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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zephyr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1.05.16 16:37:25
조회 1811 추천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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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여 분 전


"으윽..."


 아가츠마 젠이츠는 덜커덕거리는 요란한 소리와 온몸의 통증에 눈을 떴다.


"일어났니!? 괜찮니!?"


 있었던 것은 낯선 은 대원이였다. 젠이츠의 상처를 치료해 주고 있는 것 같다.


"벌레의 호흡의 칼은 없어!?"


"원래 여자 대원이 적은 거야!? 상황이 안 좋아!"


"물의 푸른 일륜도뿐이로군!"


"바람은 있어!"


 옆을 보니 살아남은 대원들이 모여 칼을 꺼내들고 있었다.


"주가 쓰고있던 칼이 파손됐을 때를 대비해 남은 대원들이 서로 칼을 빼는 거야.


 젠이츠의 시선을 알아차린 은이 가르쳐 주었다.

 그렇군, 칼을…….

 젠이츠가 계속 쓰고 있던, 의식을 잃어도 놓지 않았던 칼은 아까의 공격으로 부러져 버리고 있었다.


"번개의 호흡의 칼은?"


"한 명 있는데…… 랄까 바보냐! 말도 안 돼! 너 그만 움직여! 죽는다! 농담 아냐!"


"하지만..가야하는데.."


 아직 주들은 싸우고 있다.

 일어나려 해도 일어날 수 없는 젠이츠를 보다 못해, 은이 몸을 일으켜 주었다.


"나도……갈거야…"


 근처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느릿느릿 고개를 돌리니 카나오가 비틀거리며 일어서려고 하고 있었다.


"무슨 소리야. 죽는다."


 그렇게 말한 사람은 유시로인데, 자세히 보면 손을 움직여 이노스케의 치료를 하고 있었다. 외면하고 싶을 정도의 심한 부상이다.


"이노스케!"


 어딘가 멀리서 나는 혀 짧은 소리를 젠이츠의 귀가 포착하고 그 목소리가 누구의 것인지 인식하는 순간, 멍하니 있던 머리가 맑아졌다.


"에...?"


 이 소리, 이 소리는 확실히.


"네즈코짱!?"


"응?"


"뭐야?"


 젠이츠의 외침에 그 자리의 전원이 젠이츠가 보는 방향을 보았다.

 마엽 무늬 기모노를 입은 네즈코가 먼발치로 보였다.

 무섭게 달려오던 네즈코는 젠이츠 가까이에서 급정거를 하고 초조한 듯한 얼굴로 두리번두리번 주위를 둘러보았다.


"오빠...오빠..."


"탄지로라면 싸우고 있어"


 오빠를 찾는 네즈코에게 냉정하게 얘기한 것은 무리였을까, 갑작스런 네즈코의 등장에 당황한 젠이츠가 대신 그녀를 달래주었다.


"지금으로서는 그럭저럭 버티고 있어. 걱정할 필요 없어."


"오빠...무사히..."


"아니, 너 왜 여기 있어? 산에 숨겨져 있었는거 아니었어?"


"오빠를 도와주기 위해.."


"그렇다고 해도 네가 키부츠지에게 잡히면 끝이야. 알고 있니?"


"그래도 오빠, 도와주고 싶어요. 돕겠다고 어머니와 약속했어요."


"네즈코..."


 울 것 같은 목소리와 얼굴로 그런 말을 하는 네즈코에게 감동을 받았다.

 언제나 네즈코는 탄지로에게 도움이 되려고 필사적이었다. 그런 소리가 났었다.


"...가,간다 ... 자고..."


 가냘프지만 강한 의지가 담긴 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눈을 뜬 이노스케가 아픔을 참으며 일어난다. 어쩜 저런 서는 거야? 무서워!

 그런 생각을 한 것은 한순간으로, 곧바로 젠이츠도 일어섰다. 온몸이 아파. 아마 온몸의 뼈가 부러졌을 거야.

 근데 그렇지. 탄지로에게만 싸우게 할 수는 없지. 겨우 다섯 명인 동기니까.

 죽어 버린 겐야도, 분명 이 자리에 있었다면 일어섰을 것이다. 비록 짧은 시간밖에 함께 있지 않았지만 그럴 것 같아.


"그래도 어쩔 생각이지? 그런 몸으로 싸우는 건 무리다. 무엇보다, 네즈코가 잡히면 끝난다."


 그러나 냉정한 유시로의 말에 젠이츠는 꺾일 뻔했다. 확실히 이런 몸으로는 제대로 싸울 수 없어. 그러기는커녕 주들이 자신들을 감싸다 다칠 가능성도 있다.


"탄지로에게 들었어. 네즈코의 혈귀술로 칼이 붉어졌다고"


"으음!"


 혁도. 주들 중 몇 명이 내밀고 있었다. 저걸 네즈코의 혈귀술로 만들어 낼 수 있을까?


"그래? 카나오?"


음..그러니까 이런 작전은 어떨까..




 유시로의 혈귀술로 모습을 감추고 네즈코의 피가 담긴 병과 통을 각각 들고 세 사람은 전장에 도착했다.

 네즈코도 유시로의 혈귀술로 자취를 감추고 남은 대원들이 지키고 있다.


만일의 경우는 우리가 벽이 된다.

 그렇게 말하고, 지금까지 싸워 온 오니를 그들은 등뒤에 감싸고 있다.

 실패는 할 수 없다.

 아래에서는 주들과 탄지로, 시노부가 필사적으로 키부츠지의 맹공을 막아, 게다가 공격을 반복하고 있다.

 가장 먼 발치의 카나오가 확인되면 작전 개시다.

 카나오가 얼굴을 내민 것이 보였다. 이노스케도 위치에 이미 도착해 있다.

 이것이, 분명 마지막일거야.

 세 사람은 거의 동시에 발을 디뎠다.




 갑자기 쏟아진 붉은 액체는 냄새에서 피라는 걸 금세 깨달았다.


"네즈코-! 아직 아아-악!!"


 큰소리와 그 내용에 놀라 위를 보니 건물 위에서 동쪽을 향해 외치는 이노스케가 있었다.


"안돼---!! 멍청이! 바보녀석! 그런 짓을 하면 네즈코가 있는 곳을 들킬텐데!!"


 어디선가 이노스케와는 조금 떨어진 건물 위에 젠이츠가 나타나 소리쳤다.

 키부츠지가 촉수의 두 개를 젠이츠와 이노스케를 향해 흔든다.


