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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 사나더모바일에서 작성

ㅇㅇ(175.223) 2017.08.26 22:31:42
조회 663 추천 57 댓글 10

														

저택이 달라지고 있었다. 대문에 보안 장치가 달리고 난 이후로는 깨져있던 유리창 몇개가 새로 끼워졌다. 곧 전기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낡은 서재 나무 벽, 어색하게 달린 콘센트에는 보란듯이 충전기가 꽂혀있었다. 천장에는 전등까지 달렸다. 향을 올리러 가던 중에 주방에서 부웅, 하는 소리가 들리기에 들여다봤더니 어울리지도 않는 대형 냉장고까지 떡하니 들어와있었다. 그리고, 오늘은 서재 문을 열자마자 이상하게 냉기가 훅 끼친다 했더니 남자가 한가운데 서서 천장을 보고 있었다. 에어컨이었다. 결국 일림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럼 이 흉한 집에 그냥 드나들려고?"

남자가 예의 그 짜증 섞인 말투로 툭 내뱉었다. 일림은 묵묵히 창을 열었다. 남자는 여전히 구김 하나 없는 수트 차림이었다. 오늘은 진한 푸른색 사틴 넥타이였다. 예쁜 색이었다.

"에어컨 틀었잖아. 창을 왜 열어."
"에어컨 바람 오래 맞으면 머리 아파요."
"대체 몇살이야, 너."
"열..."
"시끄러."

일림이 부루퉁하게 의자를 끌어다 열린 창 앞에 앉아 책을 펴들자 남자가 리모컨을 소파에 내던지고는 털썩 앉았다.

"이 찜통 더위에 대단도 하지. 안그래?"
"여름이니까 더운거예요."
"그래서 에어컨이 나온거야. 인간은 도구를 쓰거든."
"냉장고는 왜 들여다놓으신거예요."
"더워서 도시락 상한다며. 그 염전 같은 밥을 내내 먹으려고?"
"어때서요."
"엄마한테 이야기해서 간 좀 덜하라고 해."

잠깐 멍해있던 일림은 다시 책으로 눈을 돌렸다. 남자는 뭐가 그렇게 불만인지 내내 투덜거리고 있었다. 불만의 내용이란 별것 없었다. 너무 덥다, 이 집은 손 볼데가 너무 많아서 건드리고 싶지가 않다, 어쩌자고 이런델 기어든거냐, 왜 충전기를 놔뒀는데 핸드폰은 충전을 안하냐, 등등. 정말 뭐하는 사람일까. 한참 말을 고르던 일림은 남자를 보지 않고 입을 열었다.

"제단 관리하는거, 열심히 할테니까요."
"신경써."
"감시하러 안오셔도 돼요."
"내 맘이야."
"그리고, 에어컨이고 뭐고 안달아주셔도 돼요."
"어차피 조만간 손 볼 생각이었어."
"제가 여기 드나드는거 싫으시면, 이젠 안올테니까요."

쨍, 키 큰 나무에서 매미가 울었다. 매 해 여름 궁금했었다. 매미는 보이지도 않으면서 어디서 그렇게 목청껏 울어대는걸까. 목이 말랐다. 일림은 헛기침을 두어번하고 다시 입을 열었다.

"애초에 몰래 들어온거, 잘못했어요. 정 싫으시면 다시 안..."

귀가 떨어질것 같은 소리가 났다. 어느새 자리에서 일어난 남자는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은채 우뚝 서있었다. 긴 소파 옆에 있던 간이 테이블이 쓰러져 있었다. 일림이 무덤덤하게 그걸 쳐다보고만 있자 남자가 성큼성큼 걸어와서 얼굴을 들이댔다.

"여긴 내 집이야. 여길 멋대로 들어와서 헤집고 다니더니, 이젠 네가 집주인인줄 아나보지?"
"..."
"무단침입으로 쳐넣질 않은걸 감사히 여겨야지. 아님 더 험한 꼴을 보여줘? 네 상상대로 만들어줄까?"

뭐하는 사람인지도 모르는데 불쑥 나타나 이래라 저래라, 제멋대로. 물론 잘못한건 알고 있었다. 말이 거칠어서 그렇지 친절하게 배려해주는 것도 고마운 일이었다. 하지만 일림은 정말 이 집을 좋아했다. 그 무엇도 가져본적도, 숨겨본적도 없던 인생에 처음으로 생긴 보물이자 비밀이었다. 눈 앞에 새까만 눈동자가 마주해있었다. 잔뜩 구겨진 미간이 어느새 익숙했다. 그래, 화낼법도 하지. 일림은 작게 한숨을 내쉬고 눈을 내리깔았다.

"죄송해요."

남자가 약간 누그러진 얼굴로 다시 허리를 펴고 섰다. 일림은 펜을 필통에 집어넣고, 책을 가방에 넣었다. 남자는 아무일도 없었던것처럼 창가의 낡은 커튼을 툭툭 차고 있었다.

"또 도시락? 오늘은 나가자. 먹고 싶은거..."
"죄송해요."
"두번씩 말할거 없어."
"이제, 다신 안올게요. 그동안 죄송했어요."

가방을 들고 허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그대로 서재를 나왔다.

"허일림!"

못들은척 계단을 내려와 문을 나섰다. 혹시나 붙잡히면 귀찮아질까봐, 탱자나무 가시가 우거져 평소에는 다니지 않던 샛길로 빠졌다. 한참 지나고 나서야 멀리서 돌층계에 부딪히는 구둣소리가 났다. 일림은 가시나무 덤불 아래 동그마니 웅크려 한참을 앉아 멀리서 들리는 매미 소리를 듣다가 무릎에 얼굴을 파묻고 혼자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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