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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유럽의 동맹과 연합 1871-1890 1-3. 독-오 친선의 시작

LaFayette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9.06.29 23:0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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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rome&no=111032 0. 책 소개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rome&no=111293 1-1. 보불전쟁의 서막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rome&no=112382&exception_mode=recommend&page=3 1-2. 보불전쟁과 각국의 대처






안녕. 딱 오늘 드디어 기말 레포트 제출하고 종강해서 제대로 쓸 거 같음. 게다가 다음주부터는 혼자 오스트리아에 나가있기 때문에 저녁에 심심해서라도 이거 많이 쓸 예정.


저번 편에는 보불전쟁이 독일의 압도적인 승리로 끝나고, 각 열강들이 각자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특히 대영제국을 구체적으로 살펴봤어. 오늘은 예고했듯이 프랑스의 복수감정, 그리고 차후 등장한 제 3공화정이 그런 맥락 속에서 어떤 외교 정책을 펼쳤는지 보고자 해. 자 이제 본격적으로 들어가 보자.




 보불전쟁이 국제전으로 퍼지지 않은 건 정말 기적에 가까웠어. 하지만 그 여파는 충분히 커서 종전 후 유럽 균형 체제는 완전히 붕괴되었어. 기존에는 강력한 프랑스, 오스트리아, 러시아 정부가 약한 독일을 둘러싸는 형국이었지만, 이제는 러시아를 제외하면 아예 반대가 되버린 거지. 이에 많은 국가들은 프랑스에 여러 지원을 시작하고 다시 독일을 견제할 하나의 말로 키우려고 했어.


 모두 알고 있듯이 프랑스는 너무 처참하게 패배했고, 오랫동안 그 아래에서 고통받았어. 전쟁 직후 주 경계가 다시 재편되었고, 의회가 1871년 봄 다시 열렸어. 그리고 첫번째로 가결한 안건은 독일과의 평화조약이었어. 그리고 이 내각의 책임 장관(대통령)이 아돌프 티에르야.


thiers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이 사람이 아돌프 티에르야. 전후 이 사람은 법 개혁과 국가 재건을 충실히 진행했어. 한편 상, 하류층 상관할 것없이 모든 프랑스인들은 치욕과 패배감을 느끼고 있었어. 많은 사람들이 복수를 하고자 했고, 여기에 불을 지핀 사람이 공화당 총수 감베타야.


gambetta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레옹 감베타는 프랑스는 독일의 자비로 살아남았지만, 이는 그들의 실수이며, 그로 인해 유럽은 평화도, 자유도, 발전도 없는 끊임없는 전쟁 속에 뛰어들었다고 말하며 복수를 종용했어.


 비록 대통령 티에르는 도발 정책에 절대 반대했지만, 그는 프랑스의 군대를 전쟁 전으로 돌려 놓아 또다른 독일로부터의 재난은 피해야한다는 생각이 강했어. 그의 안건 상정으로 군비 확충이 올라갔고, 의회는 이를 두고 좌우파로 나뉘어 팽팽히 대립했어.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파리 코뮌 사건이 터져.


paris commune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1871년 봄 강력한 파리 봉기가 터진 이후 정부는 강력한 국방력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군대를 재조직하는 동시에 요새를 수리해. '평화 유지'라는 명목 하에 정책이 시행되었고, 전쟁 배상금은 독일의 예상보다 훨씬 빨리 지불을 완료시켰어. 이후 내각에서는 수복 전쟁을 감행해야 한다는 의견이 강력했어. 특히 장성들 위주로 말이지. 하지만 티에르는 당장은 때가 아니라며 제안을 거부했어. 프랑스와 협상을 빨리 끝내버린 비스마르크나, 함부로 공격을 하지 않은 아돌프 티에르는 이후의 히틀러처럼 장군 타입의 리더가 아니라 신중하고 안전주의 노선을 걷는 관료 타입 리더였던 것 같아. 최대한 평화롭게 문제를 끝내려 한거지.


 비스마르크는 약 6개월 간 이어진 프랑스 정세 변화에 대해 아주 놀라고 염려했어. 첫째, 프랑스의 전쟁수행능력이 너무나도 빠르게 회복되었어. 둘째, 프랑스의 왕정 복고 운동이 예상 외로 잠잠했어. 전쟁 후 독일은 프랑스와 관계 개선을 해서 또 다른 전쟁을 막으려 했는데, 정치 체제가 다르면 애초에 관계 개선에 한계가 있으니깐. 


 언젠가 또 다시 일어날 전쟁을 막기 위해 우리 수상님은 군을 증강하고 시스템을 강화해. 이쯤이면 프랑스도 이긴 프로이센 군대 체제를 유럽 각국에서 따라하거든. 더이상 프로이센만의 특별한 무언가가 없게 되었고, 비스마르크는 수적인 증가를 통해 이를 만회하고자 해.


