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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후한의 대외정책 (1)앱에서 작성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4.05.22 19:5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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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저번주에 올린다 했는데 현생이 바빠서 일주일 늦어졌네. 양이 꽤나 많아서 3분할 해서 올림

1장은 전한~후한 초기의 대외정책, 2장은 후한 중기의 대외정책, 3장은 후한 말기의 대외정책임


 1. 전한의 대외정책

후한의 대외정책은 전한의 그것을 대부분 계승한 형태이기에 전한의 대외정책 기조를 알 필요가 있음. 이러한 전한의 대외정책 기조는 염철론에서 드러남.

법가 관료들은 ‘국가의 목적은 국부와 패권의 극대화이고, 정복은 이를 달성하기 위한 최적의 수단이며, 이는 도덕적 원칙에 얽메이지 않고 국가의 이해타산에 따른다’(*1)고 주장하였음. 

또한, 그들은 ‘적대적 환경에서의 생존과 확장을 위해서는 자원을 축적하고 이를 군사력에 투자하여 외국(이민족)이 한의 국익에 합치하는 행동을 하도록 강제해야 한다‘(*1)고 주장하였음.

염철론에서 대부(상홍양)가 설명한 흉노에 대한 대응방침은 전한이 대외정책을 어찌 실현했는지 보여줌. 그는 “흉노는 인간의 기본적인 가치인 인•의•예가 결여되어 있는 비인간적이고 부당한 존재이고, 조정은 이들이 대한 군사행동을 취하고 자비를 베풀지 말아야 한다.“(*2)고 주장하였음.

(법가측에 대항한 유가측의 논리는 매우 흥미로움. 그들은 ‘흉노는 한족과 다른 생활방식을 가졌기에 유학적 가치만으로 판단해선 안된다‘(*2)고 하였음. 또한, 그들은 ‘천하 만민은 형제이기에 이민족과 의식(ritual)을 통해 관념을 공유하면서 인간성을 부각한다면 적대 관계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3)라는 매우 선진적인 주장을 펼침)

염철회의에서 법가측이 전매제를 제외한 나머지 부문의 정책 기조를 지켜내는데 성공한 것을 보면 상술한 ’법가적 대외정책‘은 전한 내내 이어짐을 알 수 있음. 이러한 정책 기조가 어찌 후한으로 이어졌는진 다음 문단에서 다루겠음. 

 
 1) China's Approach to International Law: A Historical Perspective, Jacques de Lisle, Cambridge university press, p.269

 2) Building Empire through Argumentation: Debating Salt and Iron in Western Han China, Xiaoye You , NCTE, p.373

 3) Building Empire through Argumentation: Debating Salt and Iron in Western Han China, p.276






 2. 후한 초의 대외정책

후한의 대외정책이 전한을 계승한 것은 후한 초의 명장인 마원의 행보를 통해 알 수 있음. 외효 토벌 이후 태중태부로써 제국 서북변을 수습하던 마원은 대규모 강족 침입을 마주했고, 35년에 농서 태수로 봉해지면서 강족 접경지에 대한 전권을 위임 받음.(*1)

그는 강족의 가장 큰 종족 중 하나인 선령강을 대파하고, 종강을 복속시켜 항복한 선령강과 함께 천수•부풍•농서에 배치하였음. 그러나 삼랑강은 불과 1년만에 대규모 반란을 일으켰고, 마원은 당익곡에서 정강이가 화살에 꿰뚫리는 혈전 끝에 그들을 제압함.

후한 조정은 서부전선의 대규모 출혈이 감당하기 버겁다고 판단하여 파강 이서를 포기하고자 하였음. 그러나 마원은 파강 이서를 포기해서는 안된다고 하면서 대규모 사민정책을 제의했고, 광무제는 이를 받아들임.

마원의 사민정책은 이전세기 조충국의 그것과 동일하였음.(*1) 그는 3천명의 금성 출신 이재민을 다시 불러들여 둔전을 복원했고, 선릉강•종강을 비롯한 강족 수천명을 장성 내부로 강제이주하였음.(*2) 위 2가지 조치는 각각 ‘국경수비대의 배후지 복원’과 ‘국경 압력 해소’를 목표로 하였고, 단기적으론 효과가 있었음. 

