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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 육나더모바일에서 작성

ㅇㅇ(39.7) 2017.08.30 13:01:07
조회 882 추천 61 댓글 12

														

남자는 툭하면 나타나서 이래저래 일림이 하는 행동에 참견을 하곤 했다. 더운데 그 긴 머리를 하고도 잘 버틴다고 투덜거리거나, 일림이 메세지를 잘 보지 않는다거나 하면서. 가끔 오지 않는 날은 아침에 메세지가 왔다. 바쁘다던가, 출장이라던가. 그리고 다음날이면 꼭 뭔가 가지고 나타나곤 했다. 한번은 시계를 주길래 이런건 못받는다고 했더니 괜찮다며 한참을 실랑이를 하다가 투덜거리면서 갔다. 그 이후로는 작은 인형이나 과자를 사다주었다. 보통 수요일은 점심, 금요일은 저녁을 같이 먹었다.

"좀 제대로 먹어. 비쩍 말라서는."
"먹고 있어요."

비가 내리는 금요일 밤이었다. 유리에 맺힌 빗방울을 보느라 일림이 멍하게 있자 남자가 또 투덜거렸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새우 완자를 스푼에 뜬채 정신이 팔려있었다. 참, 그러고 보니 지난번 비오는 날에 남자가 주었던 손수건을 아직 돌려주지 못했다. 이담에 다려서 돌려줘야지.

"꼬맹이, 완자 떨어지겠다."
"저기요."
"뭐야."
"뭐라고 부르면 돼요?"

남자가 황당하다는 얼굴로 일림을 쳐다봤다. 사실 일림은 남자의 이름도 몰랐다. 뭐하는 사람인지도 모르고, 나이도 몰랐다.

"계속 저기라고 하는 것도 그래서요."
"그것 참 빨리 깨달았네."
"음, 집주인이니까...임대인님?"
"난 집 빌려준적 없어."
"그럼 관리인님?"
"그건 너지."
"그럼요?"
"맘대로 해."
"음, 선생님?"
"미쳤...아니, 싫어."

맘대로 하라니 지금까지 불렀던대로 저기요, 도 상관없겠지. 일림은 대강 생각을 정리하고 식은 새우 완자를 먹었다.

"더 먹어. 여기 완자 맛있어."
"네."
"금요일인데 약속도 없어? 한창 친구들이랑 놀고 싶을 때잖아."
"없어요. 약속 없으세요?"
"너랑 만나고 있잖아."
"집에서 안기다려요?"
"나 혼잔데."

뜨끔했다. 본인이 가장 싫어하는 질문을 아무렇지도 않게 남에게 던지다니,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죄송해요."
"오래 전에 이혼했어. 한번."

남자가 앞에 놓인 찻잔을 천천히 매만지다가 약간 인상을 찡그렸다. 엄지에 낀 반지가 어두운 조명빛을 받아 둔하게 반짝였다. 한참 그 반지를 바라보던 일림이 먼저 입을 열었다.

"아기는요?"
"아기? 없어. 얼마 같이 살지도 않고 이혼했거든."
"다행이네요."

맑은 국물에 잠긴 완자를 바라보자 괜히 기분이 가라앉았다.

"넌 어때. 남자친구 없어?"
"없어요."
"인기있을것 같은데."
"없어요."

일림이 휘적휘적 국물만 젓자 남자가 일림을 마주보고 바로 앉았다.

"결혼했던건 아주 옛날 일이야. 젊었을 때... 좋아서 한것도 아니고, 세달만에 헤어졌어."
"..."
"같이 지내지도 않았어. 합의하고 헤어진거고, 조정 기간이 더 길었지."
"그래서요?"
"그냥... 이상하게 생각할까봐."

그냥, 이라니. 그게 더 짜증이 났다. 희미하게 옛날 기억이 떠올랐다. 이불 아래 웅크리고 누워서 듣던 큰소리, 세상이 무너지는것 같던 긴긴 밤들. 짐덩어리가 되어버린 그 기분이 다시 일림을 짓눌렀다. 오랫동안 잊고 있던 기억들이었다. 속이 거북해졌다. 냅킨으로 입을 가리고 콜록거리자 남자가 몸을 숙였다.

"왜 그래."
"머리가 좀...아파서요."
"일어날 수 있겠어? 병원에 갈까."
"아니... 자면 괜찮아질거예요."
"아니, 병원으로 가자. 식은땀이... 얼굴도 창백한데."
"괜찮아요."
"넌 그냥 내 말이면 무조건 안듣고 싶은거지?"
"..."
"일단 일어나자. 좀 쉬어."

일림이 비틀거리며 일어나자 남자가 팔을 잡아주었다. 토기가 올라왔다. 가슴을 꾹 누르고 밖으로 나왔다. 빗방울이 섞인 습한 더위가 훅, 올라오자 머리가 더 아팠다. 조수석에 앉은 일림이 멍하니 늘어지자 남자가 안전벨트를 매주고 자켓을 덮어주었다. 향수 냄새가 나는게 싫어 슬쩍 밀어내자 큰 손이 짜증스럽게 다시 옷을 올렸다.

"눈 좀 붙여."
"가야..."
"알겠으니까. 그대로 있으면 눈 뜨고 죽은...아니, 일단 자."

주차장을 빠져나오자 차 지붕 위로 빗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이 차는 쓸데없이 시트가 푹신푹신했다. 나른하게 잠이 왔다. 차 바퀴가 젖은 도로를 미끄러지는 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소리에 잠기자 혼곤하게 졸음이 밀려왔다.

