • 2척 • 5촌으로 하고, 1과는 동서남북 사방으로 1장 • 2척 • 5촌까지 닿는 범위로 한다. 새로 차지한 판도도 역시 이를 원칙으로 하여 3년 동안 개간토록 하고 그런 연후에 상 • 중 • 하로 나누어 그로서 조세를 정하라. 그러나 그 3년 동안은 수확한 자가 (수확량의) 10분의 3을 빌려주고, (그를) 공납품으로 쓰게 한다. 농사 중의 틈은 곧 무력으로써 훈계하라 ; 긴급한 상황이 생기면 곧 창을 쥐어주어 싸우게 하라 ; 긴급한 상황이 없으면 곧 쟁기를 쥐어주어 농사를 짓게 하라. 병사를 농업에 임하게 하는 뜻이 이와 같노라."

- 강일승江日升《대만외기台湾外纪》

대만의 각 진은 즉시 명령을 받들어 병사를 이끌고 지정된 장소로 가서 황무지를 개간하고 씨를 심었다. 정성공은 또한 "우선 문묘를 숭상하고, 그 다음으로 사당의 지붕을 쌓았다. 매년 제사를 지내었는데, 이때마다 사단을 받들었다[首崇文庙,次葺祠宫。岁修禋祀,时奉坛祀]." 이로써 문화적 건설을 더욱 강화하였다.




개발을 촉진하고 근본을 보강하기 위해, 정성공은 장병과 관리의 가족들을 (본거지 하문에서) 대만으로 보내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것은 원래 좋은 일이지만 정성공은 너무 성급했다. 달소达素 등이 이끄는 금문 • 하문을 침공한 청나라 군대를 격파한 후 대륙 연안의 섬 상황은 비교적 안정되었으며, 대만을 수복한 후에는 분명 황무지 개간 • 가옥 건설 등 개발 과정의 진전에 따라 장병들과 문관들이 점차적으로 대만으로 가족을 옮기도록 장려할 수도 있었다. 개척 단계에는 여건이 어렵기에 장병들에게도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정성공은 성급히 명령을 너무 엄격하게 내렸다 : "법을 어긴 자는 비록 친신일지라도 용서할 수 없다[犯者虽亲信无赦]."

대장 마신은 "나라를 세운 초기에는 의당 관대하게 법을 운용해야 합니다[立国之初,宜用宽典]"라고 건의했다. 그러나 정성공은 "나라를 세운 초기일수록, 법은 귀하기에 더욱 엄하게 하여 백성들이 나쁜 풍습에 이르지 못하도록 하여야 한다. (이로써) 후방의 수비자들(대만의 위정자들)은 저절로 다스리기 용이해질 것이다[立国之初,法贵于严,庶不至流弊。俾后之守者,自易治耳。]." 정성공이 긴급한 식량 및 급료 문제에 직면하여 부득불 엄격한 감독과 문책을 가해야만 했다는 사실에는 응당 동의해야 하나, 여러 방면에서 독단적으로 행동하여 매우 나쁜 결과를 조성했음도 인정해야한다.

사료에는 기재되어있다 :

以各社田土分水陆诸提镇,令各搬其家眷至东都居住,兵士俱令屯垦。初至,水土不服,瘴疠大作,病者十之七八,死者甚众。加以用法严峻,果于诛杀;府尹杨朝栋以其用小斗散粮,杀其一家;又杀万年县祝敬,家属发配。于是人心惶惶,诸将解体。
(정성공이) 각 공동체의 땅을 수륙의 제장들에게 나누어 주고 각자에게 자기 가족을 데리고 동도로 이주하여 살도록 명하였으며, 병사들에겐 (황무지에) 주둔하여 개간하기를 명하였다. 처음 (대만에) 이르렀을 때 물과 토양이 익숙하지 않아, 질병이 크게 일어나 환자가 10명 중 7 • 8명 꼴이었으며 죽은 자가 심히 많았다. 법을 더욱 엄격하게 가하여 끝내는 주살하였다 ; 부윤 양조동杨朝栋이 곡식이 담긴 작은 양동이를 사용했다는 이유로 그 일가를 도륙하였다 ; 또 만년현万年县의 축경祝敬을 죽였으며 그 가속을 분배하였다. 이에 백성들의 마음은 공포에 휩싸였고, 제장들은 무너져 내렸다.

