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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담덕만] 무제 1

노넴(59.6) 2018.02.28 12:55:35
조회 1536 추천 13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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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전에 쓴 글이야.

파일 뒤지다 보니까 나오길래 오랜만에 읽다보니 내가 싼 글을 보고 비덕 뽕이 차올라서 조금씩 이어보려고 해.

갤에도 올렸었나 기억은 안나네. 아마 올리려다 말았던거 같아.


여기서는 '덕만'과 '여왕'과 '인명'은 각기 다른 인물들이야.

뒤죽박죽이라 많이 정신 없을거 같은데 천천히 풀어볼게.


쓴데까지는 수정 없이 그냥 올려.

오래전 글이니 이상한 부분이 있더라도 그냥 넘어가주길 바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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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더니 딱 그짝이었다. 진골이라는 높은 어르신들은 물론이고 서라벌에 넘쳐난다는 귀족가계의 자제도 몇 보이지 않았다. 너나할것 없이 저와 똑 닮은 그들을 보니 오늘도 찾는 이는 없었다. 덕만은 오늘도 허탕이구나, 라고 중얼거리며 애꿎은 버드나무 풀잎을 뜯어 바람에 날려보냈다. 수련장 서른바퀴와 맞바꾸어 얻어낸 외출시간이 허무하게 끝나가는 것을 못내 억울해하던 덕만은 마지막으로 기루앞을 기웃거렸다. 아직 홍등이 내걸리긴 이른 시간이어서 문은 굳게 닫혀있던 참이었다. 볼에 바람을 넣어 빵빵하게 부풀리고 길가의 돌맹이를 걷어차며 돌아선 덕만은 저도 모르게 어! 하고 작은 탄성을 내질렀다. 그리도 시간을 허비하게 하던 원인이 그녀의 눈앞에 떡하니 나타난 것이다. 덕만은 재빨리 기루 옆의 커다란 나무 밑으로 숨어들었다. 빼꼼 고개를 내밀고 눈을 가늘게 뜬다. 그림움과 연모가 뒤섞인 시선이 향한것은 어느 상인의 배웅을 받으며 조곤조곤 대화를 나누고 있는 칠흑같은 사내였다. 덕만은 그사이 숨이 막힐것만 같은 벅찬 감동에 눈물이 찔끔 흐르는 것을 대충 닦아내었다. 얼마만에 보는 그이던가. 꿈에는 잘만 나타나 저를 괴롭히더니, 현실에서는 머리카락 한올조차도 쉬이 볼 수 없는 사내였다. 최근 여왕의 교지를 받아 신설 부서인 사량부를 도맡았다는 이야기는 얼핏 들었지만 그렇게나 바쁠줄은 몰랐다. 오늘도 낭도죽방의 믿을만한(?) 정보로 사량부령이 요 근래 자주 시가지에 나타난다는 이야기를 듣고 외출을 한 참이었다. 이런것이라면 차라리 전쟁터를 누비고, 돌아오면 한동안은 하릴없이 화랑들의 연무장을 기웃거리던 상장군일적이 그를 보기에는 더 좋았다. 덕만은 그를 사무일에 묶어둔 여왕이 얄미웠다. 같은 여인으로써 여왕이 하고 있는 생각이 빤히 보이는 것 같았다. 신국의 모든 사내가 여왕님의 것은 아니라구요. 누가 들었다면 경을 치다 못해 황제모독죄로 참수까지 당할 수 있을 만한 건방진 말이었지만 그 근처에서 그녀의 말을 듣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때, 사량부령이 걸음을 옮긴다. 가마가 뒤따름에도 그는 여유를 즐기고자 싶었는지 천천히 걷기만 했다. 오후의 따듯한 햇살이 나무 사이사이마다 내려 그를 비추었다. 찰나의 섬광처럼 시야에 박혀들어오는 사량부령의 모습 하나하나에 덕만은 설레이는 심장을 부여잡고 그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오후의 반이 그렇게 지나고 있었다.





돌아오니 곰의 포효같은 유신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여함산 꼭데기에 있는 몇 안남은 바위를 오늘도 부수고 왔는지 지친기색이 역력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의 훈육이 사그라들지는 않는 것이다. 참으로 우직하고 미련한 양반같으니. 덕만이 고개를 조아리며 연신 죄송합니다를 읊으면서도 그렇게 투덜거렸다. 이런 답답한 인사를 부마라고 데리고 살 인명공주가 무척이나 불쌍해지려 하고 있었다.


