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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테라 공성전 : 종말과 죽음 3부] 0.i 버텨라

말카도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4.01.17 12:40:22
조회 1491 추천 51 댓글 17
														

서곡 : 저 멀리의 아들들


0.i 버텨라



“반복한다, 우리의 도착까지 아홉 시간 남았다. 아홉 시간 남았다. 현재 공격 위치에서 광폭 대형으로 배치 및 접근 중. 테라 사령부, 확인되었나? 테라 사령부, 응답 가능한가? 반복한다, 우리의 도착까지 아홉 시간 남았다. 당장 추적 안내가 필요하다. 신호소 점화를 요청한다. 현재 광폭 공격 대형으로 접근 중이다. 테라, 위치를 사수하라. 방어 대열을 유지하라. 그렇게만 하고 있으면 된다. 버텨내라. 반복한다. 우리의 도착까지 아홉 시간 남았다. 테라 사령부, 응답하라. 확인 바란다. 위치를 사수하고 안내 표지를 켜 달라. 테라 사령부, 여기는 길리먼이다.”


로부테 길리먼의 송신이 끝나고, 기함의 복스 통제실에는 정적이 흐른다. 티엘은 누구도 감히 입을 열지 못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아니면, 어떤 할 말도 없거나. 공기 세정 장비의 한숨처럼, 갑판을 흔드는 현실계 엔진의 웅웅대는 소리처럼, 긴장감이 영속하고 있다. 벌써 8일째다.


길리먼은 자리에 앉아 복스 통제관이 함선의 주 송신기의 다이얼을 세심하게 조정하는 모습을 지켜본다. 절차를 마친 통제관 실락투스(Silactus)는 복스 발신기를 끄는 일련의 스위치를 성마르게 조작하고서 송신을 마친다. 몸을 돌린 실락투스가 프라이마크에게 엄숙히 몸을 숙인다.


“암호화된 메시지를 송신했습니다, 전하.”


길리먼은 갑주의 목가리개 부분에 있는 외부 포트에서 복스 케이블을 분리해 대기 중인 시종에게 건넨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선다.


“상황이 발생하면 즉시 보고하도록, 실락투스.”


길리먼이 입을 연다.


“배경 소음의 실낱같은 변화라도 즉시 보고하라. 송신이 온 것 같지 않더라도 말이다.”

“그러겠나이다, 전하.”

“15주기마다 반복한다.”


길리먼이 말한다.


“육성을 송신하도록.”

“물론입니다, 전하.”


길리먼이 복스 통제실의 해치를 향해 걸음을 옮긴다. 티엘과 경호대원들이 길리먼의 뒤를 따른다. 길리먼이 가는 곳이라면 어디든 따르는 이들이다.


“상황을 검토해라, 에오니드.”


프라이마크는 돌아보지조차 않고 입을 연다. 티엘은 의문을 품지도 않는다. 이미 매 10주기마다 검토를 진행하고 있음도 지적하지 않는다. 제 주군에게, 메시지를 송신하는 동안 어떤 변화-말 그대로 어떤 변화라도-가 있었다면 티엘이 그 사실을 안 순간 즉시 끼어들었을 것이라는 사실도 상기시키지 않는다. 지금 길리먼의 상태는 이렇다. 전적이고 흔들림 없는 집중. 저 상태에서 저런 것들을 상기시키는 것은 프라이마크의 분노를 살 일이 아니다. 그를 꾸짖는 냉엄한 시선을 평생 상처처럼 지고 살아야 할 일이다.


저 송신도 마찬가지다. 매 15주기마다 송신이 진행된다. 복스 통제관은 길리먼의 원본 메시지 파일을 쉽사리 송신할 수도 있다. 하지만 프라이마크는 제 목소리가 그 어떤 녹음보다 더 멀리, 더 선명히 전달될 거라 여기기라도 하듯 매번 복스 통제실을 찾아 직접 송출할 것을 고집하고 있다.


