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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러진 검

바사고의 시신을 든 행렬은 길을 거슬러 출입구로 향한다. 그 뒤를 따르던 콜스웨인은 바위의 돌출부에서 아도펠과 합류한다. 아래쪽은 깎아지른 절벽이다. 방어에 적합하기에 지형공학적으로 뜯어 고치지 않고, 자연 그대로 둔 고갯길이다. 재로 물든 눈이 휘몰아치고, 그 아래 한때 공백의 산에서 성가를 부르던 아스트로텔레패스 합창단의 뒤엉킨 시체들이 쌓인 채다. 대회당의 성가석에서 뒤엉킨 시신들은 장례조차 치르지 못한 채 버려진 상태다. 흡사 인간으로 된 눈사태가 쏟아지기라도 한 듯이, 산비탈을 가로지른 채 시신들이 가득하다.

콜스웨인은 아도펠의 표정을 본다.

“들었나?”

“듣고 아는 것이 제 임무지요.”

아도펠이 답한다.

“그리고 조언도?”

“그렇지 않다면 굳이 듣고 알 필요가 있겠습니까?”

“그럼 조언해 주시게, 챕터 마스터. 내가 워프를 보는 이들의 목줄을 너무 풀고 있는 겐가?”

“분명 그렇지요.”

아도펠이 말한다.

“그들을 쓰는 것은 가장 엄격한 칙령으로-”

“나도 아네, 오랜 벗이여. 하지만-”

아도펠이 손을 부드럽게 들어 콜스웨인의 답을 막는다.

“각하, 아직 제 충고는 나오지도 않았습니다.”

콜스웨인이 고개를 끄덕인다.

“각하께서는 저들을 너무 신뢰하고 계십니다.”

챕터 마스터가 부드럽게 말한다.

“아니, 정확하게는 너무 많은 희망을 품고 있다고 해야겠지요.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제 마음 속 한구석에서는 칙령에도 불구하고 저 친구들이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는 기술을 갖추고 있기를 바랍니다. 각하가 원하는 일을 해내서 우리가 놀라게 되기를 바라지요. 하지만 다른 부분은… 실패하기를 바라고 있지요. 그들이 실패하고, 비물질계에 손을 대는 자들에 대한 우리의 의심이 합당한 것임이 증명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글쎄요, 지금 우리가 직면한 것은 말 그대로 생과 사를 가를 경쟁 아니겠습니까… 어쩌면, 우리가 처해 본 경쟁 중 가장 치열한 것이겠지요. 사냥해야 할 야수가 저기 있습니다. 그 악명이 하늘을 찌르지요. 기회를 잡기 위해서는 실용적으로 굴어야 할 겁니다. 죽음의 문 앞에서 가릴 수단과 방법이 어디 있겠습니까? 수단 방법 가리며 싸우다가 고결한 제1군단이 아예 사라질 판인데 말입니다. 옛 알두루크에는 이런 속담이 있었습니다. ‘부러진 검이라 해도 아예 없는 것보다야 낫다’. 칼리반에서 태어난 저 네 아들이 우리의 부러진 검이 될 수도 있겠지요. 가장 정당하지도, 가장 용맹하지도 않은 무기일 수 있지만, 우리 손에 쥐어진 무기의 전부 아닙니까. 자, 여기까지가 제 조언입니다.”

“내 본능과도 일치하는 조언일세.”

콜스웨인이 대꾸한다.

“하지만… 자네는 저들을 감시하겠지?”

“지옥의 피에 걸고, 당연한 것 아닙니까. 매처럼 계속 지켜볼 겁니다. 그리고 유해한 우상 숭배의 흔적이라도 보이는 순간 직접 척추를 분질러 버릴 겁니다.”

“그리고 그걸 허가한 나는?”

아도펠의 울퉁불퉁한 얼굴이 콜스웨인을 향한다. 콜스웨인의 얼굴에는 회한에 찬 미소가 걸린 채다.

“눈 깜짝할 사이일 겁니다.”

“좋군.”

콜스웨인이 다시 입을 연다.

“만약 모든 것을 잃는다면, 우리 군단의 명예도 흠조차 없이 사라지겠지.”

“‘그 전’에, 우리 모두가 용맹으로서 정화될 겁니다.”

아도펠이 왼쪽 완갑에서 센소리움을 풀어내 가령에게 건넨다. 콜스웨인은 디스플레이를 살핀다. 비록 간섭 때문에 온전히 알아볼 수 있는 데이터는 아니지만,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군대가 오고 있다?”

아도펠이 고개를 끄덕인다.

“상당한 규모더군요. 만약 판독 결과가 정확하다면, 최소 3일 정도 남았다고 봐야 할 겁니다. 하지만 진군 속도가 빠르고, 목적지는 의심의 여지 없이 우리를 향하고 있습니다. 우리 외에 가능한 목표물이 없으니까요.”

“반역자들이라 생각하나?”

“당연히 그렇다고 봅니다. 코드 신호도, 암호도 발송되지 않고 있습니다. 뻔한 것 아니겠습니까? 아마 우리를 끝장내기 위해 포위망에서 이탈한 군세겠지요. 그리고 복스 교신도 일부 확인했습니다. 분리해서 확인해 보니, 야만인들의 역정 같은 소리만 들리더군요. 하지만 우리가 아는 목소리였습니다.”

“놈인가?”

“제 목숨이라도 걸 수 있습니다.”

“그럼 전투 준비를 갖추도록 지시하게, 챕터 마스터.”

콜스웨인이 답한다.

아스트로노미칸을 둘러싼 교전 준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