강제이주 당한 강족은 스스로를 ’동강‘이라 칭하며 새외의 강족과 구분하였고, 후한의 국경 압력은 상당히 해소되었음. 덕분에 복원된 둔전은 안정적으로 운영되었고, 후한의 국경 방어 체계는 마원이 월남 전선으로 차출되었을 때에도 제 역할을 수행하였음. 

그러나 위 조치는 2가지 심각한 문제를 품고 있었는데, ‘서북변 한족 인구의 급감’과 ‘관내 이민족의 국경 배후지 위협’이 바로 그것임. 

신한교체기의 혼란 속에서 농서•진양의 인구는 40만에서 8만으로 급감(*3)했고, 한족은 이민족에 대한 숫적우위를 가지지 못했음. 이는 농경보아 목축에 적합한 현지의 기후(*4)와 맞물려 더욱 심각한 결과를 유발함. 

관내로 이주한 강족은 동화되긴 커녕 자신들의 유목적 생활방식을 고수했고, 한족에게 불리한 기후와 안보는 한족 인구는 지속적으로 이탈하는 결과를 낳아 결국 국경 배후지가 붕괴하는 파국을 초래함

다만, 흉노 전선의 상황은 상술한 강족 전선과는 매우 달랐음. 전한 시기까지만 해도 동흉노는 한나라의 통제 하에 있었고 서흉노는 멸종 당했지만, 신한교체기의 혼란 속에서 흉노는 다시 제국을 복원했음.

오주류약제 선우 시기 신나라의 흉노 원정 실패는 흉노가 자신들의 군사력을 체감하는 계기가 되었음. 이후 즉위한 호도이시도고약제(연) 선우는 흉노의 군사력을 바탕으로 경시제에게서 묵돌 선우가 받은 것과 같은 대우를 약속받음.

현한이 멸망하고 군웅할거 시대가 도래해 그 누구도 강대한 흉노를 건드리지 못하는 상황이 되자, 흉노는 본격적으로 날뛰기 시작함. 광무제에게 꽤나 타격을 줬던 팽총 지원은 그저 곁가지에 불과했고, 흉노의 핵심 이권 지역인 제국 동북부에 노방이라는 괴뢰를 두고 영향력을 행사했음.

광무제가 천통을 거의 완수한 시점에서도 이러한 구도는 그대로였음. 경시제가 했던 대우를 그대로 유지했음에도 흉노의 침입은 끊이질 않았고, 37년에 노방에 패망하고 복구한 장성 방어선은 여전히 흉노에 무력했음.(*5)

39년 대사마 오한이 안문에서 대패하면서 장성 방어선은 재차 붕괴했고, 수도 근교의 하동군이 약탈당하는 지경에 이름. 결국 후한은 40년대 초에 전한 시기의 국경선을 포기하고 오르도스-황하 북단의 군현을 폐지했음. (후퇴한 방어선은 명대 북방 국경선과 같음) (*6)

후한이 북방 전선을 포기했음에도 상황은 악화될 뿐이었음. 흉노의 확장은 계속되어 44년에는 상당•부풍•천수까지 이르러 강족과 맞닿기 직전까지 갔음. 흉노와 서강의 연계를 막고 경조 일대를 방어하기 위해 마원이 파견되어 북방전선의 전권을 쥐었지만, 마원의 방어선은 러무하게 돌파당하고 원정군 마저 패배하면서 흉노는 묵돌 시절의 강역을 회복함. (*7)

 후한이 벼랑 끝까지 몰린 절망적인 상황에, 46년 연 선우의 죽음으로 상황은 급격하게 반전됨. 선우정은 본디 형제에게 승계되어야 했지만, 연 선우는 아들에게 성우를 승계하고자 동생인 이도지아사(참고로 얘는 그 유명한 왕소군의 아들임)를 죽이고 중국계를 대규모로 숙청하는 무리를 범했음. 이때문에 시작된 흉노의 분열은 선우의 죽음으로 터져나옴. (후한서에선 흉노의 급속한 몰락이 초원의 기후 재난과 오환의 침입에서 시작되었다 하지만, 이는 다소 과장된 서술임.(*8))

이도지아사의 아들 비는 연 선우의 생전부터 대회에 드물게 참석하는 등 대립각을 세웠는데, 후한은 이를 파악하고 틈새를 파고들어 갈등을 부채질했음. 초원의 기근과 오환의 공격 등 불안정한 상황에 연 선우의 아들 오달제후가 급사하고 그 형제 포노가 즉위하는 정치적 혼란까지 일어나자 흉노 중앙의 통제력은 약화되었음. 기회를 포착한 비는 계승법을 명분으로 8부의 추대를 받아 남흉노로 독립했음.

