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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 way ticket

선생님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08.10.07 12:4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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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 way ticket>


 J. 네가 이 편지를 읽을 때 즈음에는 나는 햇볕이 잘 드는 기차의 창가에 기대 있을거야. 지나가는 손수레에서 옛날처럼 사이다도 사고 삶은 계란도 사먹겠지. 그래. 삶은 계란처럼 완전히 둥글 수는 없어. 어딘가는 들어가고 어딘가는 나와 있는, 적당한 타원형에서 우리는 타협을 맺고 살아가. 너를 만났던 시간들은 내 삶에서 어떤 부분이었을까. 내 십대의 기억들이 삼십대의 생과 타협하는 지점에서 나는 너를 떠나기로 했어. 아쉬워하진 마. 유행가마냥 우리의 감정에 있어서 계속 석탄을 퍼 넣었던 것은 나였으니까…. 다 꺼진 화로에 뺨을 부벼대는 것은 너에겐 어울리지 않는 일이야.

 우체국 직원은 소포를 계랑기에 올려놓으며 무게를 재었다. 바싹 마른 운동장의 흙빛 봉투는 얄팍했다. 직원은 자꾸 흘러내리는 앞머리를 옆으로 넘기며 타자를 쳤다. 문득 그녀에게 머리핀을 사 주고 싶었다. 아니, 봉투를 뜯어 안에 있는 머리핀을 줄까도 생각했다. 붉은 색으로 염한 싸구려 장미가 장식되어 있는 것, 종로 거리에 수두룩한 좌판 아무데서나 일이천원을 주면 그와 같은 것들을 집어올 수 있었다. 그녀는 기어이 옷섶에 끼워둔 머리핀을 꺼내 꽂으며 내게 사무적인 것들을 물었다. 목소리에는 남도 어디즈음의 옅은 사투리가 남아있었다. 받는 사람의 이름은요?……. 받는 사람의 이름은, J에요.

 언제부터였는지 나는 너를 J라고 부르기 시작했어. 아마 교정에 목련이 흐드러지게 핀 봄이었을거야. 처음 등교하는 교실에는 소금기 섞인 봄 냄새가 가득했고 가끔 떨어지는 목련을 밟으면 구두 끝마저 갈빛으로 물드는 것 같았어. 아침 햇살이 갈라지며 너의 얼굴을 비추었을 때 나는 네 얼굴에서 청춘이란 연둣빛 단어가 뚜욱 뚝 떨어지는 것을 보았지. 어느 날 본 소설책에서 주인공이 그의 사랑하는 사람의 첫 이니셜을 따 부르는 것을 보았어. 나는 그 단순하고도 명료한 행위에 매혹되었어. 단순한 겉멋이었을까. 내가 너에게 품고 있는 감정들을 다른 사람들에게는 알리고 싶지 않았어. 십대의 아이들만이 가질 수 있는 열뜬 감정이었지. 너에게 말을 걸 수 있는 유일한 명분은 우리가 같은 반이었다는 것 뿐이었어. 나는 그 방패 뒤에 철저히 숨기로 했었지만 계절이 변하고 시간이 흐를 수록 가끔씩, 아주 가끔씩 터져나오는 너를 향한 열망들은 실수처럼 너의 이니셜을 흘리는 것으로, 그 횟수가 늘어나는 것으로 나를 아프게 했어. J. 제이, 라고 소리내어 보면 속 깊은 곳에서 토해내는 숨결같은 소리가 나…. 항상 그리움이 묻어나, 너를 부르면, 소금기가 서걱거리는 바닷바람 같은 소리가 나….

 소포를 부치는 데에는 천원 남짓한 돈이 들었다. 우체국을 빠져나오며 햇살이 눈부셔 조금 내려오면 있는 까페에서 커피를 사 손에 들었다. 계란다운 계란을 만들기 위해서는 커피 한 잔보다 못한 돈이 들었다. 시럽을 넣지 않은 커피는 조금 쓴 맛이 났다. 투명한 플라스틱 안으로 보이는 커피는 교정을 뒤덮던, 갈빛으로 지던 목련이었다. 가로수길을 걸어내려오며 기차역으로 갔다. 주중이었는데도 분주했다. 창구 앞에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줄을 서서 기다리면서 얼음이 녹아 묽어진 커피를 들이켰다. 이제는 쓴 맛도 나지 않았다. 주머니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핸드폰을 꺼내보니 여자에게 문자가 와 있었다. 내 앞 사람이 용무를 끝냈고 나는 직원에게 가 열차표를 부탁했다.「결혼식도 이제 일주일 남았어요. 되도록 빨리 올라와 주어요」… 왕복으로 하시겠어요? … 아니요, 편도요. 편도선이 부어오른 듯 목소리가 탁했다. 열차표를 받아들고 플랫폼으로 내려가 열차를 탔다. 역을 벗어나는 열차 차창을 바라보며 나는 혼곤해졌다. 눈 앞이 감겼다. 역 이름이 아득해질 때 귓가에 제이, 라는 소리가 스쳐 지나간 것 같았다. 열차가 선로를 달리는 소리만 났던 것도 같다. 잠이 들 듯 말 듯 하면서 그 두 소리가 계속 귓바퀴에 맴돌다 흩어지면서 이제는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다.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갑자기 옆 자리에 앉은 여자의 헤드셋에서 노래가 새어나와 마음을 훑고 지나갔다. One way ticket, one way ticket….


<끝>


2008. 8. 24 作.
문득 라디오에서 들려왔던 노래를 듣고.

정신없는 짬밥 때 쓴 글이라 많이 혼란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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