"꺄아아아악~!!"이리! 이리 온다! 아무튼 도망간다! 카나오! 네즈코에게!"


 그렇게 외치며 이노스케와 젠이츠는 동쪽으로 달려간다. 그와 동시에 뿌려진 네즈코의 혈액이 타오르고, 전원의 칼도 붉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이건 뭐?"


"귀에다 대고 떠들면 안 돼! 시끄러워! 젠이츠!"


"누구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고 생각하는 거야 으으!?"


 평소보다 이동 속도가 현저히 느린 두 사람에게, 키부츠지의 공격이 다가오는 것이 보여, 시노부는 전율했다.


"위험해!!"


 외침을 날리는 것이 고작이었다. 이미 혈귀술에 의한 벌레의 수는 백도 나오지 않고,

근력도 떨어졌기 때문에 시노부는 공격을 피하는 데 전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 바람에 두 사람을 엄호할 수가 없었다.

 주와 탄지로도 마찬가지였다. 각자 자신에게 육박하는 공격을 피하거나, 튕기거나, 혹은 공격태세였기 때문에 누구 하나 엄호하러 갈 수 없었다.


"좋아! 이노스케!"


 탄지로의 비명이 울리는 순간, 젠이츠가 갑자기 빠르게 움직여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히이이이이잇!"


 실제로는 사라진 것처럼 보였을 뿐, 아무래도 벽력일섬으로 이노스케를 안고 도망친 것 같다.


 안심한 분위기를 부정하듯 "혁도야!!"라고 외친 것은 사네미로, 풍주의 녹색이었던 칼이 물들어 있다.

 그것은 시노부도, 그 자리에 있는 누구나가 마찬가지였다.

 네즈코의 혈귀술로 칼이 불탄다. 뿌려진 네즈코의 피는 기적적으로 전원의 칼에 뿌려지고 있었다.


"혁도의 위력이 사라지기 전에 쳐라!! 무잔을!!"


 다시 한 번 혁도로 공격을 개시한다.

 그것을 또 무잔이 맞아 싸우다. 젠이츠가 사라진 쪽으로 걸음을 옮긴다.

 그것을 어떻게든 막으려고 전원이 자신의 부상도 돌보지 않고 움직인다.


"건방지다…그 정도로…"


 그때 갑자기 키부츠지의 팔과 촉수가 힘을 잃었다.

 쿵, 하고 실이 끊어진 인형처럼 키부츠지가 무릎을 꿇는다.


 들었어! 약이!


"뭐야!?"


"함정인가?"


 당황하는 기둥들을 향해 시노부는 크게 소리쳤다.


저와 타마요 님의 약입니다! 독입니다! 지금이라면 저놈은 공격할 수 없어요!!"


"뇌와 심장을 으깨라! 아침까지! 해가 뜰 때까지 놈을 이 자리에 꿰매어 놓아라!!"


 즉석에서 전원이 움직였다.

 오로지 전원이 움직일 수 없는 키부츠지를 공격한다.

 그것은 필시 아무것도 모르는 인간이 옆에서 보면 미친 짓일 것이다.

 하지만, 귀살대에게는 다르다.

 지금 이상한 자비를 베풀거나 공격을 멈춘다면 천년의 비원은 이루지 못한다.


"까아악 아침까지 37분!"


 뇌와 심장을 으깨도 으깨도 키부츠지의 몸은 재생하려고 꿈틀거렸다.

 전원이 필사적이었다. 해와 물과 불꽃과 바람, 바위, 뱀, 벌레의 호흡이 여러 번 꽂힌다.

 아침해는 아직이야?

 까마귀의 시간을 알리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일생 싸울거 다 싸웠다. 이제 이 손을 멈추고 싶다. 온몸이 비명을 지르고 있다. 더 이상은 못하겠다고, 죽겠다고.

 그래도 아무도 칼질을 멈추지 않았다.

 영원같던 시간이 지나간다.

 어느새 칼날은 원래의 색깔로 돌아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격을 계속했다.

 확 하고 아침 햇살이 비쳐 키부츠지의 몸이 간신히 불타기 시작했다.


"아직 아냐! 방심하지 마!"


 그래도 칼질을 멈추지 않는다.

 놈의 몸이 햇빛에 의해 완전히 소멸될 때까지 방심할 수 없다.

 아침 해가 오른 지 몇 분.

 마지막 살점이 햇빛에 탔다.



--


그 순간을 어떻게 말로 표현해야 할까.


 마지막 살점이 사그라들었다.

 아무도 아무 말도 꺼내지 않았다.

 해가 뜬 후, 먼저 탄지로가 쓰러졌다.

 이어서 미츠리, 사네미.

 이구로는 아마도 미츠리에게 가려고 한 것 같지만 다리가 꼬여 넘어진 것 같다.


교메이도 맥이 풀린 듯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유일하게 서 있는 기유도 마침내 칼에서 손을 떼었다.

 쨍그랑, 쨍그랑 땅에 부딪힌 칼이 소리를 낸다.


"...끝났다…"


 누군가가 그렇게 중얼거렸다.



 우당탕 소리를 내며 살아남은 귀살대원들이 달려와 여태껏 싸운 것이 신기할 정도로 심하게 다친 주들을 들것에 실어 나른다.

 그런 모습을 멍하니 시노부는 보고 있었다.

 아직 실감이 나지 않았다.

 정말 무잔을 쓰러뜨렸을까? 악귀 멸살, 그 비원을 풀 수 있었을까.


"...쿄쵸."


 불러서 고개를 들면, 언제나와 같은 무표정의 남자가 서 있다.


"…토미오카씨…"


 이름을 부르면서 손을 내밀었다.

 반사적으로 그 손을 잡고 천천히 일어선다.


"...끝난거죠?"


"...아아"


 긍정의 말에 자기도 모르게 붙잡고 있는 기유의 손을 잡았다.


"...겨우..."


 그 다음 말이 나오지 않았다. 눈물이 흐르는 것을 멈출 수가 없다.

 기유의 손을 잡고 있기에 한 손으로 눈물을 닦지만 닦아도 닦아도 새 눈물로 손과 뺨이 젖을 뿐이었다.

 기유의 손을 놓지 않는 것은 현실성이 없기 때문이다. 이 손을 놓아버리면 아직 오니의 시조를 쓰러뜨리지 않은 현실로 되돌아오는 것은 아닐 지 두렵기 그지없다.

 그런 시노부의 머리를 기유의 투박한 손이 살짝 어루만졌다. 어느새 언니의 것과 짝지어 있던 머리장식은 망가지고 머리가 어정쩡하게 흐트러졌다.