하지만, 흉노 제국의 물산은 여전히 북흉노에게 있었으며 후한-북흉노 양면전선의 가능성이 높았기에 남흉노는 후한에 굴복했음. 남흉노는 조공-책봉 체계에 편입했고, 후한과의 적대 중단을 선언했음. 이는 철저히 지켜졌고, ‘후한 영내로의 남흉노 강제이주’와 ‘후한 사신의 예를 갖춰 교지를 받으라는 말에 비 선우가 굴복한 것’과 같은 정황 증거가 이를 보여줌(*9)

흉노의 남북 분열 이후, 북방 전선은 20년 간 평화로웠음. 북흉노는 계속하여 후한과 화친하고자 했지만, 후한은 이를 거절하고 남흉노와의 관계를 유지했음. 그러나 60년대 들어 북흉노는 강성함을 되찾았고, 62년에는 6~7천의 기병을 동원하여 대규모 약탈을 자행함

비록 북흉노 약탈군이 후한-남흉노 연합군의 요격에 물러나긴 했으나, 북흉노의 공격은 후한에게 있어 큰 부담이었음. 이에 후한은 북흉노와 관계를 복원히고자 함. 버림받을 위협에 처한 남흉노는 북흉노와 연합하여 후한을 치고자 했고, 이를 파악한 후한은 빠르게 군을 배치하여 이를 저지함. (*10)

이후, 북흉노는 지속적으로 후한 변경을 약탈하면서 관계(조공-책봉•합시 재개) 복원을 요구함. 막북의 사막 지형이 그리 가혹하지 않았기에 후한은 지속적으로 약탈당했음. 엎친데 덮친격으로 북흉노가 서역의 패권 공백을 틈타 비단길의 도시들을 장악하며 후한은 서역에서도 북흉노에게 위협받음.

이에 대응하고자 후한은 73년에 제융을 사령관으로 삼아 북방군과 선비•오환 보조병을 포함한 대규모 원정군을 보냈지만, 이 원정은 실패로 끝남. 제융의 본군은 길안내를 맡은 남흉노와 갈등을 빚어 제대로 기동하지 못하고 회군했고, 회군 중에 흉노의 역습을 맞아 손실을 봄

73년 원정의 대실패 직후, 후한은 북흉노에 대한 군사적 제어력을 상실하고 대규모 약탈을 겪음. 다행히도 초원에 대규모 기근이 닥쳐 북흉노가 내우외환을 겪으며 몰락하면서 후한은 어부지리를 보게 됨.

북흉노가 급속한 몰락을 겪으며 돌파구로 선택한 84년에 시도한 후한과의 관계 재건은 남흉노의 방해로 실패함. 거기에 현상금을 노린 오환•선비의 약탈이 지속되자 버틸수가 없는 수준이 되었음. 

결국 87년 선비와의 결전에서 우유 선우가 전사하고 그 살가죽이 전리품이 되는 참패로 북흉노는 몽골초원 서쪽을 완전히 상실함. 이 여파로 대립선우가 추대되어 내전이 일어날 정도로 북흉노의 몰락은 가시화 되었음


 1) Northern Frontier, Rafe de Crespigny, ANU, p.69/84, “호강교위는 우한이 맡았으나 그가 죽자 호강교위는 폐지되고 그 권한은 마원에게 부여되었다”

 2) 마원이 강족을 이주시킨 곳이 바로 ‘황중’이고, 이들이 바로 후대에도 유명한 황중의종임

 3) Northern Frontier, p.72

 4) Northern Frontier, p.75

 5) Northern Frontier, p.222~223

 6) Northern Frontier, p.225

 7) Northern Frontier, p.226

 8) Northern Frontier, p.230

 9) Northern Frontier, p.236~238

 10) 참고로 이때 도료영이 신설되었고, 여양에 주둔하던 호아영이 오원군으로 이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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