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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후한의 대외정책 (3)앱에서 작성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4.05.22 19:5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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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후한 말의 대외정책 

순제 말에 강족과 남흉노의 반란이 진압되면서 전선이 일시적으로 안정되긴 했으나, 후한의 변경이 초토화되어 방어선이 붕괴 위기에 처했고, 후한군은 군사적 우위를 상실한 상태였음. 이에 더해, 반란 재발을 막기 위해 친한파 이민족들과 남흉노 선우정을 강제이주 시킨 것이 역효과를 낳아 후한의 이민족 영향력은 감소했고, 친한파 이민족 지도자들은 권위를 잃었음.

중원의 군사는 이미 군사력 우위를 상실했고, 중원의 가용인력은 거의 고갈되었음. 불온한 대외정세는 군의 중추를 담당했던 이민족 보조병을 자주 징병할 수 없게 만듦. 더군다나 후한과 이민족 사이 위태로운 균형은 갈라치기 덕분에 유지되었기에 후한은 이민족이 결집하지 못하도록 적절한 시기에 무력시위가 강요됨.

망가진 국력을 복원하고 이민족을 달래면서도 대외원정을 나가야 하는 딜레마에 빠진 후한은 ‘블러핑’을 통해 허실을 감추고 이민족을 제압해야 했음. 즉, 정공법 보다는 ‘계책’을 활용해야 했고, 지휘관 개인의 역량이 무엇보다 중요해졌음. 그렇기에 황제의 용병술은 무엇보다 중요했고, 대외정책 성과에서 환제와 영제가 극명한 차이를 보이게 된 이유임.

환제 초기의 외정은 장환의 행적을 통해 살펴볼 수 있음. 155년 남흉노 좌부 반란 당시 안국속국도위를 맡던 장환은 불과 200명의 병력을 가지고 각개격파와 블러핑을 통해 동강과 남흉노의 연결을 성공적으로 차단해 최소한의 지출로 사태의 확산을 막고 반란을 진압하였음. 이 군공을 통해 사흉노중랑장으로 승진한 장환은 이후에도 유화책과 블러핑을 지속적으로 시도함. 

그의 재임기에 휴도각(흉노 일파)과 삭방오환이 반란을 일으켜 도료영이 격파당한 위급 상황이 발생했지만, 장환은 당황하지 않고 블러핑과 갈라치기를 시도했음. 이는 효과적으로 작용해 오환은 휴도각 장수를 죽이고 휴도각을 적대하였고, 155년과 마찬가지로 최소지출을 통해 반란이 진압됨. 156년부턴 단석괴를 필두로 선비의 공격이 시작됐지만, 장환은 이를 모두 격퇴하여 선비를 효과적으로 저지함.

159년 환제의 친위쿠데타로 양기가 실각했고, 그 고리였던 장환 또한 해임됨. 다만, 환제는 영제처럼 반대 계파를 무차별적으로 숙청하는 인간백정이 아니었기에 장환은 높은 직위였음에도 불구하고 무사히 물러났음. 후임자로는 황보규가 부임하였는데, 그 또한 장환과 마찬가지로 효과적으로 선비를 억제함.

160년 숙손무기란, 162년 강족 반란을 진압하고 변경을 평정한 황보규는 은퇴하였고, 추천 덕에 장환은 4년만에 무위태수로 복직할 수 있었음. 이후 환제의 강권으로 도료장군을 맡던 황보규가 사흉노중랑장으로 승진하자 장환은 도료장군으로 승진할 수 있었음. 장환이 도료장군을 맡은지 얼마 안가 변경은 평정되었고, 그는 재차 사흉노중랑장으로 승진하였음.

166년에 장환이 대사농으로 승진하고 황보규가 도료장군을 맡자, 이를 기회라고 생각한 선비는 재차 오환•흉노를 끌어들여(*1) 기병 1만의 대규모 약탈대를 구성하고 침입함. 환제는 이에 대응해 장환을 호흉노중랑장에 봉하고 유주•병주•양주 군병, 도료 2영, 오환 보조병에 대한 전권을 부여하는 파격적인 인사를 단행함. 확실한 지원을 받은 장환은 반란을 효과적으로 진압했음.

이듬해 선령강이 5~6천 규모의 약탈대를 구성해 일으킨 반란까지 진압하며 장환은 환제의 믿음에 보답했음. 군부와 이민족에게서 장환은 범접할 수 없는 위명을 쌓았고(*2), 장환은 자신의 위면과 유화책, 무력을 적절히 사용하며 변경을 안정시켰음. 능력만 좋다면 정적(*3)이라도 중책을 맡기는 환제의 용병술은 성공을 거뒀음.