티엘은 그의 주군이 미신에 빠진 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하지만 길리먼의 지금 상태는 일종의 도를 지나친 강박에 가깝다. 마치 아주 사소한 작전적 실패라 해도 불운으로 이어질 거라는 듯이, 모든 세부 사항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는 상태다.


“내가 너무 꼼꼼히 굴고 있다고 생각하나, 에오니드?”


길리먼이 걸음을 옮기며 묻는다.


이제 제 마음을 읽고 계시기까지 하십니까, 저의 위대하신 군주여? 티엘은 생각한다.


“프라이마크 전하, 지금 이 전쟁의 역사를 생각해 봤을 때 말씀입니다만.”


티엘이 입을 연다.


“누구도 감히 지나친 꼼꼼함을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좋은 대답이군.”


길리먼이 답한다.


일행은 함교로 걸음을 옮긴다. 길리먼의 기함을 대행하고 있는 무쌍의 용기(Courage Above All)의 지휘 갑판에는 수백에 달하는 인원이 머물고 있다. 그럼에도 극히 조용한 상태에서 바지런히 움직일 따름이다. 울트마라-코너의 테트라크 에이코스 라미아드(Eikos Lamiad), 데멧 발리타(Demet Valita) 중대장, 그리고 도헬(Dohel) 함장이 연단의 전략 탁자 옆에 대기하는 중이다. 은과 강철로 새긴 양각을 두른 거대한 뼈대의 탁자는 이미 빛을 발하고 있다. 티엘이 미리 신호를 보낼 필요조차 없었다. 상황 검토가 필요함을 그들 역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길리먼은 곧장 탁자로 걸어가 유리 표면 위로 투영되고 있는 복잡한 홀로리스 이미지를 응시한다. 경호대원들은 물러서지만, 티엘은 프라이마크의 곁을 지킨다.


“시작하라.”


길리먼이 입을 연다.


테트라크가 개요를 설명하기 시작한다. 아니, 차라리 낭독에 가깝다. 지난 8일 동안 매 10주기마다 반복한 일이지만, 한마디도 바뀐 바 없다.


“함대는 태양계 명암 경계 충격점 외곽에서 18광분 떨어진 곳에 광폭 강습 대형을 취한 상태입니다.”


라미아드가 보고한다.


“현재 우리 함대는 3,200여 척의…”


티엘은 이미 그 사실들을 아주 잘 안다. 3,200척에 달하는 주력함들이다. 대부분이 대순양함, 혹은 그 이상의 함급이다. 화물 수송선과 전쟁 기계를 위한 대형 양륙선, 그리고 다수의 보급함들이 그 함대를 지원하고 있다. 마크라크 전투함대, 코너 전대, 사라만스(Saramanth, 각주 1) 전대, 룩스 울트라마리스(Lux Ultramaris) 전단, 500세계의 제3 선봉함대, 오클루다(Occluda, 각주 2) 제2 주력함대, 미노스 크루시스(Minos Crucis) 고속함대, 부서진 군단에서 합류한 전함들이 가득하다. 라미아드는 각 함선들의 이름을 나열하고, 길리먼은 그런 라미아드의 보고를 확인한다. 함대는 8일 전 태양계로 진입할 수 없다는 사실이 확인된 순간 성계 외곽의 맨더빌 지점을 통해 워프로부터 빠져나왔다. 그 뒤로 함대는 6천 킬로미터에 달하는 너비의 초승달 모양의 강습 대형을 짠 채, 현실 우주 엔진을 가동해서 서서히 태양계의 가장자리를 향해 다가가는 중이었다.


공격 태세는 만전이다. 드랍 포드와 발사대의 스톰버드에는 완전 무장 상태로 침묵 속에 대기하는 아스타르테스 군세가 가득하다. 격납고 갑판에는 출격 태세를 갖춘 퓨리 요격기와 쉬폰 요격기들 곁에 조종사들이 대기하고 있다. 병력 격납고에서 장비를 완비한 제국 정규군 병력들과 보조병단 병력들이 거대한 수송 차량 곁의 양륙 갑판으로 쉴 틈 없이 움직이는 중이다.


