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엑소시스트는 몇 년 전에 한번 봤었는데 기본적인 줄거리와 막연하게 기억나는 준수한 완성도 말고는 거의 까먹고 있었음. 누갤에서도 이야기가 많이 나온 파묘를 보러 간다던 친구에게 엑소시스트만 보면 사실 후에 나오는 퇴마 영화들은 전부 안 봐도 된다는 힙찔이짓을 하려다가 내용을 거의 기억 못 하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고 호다닥 달려와서 보고 감상을 남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엑소시스트와 엑소시즘 장르에 대한 나의 견해는 옳았던 거 같다.

비단 엑소시즘 장르의 시초로뿐만 아니라 스릴러적 사이코드라마로써도 이 영화는 고전 그 자체다. 무엇보다 영화상에서 본격적인 구마 행위는 물론 엑소시즘이라는 단어 자체도 중후반부쯤에서나 나온다. 등장하는 악마도 말 수가 적고 사람을 직접적으로 공격하는 장면도 그다지 많지 않다. 최근에 나오는 엑소시즘 영화들이 어떻게 해서든 악마의 본성이라든가 밑낟을 관객들에게 강하게 인식시키려는 것과 대조된다. 또한 이 영화는 공포의 요소로 악마가 일으키는 기현상만을 사용하지 않았다. 빛과 소리, 명암의 대비, 사물의 움직임까지를 활용한 섬뜩한 연출들 또한 이 영화가 자아내는 공포의 묘미(나는 이것을 '징조'라고 부르고 싶다) 중 하나이다. 개인적인 감상으로는 종합적으로 봤을 때 이 영화는 본격적으로 엑소시즘적인 요소가 나와서 구마를 하는 절정 부분보다 거기까지 이르러가는 전개부분이 드라마적으로 더 재밌는것같다. 본격적인 악마와 사제간의 대결이 나오니까 오히려 힘빠지는 느낌임. 그리고 특수효과 또한 요즘 영화에 비해 자극성이 덜할지는 몰라도 그 자체로 여전히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충분하다. 각자 부여받은 역할이 따로따로인 캐릭터들을 자연스럽게 하나의 이야기로 엮는 솜씨와 주인공 카라스의 복잡한 심리묘사 등을 봤을 때 엑소시스트는 연출이 뛰어난 영화가 분명하다. 그리고 난 연출이 좋은 영화를 좋아한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신부역을 맞은 배우의 핼쑥하고 음침한 외모까지 영화의 분위기로 승화시킬 수 있는 퇴마 영화는 이 작품이 유일하지 않을까? 아무튼 한국의 꽃미남 신부들에게는 불가능한 일인 것이다.

폰으로 써서 글이 난잡하고 짧다. 정말 명작이라서 엑소시스트의 대단한 점을 더 자세히 쓰고 싶지만 필력이 딸린다. 조잡한 감상문 읽어줘서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