 이 외에 그가 한 전쟁 준비는 거의 없어. 그는 장군이 아니라 관료이기도 했고, 그래서 외교적인 해결책에 방점을 뒀지. 만약 독일에게 우호적인 국가가 없다면, 자연스럽게 프랑스의 패배를 안타까워 할 것이고, 추후 일어날 지 모르는 전쟁에서 프랑스를 물질적으로 지원할 것이었어. 사실 이것이 아돌프 티에르가 의도한 점이기도 했지.


 잠깐 시간을 앞으로 돌려서 1년 전인 1870년 11월로 가보자. 영국 정부는 프랑스에 있는 독일 사령부에 오도 러셀을 보내. 혼란을 틈타 흑해를 장악하려는 러시아의 움직임에 대해 의논하기 위해서지. 이 때 독일 외교관은 독일과 오스트리아, 영국 간의 동맹은 러시아를 효율적으로 견제할 것이라고 말해. 이 발언이 정말 독일 정부의 의견을 담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비스마르크에게 이러한 상황이 상당히 매력적이었음은 당연해. 세계 최강의 육군 국가와 세계 최강의 해군 국가가 손을 잡는거니깐. 러시아가 근동, 아시아 어떤 방향으로도 나아갈 수 없게 되는 거지.

 동시에 이는 프랑스에게도 위협적인 문제였어. 본토는 물론이거니와, 아프리카의 식민지도 위협받는 거니깐. 그리고 추후 있을 복수전에서 영국의 지원을 받지 못하는 것이기도 했어.


 하지만 이는 영국의 거부로 해프닝에 그치고 말았어. 아직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이전의 '대륙 불간섭론'에 목 매던 글래드스톤 내각은 이 제안 자체에 별 관심이 없었어. 또한 국방비 증강도 거부에 영향을 크게 끼쳤어. 사실 한가지 덧붙이자면 대륙 문제는 영국에게 2번째로 중요한 문제였어. 글래드스톤 수상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는 미국 남북전쟁 중 연방군이 영국 함선을 침몰 시킨 '앨라배마 호 사건'이었어. 한창 당시에 이 사건의 중재가 이뤄지고 있었거든. 거절 소식과 이유를 들은 비스마르크는 '아직도 영국은 지들이 세계 최강인줄 안다.'고 말해.


 영국이 이렇게 나오니 비스마르크는 동쪽으로 눈을 돌려. 바로 차르의 러시아지. 1863년 폴란드 반란은 러시아의 민족주의적 감정을 급속히 키웠고, 독일인들이 단일민족 제국을 만드는 것을 보고 괜한 경외심을 품게 돼. 반면 폴란드 반란으로 정말 차르 체제가 무너질 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국제 사회 속에 퍼지게 되고, 이는 비스마르크가 오스트리아와 관계를 개선하는 계기가 돼. 


 보오 전쟁 이후 오스트리아의 상황을 한번 보자. 1866년 보오전쟁에서 비스마르크가 아주 관대한 조건으로 종전했던 건 기억하지? 한뼘의 땅도 안뺏겼고, 배상금 하나 안냈어. 보불전쟁과 비교하면 아주 편파적인거지. 1년 뒤 1867년, 오스트리아는 헝가리 민족주의자의 요구를 승인하며 '대타협'을 이뤄. 오-헝제국이 된거지. 헝가리의 자치권을 허용하고 동등한 지위를 제공하면서 국가 내부의 위기를 해결하는 데 성공해. 사실 많은 사람들이 대타협 이후 오스트리아의 군사, 외교력이 하락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더욱 확대됐어. 통합된 군대, 외교 정책을 갖게 되면서 더욱 효율적인 국정 수행이 가능해진거지. 


 애초에 마자르(헝가리) 인들과 독일인들의 관계는 원만했어. 대타협으로 헝가리 인들도 정책에 대해 평등한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되자 대독일 정책이 크게 변화했어. 그런 상황에서 1867년 비스마르크는 프랑스의 편에 오헝이 붙을까봐 자신의 편으로 편입하려고 시도해. 그리고 러시아에만 의존하는 것이 독일의 미래에 좋은 것은 아니라는 계산도 있었지. 사실 여기에는 독일 대중들의 지지도 있었어.


 애초에 독일인들은 독일 체제에서 오스트리아를 축출하는 것을 원치 않았어. 1866년 이전 존재했던 독일 연방의 모습 그대로 한 국가를 이루고자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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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모양대로 말이야. 벨기에 일부 영토부터 오스트리아 왕국까지 한 나라로 합치고자 한거지. 하지만 오스트리아 정부는 절대 반대했어. 1편에서 소개했던 작센 출신 외무장관 보이스트를 기억해? 그는 프로이센 중심의 독일 통일을 극도로 혐오했고, 프랑스와의 동맹을 통해 사도와 전투의 복수를 하려했어. 


