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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 11나더모바일에서 작성

ㅇㅇ(175.223) 2017.09.26 00:42:16
조회 799 추천 55 댓글 12

														

백화점을 나서기 전에, 남자는 일림에게 구두를 사주었다. 빨간 사틴에 금빛 힐이 달린 예쁜 구두였다. 이건 손님거네요, 참 잘 어울려요. 자리에 앉아 구두를 신자마자 점원이 웃었다. 발에는 꼭 맞았지만 익숙하지 않은 하이힐이라 거의 반은 남자에게 기댄채 걸었다. 차를 타고 가면서도 말이 없었다. 호텔에 들어가서 일림은 남자에게 손이 꽉 잡힌채로 멍하게 천장에 달린 샹들리에를 바라보았다. 로비에서는 좋은 향기가 났다. 나른하게 졸음이 왔다. 곧 키를 받은 남자가 일림의 어깨를 끌어안고 엘리베이터로 갔다. 엘리베이터도 통유리였다. 야경을 바라보는데 남자가 다시 더운팔로 어깨를 껴안고 몸을 돌렸다. 좀 더 보고 싶은데, 일림이 몸을 틀어도 도통 놓아주지 않았다. 작은 몸을 거의 들다시피 껴안고 빠르게 걷던 남자는 방을 찾자마자 문을 열어 일림을 벽에 밀치고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었다. 호텔은 처음이라서 구경하고 싶은데, 일림이 슬쩍 어깨를 밀어내도 물러나질 않았다.

"씻고 싶어요."
"어차피 땀날거야."
"그치만, 야경도 보고 싶어요."
"하루 더 있으면 돼. 내일 봐."
"그치만."
"급해."
"발 아파..."

그제서야 남자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러더니 일림을 안아서 침대에 앉혀주고 구두를 벗겨준 뒤에 큰 손으로 발을 감싸주었다. 침대는 높고 푹신푹신했다. 일림이 가만히 발을 감싼 손을 바라보기만 하자 바닥에 앉은 남자가 고개를 들었다.

"아파?"
"네."

남자가 욕실에서 타올을 들고 와서 발을 감싸주었다. 따뜻한 물에 적신 타올이었다. 발이 따뜻해지자 몸이 나른해졌다. 일림이 가만히 바라보기만 하자 남자가 타올을 내려두고 일림의 발등에 뺨을 댔다. 매끄러웠다. 무안해져서 발을 꼼지락거리자 곧 남자가 발가락을 물었다. 창피해, 발을 빼내려하자 손에 힘이 들어갔다. 한참 발가락을 지분거리던 감촉이 발등으로, 복숭아뼈로 옮아갔다. 곧 손이 종아리를 감싸고 무릎에 입술이 닿았다. 기분이 이상했다. 울음이 터질것 같았지만 꾹 참았다. 다행히 거기서 멈췄다. 남자가 침대 아래에 앉은채 일림을 올려다보았다. 그러다가 불쑥, 몸이 올라왔다. 입술이 닿았다. 숨이 막혔다. 일림이 물러나려하자 남자가 뒷덜미를 손으로 감싸 도망치지 못하게 했다. 아랫입술을 물던 남자가 한손으로 턱을 당기고 곧 입 안이 꽉 찼다. 낯선 감촉에 화들짝 놀라자 남자가 가늘게 눈을 떴다.

"눈 감아."

입 속에 낮게 울리는 목소리가 무서워 질끈 눈을 감자 남자가 낮게 숨을 내쉬고 다시 입 안을 더듬었다. 원피스 자락을 꽉 쥔채로 굳어있자 남자가 손을 당겨 목에 감았다. 두 팔이 묶이자 큰 손이 원피스 아래로 들어와 허벅지를 꽉 쥐었다. 숨이 막혔다. 이대로 죽는게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몰려올때쯤 되어서야 남자가 떨어졌다. 그대로 몸이 뒤로 넘어갔다. 거의 뜯겨지듯 원피스 앞섶이 열리고 사이로 손이 들어와 브래지어를 위로 밀어올렸다. 귓뿌리까지 확 열이 올랐다. 왼쪽 가슴이 아플 정도로 세게 꽉 쥐였다. 다시 입이 막혔다. 한참을 버티다가 고개를 돌렸다.

"아파..."
"아파?"
"와이어가 눌려서, 아파..."

남자가 고개를 들더니 가슴팍을 내려다보았다. 와이어가 여린 살을 꽉 누르고 있었다. 일림이 끙끙거리며 도망치려고 하자 남자가 원피스를 벗기고 등을 더듬어 후크를 푼 뒤에 브래지어를 당겼다. 겨우 숨통이 트였다. 색색 숨을 몰아쉬자 남자도 넥타이를 풀고 셔츠의 단추를 끌러내리다가 손을 멈췄다.

"벗겨줘."
"네?"
"네가 벗겨줘."