正月,赐姓严谕搬眷,郑泰、洪旭、黄旭等皆不欲行。于是,不发一船至台湾;而差船来吊监纪洪初辟等十人分管番社,皆留住不遣。海上信息隔绝。
정월, 사성(赐姓, 정성공)이 권속들을 옮기도록 엄히 고하였으나, 정태鄭泰 • 홍욱洪旭 • 황욱黃旭 등은 행하고자 하지 않았다. 이에 대만으로는 한 척의 배도 띄우지 않았다 ; 이후 (정성공이) 가린 배가 와 번사(番社, 대만 원주민의 일부)를 관리하는 감기监纪 홍초벽洪初辟 등 10인을 위로하였으나, 모두 붙잡고 보내주지 않았다. 해상의 소식이 차단되었다.

- 완민석阮旻锡, 《해상견문록海上见闻录》 

양조동과 축경이 작은 두곡을 사용한 것은 필히 사적으로 유용하려던 것은 아닐 수 있으며 식량 부족이 원인이었을 가능성도 충분이 높으나, 설령 죄가 있더라도 가속을 연루시켜서는 안 되었다. 대륙 연안의 섬들을 지키는 장병들에게 강제로 대만으로 가족을 보내도록 한 것은 즉 인질적 성격이 짙으며, 그 뜻은 장병들이 반란하여 청나라로 귀순하는 것을 막기 위함에 있었다.

이는 명 태조 주원장朱元璋이 여러 장수 가문을 경사에게 남겨두고 청이 문무대원의 자제에게 입궐을 명하여 시위로 삼은 것과 비슷하며, 친족의 안위로 하급자의 충절을 지키려는 시도이므로 취할 바가 못 된다. 더욱이 당시 대만의 황량한 상황은 명초의 남경 • 청초의 북경과 비교하기 어렵다. 이 조치를 강행할 경우 일부 장병들(특히 금문 • 하문 • 남오南澳 및 기타 중국 본토 해안 섬을 지키는 장병)은 저항을 일으킬 것이었다.

사람들의 마음이 고르지 못하면, 헛소문도 따라 일어난다. 남오를 지키던 충용후忠勇侯 진표陳豹(곧 진패陈霸)가 가족을 대만에 보내기 싫어 광동에 번을 둔 청의 평남왕 상가희와 통호하여 항복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정성공은 진상을 파악하지 못하고 경솔하게 정경郑经과 홍욱에게 지시하여 주전빈周全斌 • 두휘杜辉 • 황창黄昌 등에게 선사를 이끌고 남오에 가서 반란을 평정하도록 했다. 진표는 해명할 길이 없어 부하들을 이끌고 배를 타고 호문虎门으로 가서 청나라에 항복했다.




1661년(순치 18년) 10월 3일, 청나라 조정은 정성공이 초무를 받을 뜻이 조금도 없음을 보고, 구금 중인 정지룡郑芝龙과 그의 아들 정세은郑世恩 • 정세음郑世荫 등 일가족 11명을 "모반 혐의를 밝혀내어 일족 주살로 다스렸다[照谋叛律族诛]. ​소식이 대만에 전해지자 정성공은 깊은 슬픔을 느꼈다. 비록 그가 이에 대해 일찌감치 각오를 했더라도, 아버지와 무고한 동생을 몰살한 것은 결국 무관심할 수 없었다.



1662년 4월, 임영林英이 운남에서 탈출하여 영력제永历帝가 미얀마에서 청나라 군대에 포로로 잡혔고, 서남쪽의 항청군은 이정국李定国이 이끄는 잔당만이 국경 지역으로 퇴각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이것은 동쪽과 서쪽에서 서로 호응하는 정세가 이미 끝났음을 의미하며, 청나라 조정은 정성공 군을 상대하는 데 힘을 집중할 것이었다. 정성공이 교묘하게 일을 망쳤으니, 마음속의 회한을 짐작할 수 있다. 그의 실력은 융무제의 후계자로서 청나라 조정과 함께 중원을 다투기에는 충분하지 않아, 영력제가 없는 영력이라는 간판을 계속 달고 외진 곳에 있을 수밖에 없었다.