어떤 이들은 이 함대가 대성전 초기 이래 가장 거대한 규모의 함대라고 말한다. 티엘은 그렇지 않기에 속을 태우고 있는데 말이다.


티엘은 테트라크가 보고하는 동안 홀로리스 투사도를 살핀다. 라미아드의 보고와 다른 것은 하나도 없다. 탁자 한쪽 구석에는 함대를 가리키는 이미지가 빛나고 있다. 혹자는 이것을 복수의 함대라고 부르고, 혹자는 구원의 함대라고 칭한다. 길리먼은 그저 ‘함대’라고 부를 뿐이지만 말이다. 이 함대는 선두에 불과하다. 길리먼의 부름에 응답하기 위해, 전 은하에서 수많은 함대들이 워프 엔진의 한계에 도전하며 달려오고 있다.


이 광대한 함대조차 탁자 위에서는 작은 초승달에 불과하다. 마치 새로이 빚어진 창백한 달처럼 느껴진다. 넓은 표면의 나머지 부분은 현재 태양계의 형상을 비추고 있다.


어떤 특징도 찾을 수 없는, 어두운 공백뿐이다. 옥좌성, 루나, 화성, 심지어 태양을 가리키는 표식조차 나타나지 않는다. 가장자리를 따라, 초승달 대형의 한쪽 끄트머리에서 전초 역할을 하는 거대한 전함 이악스의 위안(Solace of Iax)이 발사한 정찰 부표가 확보한 공간 상태의 세부 정보가 몇 개나마 표시된다. 표식에 붙은 데이터의 품질은 이미 저하되기 시작했고, 읽을 수 있는 것도 불가능을 담고 있을 뿐이다. 가증스러울 지경으로 솟구친 이질적인 에너지들과 비물질계의 흐름이 감지된다. 일전에 기록되거나 관측된 바 없는 종류들이 너무도 많다. 현실 공간의 탈구성화. 4차원 물리의 절대적 붕괴. 모든 것이 더렵혀졌고, 변형되었으며, 혹은 완전히 멈춰버린 뒤다.


태양계에, 더 이상 인과율에 따르는 시간의 흐름이 존재하지 않는다.


어떤 특징도, 형체도 찾을 수 없는 암흑이 드리운다. 그 지름만 거의 4천 광분에 달하는 무의 구체가 자리할 뿐이다. 지금 그 공간은 ‘무의 영역(The Negation Zone)’으로 불리고 있다. 태양계 항성권의 경계를 넘어 서서히 팽창하는 그 영역은 이제 외픽-오르트 구름(각주 3)을 감싸는 중이다. 얼음으로 빚어진 먼지와 장주기 혜성들의 보금자리가 흔들리고 있다.


티엘은 이 영역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장대함을 안다. 태양계 전체를 감싸고 있는 무의 영역이기에. 그리고, 그가 그 크기를 어떻게 상상하건, 그 진정한 규모는 그가 이해조차 할 수 없음을 안다.


무의 영역에서 항성의 위치를, 테라의 위치를 구분할 방법이 전혀 없다. 혹은, 그들이 아직 존재하기는 하는지의 여부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기존의 천문학적 정보를 바탕으로 테라의 위치를 예측하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외부 성간 매질을 통해 관측되는 4천 광분에 달하는 이 방대한 암흑의 영역은 거의 워프 물질로 구성되어 있고, 그렇기에 그 내부가 외부에서 보이는 것보다 훨씬 광대할 여지가 크다.


함대를 안내할 신호소나 확실한 신호 없이, 함대는 테라에 닿을 수 없다. 물론 맹목적으로 진입해 어둠 속을 샅샅이 뒤지며 무언가를 찾기를 희망해 볼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노력이 성과를 내는 데 십만 년이 걸릴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그들 자신조차 그 과정에서 실종될 가능성도 큰 상황이다.