"오빠!!"


 아침에 울린 목소리에 천천히 돌아보면, 서쪽에서 네즈코가 왔다.

 동시에 알아차렸다. 이노스케와 젠이츠는 그때 동쪽으로 뛰었다. 네즈코를 키부츠지로부터 멀리하려고 했었던 거겠지.

 탄지로와 같이, 불그스름한 눈동자를 눈물로 일그러뜨리면서 네즈코는 오빠를 찾고, 드디어 찾아낸 것 같다.


"오빠, 오빠, 오빠!!"


 울면서 들것에 실려 실려가는 오빠에게 매달리고 있는 인간 네즈코를 보고 눈물을 글썽이는 자들이 여럿 있었다.

 사람으로 돌아간 것이다, 네즈코는.


 -나는?


"아..."


'?'


 갑자기 무서워져.

 나는 사람으로 돌아간 걸까.

 공포에 눈물이 멎는다. 눈동자가 흔들흔들 흔들린다.

 이상한 듯이 들여다보는, 이런 때에도 잔잔한 눈망울과 공포에 젖은 시노부의 눈망울이 마주쳤다.


"쿄쵸?"


"...나...사람으로...돌아간 것일까요..."


 나도 모르게 떨리는 몸에 자연스레 얼굴이 수그러들고 만다.

 우연하게도 시노부는 그늘에 있었다. 아직 햇빛을 쬐지 않았다.

 정말로 사람으로 돌아갈 수 있었을까?

 덜덜 손이 떨리며 기유의 손가락을 움켜쥔다.


 그런 공포를 누그러뜨리기라도 하듯, 시노부의 차가운 손가락 끝을 부드럽게 잡아주는 기유에게 무심코 얼굴을 들었다.

 상냥한 미소가 있었다.


"당연하다. "


 팔에 이끌려 자기도 모르게 햇빛 아래로 걸어 간다.

 약간 움츠러든 것이 민망하게 느껴진 듯 기유의 잡은 손에 약간 힘을 주었다.

 따뜻한 빛이 실로 3년 반 만에 시노부를 감쌌다.

 잡힌 손을 보면 이제 긴 손톱이 없다.


"사람으로 돌아가고 있다"


 아직도 반신반의하고 있는 현실을 기유가 긍정해 줘 다시 눈물이 쏟아졌다.


"쿄쵸, 괜찮다……"


 안심한 것도 잠시, 기유가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


"토미오카씨!!"


 쓰러진 기유에게 시노부는 달려들었다.


 심한 상처가...!

 당연하게도, 저 싸움에서 기둥 전원이 중상을 입었지.


"토미오카 씨!"


 은이 찾아와 기유를 들것에 태우고, 시노부도 뒤쫓으려 했으나 일어서지 못했다. 다리에 힘이 빠져 낙법조차 취하지 못하고 꼴사납게 넘어졌다.


"쿄쵸 님!"


 누군가가 시노부를 불렀지만, 급격하게 의식이 멀어진다.

 온몸의 피로가 심해.

 주들이 지켜주고 회피에 집중하다 보니 부상이 심하지 않았지만 오랜 시간 문자 그대로 사투를 치른 몸,

오니 세포로 회복하지 않아 시노부도 전투의 피로가 누적된 것이다.


 게다가 오니의 몸에서 사람으로 돌아오는 변화도 진행하고 있다. 그 피로는 이루 헤아릴 수 없다. 오랜만에 온몸을 엄습하는 피로감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런 일에도 눈물이 핑 돈다.

 인간의 감각이다. 피로가 있다. 살아있다는 증거.

 쓰러진 시노부를 은들이 다시 들것에 싣는다.

 아침 노을에 물든 하늘을 보며, 시노부는 눈을 감았다.


--


정신이 들어, 천천히 눈을 뜬다.

 눈에 익은 천장을 멍하니 본다.


 …병실…?

 그곳은 수주 저택의 병실로, 천천히 일어나니 옆에 카나오와 눈앞에 미츠리가 잠들어 있다.햇빛이 비치는 것이 지금은 대낮 같다.

 시노부는 멍하니 주위를 둘러보았고, 서서히 머리가 각성하는 것을 느꼈다.


 카나오의 상태는 어떨까? 조심스레 자기주장을 하게 된 동생에게 좀 더 버릇없는 말을 하고 싶네.

미츠리는? 팬케이크 먹기로 한 약속을 아직 지키지 못했는데.

 탄지로는 무사할까. 드디어 네즈코가 사람으로 돌아왔으니 오누이가 사이좋게 지냈으면 좋겠어.

 히메지마는 무사할까. 스물 다섯이 넘어 반점이 발현한 그는 어떻게 됐지?

 이노스케는. 젠이츠는. 시나즈가와는. 이구로는?


"...토미오카씨..."


 3년 반 동안 계속 상자에 시노부를 짊어지고 이동해 주었던. 함께 싸웠던. 여러 번 도와주었던. 시노부가 반드시 약을 완성시킨다고 믿어주었던.

 저 착한 사람은 살아있을까?

 침대에서 내려와 링거봉을 들고 비틀비틀 걷기 시작한다. 옆방을 들여다보니 탄지로와 젠이츠, 이노스케가 있었다. 카나오 쪽과 같이 의식이 없는것 같다.


"토미오카씨는……"


 타닥타닥 링거봉 소리가 아른하게 돌아온다.

 다음 병실을 들여다보고, 시노부는 간신히 휴우 하고 숨을 내쉬기 시작했다.

 원래대로라면 6인실이지만, 지금은 4명이 사용하고 있다. 기유, 교메이, 오바나이, 사네미.이쪽도 의식은 없는 듯하지만 뚝뚝 떨어지는 링거액과 들려오는 숨결들로 그들이 살아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모두들…무사해…"


 쭈르륵 그 자리에 쭈그리고 앉아, 시노부는 눈동자를 감고 폐 속에 있는 공기를 전부 토해냈다.




 일어난 시노부씨는 조속히 치료에 착수했다.

 시노부는 혈귀술로 원거리 공격을 했고 주들의 보호도 받았다. 늦게 전투에 참여했고,

공격 회피에 전력을 쏟았기 때문에 부상이 거의 없었다. 여느 때처럼 치료에 착수하는 것은 당연했다.

 시노부 대신 주들을 진찰해 준 것은 의사 하야시였고, 시노부는 깨어나 상황을 파악하고 그를 마을로 돌려보냈다.