많은 역사 서적들은 정성공을 명나라의 충신으로 묘사하고 그와 그의 후계자를 30년 이상 명나라의 정통 후계자로 보존하며 흥미진진하게 이야기했다. 이런 견해는 피상적이라 할 수 있다. 복명지사들은 영력조정이 멸망하자 낙담했고, 정성공을 따라 대만으로 간 극소수의 관리들과 종번들은 이를 통해 선대의 의관을 지켰을 뿐 영력 연호를 받들고 있는 정씨 집단을 명나라 부흥의 희망으로 삼은 사람은 거의 없었다.

정성공이 시종일관 견지한 사상은 "동남의 일은 내가 관장한다[东南之事我为政]"로, 지척에 있는 노감국魯監國을 섬기지 않고 영력제를 멀리 모신 것은 주유랑朱由榔이 혈통상 황제에 가깝기 때문이 아니라 "천고의 황제께서는 멀리 계신다[天高皇帝遠]"는 사실을 즐겼기 때문이며, 강일승은 《대만외기》에 정성공이 "아버지(정지룡)의 전례를 계승하여, 총병 이하는 모두 스스로 위임하였으나 공 • 후 • 백 및 제독과 같은 경우 반드시 표를 다듬어 봉하기를 청하였고 그 후에 도장을 찍어 고하였다[经承父例,总兵以下皆自委任,如公、侯、伯及提督,必修表请封,然后出印谕]"라고 적었다. 소위 "표를 다듬어 봉하기를 청하였고 그 이후에 도장을 찍어 고하였다"는 것은 왼손으로 보고서를 쓰고 오른손으로 허락하는 것과 같은 형식에 불과하니, 은혜와 위엄을 스스로 쥐어봤자 하등 유쾌하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정성공은 황제의 허례 외에도 진심으로 영력조정이 존속하기를 바라고 있었는데, 이렇게 하면 조정의 이름을 빌려 동남쪽 복명세력의 지지를 끌어모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영력조정을 이용하여 남서쪽의 청군을 견제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일방적으로 원하는 대로 너무 세심하게 계산하다가 뜻대로 되지 않아 스스로 진퇴양난의 상황에 빠진 셈이다. 자신이 만든 고배를 마시게 된 것은, 의심할 여지 없이 정성공이 말년에 심리적 균형을 잃고 행동이 비뚤어진 중요한 이유 중 하나이다.




정성공의 가슴에 맺혔던 울화는 작은 일 하나 때문에 화산처럼 터져버렸다. 세자 정경이 하문에 머물러 진수하면서 넷째 동생의 유모 진씨陈氏와 간통하여 아들을 낳았는데, 이러한 일은 명문가에서 드문 일이 아니었다. 처음에 정경은 아버지에게 시첩이 아들을 낳았다고 보고했고, 정성공은 손자를 얻음에 크게 기뻐하며 은물을 조금 주었다. 뜻밖에도 정경의 아내는 본래 병부 상서 당현열唐显悦의 손녀로 "마음이 올곧고 위엄이 있었으나, (정경과는) 마음이 맞지 않았다[端庄静正,而不相得]."

당현열은 손녀의 억울함을 호소하며 정성공에게 편지를 써서 비난을 퍼부었는데, 그 중에는 "삼부팔모(三父八母, 예법상 아버지와 어머니의 지위에 해당하는 사람들)에는 유모 또한 그 중 하나로 포함됩니다. 영랑(令郎, 정경)께서 (부인을) 소홀히 하시다가 아들을 낳으셨는데, 묻지도 따지지도 않으시고 도리어 상을 주셨습니다. 이는 집안을 옳지 못하게 다스리는 것인데, 나라는 어찌 다스리시렵니까?[三父八母,乳母亦居其一。令郎狎而生子,不闻饬责,反加赏赉。此治家不正,安能治国乎?]"라는 말이 있었다.