양주삼명의 또다른 구성원인 단경은 ‘선령강에 대한 최종해결책’으로 그 생애를 요약할 수 있음. 평생을 강족과의 혈전을 벌엮던 단경은 유화책을 주장한 장환•황보규와 달리 강족의 멸절을 주장했음. 167년에 선령강이 장환에 패배하고 약화되자, 단경은 그들을 공격하여 대파하고 서강을 평정했음. 

단경은 기세를 몰아 168년에는 두무에게 선령강 멸절을 위한 원정을 요청하였고, 장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원정은 허락되었음. 단경은 봉의산•경양에서의 승전 이후 거듭된 대량학살 끝에 선령강을 멸절하는데 성공했고, 동강 또한 평정되었음. 177년에 후한 최후의 군단이 궤멸되기 전까지 강족은 감히 후한에 반항하지 못했음. (*4)


 1) 장환이 남선우가 통제권을 잃었으니 폐하자 했던 것에서 보이듯이, 남흉노 선우와 같은 친한파 이민족 지도자들은 불신임 상태에 놓여 권위가 떡락한 상태였음. (Northern Frontier, p.330)

 2) 이러한 장환의 위명은 169년 쿠데타에서 드러남. 169년 쿠데타 당시 두무는 체포조에게서 도망치는데 성공하여 북군오영을 소집함. 통념과 달리, 환관 측의 호분•우림•구추•도후는 비밀경찰•경호원•사육사였기에 전투병력인 오영에 비하면 열세였음. 그러나 장환 개인의 위명에 압도된 오영병이 칼끝을 돌리면서 두무군은 무너짐. (Northern Frontier, p.325)

 3) 장환 스스로 남긴 말이나, 열전에 기록된 행적에서 보이듯이 장환은 환제의 환관정치가 (영제의 그것에 비해 훨씬 건전함에도) 옳지 못하다 보았음. 다만, 장환의 청류 선호와 별개로 태학과 조정의 청류 관료들은 장환을 매우 무시했음. (Northern Frontier, p.325~326)

 4) Northern Frontier, p.326~327






  6. 후한 말의 대외정책 (2)

환제 시기의 눈부신 성과가 무색하게도, 영제 재위기에 후한은 급속하게 무너졌음. 신흥사족을 친위세력으로 삼아 환관을 견제한 환제와 달리, 영제는 사대부를 배제하고 환관 계파만을 등용하는 측근 정치를 펼침. 당연하게도 사대부는 이에 저항하였고, 지방행정과 인재수급이 나락으로 떨어져 홍도문과 매관매직으로 겨우 껍데기만 유지하는 판국이었음.

이러한 내정 실패는 그동안 누적된 피해와 상호작용하여 후한의 대외정책을 완전히 망가뜨렸음. 후한 중기까지 계속 이어진 전란은 후한의 변경을 초토화하고 국고를 거덜냈고, 1세기 중반부터 이어진 재해는 환제 시절에 절정을 찍었음. (*1) 환제 시기까진 황제 본인의 뛰어난 정치력과 신흥사족 세력의 유능함 덕에 버틸 수 있었지만, 영제 시기에는 그 무엇도 없었음. 영제 본인과 그 측근인 관료•환관들은 무능하고 부패했고, 국토를 복원하긴 커녕 꿀땅만 모인 황실 직할령 또한 부정부패에 신음했음. 

상황을 더욱 악화시킨 것은 인재수급이 막힌 것이었음. 양주삼명이 원래 지방사족인 것에서 보이듯이, 후한 군부는 천거제를 통해 인재를 수급했음. 그러나 영제가 2차 당고를 통해 신흥사족을 철저하게 숙청하고, 환제처럼 복권하긴 커녕 틈만 나면 혈사를 일으킨 덕에 천거제는 완전히 붕괴하였음. 영제는 매관매직과 홍도문을 통해 인적 자원을 모으긴 했지만, 질적저하는 심각한 수준이었음. 그리고 이러한 관료•군부의 질적저하는 현장지휘관 개인의 역량에 의존하는 후한의 대외정책과 맞물랴 최악의 결과를 발생시킴.

양주삼명은 영제 초기에 은퇴하였음. 장환은 2차 당고에 휘말려 은퇴했고, 황보규는 이미 평정된 강족 전선에 호강교위로 배치되어 시간을 보내다 174년에 병사했음. 단경은 환관의 사냥개가 되어 172년 태학 공안 사태를 일으키는 등 수도의 권력암투에 집중했음. 전대의 명장들이 사라진 후한의 변경은 선비족의 먹잇감으로 전락했고, 169년부터 181년까지 170년 단 한해를 제외하고 후한은 매해 약탈에 시달렸음

세습제 계급사회인 흉노와 달리 선비는 가장 뛰어난 이를 부족민이 추대하는 형식이었고, 후한 약탈에서 상당한 수익을 거둔 단석괴는 세력을 빠르게 불릴 수 있었음. (*2)170년대에 선비는 세력권이 동서 4000리에 달할 정도로 확장되어 초원의 패자로 우뚝섰음. 