신호소의 신호나 응답이 없음은 단순히 항해의 장애물이 있다는 것 이상의 의미이다. 이는 지금 저곳에 찾을 수 있는 상대가 없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모든 것이 완전히 사라졌다는 암시일 수도 있다.


라미아드가 보고를 마친다. 도헬 함장이 함대의 현재 상태의 보고를 시작한다. 티엘도 낱낱이 알고 있는 내용들이다.


길리먼이 손을 들어 도헬의 말을 끊는다.


“그럴 필요 없네, 오랜 벗이여.”


길리먼이 입을 연다.


“우리 모두 알고 있는 내용 아닌가.”


길리먼은 전략 탁자의 도해를 뜯어보는 중이다. 모두가 서로를 힐끗 바라본다. 프라이마크가 스스로 세운 꼼꼼한 루틴을 깨뜨린 것은 8일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그의 인내가 바닥을 치고 있는 것인가? 아버지를 도와야 한다는 절박한 심정이, 그의 뛰어난 감각과 전술적 천재성을 좀먹고 있는 것인가?


정말 그가… 어떻게든 들어갈 생각을 하는 것일까?


“내가 원하는 바는…”


길리먼이 조용히 입을 연다.


“제안이다.”

“제안이라 하셨습니까, 주군?”


라미아드가 묻는다.


“접근을 위한 합리적인 제안이라면 무엇이든 말이다, 에이코스.”


길리먼이 답한다.


“무엇이든 고려하겠다. 어쩌면 긴 전진 대열을 짜고 각각 바로 뒤의 함선과 복스 접촉으로 엮어 항로를 파악하는 것도 방법이 되겠지. 아니면 신호 부표를 앞서 보내 길을 비추면서 점진적으로나마 항해 데이터를 전송받는다거나-”

“그런 연속 대열은 적의 매복 앞에 너무도 취약합니다, 주군.”


라미아드가 입을 연다.


“그리고 부표들은 지금 저 앞에 펼쳐진 비물질계의 조건 속에서 빠르게 무력화될 것입니다, 전하.”


도헬이 말을 보탠다.


“어떤 데이터도 신뢰할 수 없고, 고정된 상태를 유지할 수도-”

“충분합니다.”


티엘이 말을 끊는다. 티엘은 길리먼의 얼굴에 새겨진 표정을 볼 수 있다.


“프라이마크께서는 지금 그런 것을 제안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것들이 얼마나 비현실적인지도 알고 계십니다. 단지 주군께서 찾고자 하는 아이디어의 유형을 설명하기 위한 이론적인 사례들일 뿐입니다.”


도헬은 고개를 끄덕인다. 발리타 중대장은 차가운 표정으로 티엘을 보지만, 어떤 말도 하지 않는다. 테트라크인 라미아드의 말을 아스타르테스 부사관인 티엘이 끊은 일이지만, 지금 티엘은 울트라마의 주인을 경호하는 병력들의 지휘관 아니던가.


“이론적인 사례, 정확하다.”


길리먼이 입을 연다. 탁자 위에 도해된 불길한 공백을 향해 길리먼이 손짓한다.


“벗들이여, 내가 지금 여기서 느끼는 유일한 적은 긴장뿐이군. 차라리 진짜 교전을 펼칠 수 있는 진짜 적이 있었으면 낫겠는데.”


길리먼이 잠시 멈칫한다.


“황제께서는 반드시 살아 계셔야만 한다.


길리먼이 덧붙인다.


그리고, 만약 그분께서 살아계시지 못하다면? 티엘이 순간 의문에 빠진다. 그 뒤로 이어지는 일은 무엇인가? 제국의 붕괴? 찬탈자 워마스터와의 끝없는 전쟁? 울트라마의 승천과 동부의 새로운 제국으로의 등극? 길리먼께서 부황의 뒤를 이을 것인가? 다른 후보가 없음은 확실하고-


빌어먹을 이론들. 티엘은 고개를 돌린다.


때마침, 센서 통제관이 함교 아래 20미터 떨어진 자리로부터 일어난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주군-“


티엘이 바로 입을 열기 시작한다.