하야시는 귀살대 전문의가 아니었다. 그에게 의지하는 마을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를 여기에 묶어둘 수는 없었다.


--


'…………'


 어렴풋이 눈을 뜨니 알고 있는 천장이 보였다.


"토미오카 씨?"


 해맑은 목소리에 기유는 눈빛을 그쪽으로 향했다.

 큰 눈을 더 크게 뜨고 말똥말똥하게 기유를 들여다보는 시노부가 있었다.


"...으..."


 목이 쉬어서 나오지 않는다. 내 몸이 내 몸이 아닌 것처럼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멍하니 시노부를 보고 있는데, 순식간에 그녀의 눈동자에 눈물이 고이고 단정한 얼굴이 구깃구깃 일그러진다.


"……다행이다…"


 햇빛에 반짝이는 눈물이 뚝뚝 하얀 뺨을 미끄러지며 눈물을 닦는 손가락 끝에서 흘러내린다.

 그 눈물을 닦아주고 싶어도 팔이 들리지 않아 기유는 결국 우는 시노부를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



그 결전으로부터 일주일 후에 주들은 차례차례 깨어나갔다.

 그 싸움에서 협력해 준 유시로는 무잔의 소멸과 함께 사라진 것 같고, 네즈코와 그 자리에 있던 귀살대원들이 마지막 말을 들었던 것 같다.


"이것으로 타마요님을 떳떳하게 만나러 갈 수 있다..."


 그렇게 말하고는 팔랑팔랑 흩어져 갔다고, 나중에 네즈코에게 들었다.

 야옹, 하고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려 시노부는 얼굴을 들었다.

 타마요의 고양이 챠챠마루는 지금 저택의 뜰 앞에 있다.


 동물은 질색이므로 제발 오지 말아 주었으면 하지만, 아무래도 탄지로의 일이 신경이 쓰이는지 가끔 숨어 들어와 탄지로의 침대 근처의 창문에서 햇볕을 쬐다 아오이에게 발견되어 쫓겨난다.


"당신이 너무 끈질겨서 바깥쪽에 발판을 만들었어요! 챠챠마루 괜찮나요? 당신의 손발이나 털에 세균이 묻어 있고,

그것이 탄지로에게 옮겨져 버리면 위험합니다! 신경이 쓰인다면 여기에서 들여다 보세요. 만약 어떻게 해서든 방에 들어오고 싶다면 욕조에 집어넣을 거에요!"


 어제, 드디어 그렇게 챠챠마루용의 발판이 만들어졌다.

 그 발판에 올라 챠챠마루는 밖에서 들여다보고 있다.

 주위를 돌아보니 이구로의 뱀이 창밖으로 이구로의 모습을 엿보고 있다.


 덧붙여서 카부라마루를 설득한 것도 아오이 다웠다.

시노부는 자고 있었기 때문에 몰랐지만, 청결 유지를 위해 병실에는 동물의 반입이 금지로 정해져 있었기에,

이구로로부터 멀어지려고 하지 않는 카부라마루를 분노 섞인 말투로 돌려보낸 것 같다.

대신 정원이라면 마음대로 이동해도 좋다고 했더니 들어줬다고 나중에 알려 주었다.


키요와 '땅꾼이다', 하고 실컷 놀려 주었습니다.


"어머머나."


 아마 아오이가 설득하려고 얘기한 건 아니겠지. 떨어지려고 하지 않는 카부라마루가 당황스러워서, 환자를 돌보는 규칙을 이야기했을 뿐.


"몸은 좀 어떠세요?"


"나무아미타불. 문제없는데스웅.'


 그리고 25 세가 넘어 반점이 발현한 히메지마는 왠지 아직 살아 있다.

 본인이 가장 의아해 했는데 주 모두가 신기해 했다. 스물다섯에 가는 것 아니었나?

 단지, 시노부는 전원의 검사 결과로부터 짐작이 가고 있는 대답이 있다.

 아마도 반점의 대가는 수명의 가불이 아닌 것인 것 같다. 심장에 부하가 너무 걸려 심장의 기능이 정지하는 것이다.

 원래대로라면 심박 200 이상을 유지하면 심장이 경련하여 죽는다.

그것을 호흡이라고 하는 기적으로 억제한다고 쳐도, 미래 영겁 억누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심장에도 한계는 있다.

 실제로 반점이 든 이들의 맥박은 가끔 어긋난다. 하지만 본인들은 자각하지 못한 듯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전국시대에는 그런 지식이 없었을 것이다. 그랬기에 심장에 부하를 너무 많이 가한 자들이 어쩌다 스물다섯을 앞두고 쓰러진 게 아닐까.

 따라서 두 번 다시 반점을 발현하지 않으면 현재 반점이 발현되었던 이들은 아마 오래 살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억측의 범위이고 확증도 없기 때문에 이 의견은 나리와 상의해 기록에만 남겨두고 반점 발현자들에게는

두 번 다시 반점이 들지 않도록 주의만 시키고 이 추측은 말하지 않기로 했다.

스물 다섯을 넘어 죽지 않는다는 보장이 역시 없고, 그 후에도 빨리 죽지 않는다는 확증도 없으니 섣불리 희망을 주지 않는 편이 좋을 것이라는 답을 낸 것이다.


 예외는 탄지로로, 아마 해의 호흡은 심장에 부담을 주지 않는 호흡일 것이라고 추측되었다.


"진통제 더 드릴까요?"


"아직은 괜찮아. "


"난 좀 줘,쿄쵸."


"알겠습니다. 이구로 씨는 어떠신지?"


"다리가 저리다."


"음… 역시 장애가 남을 것 같네요…눈을 감아 주세요. 느껴질까요?"


"만지고 있는 정도는 알겠지만."


"꼬집었는데요. 역시 저린 증상이 남을 것 같군요. 감각이 무뎌진 것이니 조심하세요."


"그런가?"


"토미오카 씨, 나중에 실밥을 뽑을 테니까요."


"알았어. "


 주들의 상태를 확인하고 진료기록에 글을 남기자 울음소리가 요란했다.

 기유 이외에 모두들 눈이 휘둥그레지는 가운데 아오이가 눈물 젖은 목소리로 시노부를 불렀다.


"카나오가 눈을 떴어요, 으아앙"


"에, 카나오가!?"


 낭보에 시노부는 자기도 모르게 큰소리를 내고 말았다.


"곧 가요! 시나즈가와 씨, 진통제, 조금 기다려 주실 수 있지요? 나중에 누군가에게 가져오게 할 게요!"


"아, 그래."