물론 단석괴의 선비제국은 몽골제국과 같은 유목제국 보단 프랑크 왕국 같은 느슨한 연방국가에 가까웠음. 단석괴 휘하 3부의 대인은 병력 요청에 호응하고 가신들의 감독을 받는 의무가 있었지만, 하부단계에서는 여전히 현지유력자의 권위가 강했음.(*3)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석괴가 초원의 유목민들을 통합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임. (*3) 단석괴의 공격에 후한의 방어선은 완전히 붕괴하였고, 후한은 대군에서 불과 300리 떨어진 곳에 위치한 단석괴의 수도를 공략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음. 

그러나, 지휘관의 질적 저하는 후한 군부에서 허황된 망상을 하도록 만들었음. 170년대 중순부터 후한 군부는 선비 원정을 주장하며 단경이 했던 것을 재현하겠다 호언장담 했음. 그들은 단경의 출사표에서 한술 더 떠 ”1번의 겨울과 2번의 여름이면 선비를 평정할 것“이라 말하고 다녔음. 단경의 동강 원정이 새내에서 이루어졌기에 모든 지리를 후한이 꿰고 있었다는 중대한 차이점은 ‘사소한 것’으로 취급받았고, 근거없는 낙관론 속에서 선비 원정이 준비됐음.

177년, 후한은 변방 주둔군(*4)과 남흉노•오환 주력군을 원정군에 소속시켜 기병으로만 구성된 3만의 병력을 출전시킴. 이는 두헌의 원정군에 필적하는 규모였고, 남흉노 보조병의 비율은 두헌을 능가할 정도였음. 그러나, 원정은 대참사로 끝났음. 원정군은 모든 물자를 상실하고 병력의 75%를 잃었고, 나머지 25%도 소수의 생존자를 제외하면 복귀하지 못했음.

177년의 대참사로 명장들이 계책을 통해 틀어막던 후한의 취약점은 만천하에 드러났음. 병력이 고갈된 후한의 방어선은 완전히 붕괴하여 이민족이 북방을 휩쓸었고, 후한의 패권이 붕괴되면서 친한파 이민족들이 이탈하였음. 남흉노 선우의 권위는 붕괴했고, 겨우 통제하에 두었던 강족•오환에게도 통제력을 상실했음.(*5)

다행히도 단석괴는 181년에 사망했고, 그 아들 화련은 인품과 능력 모두 아비에 미치지 못하였기에 선비 제국은 분열되었음. 화련이 북지군 약탈 중에 쇠뇌에 저격당해 죽고 그 계승자를 두고 내전이 일어나면서 선비제국은 붕괴했음. 단석괴 이후부터 선비가 유목제국의 편린(*6)을 보인 것을 보면 화련의 무능력은 후한에게 있어 더없는 행운이었음.

다만, 후한은 망가질대로 망가져 이러한 행운을 살릴 수 없는 상태였음. 얼마 지나지 않아 발생한 황건란은 황실의 권위를 나락으로 쳐박았고, 영제 이 병신새끼가 궁궐병 걸려서 반란 진압에 동원한 최후의 이민족 보조병 임금을 체불하면서 이민족 보조병 체계도 붕괴했음. 이는 184년의 백궁백옥란, 187년 삼군오환란, 188년 남흉노 쿠데타을 통해 알 수 있음.

184년의 백궁백옥란은 후한 패권 붕괴의 신호탄이었음. 전통적인 후한의 동맹 황종강과 의종강이 선령강에 동조하여 백궁백옥을 필두로 반란을 일으켰음. 강족이 삼보를 초토화하자, 후한 조정은 185년에 황건적을 효과적으로 진압한 황보숭을 진압군으로 파견함. 그러나 황보숭은 패배하였고, 더이상 중원의 군대가 유목군대를 단독으로 상대할 수 없다는 차가운 현실을 보여줬음.(*7) 이후 지휘관이 장온으로 교체되고 재차 토벌을 시도했으나, 유인전술에 휘말려 동탁군을 제외하곤 큰 손실을 보면서 후한은 양주의 통제력을 상실하고 삼보가 위협에 놓임.

