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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집5 모란ts모바일에서 작성

ㅇㅇ(118.33) 2017.04.21 22:08:53
조회 1010 추천 58 댓글 15

														

이 집에 온지 두 주나 지났지만 일림은 침실과 사당 외에 다른 곳은 몰랐다. 밖은 여전히 비가 세차게 내리고 있었고, 양식으로 꾸며놓은 응접실은 어두컴컴했다. 긴 의자에 앉은 일림은 하릴없이 네모진 쿠션에 달린 장식술을 가만가만 만지며 이런데도 있구나, 하고 어두컴컴한 천장을 덮은 복잡한 문양을 가만히 올려다보았다. 아까 자우가 두고 간 차에서 나는 희미한 향이 벽지와 어우러져 이상하게 나른해졌다. 가만히 턱을 괴고 졸음으로 빠져들려던 차에 다른 공기가 흘러들어왔다.
팔척 장신은 아니지만 호리호리한 몸에 허리가 날씬한 사람이었다. 갈아입은 옷도 빈틈 없이 몸에 꼭 맞았다. 이 남자에게선 어떠한 성장의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마치 이 상태로, 이 옷을 입고 태어난 사람 같다는 기묘한 느낌이 들었다. 다시 옷을 갈아입어도 그럴것이다. 정말 사람은 맞는걸까? 일림은 자리에서 일어나 멍하게 남자를 쳐다보았다. 아, 이 사람이 내 남편이지.


-두 주나 혼자 뒀지.

남자가 의자에 비스듬하게 앉아서는 머리를 괴고 얇은 입술을 끌어당겨 웃었다. 연하게 수증기 냄새가 흘렀다. 가만히 서있기만 하자 하얀 손이 그림자처럼 흔들렸다. 쭈볏거리며 앞에 서자 다시금 하얀 손이 옆자리를 툭툭 쳤다. 자리에 앉자 가만히 손이 당겨졌다. 비스듬히 기대어 앉은 품에 머리가 닿았다. 얼굴이 달아올랐다.

-착하기도 하지. 집도 잘 보고...

불덩어리가 머리를 쓰다듬었다.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부러진 꽃대궁 모양으로 기울어져있자 남자가 흘긋 보더니 또 웃었다. 가는 손가락이 가만가만 머리칼 사이로 들어와 뒷덜미를 도닥였다.

-힘 빼고.

주문이라도 걸린것처럼 일림은 허리에서 힘을 뺐다. 낯선 품에 몸이 스르르 감겼다. 남자는 여전히 비스듬히 앉은채로 숱 많은 머리칼을 느리게 쓰다듬었다. 상상 속의 사람은 이런 사람이 아니었다. 도깨비처럼 얼굴이 검붉고 우락부락할줄로만 알았다. 험하고 거친 사람일줄로만 알았다. 첫날밤 등에 와닿던 불길만으로도 보이지 않는 남편에 대한 불안감은 화상처럼 남았다. 그러나 불덩이처럼 뜨겁긴 해도 머리칼에 닿는 손은 부드럽고 조용했다. 유리창 너머로 세차게 빗소리가 들렸다. 한참 멍하게 어두운 장막을 바라보던 남자가 일림을 일으키고 뺨을 가만히 더듬었다.

-이제 네가 이 집 안주인이니, 집부터 알아야지.

남자는 일림을 일으켜 어깨에 팔을 감고 그림자처럼 움직였다. 여기는 침실, 여기는 사당, 여기는 응접실. 여기까진 알지? 자 다음은... 발걸음 소리도 없었다. 어두운 복도를 천천히 흘러 각 방의 문을 하나씩 열어 방을 보여주던 남자가 가장 안쪽, 가장 큰 문 앞에 멈추어 열쇠 꾸러미를 주었다. 둥그런 걸쇠에 걸린 작은 열쇠들은 각각 하얗게 반짝이고 있었다. 그 와중에 유난히 크고 오래된듯이 보이는 구식 쇳지렛대가 하나 있었다.

-이 방은 들어가지마.

손 끝으로 낡은 지렛대를 더듬는 일림을 보며 남자가 짧게 이야기했다. 일림은 고개를 돌려 문에 걸린 낡은 자물쇠를 바라보며 언제나처럼 대답했다.

-예.

잠깐 침묵이 흘렀다. 비마저 멈춰버린것 같았다. 그것도 잠시, 남자가 허리를 조금 숙여 일림의 얼굴을 보고는 또 빙긋 웃었다. 귀밑머리를 매만지던 손이 귓불을 만지작거린다. 약간 고개를 기울인채로 눈을 내리깔고 있자 다시 낯선 팔이 어깨를 안았다. 일림이 열쇠 뭉치를 꼭 쥐고있는걸 한참 바라보던 시선이 거두어졌다.

-착하기도 하지.

용기를 내어 살짝 올려다보았다. 남자는 변함없이 하얀 얼굴이었다. 항상 이 시간쯤 간식거리를 찾더라고 자우가 그러던데. 어째서인지 부끄러운걸 들켜버린 기분에 도리질을 하자 남자가 낮게 웃고는 어깨를 가만히 도닥거렸다. 잘 먹어야지. 일림은 다시 어두운 응접실로 돌아와 갓 씻은듯 물기가 조롱조롱 맺힌 작은 자두를 두 알 먹었다. 남자는 약간 식은 차를 마셨다. 느리게 시간이 흘렀다. 일림이 가만히 눈을 감고 고개를 기울인채로 있자 남자가 꼬고 있던 다리를 펴고 와서 몸에 모포를 덮어주었다. 비몽사몽간에 그대로 잠이 들었다.
눈을 떠보니 모르는 무릎을 베고 있었다. 남자는 조각처럼 앉은채로 여전히 턱을 괴고 어두운 응접실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일림이 흠칫 놀라는걸 느꼈는지 어깨에 내려와있던 손이 모포를 다독였다.

-저녁 먹어야지.

어쩜 좋아. 얼굴이 빨개진채로 다시 어깨를 안긴채 갔다. 저녁은 생선살이 들어간 죽과 데친 야채, 간장으로 조린 돼지 고기였다. 도무지 음식이 넘어가지 않아 죽만 몇술 뜨고 말았다. 욕실에서 나와서 머리를 빗으면서도 창피함이 가시질 않았다. 태평하게 잠이나 자고. 경대 앞에 앉아 하릴 없이 머리만 만지작거리니 다시 조용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만 자야지.

순간 창피함을 잊고 덜컥 겁이 났다. 첫날밤은 어영부영 넘어갔다 치더라도, 여태껏 오지 않는 남편에 그토록 안도한 이유를 다시금 떠올랐다. 결혼 전에 배운, 아내의 도리. 두루뭉술한 상상으로는 꽃에서 나비가 날아가 다른 꽃으로...

-누워야지.

어느새 침대에 들어간 남자가 아까 모양으로 옆자리를 토닥였다. 쭈볏쭈볏 이불 속으로 들어가자 남포등이 꺼졌다. 슬쩍 옆으로 돌아누우려하자 더운 팔이 몸에 감겼다. 이마에 쿵, 하고 단단한 몸이 닿았다. 눈을 꼭 감았다. 최대한 작게 몸을 웅크렸다. 그러나 한참 동안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손이 닿았다. 그리고 천천히, 머리와 등을 쓰다듬었다.

-잘 자렴.

의문이 들기도 전에 다시 거짓말처럼 잠이 쏟아졌다. 몸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저 먼 빗소리 앞으로 가지런한 숨소리가 들렸다. 참 이상한 하루였고, 일림은 이 집에 익숙해질거라고 생각하며 잠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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