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비에 옷 젖듯이, 

오며가며 보던 이 드라마를 언제부터인가 

토요일에 약속이라도 생기면 시간을 못맞출까 노심초사하게 

52회를 마무리하고 나니

결국 이 모든 것이, 

양 여사의 딸 바꿔치기,

아니 좀 더 근원을 따라 올라가자면,

서태수가 아버지의 노릇을 제대로 하지 못했던,

그 '원죄'로 부터 비롯되었다는 것이 확연해 지더라.

그러니 서태수네 일가의 문제였던 거지,

그런데 그 서태수네 문제가 해성과 연결이 되고, 

다시 거기서 최도경과 서지안이 얽히게 되면서 복잡해지네

하지만, 서태수도, 서지안도 

자신들이 저지른 원죄에서 마지막까지 헤어나지 못했어.

죽어가는 순간까지 사랑하는 이 앞에서 당당해질 딸을 위해 전력투구한 아빠의 모습이 그걸 증명해

우리가 전율했던 서지안의 '니가 나한테 해준 게 뭐 있느냐'는 이 말은 

부부싸움 혹은 연애 좀 해본 사람이라면 다 알겠지만,

결국 자존감, 자기 혐오로 부터 비롯된 거지.

그래 서태수네는 52회 동안, 

자살 시도를 하고 목나행을 해도,

그 원죄로부터 벗어나지 못했지

우리는 얼마나 냉소했어, 

되도 않는 무역맨의 명탐정쑈에, 하지만 그렇게라도 빛을 갚아야 할 만큼.

그런데 이렇게 자기 혐오와 연민으로 똘똘 뭉친 이 가족의, 큰 딸, 

심지어 부성애의 그늘이 큰 서지안을 사랑하게 된 최도경은 참 '된 사람'이더라. 

서지안이 그렇게 자신의 앞에서 매번 퍼부을 때마다, 

곡성이라 칭할 정도로, 눈이 돌아가서 퍼부을 때마다, 한 두번도 아니고, 최도경씨 하면서

우리가 다 오죽했으면, 도경이가 뭘 안해준 게 있냐고 대한 원통해 하는데

도경이는 그러지 않더라,

외려 우리의 억울함과 반대로, 조금 더, 지안이의 입장으로 한 발자국씩 들어갔지.

심지어 자신이 해성을 나와서 그 고생을 했던 시간조차,

자신의 이기적인 사랑이었다며 반성하면서,

도경이의 시간은 얼마든지, 내가 널 위해서 뭘 했는데 하면서 반격할 수 있는 거였는데,

도경이는 안그랬어,

처음 담을 타던 지안이를 데리고 편의점에서 맥주를 마실 때 흔쾌히 지안이의 마음을 받아주던 그 때처럼, 

언제나 도경이는 자신의 벽을 부수고, 지안이를 서슴치 않고 받아들여 주더라.

드라마 처음에 도경이가 노블리스 오블리제 할 때 사실 쫌 웃겼거던,

그런데 어제 52회를 마치고 나니, 

최도경이야 말로, 정말 이 단어에 가장 어울리는 사람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어. 

사랑을 셈으로 하며 자기 연민과 혐오에 빠진 지안이를 넓게 보고, 품어줄 수 있는 사랑을 하는 사람

결국 제 아무리 명탐정 쇼를 벌여도 지안이네가 저지른 그 패륜의 범죄는 어디가는 게 아닌데, 

그런거 다 넘기고, 심지어 니가 빚졌다는 말까지도 품을 수 있는 사람, 

사랑해서 기꺼이 약자가 되어주고, 기다려 줄 수 있는 

그건 우리가 '호구'라 했지만, 결국은 '품'이지.

끝까지 서지안은 최도경을 알아주지도 않았고, 사과하지도 않았지만, 

그런 것따위 문제 삼지 않고, 계산하지 않고, 

사랑에 담백하고 솔직한 저 품이 넓은 남자때문에,

52회를 여운있게 보낼 수 있었어.

그런데 좀 헷갈리더라, 

분명 최도경이란 캐릭터를 만든 건 작가인데,

그 최도경을 살아움직이게 만든 건 자꾸 배우같단 생각이 드니 말이야 ㅎ 

대본의 최도경은 아마 우리가 만난 최도경만큼은 멋지지 않았을 거 같단 생각이 드네,

마지막 미소를 배시시 무는 지안이를 보며, 

도대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회의 표정을 짓는 저 배우의 내공에 감탄하며,

그간 저 배우를 쉽게 재단하고 폄하했던 것을 사과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