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은 전문 부리한테 맡기고, 나는 인상만 남기는 걸로...

콘서트홀이 정말 윈도우 바탕화면이랑 똑같은 들판 한가운데 떡 하니 서 있어서, 운전하고 가는 길이 참 좋았다. 

가면서 갤주도 이 독일 시골 풍경을 지나갔을텐데 분명 마음에 들었을 거라고 궁예짓하며 혼자 흐뭇해했음.

마음에 들어서 앞으로도 자주 와 주면 좋으련만...

다른 부리 글 보니 피카소 그림도 있다고 하는데, 시간 맞춰 도착해서 감상할 시간이 없었음. 아깝다.

건물에 대한 인상은 일단 화장실을 들어가 보니 돈과 노력을 좀 들인 것 같은 느낌이었고, 홀에 들어가선 더 놀랐음. 나뭇결을 살린 벽면이 먼저 눈에 띄었고, 지은지 얼마나 됐는지 모르겠는데 아직까지 나무 냄새가 났음. 좌석도 의자 하나씩 놓은 게 아니라, 큰 나무 한 덩어리에 시트를 얹어서 참 특이했음. 

신경써서 만든 것 같은 예쁜 칼라 프로그램북도 무료로 주고, 인터미션 때 브레츨이랑 음료도 공짜, 공연 끝나고 출구에서 하트 초콜릿도 나눠주고, 암튼 기업에서 돈 많이 투자하는 느낌이 팍팍 났음. 뷔어트라는 회사가 공구회사라는데, 그래서 그런지 지휘자한테 꽃다발 대신 공구함으로 보이는 주홍색 박스를 선물했음. 갤주한테도 줬다는데 나는 얼굴 보느라 그냥 꽃다발인 줄 알았음. 진짜 공구가 들었을까?? 갤주가 인스타에 올려주면 호기심이 풀리련만.

1부 첫 곡은 스트라빈스키의 무슨 발레곡이라는데(Jeu de Cartes??) 그리 인상적이진 않았음.

월요일까지 연휴라 놀러가는 사람들이 많았는지 차도 많았고, 사고도 있어서 두 시간 운전하고 가니 너무 녹초. 가뜩이나 커피도 못 마셔서 졸리고 갤주 공연 잘 감상할 수 있을지 걱정됐음. 

첫 곡 끝나고 피아노 들어오는 잠깐 동안 눈 좀 붙이고, 이제 갤주 쇼피협 감상 준비. 

짜잔... 오늘은 10년 전 벼룩시장에서 샀던 오페라 글라스를 잊지 않고 챙겨와서 갤주 얼굴 볼 생각에 기대 만빵.

초점 맞추고, 갤주 입장해서 의자에 앉은 모습 정말 바로 앞에 있는 것처럼 봤는데, 중간에 갑자기 객석으로 고개를 홱 돌려 잠깐 쳐다봤는데, 나랑 눈 마주친 것같은 느낌에 가슴 철렁. 오글 통해서 크게 보니, 눈빛이 아주 날카롭네. 이런 눈빛 처음봤어.

12열이어서 아주 멀지도 않았는데 오페라 글라스를 두 손으로 꼭 잡고 연주 내내 눈에 딱 붙이고 있으니 어떻게 보면 좀 우스웠을 것 같기도...  하지만 넘넘 좋았음.

진짜 바로 옆에서 연주하는 느낌.... 근데 갤주 얼굴 표정이랑 손동작 보느라 곡은 귀에 잘 안 들어왔음. 이게 딜레마야. 시각을 선택하느냐, 청각을 선택하느냐.

근데 갤주 연주에 몰입해 있는 여자 플루티스트가 눈에 띄었음. 그 옆의 호른연주자랑 마주보며 쟤 진짜 잘 하지 않냐?" 뭐 이런 눈빛을 교환하는 순간을 포착. 완전 뿌듯뿌듯.

쇼피협 끝난 후 독일 할아버지 할머니들 거의 기립... '간쯔 톨'하면서 (완전 훌륭 뭐 이런 뉘앙스) 

커튼콜 몇 번 후에 앵콜곡 연주했는데, 못 들어본 곡임. 루체른에서 했다던 무언곡으로 보임. 

얼굴 보다가 이건 들어야 돼 하면서 오글 내려놓고 눈 감고 감상. 뭔가 깊이가 있으면서도 초연한 듯한 그런 느낌? 스무 살이 저런 느낌을 어떻게 알지 하면서 눈물 나려고 했음. 

관중들도 환호. 앵콜 하나 더 하겠지 하면서 계속 박수치는데 갑자기 공연장 불이 들어와서 실망.

그런데 갤주가 불 켜진지 모르고 빼꼼 무대로 나왔음. 관중들 웃으면서 박수 더 열심히 침. 갤주 어색하게 웃으면서 나와서 악장이랑 악장 옆 연주자랑 악수하고 들어감. ㅜㅜ

앵콜 한 곡 더 할 모양이었는데 너무 아까움. 그래도 갤주한테 이런 재밌는 해프닝도 새로운 경험으로 쌓였을테니까 그런 면에서 만족하기로 함. 

내 배터리가 다 돼서 촬영 하나도 못 했는데 찍은 부리 있으면 올려주면 감사하겠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