 하지만 스당에서 나폴레옹 3세가 항복한 후 희망은 무너졌어. 오스트리아는 프랑스를 지원하려 했던 본인에게 독일이 공격할까봐 극도로 공포스러워했고, 헝가리인들은 동쪽의 러시아가 독일을 도와 침입할까봐 무서워했어. 따라서 마자르인들은 독일과 관계 개선을 하라고 정부에 강력히 요구했고, 오스트리아 내 독일인들은 슬라브 인들에 대항할 강력한 친구가 생겼다며 같은 요구를 했어. 당시 보헤미아나 발칸의 슬라브인들에 대한 위기감이 제국에 만연했던 것을 이용한 거지.


 게다가 독일-러시아-이탈리아에 둘러싸여있는 제국의 현실을 깨달은 보이스트는 피눈물을 흘리며 정책을 선회해. 드디어 독일-오헝이 친선 관계에 돌입한거지. 1871년 6월, 보불전쟁이 막 끝난 후에 오헝 정부는 장군 가블렌츠를 베를린에 파견해서 관계 개선의 메시지를 전송해.


general von gablenz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요 사람이야. 비스마르크는 가블렌츠를 열렬히 환영했고, 파리 코뮌 사태와 사회주의자들에 대해 논의해. 그리고 여기서 그는 오헝 사절단에게 앞으로 절대 영토를 요구하지 않을 것이고, 양국 사이의 무궁한 친선을 기원해.


 친선의 시작은 어려웠지만, 한번 서로 말이 트이니 급속도로 가까워져. 겨우 3달 뒤인 9월에 양국 황제들과 외무장관들이 이슐 가슈타인, 잘츠부르크에서 만나.


ischl map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이슐이 요기고, 잘츠부르크는 여기서 서쪽에, 가슈타인은 그 남쪽에 있어. 다 그 근교에 위치해.


양국 정상이 만나기 전에 오헝 황제 프란츠 요제프 1세는 개각을 단행해. 반독일 외무장관 보이스트는 해임되고, 친 슬라브족의 대표격인 호헨바르트 백작을 해임해. 율리우스 안드라시 백작이 신임 외무장관이 되고, 앞에서 말한 정상 회담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


julius andrassy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이 사진의 안드라시 백작은 헝가리 인이야. 사실 1848년 혁명에 참가한 뒤 사형 선고를 받았으나 타국으로 망명하지만, 황제에 의해 사면된 뒤 대타협을 주도한 사람이야. 그는 바로 헝가리 수상이 되고 프란츠 요제프 황제의 신임을 받아 외무 장관이 된거지. 그는 러시아를 주요 위협 대상으로 상정하고 그를 막기 위해 독일과 우호적으로 지내야 한다고 생각했어. 


 안드라시는 독-러 우호 관계를 매우 의심스럽게 생각했고, 머지않아 두 열강이 오헝제국을 양분할까봐 두려워했어. 그가 외무장관이 된 이후 가장 먼저 한 일은, 독일을 러시아의 곁에서 떼 버리고 오스트리아 쪽으로 오게 하는 거였어. 가슈타인의 회담에서 그는 비스마르크에게 러시아에 맞서 동맹을 맺자고 제안했지만 거절당해. 비스마르크는 당연하지만 러시아를 자극하고 싶지 않았거든. 하지만 그런데도 오스트리아와의 친선은 유지해야 했기에, 1872년 9월 프란츠 요제프의 베를린 방문을 환영해.


 다음 해 오헝 황제의 베를린 방문에서 프란츠 요제프는 독일인의 환대에 깊은 감동을 받았고, 친독일 정책을 밀고 나갈 것을 주문해. '동과 서의 위협을 제거하기 위해 중앙 유럽의 동맹이 시급하다'고 말하기까지 하지. 하지만 러시아가 이걸 보고 가만 있지 만은 않았어.




 오늘은 여기까지. 보불전쟁 이후 프랑스의 복수심, 그리고 이로 인한 독일의 위기감, 독-오 친선 분위기 도모 등을 살펴봤어. 오늘은 전쟁 얘기도 없고 긴박한 외교전 얘기도 없어서 살짝 루즈하지 않았나 싶어. 내일 혹은 모레에 다음 편을 올릴 건데, 아마 삼제 동맹의 형성에 대해 주로 살펴볼 것 같아. 서로를 견제하려는 러, 오헝과 그 사이에서 애매하게 낀 비스마르크 사이의 외교전에 대해 다루지 않을까 싶네.


 길고 지루한 글 읽어줘서 정말 고맙고, 댓글 많이 달아줘. 다음 편에서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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