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뜨기 전부터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은 물론, 누가 보지 않는데도 차곡차곡 보기 좋게 침구류를 정돈.
몸을 깨끗하게 한 뒤, 널브러져 있지 않고 잘 걸려있는 옷가지를 입어 단정한 차림새를 취한 다음 일과 시작.
다른 곳에 한눈 파는 것 없이 늘상 관리하는 화단에 물을 주는 식으로 경건한, 한편으로는 재미없는 하루를 보내는 부류의 사람이 이오치 마리였다.
약간의 일탈이라고 해봐야 졸음을 내쫓기 위한 옅은 하품이 고작이었던 그녀였지만, 오늘은 조금 달랐다. 아니, 최근의 그녀는 조금 달라져 있었다.
선생이라는 사람 때문이었다.
그녀에게 있어서 선생이라는 존재는 신이자 천사이자 악마였다. 하지만 어느 쪽에 가까운지를 말하자면 아마 악마겠지.
굳건해야 할 자신의 신앙 위에 자신의 존재를 덧칠하여 그 말고는 생각할 수 없게 만드는 그런 악마.
그런 존재가 만들어낸 '갤러리'라는 세계. 홀린듯 그 안으로 들어간 마리에게 펼쳐진 것은 지독하리만치 불경한 광경들이었다.
하지만 본디 그런 위험한 것들이 중독성이 강한 법. 정신을 차리고 보니 마리는 이미 자극적인 컨텐츠에 절여진 상태였다.
비단 그녀만 영향을 받은 건 아니었으니, 사쿠라코 역시 마찬가지였다. 덕분에 참회실 한 곳에 있는 그 구멍을 만들 수 있긴 했지만.
..그래. 그 구멍.
'오늘..'
오늘이었다. 선생이 오는 것은.
오늘이었다. 마리가 선생을 호출하여 이곳으로 부른 것은.
오늘이었다. 참회에 대한 연습을 한다고 입에 붙지 않는 거짓말까지 해가며 선생을 부른 것은.
바로 오늘이었다. 사쿠라코가 티파티의 호출로 자리를 비운 것은.
하늘이 내려준 게 아닐까 싶은 최적의 환경. 아직 아무도 없는 성당 안에서 마리가 두 손을 꼬옥 모아 기도했다.
아아, 저는 상스러운 학생입니다.
결백해야 하고 경건해야 할 인간이 이런 상스러운 행위에 기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신이시여. 단 한 번만. 단 한 번만 악에 물드는 것을 허락하시옵소서.
신에게 비는 건지, 선생에게 비는 건지 마리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
긴장과 두근거림에 안절부절 못 한 채로 시간이 흘렀고, 태양이 비스듬하게 땅을 비추는 시각이 되었다.
대성당 밖이 소란스러워졌다.
가뜩이나 최근들어 소란이 잦아진 키보토스긴 하지만, 학생들의 달뜬 목소리를 동반한 소란의 현장에는 늘 그 사람이 있었다.
덜컹.
문이 열렸고, 그가 찾아왔다. 가만히 있어도 마리에게 유혹의 손길을 뻗치는 그가.
"마리."
"선생님."
아아, 이름을 부른 것뿐인데 마리의 아래 언저리가 욱씬대기 시작했다.
최근들어 늘 이랬다. 선생을 떠올릴 때마다, 선생님이라는 단어를 입에 담을 때마다, 그를 마주할 때마다.
고칠 수 없는 병이 찾아온 걸까? 아니면 불경한 마음을 품은 자신에게 내려지는 천벌인 걸까? 아니면 악마가 찾아와 과정 없는 행복을 선사한 걸까?
병, 천벌. 어느 쪽을 붙여도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달콤했다.
'하지만.. 행복이라기에는 너무 힘들어서..'
꼭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간다. 쿵쿵, 마치 심장이 하나 더 달린 것처럼 뛰는 하복부 때문이었다.
"미안해, 좀 늦었지?"
"괜찮아요. 선생님께서 바쁘시다는 건.. 알고 있으니까요. 전 선생님께서 찾아와주신 것만으로도 기뻐요."
"안 찾아올 수는 없지. 마리가 불러준 거잖아?"
그렇게 달콤한 말을 하면..
"아.."
"마리?"
"와아.."
"응?"
열기라는 것이 부피를 키워 기도 밖으로 빠져나온다. 달뜬 목소리로 한 글자짜리 말을 내뱉어서야 겨우겨우 진정할 수 있었다.
"그래서.. 바깥이 소란스럽던데, 혹시 다른 볼 일이 있으신 거면.."
"아, 애들이 좀 반겨줘서."
쿡.
'심장이..'
바늘로 콕 찌르는 것 같은 불쾌함. 사실 이러한 감각은 이전에도 많이 겪어봤다. 정확히는 갤러리를 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하지만 그것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마리는 착한 아이니까.
"그래도 괜찮아! 마리가 긴히 할 얘기라고 했으니까, 비밀 엄수는 확실하게 해야지."
