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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5회를 기다리며 쓰는 작은 감상기

ㅇㅇ(175.193) 2017.04.20 17:00:03
조회 1384 추천 35 댓글 19

글쟁이가 되고 싶었던 나로선 작가를 주인공으로 하는 시카고 타자기의 소식을 들었을 때 무척 기뻤어. 특히나 재능있는 배우가 작가 역할을 한다니까 더욱 기대가 갔고. 하지만 글쟁이를 포기하고 당장의 일에만 집중하는 나에게 드라마는 일종의 사치품이었고 TV를 켤 수도 없었어.


그런데 어느 날 글쟁이가 된 지인이 시카고 타자기를 봤냐고 나에게 묻더라. 드라마의 이름은 들어봤지만 내용을 정확히 모른다는 말에, 글쟁이 지인은 꼭 한번 봐야한다고 말했고. 무심결에 3회를 봤고 4회를 봤어. 그리고 이 드라마가 겉으로 보기엔 쉽게 소비되는 대중 영상물이지만, 상당량의 문학적 수사들이 넘쳐단다는 걸 알았어. 그래서 1회와 2회를 보기 시작했고 지금은 5회를 기다리는 중이야. 몇가지 현실적이지 않은 부분들이 있기는 하지. 그러나 판타지와 미스터리 요소를 적절히 섞은 드라마에게서 어떻게든 작은 흠들을 찾아내려는 시도는 좋지 않다고 생각해. 충분한 전달력과 오락적 재미를 문제 삼을 수도 있겠지만, 독자이자 시청자로서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 내는 창작자의 의도와 주제 의식을 알아보려는 일종의 예의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


써브웨이에서 오로지 글에만 집중하는 세주를 볼 때 나의 꿈이 떠올랐어. 지금은 업으로서 포기했다고 하지만, 글쟁이로서의 꿈은 영원히 버릴 수가 없어. 글은 말과 달리 거짓말에 취약해. 글을 쓰면서 오롯한 자신을 내보일 수도 있고 표현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도 있고 우울을 억누르기도 해. 전형화된 틀에 얽매여 표현하는 것조차 두려워할 때, 글은 글쓰는 당사자의 훌륭한 감정의 기폭제이자 적절한 배출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 그렇게 쓰여진 글이 독자들에게 만족과 행복감, 카타르시스를 전해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것일테고. 습작하던 시절의 세주와 설의 대화를 들으며 나는 그렇게도 글이 생각나더라. 글쟁이들을 다룬 어느 것들보다 현실적으로 와닿은 장면이었어. 어쩌면 세주도 과거의 기억을 떨쳐내고 시련을 이겨내고자 그렇게도 무작정 글을 썼을 거야.


기획의도를 읽었어. 따뜻한 손길이 다시 삶의 방향으로 이끈다고 쓰여 있더라. 써브웨이 씬에서 일종이 '넛지'를 당한 나로선 앞으로도 이 드라마의 따뜻한 손길이 어디에서 튀어나올 지 기대하면서 볼 듯 해. 그리고 작가의 불안, 예민함, 우울, 욕구, 수치심을 뻔한 장치로 사용하지 않고 적절하게 묘사한 점도 앞으로를 기대하게 만들었어. 그리고 기획의도에서 올드한 감정이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도 응원이 된다고 했던가? 기계적으로 빠르게 살아가는 삶 속에서 상징과 은유를 하나씩 곱씹어보고 낡은 것으로 치부되는 것들을 다시 돌아보게 하는 재미가 있어. 이 점이 누군가에게 썩 마음에 들지 않는 포인트가 될 수도 있지만, 누군가는 이 점을 통해 드라마의 매력을 알아가는 거겠지. 속도는 다소 느릴 수 있겠지만 방향은 명확하고 은근한 멋이 있잖아.


밑에서 글을 읽으니 기자들에 대한 얘기가 있더라. 그들도 글쟁이로서 잠깐의 꿈을 갖고 있었고, 여전히 스스로를 글쟁이라 생각한다면 이 드라마를 곱씹어 보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 한 때의 기억을 떠올린다면, 틀에 맞춰 훈련받아 기계적으로 글을 찍어내야 할 때는 내가 글을 쓰는 것인지 글이 나를 쓰는 건지 헷갈려. 그것이 업이 될 때는 내가 쓰는 것이 글이라는 사실도 까먹을 때가 많아. 어쩌면 세주가 지석 때문에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된 채로 슬럼프에 빠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을 거야. 그렇지만 이 드라마는 세주가 무엇으로 어떻게 극복하고 나아가느냐 집중할 테니, 작가적 권태와 피로감을 가졌던 이들에게 희망가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해. 은근한 멋을 보지 못하고 오로지 기계적 글쓰기에만 집중했던 이들이라면. 물론 이것은 사족이고.



시타갤에는 처음 글 쓰는데 문제될 것 있으면 얘기해줘.

갤에서는 셀털하면 안 된다지만 이 정도로 쓰지 않고는 도저히 드라마에 대한 얘기를 할 수가 없었어.




출처: 시카고 타자기 갤러리 [원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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