잠깐 머뭇거리다가 손을 뻗어 단추를 풀어주었다. 그 사이에도 남자는 일림의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은채 손으로는 가슴을 더듬었다. 심장이 쿵쿵 뛰었다. 겨우 단추를 다 풀어내리자 남자가 셔츠를 벗었다. 남의 몸을 이렇게 가까이서 마주하는건 처음이라 어색하고 낯설었다. 뜨뜻한 체온이 확 끼쳐왔다. 고개를 돌리자 남자가 다시 몸을 끌어안고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었다.

"이제 어른인데, 왜 갓난애 냄새가 나는거야."
"그래요?"
"내가 나쁜놈인것 같잖아."

좋은 사람은 아니잖아요. 일림은 목구멍에 걸린 말을 꾹 누르고 눈을 감았다. 불규칙한 호흡 소리, 시트에 피부가 스치는 소리가 귀를 후벼팠다. 지겨울만큼 가슴을 더듬거리던 남자가 아랫배를 더듬거리다가 허벅지를 꽉 쥐었다. 속옷 위로 손가락이 닿는게 느껴졌다. 눈을 감은채 죽은것처럼 누워있자 귓가로 낮은 목소리가 울렸다.

"다리 벌려."

어색하게 다리를 벌리자 남자가 성에 차지 않는듯 허벅지를 잡아 다리를 더 벌렸다. 곧 몸 속으로 낯선 이물감이 느껴졌다. 생각보다 아프진 않았지만 거북하고, 아릿한 감각에 토기가 올라왔다.

"젠장, 아니, 그게 아니라... 힘 빼. 넣을 수가 없잖아."
"네..."
"허리에서 힘 빼."

숨을 몰아쉬고 뒤척거리자 남자가 허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긴장한 탓인지 허벅지가 아팠다. 몸에서 열이 났다. 곧 남자가 낮게 신음소리를 내면서 품에 얼굴을 파묻고 몸을 밀어올렸다. 아팠다. 남자가 움직일때마다 몸 속을 엉망으로 휘저어대는 기분이 들어 멀미가 나는것 같았다. 입술을 깨물고 참았다. 정신이 하나도 없는 와중에, 남자가 일림, 하고 이름을 몇번인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싫어, 내 이름 부르지 말아요. 자꾸 눈물이 났다. 남자가 뭐라고 말해주면서 눈물을 닦아주었지만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여전히 남자에게선 향수 냄새가 났다. 싫었다. 소리를 지르고 싶을만큼 괴로웠다. 그래도 참았다. 착한 아이여야 하니까, 그래야 버림받지 않을테니까.

+++

남자는 어린애처럼 굴었다. 겨우 몸을 빠져나가고도 한참을 품에 파묻혀서 부비적거리고 여기저기 만지작대다가 잠이 들었다. 멍하게 천장을 보던 일림은 남자가 깊이 잠든걸 확인하고는 조심스럽게 침대에서 빠져나왔다. 머리가 깨질것처럼 아프고 몸이 무거웠다. 비틀비틀 욕실로 가서 욕조에 물을 받았다. 몸에 달라붙은 끈적거리는 체액은 손으로 비벼도 미끈하고 기분 나쁜 감촉이 한참 이어지면서 잘 지워지지 않았다. 한참이 지나서 욕실에서 나왔다. 샤워가운은 부드럽고 따뜻했지만 이상할 정도로 무겁게 어깨를 짓눌렀다. 남자는 옆으로 누운채 깊이 잠들어 있었다. 이불 밖으로 드러난 어깨가 쓸쓸해보였다. 침대 옆에 선 일림은 잠깐 고민하다가 이불을 당겨 빈 어깨를 덮어주었다. 다시 머리가 아프고 나른해졌다. 창가의 소파로 가서 블라인드를 걷었다. 야경이 무척 예뻤다. 오렌지색 조명이 가득한 도로를 한참 바라보던 일림은 보송보송한 배스타올을 덮고 소파에 누워 잠이 들었다.

-착한 우리 아기.

희미하게 꿈을 꾸었다. 어린 일림은 저택의 구석에서 소꿉놀이를 하고 놀고 있었다. 오후의 노란 볕이 등에 닿자 노곤노곤 잠이 왔다. 웅크리고 잠이 들자 둥실, 몸이 떠올랐다. 좋은 냄새가 났다. 아, 엄마일거야. 맞아. 놀다가 잠들면 엄마가 이렇게 안아서 이불까지 데려다줬어. 몸이 폭신폭신한 침대에 닿고 이불로 감싸였다. 기분 좋아, 일림이 웃자 따뜻한 손이 머리를 쓰다듬었다. 잘자렴, 우리 아기. 예쁜 꿈 꾸렴. 그런데, 난 엄마가 없잖아요. 누구예요? 일림은 손을 뻗어 희미한 그림자를 더듬어보았지만 잡히지 않았다.

