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랑하는 생활

                                     윤상호


나는 우선 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돈이  
지금 돈으로 한 오십만원쯤 생기기도 하는
생활을 사랑한다
그러면 그 돈으로 청량리 위생병원에
꼬맨 몸을 입원시키고 싶다
나는 깨끗한 침대에 누웠다가
하루에 한두 번씩 덥고 깨끗한 물로 목욕하고 싶다

그리고 홍슨생에게 결혼식날 사 주지 못한
축하 선물을 하나 사주고
색희에게는 비로드 팬티를 여러 장 사주고 싶다

그리고 내 것으로 점잖고 산뜻한 각목용 칼을 몇 개 사고 싶다
가게를 하느라 바빠서 적조하여진 친구들을
우리 집에 청해오고 싶다
색희는 신이 나서 도마질을 할 것이다

나는 아홉 평 건물에 땅이 오십 평이나 되는
나의 집을 좋아한다
재목은 쓰지 못하고 흙으로 지은 집이지만
내 집이니까 좋아한다
각목을 깎을 작업실이 있고, 집 내어놓으라는 말을
아니 들을 터이니 좋다

내 수제 각목들은 언제나 제 자리에 있을 수 있고,
앞으로 오랫동안 이 집에서 살면 집을 몰라서
놀러 오지 못할 친구는 없을 것이다

나는 수능날이나 모의고사날 아침에는 컴싸를
들고 수험장에 가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그러나 그것은 될 수 없는 일이다
여름이면 까맣고 얇은 천의 셔츠를 입고
빽구두를 신고 클럽을 가기 좋아한다

나는 나의 시간과 기운을 다 팔아버리지 않고,
나의 마지막 십분지 일이라도 남겨서
자유와 한가를 즐길 수 있는 생활을 하고 싶다

나는 비 오시는 날 저녁 때,
뒷골목에서 풍기는 피 냄새를 기억한다
새로운  똘마니의 땀냄새, 담배 냄새를 기억한다

나는 지금을 좋아한다
더 이상 수능을 안 쳐도 되고 , 중졸이라 군대도 안 가도 되고,
내가 좋아하는 각목을 실컷 깎고,
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돈도 종종 생기는,
나의 생활을 구성하는
모든 작고 아름다운 지금을 사랑한다

그리고 나는 점잖게 늙어가고 싶다
내가 늙고 더 이상 깡패라는 과거가 문제되지 않을 때 눈 내리는
서울 거리를 당당히 걷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