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친구가 여기 념글간 바둑 AI 근황 글 보여주길래 나도 와봤어. 

하나만 먼저 얘기할게. 바둑계는 AI 때문에 망하지 않았어. 

이미 바둑은 2010년 즈음부터 내려오고 있었고 프로의 위상이나 기원 학원도 사라져 가고 있었어. 

그럼에도 그런 자극적인 글들이 올라오는건 

알파고 이후 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바둑인들은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해서 그럴거야. 혹은 조롱이거나. 

어제 쓴 전 바둑게이도 딱 그런 친구 같거든. 충격으로 인해 의욕을 잃은. 

그러니 인공지능때문에 바둑계가 망했다고 오해하지는 마. 그리고 망하지도않았어. 

6년 전, 이세돌 알파고 대전 이후 엄청난 충격에 빠진 나는 

친구들이 공감하지 못하는 얘기들을 하곤 했어. 

AI로 인해 변하게 될 세상 얘기였지. 

하지만 바둑은 사람들의 큰 관심사가 아니었고 

시간이 흘러 사람이 주방에서 커피를 내리면 로봇이 자리까지 배달하는 걸 직접 경험하면서도 

인간은 과학기술의 발전을 잘 실감하지 못하더군. 

더 이상 그림 실력을 갈고 닦는데 의미를 갖지 못하겠다. 

(더) 잘 그리는 존재가 생겼는데 이걸 왜 하고 있어야 하나 

어디선가 이런 그림장이들의 한탄 글을 봤어. 6년전 프로 바둑기사의 소감과 똑같았지. 

난 일개 동호인이기에 현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만큼 위기감을 느끼진 못하겠지만

적어도 믿음이 깨어지고, 영웅이 몰락하고, 업계가 뒤집어지는걸 먼저 경험하게 되긴 했네. 

사람들에게 AI 한테 정복 당한거 왜하냐는 얘기도 많이 들어봤어.

그래도 난 바둑을 계속 했어. 프로들의 대회를 보고, 바둑 공부도 하고. 

인간보다 잘하는 존재가 있든 없든 내게 바둑은 바둑 그대로였으니까.  

사람들은 잘 모르겠지만 

바둑 역시 경쟁으로만 보는 종목은 아니야. 

지금은 스포츠로 편입되었지만 오래 전부터 바둑은 예술이자 도였어. 

좋은 기보를 남기는 것을 필생의 업으로 삼았던 때도 있었지. 

이세돌도 명국을 남기고 싶다는 신념이 강했어.

마치 예술인들이 혼신의 힘을 다해 창작을 하듯이 말야. 

그리고 인공지능에게 수법을 배우는 지금도 본질은 난 달라지지 않았다고 생각해. 

여전히 내게 바둑은 즐거움이자 기술을 갈고 닦는 수양이야. 

그림을 그립시다 라는 프로그램이 있었지? 

지금은 변화의 초기단계기 때문에 어지럽고, 앞으로 업계의 변화도 불가피하겠지만 

그림은 물론 그리는 행위 역시 사라지지 않을거야 

바둑이 승부라는 면만 있는게 아니듯 

그림도 결과만이 있는 건 아니잖아? 그리는 즐거움도 있겠지. 

PC와 스마트폰으로 글씨 쓸 일이 없어져도 예쁜 손글씨와 서예는 가치를 잃지 않아.

미디로 얼마든지 찍어낼 수 있고, 연주자가 되려는게 아니어도 사람들은 악기를 배우지. 

그림 역시 그처럼 교양이자 즐거움이 아닐까?

그리고 그 즐거움을 AI가 모두 가져가버리진 않아. 

(돈만이 그림의 목적이라면 다르겠지만)

혼란을 겪고 있을 이곳 사람들에게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모르겠고 

현업 종사자도 아닌게 감히 그럴수도 없겠지만 

바둑과 바둑계가 인공지능 때문에 망하지 않았듯이 그림도 그럴거야. 

업계의 큰 변화는 있겠지만 인간은 적응하는 동물이더라. 

이 또한 지나갈거야. 

봐 줘서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