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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고

ㅇㅇ(110.35) 2017.08.17 07:35:59
조회 136 추천 0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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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지가 와 있었다. 한참을 노트북 앞에 앉아 수많은 글씨와 씨름을 하고 있다가, 문득 켜 본 핸드폰에서 새로운 메시지가 와 있었다. 시간은 새벽 3시. 메시지가 올 시간은 아니었다. 나는 기대감보단 약간의 두려움을 안고 메시지를 확인한다. 그 메시지에 적혀 있는 것은 '부고'라는 짧은 글과 함께 시작되는 사무적인 말투의 짧은 글이 있었다.

 비록 매일 만나던 사람은 아니었지만, 아는 사람의 죽음을 맞이했음에도, 나의 감정은 메시지에 드러난 사무적인 말투처럼 담담했다. 나는 그것이 참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김영민. 대학교 동기였다. 신입생 시절에는 제법 친하게 지냈던 친구 중 하나였다. 우리는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인기종목의 선수가 아니었고, 우리는 다수와 어울리는 관중이 아니었다. 우리는 둘 다 바라봐주는 사람도, 빛나는 자신도 없는 그저 그런 사람이었다. 어쩌면 그러한 서로의 처지 때문에 가까워졌는지도 모르겠다.

 지방에서 올라왔던 그는 처음에는 어눌하고 숫기도 없어,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지만, (나또한 그랬다) 어느 정도 친해지고 난 뒤의 그는 정말로 말이 많은 사람이었다. 나는 그에게 “이렇게 말이 많은데 왜 다른 사람들하고는 말을 잘 안하는거야?” 라고 물었었는데, 후에 그가 말하기로는.

 

 "나는 말이 많지만, 아무에게나 아무 말을 하는 것은 너무 힘들어. 그 사람이 나의 말에 대해 어떠한 생각을 할지, 나는 그것이 짐작되지 않는 것이 너무 두렵거든. "라고 답했다.

 

  나는 그 말에 "나한테는 아무 말이나 해도 된다는 거야?" 라고 물었었는데, 그는 "응, 너는 괜찮아. 너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얼굴에 다 드러나거든!"이라고 답했다. 나는 그의 그 말에 딱히 부정하지 못했다. 나는 직설적인 사람이었고, 그것이 얼굴에 드러나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그저 “너도 마찬가지면서!”라고 대꾸할 뿐이었다.

 그렇게 그와 나는 그가 군대에 간다고 떠나기 전까지는 서로 잘 지냈다. 하지만 그가 군대에 간 이후, 나는 졸업을 했고, 그 뒤로는 자연스레 소원해져 최근 5년간은 연락 한번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받은 소식이 이 '부고'라는 메시지였다.

 

 

 

  장례식 장소는 꽤 가까웠다. 서대문구에 위치한 세브란스 병원. 그곳에 그가 있었다.

 나는 흑색 정장 바지에 노출이 없는 까만 블라우스를 걸친 뒤, 그곳을 향했다. 아메리칸 영화에서 나오는 것처럼 까만 장갑-실제로 구매해 놓은 것이 있었다-도 가지고 갈까 고민하다가, 결국 그러지 않기로 했다.

 이미 완연한 밤이 된 서울의 거리는 생각보다 밝았다. 길거리의 가로등 빛은 이미 자연의 섭리조차 쉽게 깨부숴버린 지 오래다. 파란 버스를 타고 하얀 병원의 입구에 들어서자, 짙은 회색의 공기가 나를 짓누른다. 이 무거운 공기만큼은 이 밝은 전등 빛으로도 쫓을 수 없는 듯 하다.

 병원 입구를 지나 건물로 들어서 장례식 입구에 도착하자, 길쭉한 테이블이 줄지어있는 하나의 방이 보였다. 그 테이블들 위에는 간단한 음식들과 각종 술병들이 올려져 있었다. 나는 아직도 왜 장례식장에서 술을 먹는 것인지 이해하지 못한다. 테이블에 앉아있는 누군가가 내게 말을 걸었다. 민수였다.

 

 

 

  "왔어?, 오랜만이네"

 

 

  "응. 민수 너도 오랜만이네. "  

 

 

  우리는 간단히 인사를 나눴고, 마땅히 거처할 곳이 없던 나는 그의 주변에 자리 잡았다. 그  곳에는 대학친구들이 몇몇 앉아 있었다. 나는 그들의 면면을 살폈지만, 사실 얼굴만 대충 알 뿐이지 잘 아는 사이의 친구는 없었다. 그들은 이미 술을 그득히 마셨는지 벌게진 얼굴로 나를 반겼다. 그들은 서로간의 안부를 묻고는 경제나, 정치에 대해 시답잖은 얘기들을 떠들었다. 그들과 친하지 않았던 나는, 어물전의 꼴뚜기처럼 어물쩍 하게 앉아 시간을 보냈다.

 한 편에는 죽은 영민의 영정사진이 보였다. 그의 사진은 어떠한 기분도 찾아 낼 수 없는 무표정한 사진이었는데, 심지어 그 사진에서의 그는 정면을 바라보고 있지도 않았다. 나는 문득 그가 사진을 찍을때면 항상 "사진을 찍으면 영혼이 빠져나간대"라며 거부했던 것이 떠올라 웃음이 나왔다. 아마도 저 무표정하고 성의없는 사진이 영정사진으로 걸리게 된 데에는 그의 그러한 철학이 반영되었을 것이다. 찍은 사진이 별로 없으니, 영정사진으로 쓸만한 것이 마땅히 있을 리 없었다.

  그렇게 앉아 있는 도중에 한 얘기를 듣게 되었다. 그것은 영민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였는데, 민수의 말로는 군대를 제대한 이후, 일년 가까운 시간동안 아무와도 만나지 않고 있다가, 갑자기 자살을 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다소 놀랐지만 이내 진정했다.

 

 - 영민이는 나와 많이 닮은 아이였다

 

 

  나는 영민이의 영정사진을 다시금 바라보았다. 그의 눈동자에 죽은 샤를의 눈동자가 보였다. 병실 밖으로 나오자 여전히 칙칙한 밤공기가 나를 맞이했다. 나는 이상하리만치 무거워진 발걸음을 억지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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