 카나오가 눈을 뜨자, 차례차례 이노스케, 탄지로, 젠이츠도 눈을 떴다. 그때마다 시노부는 다행이라고 안심했다.




 햇살에 싸여 시노부들이 빨래를 개고 있는데 발자국 소리가 다가왔다.


'토미오카 님과 히메지마 님, 왜 그러세요?'


 묵직한 발자국 소리와 불규칙한 소리로 예상했던 대로 목발을 짚은 기유와 히메지마가 있고 웬 장기판을 들고 있다.


"장기?"


"토미오카와 한 판 두려고."


 기유가 장기판을 툇마루에 놓고는 고개를 숙이고 내려갔다.


"또 뭐지요?"


"방금 전에 나리가 오셨다."


 어느 틈에. 멍하니 있어서 나리님의 방문을 눈치채지 못했던 모양이야.


"사네미에게 겐야의 유서가 전해졌다. 혼자 읽고 싶어할 테니, 전원 밖으로 나왔다. 이구로는 칸로지의 문안일 것이다."


"그런가요…"


 시노부는 눈을 내리깔았다. 겐야의 붉은 얼굴이 생각난다. 탄지로가 따르고 있었고 그도 탄지로를 신경 쓰는 눈치였다.

 무잔을 쓰러뜨려도 슬픔은 그치지 않는다.


"무, 미안하다. 토미오카."


"아니다."


 장님 히멪마 대신 기유가 말을 늘어놓자 거기에 젠이츠와 이노스케도 찾아왔다.

 어떻게 했는지 물으니, 이쪽도 탄지로에게 무이치로의 유서가 전해졌으므로, 젠이츠가 이노스케를 이끌고 나와 탄지로를 혼자 있게 해 주었다고 한다.


"왜 몬지로만 되는 거야?"


"아-뭐-! 시노부님! 이노스케 좀 설득해주세요!"


"이노스케 군, 편지는 혼자서 읽고 싶은 것도 있어요. 알았다면 잠시 여기에 있을까요. 됐나요?"


"...알았어"


 시노부의 무서운 압력에 이노스케가 얌전해진다.


"네즈코 씨는?"


"네즈코는 아오이 씨에게 도움을 준다고 했어요"


"어이, 반반 하오리와 염주 아재! 뭐 하는 거냐!?" (염주틀딱 : 암주임)


"야 주들이라고...!!"


"...나무아비타불"


"....장기다"


"쉿! 죄송합니다!"


"아앙? 너 사과를 왜 하는 거야? 몬이츠"


"너때문이라고!? 주가 이런 소리 내는 건 처음 들었다고!?"


 "그게 어떤 소리냐!"


 일시에 떠들썩해진 툇마루에 쓴웃음을 짓는다.


"장기가 뭐야?"


"놀이에요"


 장기를 모르는 이노스케에게 간단한 설명을 해 주자 흥미롭게 수주와 암주와의 대전을 보기 시작했다.

 그러다 한순간에, "뭐고 이거" 하고 화를 내기 시작했다.


"쌍륙을 하자, 시노부!"


"네에...?"


"야, 나랑 하자. 시노부씨는 일이 있을지도 모르잖아?"


"그렇다면 카나오랑 네즈코도 부른다!"


 명안이라는 듯이 이노스케는 달려나간다.

 남겨진 젠이츠는 움츠러들어서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있다.


"아니에요."


건강한 건 좋은 일이죠.

 무뚝뚝하지만 비교적 온화한 두 사람은 그대로 장기를 둔다.

 갈 곳 잃은 젠이츠가 빨래를 돕는다고 말해주어, 둘이서 개니 순식간에 갤 수 있었다.

 다 갠 빨래를 치우고 돌아와 보니 툇마루에서 장기를 두는 두 사람 곁에 이구로가 있었고, 이노스케, 젠이츠, 카나오, 그리고 나호,키요,스미까지 모두 쌍륙을 하고 있었다.

 시노부는 기유 옆에 붙어 앉아 승부의 향방을 살피기로 했다.


 그때 나리님의 아내가 찾아왔다.


"모두에게 돌려주려고요."


 그렇게 전원에게 유서가 반환됐다.

 시노부는 손안에 있는 「츠유리 카나오 님」이라고 쓰여진 유서에 눈을 떨어뜨렸다.

 결국 건넬 일이 없었다. 장작에나 집어넣어야지. 이런걸 카나오에게 보여주면 울어버릴거야.


 시노부는 유서를 살며시 품에 간직했다.



--


아오이가 "시노부 님도 쉬세요!" 라고 입에 진물이 나도록 말했지만,

시노부는 햇빛 아래 있는 것이 기뻐서 오늘도 진찰하는 사이에 아오이와 세 꼬맹이, 네즈코와 빨래를 널고 있었다.


"아이고야! 시노부 님, 우리가 할게요!"


"후훗, 낮에 밖에 있는게 너무 기뻐요."


"하지만 안 돼요! 시노부 님, 어제도 늦게까지 깨어 있었던 거 알고 있으니까요!"


"체력은 좋으니까 괜찮아요"


"안 돼요! 햇빛이 그렇게 좋으면 햇빛만 쬐세요!"


"저기 마침 토미오카 씨도 탄지로 씨도 계시고.."


" 여러분 제가 차 끓여올게요 "


 세 꼬맹이들에게 마구 등을 떠밀려 시노부는 포기하고 물의 호흡 형제가 앉아있는 툇마루에 앉았다. 햇빛이 기분 좋다. 네즈코의 차를 기다리기로 할까요.


"실례하겠습니다."


"시노부씨, 네즈코까지 죄송합니다"


 머리를 조아리는 탄지로에게 아니에요, 라고 웃는다.

 네즈코는 역시 탄지로의 여동생답게 잘 따르고, 이것저것 잘 돌봐주기 때문에 마치 아오이의 조수처럼 집안일을 도와주고, 세 꼬맹이도 돌봐준다.


"두 분 무슨 얘기를 하셨나요?"


"부상이 나으면 우로코다키씨...스승님에게 함께 가자고 했어요."


"어머, 그럼 저도 인사드리고 싶네요. 저도 반년 신세 많이 졌으니까요."


"그래요? 그럼 같이 가요!"


 "빨리 편지 써 올게요!" 하고 탄지로가 뛰쳐나간다.


"성급한 놈이다."


"후후, 몸은 좀 어떠신지?"


 아직 깁스를 하고 있는 기유는 힐끗 자신의 다리를 보고 문제없다는 듯 대답했다.

