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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한테 머리카락 잘려서…” 삐삐밴드 보컬 현직업은
CCBBLAB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8.12.04
조회 7489 추천 12 댓글 15
아빠한테 머리 잘린 발레 꿈나무, 서현 스타일리스트 된 사연소녀시대 서현, 윤미래, 드렁큰타이거, 리쌍, 솔리드. 이들이 무대에 오르기 전까지 함께 하는 사람이 있다. 1995년 ‘안녕하세요’, ‘딸기’라는 노래로 큰 충격을 주었던 삐삐밴드의 보컬 이윤정씨다. 이씨는 지금 스타일리스트로 변신, 국내 톱 뮤지션의 스타일을 담당하고 있다. 펑크 그룹 보컬은 어떻게 패션 전문가로 거듭났을까? 엉뚱한 대답을 들었다. “19살 때 아버지가 머리카락을 잘라버려서”란다. 이윤정씨가 살아온 이야기를 들었다.이윤정씨의 옷을 입은 가수 서현과 이윤정씨 / 이윤정씨 제공◇ 머리 밀리고 가출한 발레 꿈나무, 가수·스타일리스트 되기까지- 어릴 때 발레를 했다던데.“서울예고에서 발레를 전공했다. 2학년 때 토슈즈(발레 신발)를 신고 당시 유행했던 ‘토끼춤’을 추다 발목이 꺾였다. 6개월 동안 연습을 쉬고 3학년 첫 무용 수업을 들으러 갔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이 반갑다며 등에 올라탔다. 그런데 그대로 넘어져 허리 부상을 입었다. 대입을 앞두고 평생 해왔던 발레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많이 방황했다.”- 패션에 관심을 가진 계기는.“아버지는 결과가 어떻든 무용과에 지원해보라고 하셨다. 하지만 이미 모든 게 끝났다고 생각해 준비도 없이 중앙대 연극영화과에 지원했다. 당연히 떨어졌고, 화가 난 아버지는 내 머리를 잘라버렸다.”“사흘 뒤 머리를 삭발하고 짐을 싸서 가출했다. 옷장에 있는 옷 대부분이 긴 생머리에 어울리는 레이스 원피스였다. 그래서 삭발한 머리에 어울리게 찢고 직접 이어 붙여 수선했다. 옷을 만들어 입다 보니 나만의 취향이 생겼고, 머릿속에 그린 옷을 만드는 기술을 배워보고 싶었다.”- 패션 업계로 가지 않고 가수로 데뷔한 이유는.“가출한 뒤로 부모님께 돈을 받은 적이 없다. 돈을 벌기 위해 압구정에 있는 바에서 DJ로 일했다. 손님 대부분이 디자이너나 유학생, 가수, 음악 프로듀서였다. ‘삭발한 애가 좋은 음악을 많이 튼다’는 소문을 듣고 삐삐밴드 멤버들이 찾아왔다. 들어와서 하고 싶은 대로 하라는 말에 끌려 같이하기로 결심했고 95년 데뷔했다.”(왼쪽부터)삐삐밴드 보컬 시절, 솔로 활동 시절 이윤정씨 / MBC '인기가요 베스트50' 캡처, 이윤정씨 인스타그램 캡처◇ ‘옆 대기실 오빠’였던 YG(양현석) 제안으로 스타일리스트 시작- 스타일리스트 일은 어떻게 시작했나.“어릴 때부터 음악을 들으면 뮤직비디오나 무대를 상상하는 버릇이 있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미지를 옷이나 미술작품으로 만드는 방법을 배우고 싶었다. 삐삐밴드 멤버들과 의견차로 96년 탈퇴하고 솔로 활동을 하다가 2000년 유럽에서 가장 큰 예술 학교인 영국 센트럴 세인트 마틴(Central Saint Martins College of Art and Design)에 입학했다. 그동안 만들었던 무대의상과 옷을 포트폴리오로 내고 패션과 미술 전공으로 입학허가서를 받았다.”- 스타일리스트 일을 언제 처음 시작했나.“영국 유학 중 음반사로부터 새 앨범을 내야 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계약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공부를 포기하고 2001년 귀국해 솔로 2집을 냈다. 