길리먼 역시 그녀를 알아본다. 길리먼과 티엘은 센서 통제석으로 내려간다. 라미아드와 도헬, 발리타가 그 뒤를 따른다.


”접촉이 확인되었습니다.“


센서 통제관이 선언하듯 말한다. 그녀가 목소리를 가다듬는다.


”저 변칙의 경계선 내부 6AU(Astronomical Unit, 각주 4) 지점에서 접촉점을 표시하는 중입니다.“

”내부라고?“


통제관에게 합류하며 길리먼이 묻는다.


”저… 교란 구역 내부가 맞습니다, 전하.“


통제관이 답한다.


”신호인가?“


길리먼이 묻는다. 감추려 노력하지만, 티엘은 그 목소리에 희망이 새겨져 있음을 고통스러우리만큼 느낄 수 있다.


”아닙니다, 전하. 함선입니다.“


센서 통제관이 손가락을 튕기고, 그녀 휘하의 장교들이 각자 자리에서 오스펙스와 주 아거 센서, 그리고 미립자 탐색기를 재조정하며 분주히 움직인다.


”정체는 불분명합니다.“


결과가 모이는 화면을 보며 그녀가 입을 연다.


”유령인가 싶을 지경이지만, 어쨌든 상당한 배수량의 함선으로 보입니다. 저보다 조금이라도 작았다면, 저 독기 속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수일에 걸친 정밀 조사 끝에, 무의 영역 내에서 감지한 최초의 무언가다.


”정체를 확인할 수 있나?“


길리먼은 직접 화면을 바라보며 묻는다.


”식별 신호는? 트랜스폰더는?“

”등록된 바 없습니다.“


센서 통제관이 답한다.


”저런 큰 함선인데…“


라미아드가 입을 연다.


”이미지를 회전시켜서 평면도를 만든 다음에 화질을 개선해 실루엣을 대조할 수 있겠나?“


도헬이 통제관에게 묻는다.


”이미 진행 중입니다, 함장님.“


통제관이 답한다. 검은 화면 위로 녹색 빛줄기 뭉치가 살짝 기울지만, 더 뚜렷하게 보이지는 않는다. 티엘의 눈에는 그저 흐릿한 무언가로 느껴질 뿐이다. 아마 보고를 들은 것이 아니었다면, 유리 위에 번진 엄지 지문으로 보았을지도 모르겠다. 하긴, 그렇기에 그가 아스타르테스 선임 부사관이고, 센서 통제관은 센서 통제관인 것이겠지.


”글로리아나급입니다.“


갑자기, 통제관이 불쑥 내뱉는다.


”숙고기 확인 대기 중… 확실합니다. 글로리아나급입니다.“


도헬이 뭔가 말하려고 한다.


”스킬라 패턴입니다.“


센서 통제관이 입을 먼저 연다.


”숙고기 확인. 글로리아나급, 스킬라 패턴입니다.“


초조한 눈빛으로 통제관이 길리먼을 바라본다.


”어떤 함선인가?“


길리먼이 묻는다.


센서 통제관은 어떻게든 침착함을 유지하려 한다.


”가능한 답의 범위가 넓지는 않습니다, 전하.“


그녀가 입을 연다.


”함체와 이물 구성은 등록된 어느 함선과도 일치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기록된 어떤 글로리아나급에 비해도 훨씬 거대합니다. 확실히 개조나 개장을, 혹은 다른 형태의 변형을 거쳐-“

”어떤 함선인가?“


길리먼이 다시 묻는다.


”확실한 보장을 드리기는 어렵습니다, 전하.“


그녀가 답한다.


”하지만 선미 결합 상태와 함체 장갑판을 미루어 봤을 때, 저것은 복수하는 영혼입니다.“


긴 침묵이 흐른다.


”그가…“


길리먼이 목청을 가다듬는다.


”우릴 잡으러 오는 건가?“

”접촉점은 움직이지도, 동력의 표시도 보이지 않습니다.“


통제관이 보고한다.