..착한 아이니까.
"애들한테 양해 구해서 들어오지 말아달라고 했어. 물론 따로 지켜본다거나 하는 애들도 없을 거고."
..단 둘이니까.
"물론 선생님도! 여기서 마리가 했던 말은 절대로 입밖으로 안 낼게!"
..입막음이 됐으니까.
선생이 자신의 입에 지퍼를 잠그는 시늉을 했다.
그것이 기폭제가 된 걸까? 아니면 일어났을 때부터? 그것도 아니면 오늘 그 일을 생각했을 때부터? 구멍을 뚫었을 때부터?
추측할 수 있는 여러 이유가 섞여들어 마리의 등을 떠밀었다.
"선.. 선생님."
"응?"
"저.. 저기.."
물론 천성이 천성인지라 우악스럽게 팔을 끌고 가지는 못하고 아우 아우 앓 는 소리만 내고 있었지만, 선생은 그런 마리를 기다려줬다.
그것이 빛을 발한 건지, 마리가 드디어 손을 천천히 들어 무언가를 가리켰다.
"참회실?"
"네.. 네에.."
'비밀 지키기 딱인 곳이긴 하지만.. 솔직히 마음에 좀 걸리는데.'
멋대로 들어가도 되는 건가? 하는 생각.
하지만 뭐, 마리를 위해서라면 이까짓 양심의 가책 쯤이야!
"그럼 안에 들어가서 얘기할까?"
"와.. 와아.."
해맑게 웃는 마리와 함께 참회실로 걸어간 선생. 당연히 같은 공간에 들어가서 앉을 줄 알았건만, 칸막이를 두고 앉는 모양새가 되었다.
본의 아니게 참회하는 모양새가 되어버린 두 명. 더 웃긴 건 수녀복을 입고있는 마리가 선생에게 참회를 하는 그림이라는 거였다.
..
"그래서 말인데요.."
묘하게 느긋하니 늘어지는 목소리를 한 마리의 말에 맞장구를 치다보니 문득 눈에 들어온 구멍 하나.
'요즘 참회실은 구멍 뚫어놓나?'
이쪽 관련으로는 아예 무지한 선생이었기에 이유를 몰랐다. 어디에 쓰는 걸까?
사이즈도 위치도 묘한 구멍. 아무리 생각해 봐도 어디에 쓰는 건지 도통 감이 잡히지 않았다.
'굳이 신경 쓸 필요는 없지? 어차피 내가 쓸 것도 아닌데.'
하지만 쓸 일은 얼마 지나지 않아 생겼다.
"..선생님은 그런 생각이야. 마리가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모르겠지만."
"아.. 네..! 도움됐어요! 정말 감사드려요..!"
"아냐, 나야말로 마리 도움 될 수 있어서 기뻤어."
마리의 상담이 끝나 자리에서 일어난 선생이었지만 정작 마리 쪽은 묵묵부답이었다. 일어나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이 따로 할 얘기가 있는 것 같았다.
'아, 이 구멍 설마 참회하는 사람 상태 파악하는 용도인가?'
그럴리가.
하지만 그러한 사실을 알려줄 사람이 없는 것이 현실. 선생이 구멍 쪽으로 눈을 가져갔다.
마리의 얼굴이 있었다.
'왜?'
왜?
다시 바라봤다. 마리가 눈을 꼭 감고 손을 모은 채 구멍 쪽으로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정확하게는 입가를.
'왜?'
대체 왜?
다시..
바라보는 대신 생각했다. 마리의 표정, 자세로 짐작건대..
'칭찬?'
말하기 어려워 속으로 삭혔을 부분을 허심탄회하게 말한 것에 대해 칭찬을 바라고 있는 게 아닐까?
'신빙성 있네.'
나름 괜찮은 추리라고 스스로 납득한 선생. 하기야 이오치 마리니까 그런 쪽으로 생각이 뻗지 않을 수밖에!
'직접 칭찬 받는 건 부끄러운 거겠지? 그래서 구멍 바라보고 있는 거고?'
선생이 구멍의 사이즈를 가늠했다. 직경은 넓었지만 손을 집어넣기는 무리가 있을 것 같았다.
자연스럽게 구부리고 펼 수 있는 범위라면 손가락 두 개가 한계.
'턱을 간질여달라는 건가?'
카즈사도 그랬고 키쿄도 그랬었지. 세리카는 햐악 소리를 내면서 거부했지만, 결국 마지막에 와서는 먼저 다가왔었고. 마리도 그러지 않을 거란 보장은 없었다.
판단을 마친 선생이 구멍으로 손가락 두 개를 집어넣었다. 마리의 턱을 간질여주려는 목적이었다.
"와, 앗.."
그래, 역시 이걸 바란 거 맞지?
"아.."
─쪼옵..
따뜻한.. 아니, 조금 뜨거운 무언가가 선생의 손가락을 감쌌다.