 아, 하며 반응을 보이더니 시노부는 큰 소리로 웃으며 빨래를 널어놓는 소녀들을 바라본다.


"살아 남았네요, 우리."


"뭔가. 죽을 생각이었나?"


"죽을 각오는 했으니까요. 토미오카씨도 그렇죠?"


"...글쎄."


"…어제 유서, 어떻게 했으려나요?"


 무심코 시노부가 물었다. 시노부의 유서는 저녁때 장작불에게 줘 버렸다. 기유 씨의 것은 어떻게 했을까요.


"여기 있다"


 그는 품속에서 유서를 꺼냈다.


"...어제부터 계속 품에 넣어두기만 했나요?"


"태우려다 탄지로에게 붙잡혔다."


 그 광경이 생생히 머리에 떠올라, 시노부는 조금 웃었다.


"너는?"


"어제 바로 장작불 안에 던져 넣었답니다."


"...일처리가 빠르군."


" 그나저나, 그 유서는 누구에게 쓰셨을까요?"


 탄지로 또는 우로코다키 둘 중 한 쪽일 것이라고 시노부는 생각했다.

 그러나 기유는 시노부에게 유서를 내밀었다.


"너다."


 자, 하고 바람이 세차게 불어간다.


"...네?"


"전에는 스승님에게 썼는데, 쿄쵸가 오니가 되고 나서는 쿄쵸에게 적었다."


 내밀린 채로의 유서에 시노부는 슬슬 손을 내밀어 받아들인다.


"...읽어도?"


"상관없다."


 시노부는 유서를 열었다.

 거기에는 기유답게 간소한 문구들이 적혀 있었다.

 만약 같은 임무로 죽더라도 시노부 탓이 아니라, 자신의 단련이 부족했던 탓이라는 것, 앞으로의 일은 저택의 소녀들을 포함해서 나리님에게 부탁했으니까 걱정말라는 것, 반드시 사람에게 돌아가는 약을 완성시켜 주었으면 하는 것. 그리고 내 역부족으로 끝까지 지켜보지 못해 미안하다는 글도 적혀있었다.


「………」


"....어이, 왜 우나"


"...울지 않았어요"


 흘러내릴 뻔한 눈물을 황급히 닦는 것을 들켰기 때문에 그만 억지를 부리고 말았다.

 심호흡을 하고 시노부는 유서였던 것을 닫았다.

 왜 이 남자는 유서에서까지 걱정해주는 걸까. 사람이 너무 좋다.

 일부러 같은 임무로 죽을 경우를 쓰는 것은 시노부의 죄책감을 씻기 위해서.

아오이들을 포함한 향후의 대응을 쓰는 것은 시노부의 걱정을 줄이기 위해서.

약 만드는 것을 포기하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마지막 말은 탄지로와 만났을 때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으니까.


"…토미오카 씨는 정말 사람이 좋으시네요"


"그럴 리가"


"사람 좋은거죠. 아니면 바보거나요. 주가 오니를 살려 제 목숨을 건다는 것은 몇 번을 생각해도 사람이 좋은게 아니라면 바보나 하는 짓이랍니다."


"나는 바보가 아니다."


 자신을 깎아내리는 단어가 하나 늘었다며 약간 충격을 받은 기유를 모른 척하며 시노부 씨는 기유의 유서였던 것을 품에 간직했다.


"...토미오카 씨"


"...뭐야"


 경계하는 고양이처럼 눈을 가늘게 뜨고 있는 기유에게 시노부는 시선을 맞추었다.


"음- 그때 도와주셔서 감사했습니다."


「………」


"후후, 비둘기가 콩을 먹고 난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어요."


 얼간이 같은 표정이 우스워 키득키득 웃자 기유가 얼굴을 찌푸리며 앞을 향했다.


"나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사람으로 돌아간 것은 너 자신의 힘일 것이다."


"또 그런 약한 말씀을 하신다. 저를 지켜주신 건 토미오카 씨 아닌가요?"


"별로 안 지켰어"


"오니가 된 저를 눈감아 준 것도, 대장장의 마을에서 폭주할 뻔한 저를 말려주신 것도 당신이고,

3년 반 동안 햇빛을 못 받는 저를 업고 이동했잖아요. 충분히 지켜주셨답니다."


「………」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좀처럼 되는 일이 아니에요."


 다시 바람이 세차게 불어간다.

 그 바람이 차가워서 조금 시노부는 어깨를 떨었다.


"추워지네요"


"겨울이 오는군."


"네에, 새 하오리를 만들어야죠. 이제 언니의 겉옷은 없고……필요가 없으니까요."


 시노부의 하오리는 상현의 이와의 싸움에서 찢어졌기 때문에 그 공간에 두고 왔다. 기유의 하오리는 무잔과의 싸움에서 넝마가 되고 말았다.

봉제사에게 부탁하면 고쳐 주겠지만 더는 그러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이제 벗을 수 있나?"


"네. 토미오카 씨는 저 반반 하오리, 어떻게 하시려구요? 고치실 건가요?"


"...아직 생각은 안해봤지만 아마도"


 그 대답에 시노부는 미소지었다. 아마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복수는 이루어졌다. 이제 그날로부터 벗어날 수 있어.

 두 사람에게 있어서 하오리와의 결별은 미래로 걸음을 옮기는 일이다.


"그럼, 하나 사야죠. 모처럼 사람으로 돌아왔는데 시장을 아직 못 갔답니다, 저. 모처럼이니까 같이 가 주세요. 완쾌되면 말이랍니다, 약속해 주세요."


 새끼 손가락을 내미니, 방심하다 당황한 기유가 새끼 손가락을 내밀어 왔다.

 작은 새끼 손가락과 큰 새끼 손가락이 얽힌다.


"…손가락 약속. 어릴 때 이후로 처음이다."


"약속을 깨면 바늘 천 개가 아니라 독약을 먹게 할 거니까요."


"그건 사양하지.."


 고지식한 얼굴로 신음하는 기유를 보고 또 다시 웃자, 네즈코가 「차예요-」하고 다가왔다.


--


시노부가 목욕을 마치고 자기 방을 향해 복도를 걷고 있는데 아오이와 세 소녀들이 작은 밥상을 둘러싸고 어딘지 심각해 보이는 얼굴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토미오카 씨는 안 따라올까?"


"안 따라오시는 거 아닐까? 원래 우리를 이 집으로 초대해 주셨다는 것도 시노부 님을 도왔기 때문일 테고."


"쓸쓸하네."


 섭섭하다는 의미가 어울릴 것 같다. 세 소녀가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있다.