+++

이상한 기분에 눈을 떠보니 낯선 풍경이었다. 한참을 멍하게 누워있는데 낯선 손길이 느껴졌다. 고개를 숙여보니 샤워가운 안으로 손이 들어있었다. 아, 어제 호텔에 왔었지. 그리고...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멍하니 손을 바라보는데 등 뒤에서 낮게 속삭이는 목소리가 들렸다.

"언제 씻은거야."
"일어나셨어요..."
"쥐새끼처럼 소파에서 자지 말랬잖아."

그러고보니 어제 소파에서 잠들었던것 같은데. 슬쩍 뒤를 돌아보자 남자는 눈을 감은채 일림을 꽉 끌어안고 있었다.

"추워서 깼잖아. 같이 씻고 싶었는데..."
"찝찝해서..."
"일어나서 씻어도 되잖아. 피곤하지도 않아? 종일 걷고..."
"괜찮아요."
"가만히 있어."

남자가 몸을 더 꼭 끌어안고 목덜미에 얼굴을 묻고 킁킁거렸다. 가슴을 쥔 손에도 힘이 들어갔다. 어린애 같아, 일림이 가만히 늘어져있자 남자가 팔베개를 베어주고 등을 쓰다듬어주었다. 이상하게 피곤했다. 작게 하품을 하고 눈을 비비자 남자가 물끄러미 얼굴을 보더니 웃었다. 기분이 좋은 모양이었다. 몸에 닿는 몸이 단단하고 뜨거웠다. 살며시 밀어내려고 해도 남자는 도통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목덜미에 코를 묻은 남자가 낮게 중얼거렸다.

"내가 더러워?"
"아뇨..."
"이제 그러지마. 같이 있어. 옆에 있어줘."
"네..."
"왜 소파에서 잤어."
"그냥...주무시는데 불편하실까봐."
"안불편해. 같이 자고 싶어서 호텔까지 온거잖아."
"..."
"옆에 없어서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내 옆에 있어야지."

남자가 이불 아래를 더듬어 손을 잡아 뺨에 대고 살며시 입을 맞춰주었다. 이상하게 체온이 뜨거웠다. 어색하게 뺨에 손을 댄채로 쳐다보자 남자가 빙긋 웃더니 다리로 허리를 감았다. 더 자자, 아직 새벽이야. 슬쩍 손을 내리자 남자가 다시 손을 당겨 허리에 감고 꽉 끌어안았다. 꼼짝없이 품에 얼굴을 파묻자 우리 공주님, 하고 한참을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갑갑하고 싫었다. 곧 남자는 고른 숨소리를 내며 잠이 들었다. 일림은 뜨거운 몸에 얽힌채 잠들지도, 깨지도 못한 상태로 내내 누워있었다.

+++

배는 고팠지만 입맛은 없었다. 남자가 주문해준건 핫케이크였다. 달콤한 버터 냄새가 났지만 입 안이 써서 먹고 싶지 않았다. 커피만 계속 마시고 있자 남자가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잘 먹어야지. 일림은 어색하게 웃기만 했다. 남자는 내내 일림의 손을 잡고 있었다. 다시 약지가 끊어지는것처럼 아파왔다. 거의 우겨넣듯 핫케이크를 먹었다. 다 먹지 않으면 놓아주지 않을거니까. 겨우 접시를 비우자 남자가 아이스크림까지 사주었다. 너무 달아서 토할것 같았지만 겨우겨우 먹었다. 우리 공주님. 복숭아 좋아하지? 남자가 웃었다. 일림은 그저 고개만 끄덕거렸다.

"다음주에 이사할거지?"
"으응."
"그래."

헤어지기 전, 남자는 일림의 손에 이전에 주었던 반지를 다시 끼워주었다. 이젠 빼지마, 알았지? 고개를 끄덕거리자 다시 입을 맞춰주고 한참 손을 잡고 있다가 놓아주었다. 발이 아팠다. 일림은 쭈그리고 앉아 하이힐을 벗고 단화를 신었다.

[보고 싶어.]

시설로 돌아오자마자 샤워를 했다. 작은 방으로 돌아와보니 남자에게서 연락이 와있었다. 답장을 하지 않으면 화낼거야. 일림은 한참을 망설였지만 할 말이 없었다. 온몸이 아팠다. 핸드폰을 베개 밑으로 밀어두고 쥐새끼처럼 웅크리고 누웠다. 몸이 뜨끈해졌다. 열이 나는 모양이었다. 지난밤 몸을 더듬던 손길이 다시 닿아오는것 같아 몇번인가 가위에 눌렸다. 식은땀이 송글송글 이마에 맺혔다. 창 밖으로 매미 소리가 들렸다. 다음에 태어나면 매미가 될거야. 땅 속에서 아무도 날 찾지 않도록. 세상에 나와서는 목이 터져라 울다가 죽어버릴거야. 일림은 열이 오른 머리로 이상한 꿈을 꾸며 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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