 


"너는 또 혼이나고 있구나."


 


낮은 웃음을 머금은 목소리가 불쑥 그들사이에 끼어들었다. 잊을리 없는 그의 목소리였다. 아까 성문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봤는데, 비밀통로로 들어온 자신이 더 빨랐던 모양이다. 가마꾼은 보이지 않았다. 어딘가에 들렀다 지나는 중이었을 수도 있다. 그러던 말던 비담이 찾아온 것에 대해 무척이나 기분이 좋아진 덕만이 해사하게 웃으며 그를 반기자 덩달아 웃어주던 사량부령에게 유신이 말을 건냈다.


 


"오셨습니까. 바쁘실텐데 여기까진 어인일이십니까."


"오랜만에 몸이나 풀까하고. 헌데..."


 


그가 눈쌀을 찌푸리며 유신을 훑었다. 영 제힘을 못쓸것 같이 엉망인 모습 때문이었다. 유신이 어정쩡하게 서있는 것을 보고 덕만이 거 꼬소하다 하고 키득거린다.  


 


"낭도덕만."


"예, 예!"


"네가 내 상대가 되어다오."


"예...예?! 제, 제가요??"


 


사량부령은 화랑부터 시작해 순식간에 전쟁영웅이 된 신국의 검귀였다. 문관이 되어버린 지금에도 어느 무관에게도 지지 않을 만큼 여전히 그 기세가 대단한 사내였다. 상장군일적엔 가끔 수련장에 찾아와 화랑들을 상대로 검을 맞추기도 했지만 어느한명 그를 쉬이 이기는 것을 보지 못했다. 차라리 유신의 무지막지한 칼을 받는 것이 나을것이다. 적어도 느릿한 그 검은 피하기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덕만이 울상을 지으며 저는 전혀 상대가 안될텐데요 하고 중얼거리자 사량부령이 피식 웃었다. 허수아비와 노는 것 보다는 재밌지 않겠느냐.



검을 들기에는 보기에도 불편해 보이는 펄럭거리는 소매자락을 무명천을 덧대어 빳빳하게 조여 묶은 그가 유신에게서 목검을 받아 들었다. 두어차례 허공을 향해 팔을 휘두르자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서늘하게 울렸다.


 


"비담공."


 


멀리서 갸냘픈 새소리 같은 것이 들린 것 같았다. 덕만은 그것이 공주 인명의 목소리라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귓속을 후벼댔다. 그러나 금방이라도 저를 향해 목검을 휘두를 것 같았던 그가 몸을 돌리는 것을 보곤 그를 따라 시선을 들었다가 허둥지둥 고개를 조아린다. 자박자박, 소리도 없이 우아하게 걸어온 공주인명이 그를향해 웃는다.


 


"비담공, 사량부에 없다 하시더니 예 있으셨습니까?"


"저를 찾으셨습니까."


"폐하께서 공을 애타게 찾으시더이다."


 


그녀가 비릿하게 웃었다. 비담이 딱딱하게 얼굴을 굳히고 아무말 없이 서 있었다. 인명이 비담의 주위를 훑는다. 곧 혼례를 올릴 예정인 유신과 낯설지 않은 낭도 한명. 인명은 덕만을 빤히 바라보았다. 사내분장을 하고 있기는 하나 엄연히 여인인지라 덕만은 겉에서 부터 여느 사내들과는 다른 아름다움이 묻어나고 있었다. 같은 여인으로써 그것을 알아본 것인지 인명이 묘한 표정을 지었다. 비담이 목검을 들고 있는 손 으로 길을트듯 내밀었다. 가자는 뜻이다. 공주가 살풋 웃으며 먼저 자리를 뜨고 뒷따라 비담도 수련장을 벗어났다. 다행인것인지, 아닌것인지. 덕만이 심장이 벌렁거리던 것을 잠재우고 나서야 공주와 비담이 사라진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역시나 무척 고귀하고, 아름다우신 공주님... 과연 자신도 저리 될 수나 있을까. 사량부령에게 어울리는 여인이 되어 그에게 연모하는 이 마음을 전할 날이 오기는 할까. 덕만은 괜시리 눈시울이 붉어져 유신에게 들킬새라 얼른 산채쪽으로 뛰쳐갔다. 덩그러니 혼자남은 유신은 방금 전 비담과 인명의 묘한 기류에 그 둔한 마음이 심난함으로 바뀌어 씁쓸하게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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