"일어났어?"

얼마나 잤을까, 눈을 떠보자 사방이 어두웠다. 당황한 일림이 허리를 일으키자 옆에 앉아있던 남자가 다시 옷을 덮어주었다.

"어디예요?"
"잘 자길래 그냥 둬야겠다 싶어서."

어둠에 눈이 익자 빗방울에 젖은 창 밖으로 호수가 보였다. 꽤 멀리 온 모양이었다. 일림이 눈을 가늘게 뜨고 시계를 보려고 하자 남자가 손목을 잡아서 내렸다.

"아직 초저녁이야. 통금 시간까진 데려다줄게. 나이가 몇인데 통금 같은게 있는거야."
"그치만."
"그치만이고 뭐고. 몸은 좀 어때."
"괜찮아요..."
"늘 얼빠진 얼굴이면서, 왜 그렇게 쫓기는 사람처럼 굴어. 좀 누워."

대답할 기운도 없었다. 다시 시트에 기대서 멍하니 호수를 바라보았다. 일림이 자지 않는걸 확인한건지 이번엔 남자가 먼저 입을 열었다.

"다음 학기부터 수험생이지? 어느 학교로 갈건진 정했어?"
"아뇨..."
"그렇게 공부만 하면서. 왜?"
"취업할거예요. 다음 학기부터는 실습을 나갈거니까... 교과 공부는 더 못할 것 같아서요."
"취업을 한다고? 공부, 좋아하는거 아니었나?"

사실 지금 지내는 시설에서 나이가 제일 많은건 일림이었다. 다른 아이들은 많아봤자 너덧살이었다. 일림도 그 나이쯤 시설에 들어왔다. 한번 다른 집에 가기도 했었지만 그 나이다운 애교도 없고, 몸도 약했던 터라 다시 시설로 돌아와야 했다. 어영부영 지내다보니 결국 떠나지 못하고 반쯤은 시설 일을 도와가며 지내고 있었다. 하지만 성년이 되어서까지 시설에 머무를 수는 없었다. 독립해서 생활비며 집세를 벌어가며 공부를 할 처지는 못되었다.

"사정이 안되어서요... 독립도 해야하고."

다시금 기분이 가라앉았다. 시설에서도 권하고, 학교에서도 말렸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공부, 더 하고 싶어?"
"나중에라도 할 수 있으니까요."
"무슨 사정인지는 몰라도, 학비 때문이라면 내가 내줄테니까."
"괜찮아요."
"그냥 도와주는거 아니야. 지금 네가 지내는 집, 조만간 손 볼 생각이었어. 그런데 괜찮은 관리인을 못찾아서 그냥 내버려뒀던거고... 어차피 독립도 해야한다며. 그 집을 관리하는 조건으로, 학교 다녀. 괜찮은 조건 아닌가?"

귀가 번쩍 뜨이는 제안이었다. 일림은 그 집을 무척 좋아했다. 게다가 진학까지 할 수 있다면, 괜찮은 조건 정도가 아니라 엎드려 절을 해도 모자랄 판국이었다. 벌떡 일어나 앉은 일림은 남자를 바라보았다. 뺨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정말요?"
"그래. 난 까탈스럽거든. 넌 제단도 잘 관리하고 있고, 매번 집에만 붙어있으니 적격이지. 허튼짓도 안할것 같고."
"그, 그렇게 해도 돼요? 정말로?"
"그래."
"그치만...학비는 비싸고."
"그정도 집에 관리인 고용하는데 학비 정도면 싸게 치이는 편이지."
"할게요, 그렇게 할게요."

일림이 활짝 웃자 남자가 기가 막히다는 듯이 일림을 쳐다보았다.

"웃는 얼굴은 처음 보네."
"감사합니다. 저, 제단도 열심히 관리할게요. 정원도 잘 돌보고, 또..."
"당연하잖아. 제대로 안하면 잘라버릴거야. 연락도 제때 받아."
"네."
"그리고, 아무나 덥썩덥썩 믿지마. 내가 무슨 속셈으로 이러는줄 알고 넙죽 좋다고 그래?"
"무슨 속셈이신대요?"
"난 그런 인간 아냐. 난 믿어도 돼. 남들한테도 그러면 바보 취급 당한다는거야. 낯선 사람 믿고 졸졸 따라가고, 그러지마."
"...낯선 사람..."
"난 낯선 사람 아니잖아."

남자가 인상을 쓰고는 일림의 손목을 잡아서 손바닥에 손 끝으로 휙휙 획을 썼다. 두 글자였다.

"홍...력."
"내 이름이야."
"네."
"이제 낯선 사람 아니지?"
"네."
"그래. 그럼 진학반 들어가."

나른하던 짜증도, 두통도 전부 잊어버렸다. 남자의 손을 꼭 쥐고 웃었다. 남자도 비죽 웃더니 일림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다시 시동을 걸었다.

"가자. 바로 앉아."
"네, 사장님."
"사장님은 또 뭐야. 기분 나빠."
"고용주니까?"
"집어치워."
"그럼 아저씨라고 해요?"

남자가 일림을 흘긋 보았다. 그저 농담으로 한 이야긴데 기분이 상했을까, 얼른 입을 다물자 남자가 다시 앞을 보았다.

"차라리 그게 낫네."

차가 다시 미끄러져 달리기 시작했다. 세상이 꿈결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이대로 달려서라도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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