정성공은 복국할 가망이 없어 울분을 쌓고 있는데 당현열은 사적인 분을 풀려고만 하였고, 정성공이 "즉시 마음으로 대노하[登时气塞胸膛]"게 하였다. "곧 도사 황육黃毓에게 영전令箭과 용을 그린 통 3개 • 옻칠한 붉은 통 1개를 들리고 보내어 금문을 지나 그 형 정태와 함께 하문으로 가서 그 아내 동씨董氏를 가문을 엄하게 다스리지 못한 죄로서 참하고, 그 아들 정경과 소생 손자와 유모 진씨에게도 그리하고자 하였다.[立差都事黄毓持令箭并画龙桶三、漆红头桶一,过金门与兄泰,同到厦门斩其妻董氏治家不严之罪,并其子经与其所生孙、乳母陈氏]"

황정 • 홍욱 • 진휘陈辉 • 왕수기王秀奇 등 금문과 하문을 지키던 장수들은 영을 받은 후 대경실색하여 큰 일을 작게 하고자 노력하였고, 정태 • 황육과 상의하여 절충안을 채택해 진씨와 그가 낳은 아기를 죽이고 동씨와 정경에게 아뢰어 죄를 청했다. 동씨와 정씨의 동의를 얻은 후, 이에 따라 처리하고 황육이 복귀하여 보고하였다. 그러나 정성공은 동씨와 정경을 죽여야 한다고 고집했고, 자신의 검을 주어 황육을 금문으로 보내 정태에게 집행하게 했다. 정태는 어쩔 수 없이 황육을 하문으로 보내 정경에게 일이 곤란하게 되었음을 설명했다.

정경은 즉시 황육을 구금하고 금문 • 하문의 문무 관리들과 대책을 논의했다. 바로 그 때 채명뢰蔡鸣雷가 대만에서 권속들을 옮겨왔는데, 정경 등이 그에게 향해 소식을 탐문하자, 채명뢰가 말하길 그가 대만에서 과실을 지어 정성공의 처벌을 받을 것을 두려워하여 정성공에게 동부인과 정경을 제거하고 금문 • 하문의 여러 관리들이 이를 거부하면 모두 참형에 처하겠다고 과장해 서약했고, 또 이미 밀서가 있어 남오의 진표를 정벌하러 간 주전빈에게 주어져 편의종사토록 명했다는 것.

금문 • 하문의 문관무장들이 서로 얼굴을 마주보며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랐다. 홍욱은 "세자는 자식이니 부친에게 저항할 수 없습니다 ; 장군들께 청하여도, 그대들도 신하이니 군주의 명에 저항할 수 없습니다. 오직 정태만은 형인데, 형은 동생에게 맞설 수 있습니다. [世子,子也,不可以拒父;请将,臣也,不可以拒君。惟泰是兄,兄可以拒弟。]"이라고 말했다.

정태가 그에 동의하고, 주전빈이 남오를 정벌하고 하문으로 돌아가는 틈을 타 그를 체포하여 좌진의 황창에게 인계했다. 동시에 정성공에게 제장들의 공지를 보냈는데, "은혜를 갚을 날은 있고, 궁궐(의 올바른 명령)을 기다림에는 기한이 없다[报恩有日,候阙无期]"는 말로서 금문 • 하문의 여러 장수들이 연합하여 명을 거부한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정성공이 편지를 읽은 후, 마음이 극도로 울적해졌다. 5월 1일, 그는 불편함을 느꼈고, 단상에 올라 망원경을 들고 팽호에 배가 있는지 살펴보았다. 초파일까지 완전히 절망하고 목이 메어 사망하니, 향년 38세였다.

1662년 4월부터 6월까지 영력제(주유랑)와 정성공 • 이정국이 세상을 떠나면서 남명 부흥의 마지막 희망은 철저히 사라졌다. 그 후 정경은 기동夔東의 항청 무장들과 영력의 정삭을 고수했지만 큰 호소력은 없었다. 부친의 업을 이어받아 대만 경영에 큰 공헌을 한 정경은 역시 복명을 표방했지만 그의 업적이 남명사의 범주에 들기에는 분명 부적합할것이다.


ㅡ  구청顾诚, 《남명사南明史》 중 정성공의 대만 경영 개시와 병사郑成功的开始经营台湾和病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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