"무슨 일 있나요?"


 궁금해서 말을 거니 모두가 시노부 님! 하고 입을 모은다.


"토미오카 씨의 이름이 나왔습니다만,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요?"


 시노부가 묻자 네 사람은 얼굴을 마주보고 세 소녀들은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아오이에게 눈을 돌리자, 순간 세 소녀들에게 눈을 돌리고 나서 시노부에게 설명해 주었다.


"앞으로의 일에 대해 이것저것 이야기하고 있었어요."


"앞으로요?"


"네, 시노부 님도 인간으로 돌아가셨고, 오니도 소멸했습니다. 게다가 나리님으로부터 나비저택도 돌려받았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에...그, 이 저택에서 나와야 하지 않을까 하고 나호가 불안해졌다고 해요."


이사를 간다면 토미오카 씨는 안 따라오시겠죠...?


 스미가 스르르 가장 묻고 싶은 말을 내밀었다.


"...그건 쓸쓸해요…"


 이번에는 키요가 뒤를 이어 중얼거린다.

 시노부는 세 소녀들의 머리를 차례차례 쓰다듬었다.


"토미오카씨도 함께가 아니라면 외롭나요?"


"네.."


"그게.. 계속 같이 살았는데.."


"하지만 저, 나비 저택에 가기 싫은 건 아니에요"


"다만, 모두가 함께가 좋구나 하고..."


 띄엄띄엄 세 소녀들이 불안해 했던 이야기를 해 나간다.

 그것을 하나씩 다 듣고 시노부는 턱에 손을 얹었다.


"즉, 모두는 토미오카 씨와 함께 살고 싶다고"


 까딱하고 세 소녀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아오이는 어때요?"


"네?...에, 그...시노부 님의 지시에 따르겠습니다."


 아오이도 조금은 외로운가 보네요.

 시노부는 난처한 듯이 웃었다.


 "토미오카씨가 없는 생활, 인가요?"


 카나에 언니가 있던 시절의 나비 저택의 생활로 돌아갈 뿐이다.

 그런데도 잘 상상이 안 되네.



--


귀살대는 무잔 토벌 반년 만에 해체됐다.

 주 이하, 살아남은 귀살대는 나리님으로부터 충분한 돈을 받았다.


"그렇지만 이 집도 나비 저택도 너무 크네요."


"동감이다. "


 기유와 시노부는 수주저택에서 머리를 맞대고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고 있었다.

 기유는 나리님으로부터 이 수주저택과 향후 5년은 호화롭게 놀아도 괜찮을 것 같은 돈을 받았다.

 시노부는 나비저택을 돌려받았고, 기유와 같은 돈도 받았다.


"나비저택은 원래 카나에의 것이니까, 시노부가 상속받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언젠가 인간으로 돌아가면 돌려주려고 아버지께서 관리하셨으니까."


 하지만 나비저택이나 수주저택 모두 대원들의 치료시설로 기능하기 위해 증개축한 것이기 때문에 그냥 살기엔 너무 넓은 것이다.

 덧붙여서 시노부를 포함해 많은 대원들은 막대한 녹봉을 거절하려고 했지만, 나리님이 완강히 양보하지 않았었다.

 눈앞에서 신음하며 팔짱을 끼는 시노부가 한숨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역시 나비저택도 수주 저택도 팔고 새로 널찍한 집을 하나 장만하죠.

토미오카씨와 저의 현재의 재력이라면 간단하게 할 수 있잖아요? 그게 타당해요. 거기서 다 같이 사는 거에요."


 시원시원한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듯하며 기유는 눈을 깜박였다.


"...잠깐"


"네, 뭘까요?"


"…왜, 나도 포함되어 있지?"


 고개를 들어 기유는 지극히 진지한 질문을 던졌다.

 지금은 이 넓은 저택에서 살기가 불편하니 이 저택에 사는 자들의 앞날에 대해 의논했을 게 아닌가.

 진실로 까닭을 알 수 없는 기유였다.


 기유로서는, 시노부네가 이사에 필요한 날짜등을 검토해, 거기에 맞추어 저택을 파는 시기를 생각하려고 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이후 기유는 혼자 어디론가 떠날 작정이었다. 나는 시노부처럼 특기도 없고, 귀살밖에 하지 않았던 나는 수명 건도 있고, 그녀들에게 짐만 될 뿐이니.


 그런데 왜? 그런 기유에게 시노부는 빙긋이 웃었다.


"하지만 토미오카씨, 늘 우리에게 말도 없이 어디론가 가버리잖아요?"


"...어떻게 알았지?"


 너무도 정곡을 찔려서 기유는 실수했다고 생각했다. 오랜만에 실수했다고 생각했다. 시노부가 웃는 얼굴로 수라를 짊어지고 있다. 영락없이 화나게 했군.


"...그건 그렇고 3년 반이나 같이 살았잖아요?"


"...미안하다?"


"어차피 귀살밖에 할 줄 아는게 없는 자신은 이제 필요 없다거나, 수명이 앞으로 3년일 가능성이 있으니까 없는 게 낫다거나 생각하고 있는 거겠죠! 정말이지! 그러니까 미움받는 거라고요!"


 그만 아연실색하고 만다. 정말 어떻게 알았지?


"말해 두겠습니다만, 그렇게 비굴한 것은 토미오카 씨 뿐이니까요. 카나오도 아오이도 나호도 스미도 키요도 모두 토미오카 씨는 함께 사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니까요."


"…기다려라, 여자들 세대에 남자가 한 명이라니, 바깥소문이 안 좋을 거다…"


"이제서야 말이 통하네요. 당분간 이노스케 군과 젠이츠 군이 함께 있기 때문에 완전한 여자 가정은 아니랍니다."


"...그렇군"


 기유가 모르는 사이에 눈 앞의 여자는 여러가지 결정하고 있었던 것 같다.

 결국 앞으로의 상담이라기보다는 시노부의 결정사항에 기유가 고개를 끄덕이기를 반복하는 꼴이 되었고 (부정해도 어차피 긍정이 되었다) 시노부와 나비의 저택을 파는 시기도 정해졌다.


--


옛날의 수주 저택은 지금까지 신세를 진 예로 의사 하야시에게 양도해 지금은 병원이 되어 있다.

 나비 저택도 진료소를 열고 싶은 의사에게 팔았다.

 시노부와 기유는, 조금 큰 외딴집과 밭을 사 가지고 떠들썩하게 살고 있다.




 무잔 토벌로부터 3년이 경과했다.

