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 잠시 이쪽에 와 주십시오. 보셔야 할 게 있습니다.”

 쉬반은 순간 멈칫했다. 통신기에서 들려오는 조치의 목소리는 어딘가 긴장되어 있었다. 이건 예삿일이 아니었다. 조치는 볼터음이 격발하는 전장에서도 평정을 잃지 않는 t사내였다. 

  페무스 IV는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행성이었다. 페무스는 군말로도 살기 좋은 곳이라고 말하기 힘든 곳이었다. 지독하게 찌는 더위와 거뭇한 빛깔로 흐르는 마그마에 번개 구름을 동반하는 폭풍까지. 실로 섬뜩한 지옥도 그 자체였다. 

 “현 위치에서 대기하도록,” 쉬반은 복스로 명령을 하달하면서 헬멧의 장치에 부대원의 위치를 기록한 다음, 젯바이크에 올라타 맹렬한 커브를 틀었다. “곧 그 쪽으로 가겠다.”

 그는 쏜살 같이 빠르게 달려 나갔다. 탈것을 몰면서 바닥에 딱지 마냥 달라붙은 숯 검댕색의 바위를 박차면서 나아갔다. 머리 위론 주황색 하늘에 이따금 번쩍이는 번개들이 지평선을 장식했다. 화학 물질로 요란한 빛깔을 자아내는 검붉은 구름 무리가 자기상 서쪽 방향에 일렁이고 있었다. 온 방향을 뻗어지는 광활한 평원은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 오른 산들에 둘러싸였으며, 조용할 법 없는 대지가 토해내는 용암이 흘렀다. 

 쉬반은 몸을 최대한 낮추면서 간간히 들려오는 울림과 탈것에서 뿜어져 나오는 엔진 소리를 느꼈다. 그의 바이크는 대기 속에 응어리진 불순물들을 견뎌야 했다. 그는 이미 한 달이 채 못 돼서 탈것을 두 번이나 갈아치웠다. 실로 짜증이 나는 상황이었다. 쿤닥스에서 싸우는 동안 탈것을 이토록 빈번하게 바꾸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쿤닥스는 그와 달리 그들을 반겼다. 이 원정의 도가니에 해당하는 쿤닥스는 그린스킨의 방어 병력의 주둔지였다. 그 곳에서 벌어졌던 전투는 가장 영광되고, 호쾌했다. 쉬반은 그 곳의 넓고 푸른 하늘을 기억하고 있었다. 손가락에 닿은 소금 같은 질감의 대지와 초록, 쪽빛 그리고 노란 빛이 한데 섞여 만들어진 은은한 햇빛을 비추던 세 개의 태양들. 그는 그 곳의 풍경을 마음속에 담아두고 있었다.

 그는 이런 행성이라면 영원히 질리지 않도록 싸울 수 있다고 여겼다. 하지만 그들은 그 곳에서 죽여야 할 적들을 모두 도륙 내었다. 제노스의 제거되었으며, 놈들의 시체는 불태워 졌다. 놈들이 세운 조악한 건물들은 전부 녹여 없앴다. 군단이 성계를 떠날 즈음엔, 쿤닥스는 티끌 하나 없이 깨끗해 보였다. 마치 하늘 높이 떠있는 반투명한 수정과 그에 묻은 얼룩을 깨끗이 닦아낸 것 같았다.

 이제 성계의 외진 곳에 있는 행성들이 새로운 목표가 되었다. 에피헬리콘, 테라스, 혼데럴, 레어텍스 등 그들 모두 우주 깊은 곳에 위친 행성들이며 그린스킨 잔존 세력들에 오염된 곳이었다. 

 페무스 IV는 더 멀리 떨어진 행성으로써 지표면에 용암이 흐르는 지질학적 특성이 이 행성을 외세의 침입을 막는 천연 요새로 만들었다. 이곳의 그린스킨들은 다 박멸된 것처럼 보이다가도 어느새 새로운 군락지가 발견될 정도로 끈질긴 놈들이었다. 때문에 놈들의 소탕을 맡은 킬-팀들은 추가로 놈들의 시체를 불태울 번-팀도 동원해야 했다. 

 쉬반은 반쯤 진절머리가 났다. 군단에겐 새로운 도전이 필요했다. 다시금 열의를 띄고 도전할 새로운 도전이. 원정의 지연은 시간 낭비일 뿐이다. 

 이 행성을 마음에 들지 않아, 그는 생각했다. 내가 쿤닥스로 시조를 지었지만, 이곳을 위해 만들 시구 따윈 없다. 분명 그래야 마땅한 곳이야.

 칸이 곧 그들을 이끌고 움직일 것이다. 그가 싸우는 것을 곁에서 지켜본 쉬반은 그가 빠른 시일 내에 결정을 내릴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가 검을 휘두르는 모습은 언뜻 무심해보이면서도 섬세한 기술이 점철되어 있었다. 쉬반은 그저 검이 만들어내는 섬광이 눈에 선했다. 본디 프라이마크는 보통의 장정이 아닌 개념의 화신과 같은 존재다. 전장에서의 칸은 긴 시간 끝에 사냥감을 궁지로 몰아  넣은 포식자 마냥 희열에 차 있었다. 

 혹자들은 호루스 루퍼칼이 우주에서 제일가는 지휘관이라고 말한다. 또한 전투의 대가로는 천사 생귀니우스나 펜리스의 러스를 꼽고 혹은 불쌍하리만치 고통 받는 앙그론을 제일로 치는 이도 있다. 또한 길리먼은 위대한 전술가요, 라이온은 번뜩이는 선구안의 소유자이며 알파리우스는 교묘한 책략가라고 부른다. 

 그들 누구도 칸에게 눈길을 주지 않는다. 더 정확히는 그들은 그를 보지 못했다. 

 증강수술을 받기 전인 아득한 옛날, 쉬반은 언젠가 예수게이에게 왜 자신들이 숭고한 이상을 포부에 지녀야 하는지 물은 적이 있었다. 결국 그들 모두 전장에서 스러질 운명인데도. 수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야 그는 그 때 자신이 했던 질문의 답을 찾아냈다. 

 목숨을 앗아가는 행위에 아름다움이 빠지면 무엇이 남겠는가? 

 오직 필요가 따라야 살생에 그 멋이 깃드는 법. 

 그는 바이크를 몰면서 미소를 지었다. 옛 시절의 회상에 그의 마음이 조금 이완됐다. 

 칸이 죽일 때면 그 모습은 찬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