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피셜을 동반한 장문이니 읽기 싫은 사람은 뒤로가기를 추천

철학에서 쓰이는 사랑이라는 단어는 여러가지로 나뉘는데

에로스와 필리아, 스트로게, 그리고 아가페가 있음.

에로스는 충동적인 쾌락으로 움직이는, 육체적인 욕망을 추구하는 사랑이고

필리아는 인간 대 인간으로 호감과 정신적인 교류를 나누는, 좁게 말하면 우정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는 종류의 사랑이고

스트로게는 가족간의 사랑, 특히 부모와 자식간의 사랑을 말해.

그리고 아가페는 자기희생을 동반하는 무조건적인 사랑을 의미함.

펜트하우스에는 여러 종류의 사랑이 등장하는데,

필리아의 경우 마리-윤희 제니-로나 등 비교적 건전한 편이지만...

에로스 (시즌1 초반 서진-단태의 모습)나 스트로게 (윤희-로나 서진-은별)는 극에 치닫다 못해 뒤틀린 지경이지.

하지만 순옥킴이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고 강조했던 것은 아가페였던 것 같음

권선징악, 인과응보를 내세운 복수극이라는 타이틀이 무색하게도

메인빌런인 천서진이 그런 편안한(?) 엔딩을 맞이한 것은

종교적인 의미, 특히 기독교에서 말하는 아가페적 사랑을 표현하려고 했던게 이유인것 같음

펜트하우스의 메인 서사는 크게 두 가지 틀로 나뉘는데

한쪽은 심수련-나애교-(백준기)주단태-(찐)주단태 이쪽이고, 다른 한쪽은 심수련-오윤희-하윤철-천서진 이렇게 이어지는 구조임.

심수련은 양쪽에 모두 존재하고 주단태는 두번째 줄기에서는 완전히 배제되어 있음.

그래서인지 주단태는 혼자서만 따로, 전혀 다른 모양으로 죽었음. 이쪽은 그야말로 심판에 가까운 형태였지.

한편, 어쩌면 주단태보다 더 독하게 굴던 천서진인데 어째서 그렇게 속시원하게 죽이지 않았는가?

고통스럽게 죽도록 내버려 둘 것이지 어째서 그렇게 평온하게 죽을 수 있었나 이 이유에 대해

나는 아가페로 구원받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함.

시즌1에서 심수련은 자신의 친딸을 밀쳐 죽게 만든 오윤희를 위해 탄원서를 씀.

그런 오윤희는 심수련에게는 가해자이지만 하윤철, 천서진에게는 피해자 입장임

오윤희는 시즌2에서 하윤철이 자신의 딸(이자 하윤철 본인의 딸)에게 해를 가한 모든 죄를 용서한다고 편지를 씀.

그리고 시즌3에서는 천서진의 딸(이자 하윤철의 딸)을 구하려다 천서진에게 죽임을 당하기까지 함.

하윤철은 시즌3에서 천서진에게 속아서 로건리를 치료하고, 친딸을 구하려다 시력을 잃고 시한부 판정까지 받았지만

천서진을 다시금 붙잡으며 정신차려야 한다 애원하고, 죽기 직전까지도 '그렇게 나쁜 애는 아니다' 라며 천서진을 두둔함. 모든 죄는 내가 안고 가겠다면서.

심-오-하-천으로 이어지는 자기희생적(인 동시에 자기파괴적)인 사랑과 용서를 아가페로 해석하니까 생각보다 쉽게 풀리는 것 같음.

아가페는 남녀간의 정, 부부간의 정, 부모자식간의 정, 이런 것이 이유가 될 수 없음. 아니 정확히는 그런 이유따위 필요가 없음.

모든 조건과 한계를 뛰어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을 수용하고 또 용서하는 것이 아가페임.

기독교에서 십자가는 우리의 죄로 인해 대신 죽음을 당한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데

예수의 고난과 동시에 우리(죄인)의 구원을 의미하기도 함.

기독교에서 말하는 죄는 어떤 죄를 어떻게 지었는지 얼만큼 용서를 빌었는지로 카운트되는 것이 아님.

천서진이 시즌3에서 십자가 모양 악세사리를 많이 사용한 점,

하은별이 직접 목을 찌르며 성악을 관두고 성당에서 지휘자가 된 것 등...

그외 여러가지를 근거로 들수 있겠지만, 암만 종교적인 요소를 사용했다고 한들 펜트하우스가 기독교 드라마는 아니기 때문에...

이렇게 보는 시각도 있답니다 이정도로 가볍게 읽어주길 바라며 글을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