”방어막도 꺼졌고, 무장이 장전되었다는 흔적도-“

”교전을 준비해라.“


길리먼이 도헬에게 도용히 말한다.


”놈을 죽여버리라고.“


도헬은 고개를 끄덕인다.


”명령의 확인을 요청드립니다, 전하.“

”확인한다. 지시대로 이행하도록.“


도헬이 돌아선다.


”기록 사관!“


도헬이 외친다.


”전투 표식 개시.“

”제13군단 전투 기록을 시작합니다. 경과 시간 측정.“


전례 무관(Rubricator Martial)이 답한다.


”측정 시작. 태양계, 마크 0-0, 0-0, 0-0(각주 5)“

”전하.“


갑자기, 센서 통제관이 입을 다시 연다.


”그러니까… 두 번째 접촉입니다.“

”아.“


길리먼이 돌아서며 말한다.


”그래서 그의 함대가-“

”다른 글로리아나급입니다.“


통제관이 말한다.


”다른 글로리아나급이라고?“

”첫 함선으로부터 6광분 거리입니다. 선도함과 대형을 구성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정복자인가?“


그녀가 주저한다. 순순히 대답하고 싶지만, 어떻게 답해야 할지 모르는 표정이다.


”여주인이여?“


길리먼이 입을 연다.


”대답의 은총을 베풀어 주겠는가?“


”패턴이 일치합니다.“


작은 목소리로, 통제관이 답한다.


”저것 역시 복수하는 영혼입니다.“

”이미지 오류일 뿐이네.“


도헬이 즉시 입을 연다.


”새로고침을 하면-“

”세 번째 접촉입니다!“


그들 옆의 자리에서 다른 사관이 외친다.


”네 번째 접촉 확인!“


또 다른 외침이다.


센서 통제관은 메인 화면에 센서 데이터를 투영하기 시작한다. 처음 네 접촉의 추가가 끝나자, 여섯 개의 추가 접촉이 보고되었고, 그 뒤로 열 개의 추가 접촉이 더해졌다. 숫자는 계속 늘어난다. 이제 몇 초마다 사관 한 명이 보고하는 지경에 이른다.


이제 서른 척, 아니, 계속 늘어나고 있는 저 함선들은 전방의 무의 구역에 흩어진 채다. 몇몇은 태양계 항성권의 가장자리에서 채 몇 광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고, 몇몇은 영역 안쪽의 깊숙한 곳에 있다. 어떤 종류의 대형도, 함대 특유의 응집도 없다. 그냥 은하계의 평원에 이리저리 흩어져 있을 뿐, 심지어 같은 방향을 보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모두 동력의 흔적이 없다. 기함의 센서 원추가 비출 수 있는, 26광분 거리에 이르는 영역 전체에 걸쳐 그저 떠다니며 표류하고 있을 뿐이다.


이제 접촉은 50개다. 70개. 210개. 400개.


모두 글로리아나급이다. 하지만 그 동급함은 20척밖에 없지 않던가.


모두가 복수하는 영혼이다. 번식이라도 하듯 늘어나고 있다. 쏟아지는 별처럼, 분기하는 프랙탈처럼, 그것들이 무의 영역을 채우고 있다.


1천. 3천. 6천…


모두가 같은 함선이다. 단 하나의 함선, 워마스터의 괴물 같은 전함. 그 함선이 모든 곳에 있다.





각주 1 : 울트라마 500세계의 행성. 현재는 황폐화되었음.

각주 2 : 울트라마 500세계의 행성.

각주 3 : 오르트 구름의 정식 학술 명칭.

각주 4 : 천문 단위. 지구와 태양 사이의 거리인 1억 4,959만 7,870.7킬로미터.

각주 5 : 울트라마린 군단이 전투 시작 후 남기는 시간 기록. 마크 오브 칼스의 그 의미를 수행하는 것. 시간-분-초.


미리보기로 나온 서장의 첫 부분을 번역해 봤음. 본격 시작은 아님. 아직 다 공개된 것이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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