 우즈이가 오랜만에 토미오카 저택에 왔다.


"야아, 오랜만이다."


"아, 음주님!"


 옛 호칭을 고칠 생각이 없는 듯 아직도 이 집 소녀들은 그렇게 불렀다.


"쿄쵸에게는 찾아간다고 했는데, 있나?"


"네, 안에 계십니다"


 집 안에서 시원시원하게 대답해 안내해 온다. 칸자키를 닮았네.


"모두들 바쁘게 살고 있는건가?"


"네, 아오이씨는 간호사 학교에 다니고 있고, 저와 스미양과 나호양도 학교에 다니고 있습니다.

젠이츠 씨는 쉬는 날에는 놀러 오고, 이노스케 씨는 막노동이 성미에 맞는 것 같아 지금은 목재 가게에서 일하고 있어요."


"그렇구만."


 귀살대 해체 후 살아남은 자들은 저마다 새로운 길을 걷기 시작했다.


 탄지로는 네즈코와 고향에 돌아가 숯구이를 하고 있다.


 젠이츠와 이노스케는 한동안 토미오카 저택에서 신세를 지고 있던 것 같지만, 결국에는 젠이츠는 포목점의 큰 가게에 취직해 독립했고,

이노스케는 토미오카 저택에서 상식이 주입되고 나서, 사냥꾼인지 목수인지 여러가지 해보다가, 지금은 목재 가게에 있는 것 같다.


 히메지마는 또 사찰에서 고아들을 모아 돌보고 있다.


 시나즈가와는 양조장에서 일하고 있는 것 같고, 가끔 히메지마의 절이나 토미오카 저택에 과자를 가지고 얼굴을 내미는 것 같다.


 이구로와 칸로지는 우즈이네와 멀리 여행을 다녀왔다가 결혼했다. 양봉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 같고, 바로 최근 이구로와 꼭 닮은 여자아이가 태어났다.


 수주댁에 있던 소녀들은 쿄쵸의 부탁으로 우즈이가 여러 가지로 손을 써서 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했다.

쿄쵸에게도 시장에서 일하기 위해서는 약사 면허가 있어야 한다며 월반했다고 치고 면허를 구해 주었다.


 이 때문에 쿄쵸는 동네 약방에서 일하다 마침내 홀로서기로 최근 나비약국을 열었다.


 그리고 토미오카씨는 밭을 갈고 약초를 기르고 있다.


"난 왜 너네가 결혼을 안 했는지 참 이상한데"


 놀러올 때마다 신기해 어쩔 수 없는 우즈이가 이 질문을 중얼거리는 것도 이젠 손으로 세기엔 부족할 지경이다. 앞장서는 소녀도 난감하게 웃는다.

 어느 모로 보나 저 두 사람은 부부밖에 보이지 않는다. 같은 저택에 살면서 토미오카가 기르는 약초를 쿄쵸가 약으로 만들어 판다.

가끔 얼굴을 비추면 완전히 쿄쵸의 엉덩이에 깔려 있는 토미오카의 그림밖에 보지 못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부부로밖에 보이지 않지만 아직 결혼하지 않은 것 같다.


"시노부 님은 앞으로 3개월 남았다고 하던데요…"


"뭐가 석 달이야?"


"글쎄...시노부 님, 가르쳐주지 않았습니다."


"무슨 말씀이신지?"


"꺄악!?"


 갑자기 나타난 시노부에 키요가 비명을 지른다.


"여, 쿄쵸. 약 받으러 왔어."


"자, 자, 자, 준비됐어요."


 쿄쵸는 집 안으로 우즈이를 안내한다.


"약국 열었지? 축하한다."


"고맙습니다. 이것도 우즈이 씨가 약사 면허를 구해 준 덕분입니다."


 객실로 옮겨져 방석을 권했으므로 사양하지 않고 앉도록 한다. 쿄쵸가 약을 가져오러 잠시 퇴실했다가 곧 돌아왔다.

 약을 받으며 우즈이는 오랜만에 날아든 좋은 소식을 입에 올렸다.


"그래, 요전에 카마도에게서 편지가 왔었어."


"아, 들었나요?"


"어이구, 경사잖아."


"네에. 저도 탄지로 군이라면 카나오를 안심하고 맡길 수 있어요."


 후후, 하고 쿄쵸가 즐거운 듯이 웃는다.


"성실해요, 탄지로군. 카나오에게 구혼하기 전에 카나오와 결혼해도 되겠냐고 허락 받으러 제게 왔거든요."


"허어. 하지만 아직 세간에서 결혼 따위는 부모의 결정에 따라 결정되니까. 맞는 것 같기도 하다."


"네, 그래서 제대로 허락을 해 주었죠. 그리고 나서 카나오에게 청혼을 해서 카나오가 받아들였답니다. 축하의 말이 기다려지네요."


 마음속으로 기쁜 듯이 미소짓는 쿄쵸에게 우즈이는 고개를 갸웃했다.


"너는?"


"네?"


"아니, 틀림없이 토미오카 녀석과 결혼인가 했더니 아무 소리도 없잖아? 그렇다고 다른 남자의 그림자도 없어. 쿄쵸의 용모라면 맞선도 남자도 몰려올 텐데? "


 키는 작지만 그것을 보충할 만큼 아름다운 용모다. 눈처럼 새하얀 피부, 커다란 눈동자, 작은 입술, 여자다운 몸매. 학식이 있고 영리한데도 누구에게나 상냥하고, 어떤 부상자에게도 손을 내미는 모습은 여신인가 선녀인가 하고 마을에서 불리고 있을 정도다.


 그런 그녀를 동네의 어른들이나 남자들이 내버려 둘거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본인의 의사야 어떻든 구혼에서 맞선 이야기까지 얼마든지 올 것이다.

 그런데도 언제까지나 독신. 이라고 하는 것은 즉, 쿄쵸가 일부러 토미오카의 곁에 있다는 것이 된다.


"네에, 구혼도 맞선 이야기도 많이 받았지만, 모두 거절했어요."


 "자, 역시."


"토미오카같은 벽창호를 기다리다가는 눈 깜짝할 사이에 늦을 거라고."


"기다리는 건 석 달 남았어요"


 시노부가 완연히 미소짓는다.


"그 석 달은 뭐야?"


"비밀이랍니다~"


 뜻 모를 석 달.

 하지만 어딘가 유쾌해 보이는 쿄쵸를 보고 그건 그리 나쁜 일은 아니라고 결론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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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https://www.pixiv.net/novel/show.php?id=121784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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