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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영이 율이 고보시절

ㅇㅇ(27.115) 2017.06.20 22:18:55
조회 1754 추천 19 댓글 7

아랫글 보고 한번 짧게 쪄봄 ㅇㅇ





너는 마지막까지 나에게 준 것이 없다고 하였지만

휘영아, 나는 너에게 받고도 또 받았다.


*


나의 아버지와 아버지와 아버지를 거슬러 나의 근원은 백정의 유전자였다. 하찮고 낮은 피에서 나는 태어났다. 나의 조부는 피를 토하며 계급의 꼭대기에 올라가기를 원했다. 그는 단발령 때 그 스스로 찾아와 더께가 내린 상투를 끊어버린 유일한 자였다. 나는 보지도 못했던 그 날의 기억이 눈에 보이는 듯 선명하다. 조부는 그가 마지막 숨을 내 쉴때까지 나의 손을 잡으며 그 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고리대금업으로 경성 바닥에서 이름이 자자하던 신 씨는 낡은 초가집을 벗어나 고래등 같은 신식 일본식 저택에서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그 날의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나는 그의 잘린 상투가 발 밑에서 굴러다니는 그 모습이 아직까지도 꿈 속에 나타난다.


휘영아, 나는 그의 손에서 내 종종머리를 잘렸다. 그는 주름이 깊게 패인 우악스러운 손으로 어린 나의 긴 머리채를 잡아 한 손에 그러쥐었다. 나의 머리는 너무나 쉽게 잘렸다. 나는 울지도 못하고 다정했던 할아버지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방금 전까지 나의 자랑이던 흑단같은 머리카락이 그의 무릎에 죽어있었다.


"율아"

"..."

"귀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남들이 너를 무시하지 못하게 높이 올라가야한다."

"..."

"금은보화를 온 몸에 두르고, 너만은 고관대작이 되어야 해."


그는 나의 죽은 긴 머리카락을 정원에 내 던지며 그렇게 말했다. 나는 비명을 지르고 싶었다. 그러나 아무런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휘영아, 우리가 만난 것은 그 날로부터 십 년도 넘은 뒤의 일이다. 나는 이미 짧은 서양식 머리가 익숙해져 있는 상태였다. 우리는 학당*의 같은 반 친구였고, 너는 그 중에서도 가장 유쾌한 녀석들 중 하나였다. 일본으로 유학을 가기를 원했던 집안 어르신들의 바람을 뿌리치고 조선 땅에 남은 것은 나의 의지였다. 나는 일본으로 가는 배삯을 받는 순간 그 어린 날 죽어버린 나의 댕기머리를 떠올렸다.


우리는 너의 품에서 구비구비 흘러나오던 춘화와 SP판에 열광했다. 황궁에 오랜 기간 약초를 대던 너의 집은 많은 사람이 오갔고 그러기에 흘러들어오는 물품이 많았다. 어린 날의 우리는 그것에 열광했다. 세필로 하나하나 그린 손바닥만한 조그마한 그림은 너의 권력이었다. 동그란 안경을 올리며 너의 가방을 여는 그 순간이 우리의 가장 짜릿한 순간이었다.


"오오!"


동그란 머리들이 모여들었다.


"덕국(독일)의 춘화라는 거냐?"

"처음 보냐?"


반에서 가장 공부를 잘하던 재영이 코를 벌름거리며 휘영의 춘화에 다가갔다. 빙긋빙긋 웃으며 재영을 놀리던 너는 예의 동그란 안경 안의 눈동자를 반짝이며 개구지게 웃었다. 휘영아, 네가 그렇게 웃는 모습은 사실, 그 이후로 나는 잘 보지 못했다. 그 당시의 우리는 안전했고, 보호받았던 유일한 시기였다. 멀찍이 떨어져있던 너와 나의 눈이 마주치면 너는 유쾌하게 내 이름을 불렀다.


"율!"


붉게 상기된 어린 날의 너의 얼굴과 씩씩했던 그 음성. 그 당시의 너는 차분하지 않았다. 감정을 숨기지 못해 많이 투닥거리기도 했고, 소리높여 짐승처럼 우는 법도 알았다. 우리는 끓어 넘치고 있었고 달리다가 넘어져 구르는 한이 있어도 멈추지 않았다. 가슴에 박힌 그 수많은 상처도 그 때의 우리는 상상하지 못했다. 너와 내가 만난 첫 페이지가 발랄함에 나는 늘 감사했다.


"어이."

"왜?"


너는 어렸을 때부터 꽤나 낮은 목소리였었는데, 그 때문인지 주변 이화학당 여자애들 몇몇이 너를 흠모하기도 하였다. 천성이 쑥맥인 너는 그 아이들의 흠모를 잘 느끼지 못하였으나 짐승과 같은 그 당시 남자아이들은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너의 시선은 언제나 또렷했다. 너는 미래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너의 그 곧은 눈길이 흔들린 것은 네 인생에 단 한 번 뿐이었다. 나는 그것을 보았다.


"내일이다."

"..."

"내일이 장례날이야."

"..."


나직히, 너는 나의 귀에 속삭였다. 우리의 등 뒤에서 일장기가 나부끼고 있었다.



"대한독립만세!"


그 날의 시작은 너로부터였다. 독립선언서가 저 멀리서 낭독되고, 그 선언문이 하늘 위로 흩뿌려진 순간, 우리의 황제가 훙하고 그의 장례식에 모인 인파들이 모두 가슴에서 선연히 빛나는 태극기를 꺼냈다. 나와 너 모두 어제 밤을 꼬박 새었지만 졸리고 피곤하지 않았다. 선연한 새벽, 우리 집 앞에 찾아온 너는 아무 말 없이 나를 안아주었다. 나는 나를 안는 너의 손 끝이 파르르 떨림을 느꼈다. 그러나 그것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교복 깊숙한 곳에 숨겼던 태극기가 심장소리에 반응했다. 너 또한 그랬으리라. 배제의 교표가 처연히 빛나는 교모를 쓴 너는 가장 맨 앞자리에서 대한의 독립을 부르짖었다. 너를 둘러싸고 있던 우리의 친구들이 학교 지하에서 며칠 밤낮을 새 등사기에 복사했던 태극기를 꺼내 휘영의 등을 따랐다. 그 속에는 나도 있었다. 등사기는 삼촌이 허세차 사둔 것을 우리 집에서 내가 업어온 것이었다.


"대한독립만세!"


우리는 달렸다. 수 많은 사람이 달렸다. 그 속에 나와 내가 있었다. 우리는 맨 앞에 있었기 때문에 곧 말을 탄 일본 순사를 코 앞에 마주했다. 내 등 뒤로 꾸역꾸역 물 밀듯이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대한독립만세! 악을 쓰는 어린 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두 손에 쥐었던 태극기를 더욱 바투 쥐었다. 내 옆에 서 있던 너의 어깨가 분노 때문인지 바르르 떨렸다. 우리는 질 수 없다. 폭발하고 있었다. 너와 나는, 아니 조선은 지금 달려가고 있었다.


"대한독립만세!"

"만세!"

"만세!"





*배제학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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