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3에서 마그누센이 본 약점 목록엔 여섯가지 항목이 기록되어 있어.
1. 아편
2. 존 왓슨
3. 아이린 애들러
4. 짐 모리어티
5. 레드비어드
6. 바스커빌의 사냥개 사건
존이랑 아편이야 더 말할 것도 없고
셜록이 아이린을 구출하고 모리어티 잔당을 소탕하는 과정에서 잠재적 적대세력을 만들었을 수 있으니 3, 4도 충분히 납득
레드비어드가 유년시절의 트라우마라는 것까지 밝혀졌으니 5까지도 모두 납득된다.
그럼 바스커빌의 사냥개 사건은 뜬금없이 왜 거기 끼여 있는 걸까?
그건 바스커빌에서 셜록이 겪은 지나칠 정도로 극단적인 패닉상태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여.
극단적인 패닉상태라. 셜록과 참 안 어울리는 말이지. 셜록은 어지간해선 겁에 질리지 않잖아? 셜록에게 위험이란 공기처럼 자연스럽지.
셜록은 문제를 푸는 걸 업으로 하는 사람이고, 따라서 그 어떤 문제가 닥쳐도 패닉이나 감상에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결과를 내는 데 집중해. 스스로나 주변인물들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 상황에서도 셜록은 침착하게 상황을 잘 살펴 돌파구를 모색하지.
그럼 대체 그런 그를 두렵게 만드는 스위치는 무엇일까?
그건 셜록 스스로가 무력감을 느끼는 상황이다.
셜록은 자신의 지적 문제해결능력에 한계란 없다는 걸 무의식중에서 항상 유러스의 환영에게 증명하며 살아가야만 하는 사람이야.
봉인된 트라우마가 일으키는 강박증이지. 그 강박증이야말로 셜록을 '세상에 단 하나뿐인 자문탐정'이 되게 만들었어.
그에게 자신이 해결 못하는 문제나 상황이란 게 있어서는 안돼. 셜록에게 가장 공포스러운 건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는거야.
그건 셜록이 오만하고 겸손할 줄 모르는 인물이라서가 아니야. 오히려 그건 놀랍도록 순수하고 애처로운 감정들에 의한 거지.
셜록에게 패배는 곧 상실이야. 왜냐하면 유러스는 자신이 아무리 울며 빌어도 게임의 패자에게는 절대 자비를 베풀지 않았으니까.
그러니 셜록의 무의식은, 옛날에 겪었던 가슴이 깨져버릴 듯한 상실을 겪지 않으려면 자신에게 주어진 문제를 반드시 풀어내야 한다며 셜록 스스로를 쥐어짜지.
그래서 셜록은 게임에서 승리하는데 필요한 것들만 남기고 모조리 스스로에게서 거세시켜버려. 사랑도, 모럴도, 인간관계가 불러일으키는 강력한 감정이입 같은 것들. 그런 건 종종 스스로를 패닉하게 만들어서 셜록 스스로가 문제를 풀어내는데 시간을 낭비시킬 뿐이거든. 그리고 그렇게 낭비된 시간들은 빅터를 죽음으로 이끌었지. 셜록이 왜 그렇게 감정이라면 학을 떼고, 자문탐정이라는 자신의 전문성에 집착하는지를 알 수 있는 부분이야.
그런데 바스커빌 사건에서 거대견의 붉은 눈과 눈이 마주친 순간 셜록은 처음으로 온 몸을 뒤흔드는 강력한 패배의 예감에 그만 정신이 아득해져 버려.
수학문제 풀다가 갑자기 너무 어려운 걸 마주치면 아예 손대볼 엄두도 못내고 띠잉 하게 되는 때가 있잖아? 주어진 문제를 풀기는커녕 셜록은 자기가 오늘 밤 본 게 뭐였는지조차 조리있게 설명을 못하겠어. 그리고 그건 셜록이 자신의 인식능력의 한계를 인정해야 하는 상황을 의미하지.
-(손을 떨며) 허.... 날 좀 봐, 존. 내가 두려워하고 있어.
-난 항상 내 자신을 냉담하게 유지할 수 있었지. 감정들로부터 이혼한 채로 말이야.
-헌데 봐. 이젠 내 몸이 날 배반하고 있어.
-흥미롭지? 감정이라는게. 렌즈 위의 티끌이자 연고 속의 파리같지.
이정도로 셜록이 손 한번 못 대볼 만큼 강력한 무력감을 느낀 건 스스로는 기억도 못하는 과거의 경험 뿐이었을 거야. 빅터에 대한 걱정과 불안에 패닉해서 유러스의 문제에 오롯이 집중하지 못했던 자신. 기시감을 느낀 셜록의 무의식은 공포에 질린 채 비명을 질러.
세상에 내가 그 꼴을 또 안 당하려고 이렇게나 노력해왔는데! 안돼 이번엔 완벽하게 지겠어, 이번에야말로 동풍이 그때처럼 불어와서 나와 나의 소중한 사람들을 모조리 휩쓸어가 버릴거야!
결국 바스커빌에서 느낀 셜록의 거대한 인지적 무력감은 유러스에 대한 트라우마 스위치를 핀포인트로 눌러버리는 결과가 됐다고 봐. 암만 봐도 셜록의 반응은 단순한 패닉이라기보다 트라우마적인 반응인걸로 보이거든.
즉 바스커빌이란 약점이 의미하는 건, 레드비어드 사건에 의해 정착된 셜록의 성격적 결함ㅡ 즉, 셜록의 극단적인 승부근성이야.
셜록은 게임으로 승부하길 지나치게 좋아하고, 승부의 결과에도 지나치게 연연하지. 꼼짝없이 지겠다고 생각했을 때 걷잡을 수 없이 패닉에 빠질 정도에는. 거기다 반드시 게임에서 이기겠다고 생각한 나머지 온갖 만행이나 무모한 짓도 서슴지 않아. 마이크로프트의 출입증을 당당히 사용하질 않나, 무단점거나 불법침입 같은건 애교수준이지.
그래서 마그누센은 셜록의 이 결함을 이용해서 잘만 요리하면 자기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게 손에 들어오지 않을까 판을 그리기 시작하는 거야. 일단 한번 미끼를 던지면 셜록은 반드시 무는 성격이고, 게임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라면 자기 형의 이름을 파는 것도 서슴지 않았으니, 좀 더 커다란 미끼(존과 메리)를 연이어 던진다면 아예 마이크로프트를 통째로 끌고와서 자신에게 바칠거라는 생각에 대단히 만족스러워지는 거지.
그러니 마그누센이 셜록의 플랫에 찾아와 품에서 편지를 슬쩍 꺼내보인 순간, 마그누센의 함정게임은 시작되었던 거야.
-여기 봐 이 멍청한 물고기야, 네가 좋아한다는 먹이 가져왔다. 맛있겠지?
그렇게 잘 보이도록 흔들어보이고는 뒤로는 존과 메리라는 치명적인 낚싯바늘을 준비하는거야. 셜록이 호기심을 느끼고 떡밥을 입에 무는 순간, 낚싯바늘이 연이어 입 안을 꿰뚫을 거고, 절대 낚싯바늘을 놓고 도망갈 줄 모르는 이 한심한 물고기는 끌려가지 않으려고 옆에 있던 비단잉어까지 텁! 붙들거고ㅡ 그거야말로 마그누센이 낚길 바랐던 진짜 월척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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