습기를 머금은 무언가가 선생의 손가락을 훑었다. 끈적하니 떨어지지 않고 이어지는 액체가 선생의 손가락을 사방팔방으로 더럽혔다.
"하으.. 헤에.."
낼름.
츄우.
"저는.. 이런 상스러운 일을.."
눈을 감고 작은 혀를 낼름대며 선생의 손가락을 핥는 마리.
죄송하다며 연신 기도하고 사죄하면서도 다시 달라붙어 혀의 움직임을 멈추지 않는 마리.
선생은 혼란스러웠다.
그냥 혼란스러운 것이 아니다. 세상의 모든 인과가 뒤틀리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혼란스러웠다.
'..핥는 것도 참회 방식인가?'
그럴리가.
'그러고 보니까 요즘 뭔가 이런 일이 많았던 거 같은데..'
그건 상당히 날카로운 추리였다.
"선생님.. 선생니임.. 저는 나쁜 아이예요.."
그러나 추리를 더 하기도 전에 선생의 정신이 몸으로 돌아왔으니, 거친 호흡을 내뱉는 마리 때문이었다.
'..발정기.'
손가락이 빨리는 상황에서도 선생은 침착했다. 카즈사의 경우와 비슷한 흐름이기 때문이었다.
다만 그 마리의 경우는 손가락만 빠는 식으로 강도가 낮았는데, 아마 마리의 자제심으로 최대한 억누르고 있는 것 같았다.
"하아.. 하아.."
숨을 쉬기 힘든 건지 빠는 행위를 중단하고 잠시 숨을 고르는 모습.
발정기 대책에 필요한 물건을 가져오지 못한 선생이 자책하며 구멍을 들여다봤다. 마리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하아.. 저는.. 저.."
여전히 눈을 꼭 감은 채 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
마리도 처음인 건가? 그런 거라면 당황해서 저리 되는 것도 무리는 아닐 거다.
"그래도.. 그.. 사진으로 봤던 거랑은 조금 다른 거 같은데요.."
'사진? 내 손 말하는 건가?'
사진으로 보고 말고 할 것도 없지 않나? 직접 볼 수 있는 신체 부위인데?
"엄청 크고.. 흉악.. 했었는데.."
손이?
..같은 착각을 할 정도로 둔감한 사람은 아니다.
사진으로 봤다, 여자 아이 입장에서 흉악하게 생겼다. 누가 들어도 그것이지 않은가!
'..아니, 아니지? 설마.'
그렇게 생각하니 이 구멍 역시 달리 보인다. 절묘한 위치, 크기.
..고심하던 선생이 다시 손가락을 집어넣어봤다.
마침 기다렸다는 듯 마리의 입이 천천히 선생의 손가락을 덮었다.
선생도 어른이니 당연히 그 방면의 지식이 있다. 물론 실제로 해본 적은 없지만.
그리고 지금 마리의 혀는 누가 봐도 그 행위를 연상케할 움직임을 하고 있었다.
서툴지만 정성을 다해 봉사하겠다는 의도.
부끄러움을 참으며 최선을 다하려는 그 의도.
그것이 담긴 혀놀림.
"저.. 마리?"
"츄우.. 네에.. 선생님, 기분 좋으시다면.."
"어.. 일단 눈 떠보겠니?"
"..네?"
마리가 아주 천천히 눈을 떴다.
그러고는 자신의 눈앞에 놓인 물건─선생의 손가락─을 바라봤다.
1초, 2초, 3초.
선생도 뻘쭘해질 묘한 시간이 흐르고,
"아.."
마리가 입을 뗐다.
"죄.."
그러고는 자신의 입과 선생의 손가락 사이 타액의 실을 거둘 생각도 못 한 채,
"죄송합니다!!!"
그 이오치 마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우렁찬 비명을 내지르며 도망가버렸다.
그 자리에 남은 것은 선생 한 명.
불어서 질척해진 손가락을 잠시 바라보던 선생이 눈을 끔뻑였다.
최근 들어 뭔가 이상한 흐름이 키보토스를 뒤덮은 것 같았다.
"아로나."
"네.. 네, 선생님..?"
"프라나."
"..네, 선생님."
선생이 무슨 말을 할 지 예상한 듯 긴장한 두 명.
그런 그들에게 선생이 물었다.
"혹시 뭐 짐작가는 거 있을까?"
아로나나 프라나 역시 익명의 탈을 쓰고 갤러리를 즐긴 이들이었으니, 갤러리의 존재를 이렇게 들키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여기서 어찌어찌 넘어간다 쳐도 오래 가지는 못하리라.
의심의 단계를 밟았으면 그 이후는 이제 떠올리는 것뿐. 하물며 선생이 직접 만든 홈페이지였기에 떠올리지 못하는 게 더 이상했다.
..그럼에도,
"저는.. 딱히 짐작간다거나 그런 건 없습니다."
"저.. 저도 마찬가지예요! 뭐 생각나고 그런 건 없어요!"
눈 가리고 아웅을 해보는 두 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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