삼군오환란 또한 후한의 대외자산 붕괴를 보여줌. 185년, 강족과 황건적 진압에 동원된 오환은 임금을 요구했음. 영제 이 미친새끼는 궁궐 지을 돈은 있으면서 패권 유지비는 없는지 임금을 체불했고, 이에 분노한 오환은 후한의 패권에서 이탈했음. 187년, 그들은 마침내 반란을 일으켰고, 유주•병주•기주를 넘어 청주•서주까지 약탈했음. 공손찬이 석문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며 상황의 반전을 노렸지만, 추격 과정에서 유인당해 휘하 병력이 유성에서 궤멸당했음. 공손찬은 도적과 다름없는 부곡병을 모집하면서 전쟁 지속을 요구했으나, 누적된 피해탓에 전쟁 지속을 감당할 수 없던 후한 조정은 유우를 대오환외교와 유주의 전권대리인으로 삼고 청주•병주의 염철전매 권한을 부여하여 오환과의 화친을 꾀했고, 유우는 호찬하며 일단락 되었음.(*8) 

남흉노 선우정의 붕괴는 후한 패권의 종말을 보여줌. 177년의 대참사 이후 남흉노 선우의 권위는 나락으로 떨어졌고, 남흉노는 강족•선비 대응을 위한 징발령을 10년 간 무시했음. 187년 삼군오환란 진압을 위한 징발령이 내려와 선우는 좌현왕을 파견했지만, 좌현왕은 명령을 거부했음. 결국 188년 우부의 혜락과 휴저각의 주도하에 남흉노에 대규모 반란이 일어나 병주자사가 피살됐고, 좌부까지 가담하여 강거 선우를 죽이고 수복골도후를 선우로 선출함. 한에 끝까지 충성했던 연제씨는 낙양으로 도망쳐 지원을 요청했지만, 때마침 영제가 죽어 혼란에 빠진 후한은 이를 거부하고 난제씨는 도적으로 전락하며 후한의 남흉노 지배는 붕괴되었음.(*9)


1) 형양의 백성 다수가 아사했고, 사례와 예주에서는 인구 4~5할이 아사했다 (환제기)

 2) Northern Frontier, p.333

 3) Northern Frontier, p.337

 4) 원정군의 편제에 도료영은 전혀 등장하지 않음. 도료장군의 임무가 남흉노를 관리하는 것이고, 원정군에 남흉노군이 다수 편성되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굉장히 이상한 편성임. 더욱 특이한 것은, 도료영은 이후의 기록에서도 더이상 등장하지 않음. (Northern Frontier, p.341)

 4-1) 이건 내 개인적인 추측이지만, 영제 시기 체제 개편의 대규모 혼란 속에서 도료영은 자연히 와해된게 아닌가 싶음. 이민족 보조병 돈도 떼먹던 영제가 도료영 유지비를 대줬을리가 없고, 후한 초중기 군축 조금 한 여파로 북방군이 완전히 무력화된걸 감안하면 도료영도 같은 과정을 밟지 않았나 싶음.

 5) Northern Frontier, p.345

 6) 세습제 도입, 단석괴의 후계인 보도근과 동부대인의 후계인 설귀니의 협력 (Northern Frontier, p.343~344)

 7) Northern Frontier, p.342

 8) Northern Frontier, p.399~400

 8-1) 공손찬은 다만 무리를 모아들여 자신의 힘을 강대하게 하는데 힘썼을 뿐이었고 부곡(部曲)들이 제멋대로 하도록 놓아두니 자못 백성들을 침범하여 어지럽혔다. (유우열전)

>>>병력이 있으니 계속 싸울 수 있다는 공손찬의 주장과 달리, 보급계통이 무너진 유주는 공손찬의 부곡을 유지할 수 없었음. 당연히 공손찬군은 자국민을 약탈했고, 공손찬은 이를 방관함. 유우는 이러한 피해를 감수하면서 삼군오환을 적대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여 공손찬군을 해산하고자 하였지만, 공손찬은 항명했음

즉, 오환몽 꾸던 유재앙이 한족 보호에 열중하던 C-막시무스 공손찬의 라스트 바탈리온을 해체했다는 해석은 틀렸음. 공손찬군은 이민족 약탈대 못지 않게 자국민에게 피해를 줬고, 공손찬은 후한의 화해와 배상에 만족한 오환이 적대 행위를 줄이는 와중에도 끝까지 전쟁을 밀어붙였음. 최소지출로 최대성과를 거둬야 하는 당대 후한의 상황에 공손찬의 호전광적 태도는 적절하다 볼 수 없음. 냉정하게 말하자면 공손찬은 지리도 모르고, 대기병 전술과 전략적 기동력도 없는 상황에 전략적 안목은 결여된채 꼴아박은 럭키 전안•하육(177년 원정 지휘관)이라 생각함.


 9) Northern Frontier, p.346~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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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513 일반 공산 전투 당시 왕건의 출발지는 [6] 태조고황제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18 197 8
99511 일반 그냥 지렁이햄은 범부들과 결이 다른것임 [16] LucidAria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18 19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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