하지만 앨범 반응은 좋지 않았다. 모아둔 돈은 영국 유학에 모두 써버렸다. 가스비를 낼 돈도 없을 정도였다. 그때 YG엔터테인먼트의 양현석 사장에게 ‘새 걸그룹(스위티)을 만드는데 네가 평소에 입는 것처럼 꾸며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돈이 필요해 승낙했고 한국에서 스타일리스트 일을 시작했다.”- 양현석 사장과 전부터 아는 사이였나.“삐삐밴드 멤버였던 강기영씨는 삐삐밴드를 만들기 전에 록 그룹 시나위에서 베이스 기타를 쳤다. 그의 후임자가 서태지씨였다. 그래서 음악방송에 출연할 때 옆 대기실을 쓰던 ‘서태지와 아이들’ 멤버를 만나면 반갑게 인사했다. 양현석 사장도 그때 알았다.”- 처음 시작한 스타일리스트 일이 어렵진 않았나.“패션을 공부했지만 스타일리스트 일은 처음이었다. 정확히 어떤 일을 하는지, 협찬은 어떻게 하는지 잘 몰랐다. 그래서 하던 대로 혼자 동대문 시장을 다니면서 옷과 소품을 직접 만들었다. 일이 많아 힘들었지만 내 아이디어를 옷과 소품으로 표현하는 게 재밌어서 지금까지 하고 있다.”  - 그 뒤로 어떤 연예인의 스타일리스트로 일했나.“리쌍, 거미, 휘성, 세븐, 클래지콰이, 롤러코스터, 소녀시대 서현, 윤미래, 드렁큰타이거 등의 스타일링을 맡았다. 이효리 2집 타이틀곡인 ‘겟차(Get Ya`)’ 뮤직비디오 스타일링도 맡았다. 올해엔 재결합한 솔리드를 맡았다.”(왼쪽부터)이윤정씨가 스타일링한 윤미래, 서현 / MFBTY 'Angel' 뮤직비디오 캡처, 이윤정씨 인스타그램 캡처◇ 스타일리스트 꿈꾼다면 정확한 목표부터 정해야- 가장 어려웠던 작업은.“2017년 소녀시대 서현씨 의상을 만들 때. 첫 솔로 활동인 만큼 주위의 기대가 컸다. 기획사와 서현씨를 모두 만족시키기 위해 같은 옷만 다섯 벌 넘게 만들어야 했다. 댄서들이 입을 소품을 혼자 들고 다니는 것도 힘들었다. 하지만 서현씨가 마음에 들어 했고 나 역시 결과물이 만족스러워 뿌듯했다.”- 앞으로의 꿈은.“남들이 말하는 ‘예쁜 것’ 말고, 내가 생각하는 ‘예쁜 것’을 만들고 싶다. 사람마다 취향과 외모가 모두 다른데, 우리 사회의 미적 기준은 획일적이다. 예를 들면 다리는 가늘고 길어야 하고, 피부는 잡티가 없어야만 예쁘다고 하는 식. 짧은 다리를 일부러 길어 보이게 하지 않고, 얼굴에 난 주근깨를 화장으로 가리지도 않는 스타일리스트로 남고 싶다. ‘예쁨’의 기준이 많아지면 모든 사람이 예쁨 받는 날도 오지 않을까. 다양한 아이디어와 이미지를 옷, 소품, 음악, 무대 등으로 표현하며 사는 게 꿈이다. ”토탈 아트 그룹 EE로도 활동하는 이윤정씨와 남편 이현준씨 / EE 공식 페이스북 캡처- 스타일리스트를 꿈꾸는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는.“부딪히면서 배우는 게 많다. 어느 가게에서 좋은 부속을 파는지 일하면서 배워가는 게 남들이 보기엔 별것 아닌 것처럼 보여도 스타일리스트에겐 큰 경쟁력이다. 사람들과 잘 지내는 법을 아는 것도 중요하다. 대인관계에서 겪는 스트레스 때문에 그만두는 사람도 많다. 스타일리스트는 담당 가수나 배우, 모델이 무대에 오르기 직전까지 함께 있다. 긴장한 아티스트들이 최고의 무대를 보여줄 수 있도록 자신을 버릴 줄도 알고, 그들의 비밀을 지킬 수도 있어야 한다.”글 CCBB 에디터 주동일시시비비랩
수억에서 수십억 아꼈습니다, 톱스타 없이 대박난 광고들
CCBBLAB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8.12.04
조회 5023 추천 2 댓글 11
'인간 반도체'가 나타났다…스타 없이 뜬 '이 광고'셀럽 아닌 무명 모델 기용 광고 인기 메시지 주목도 높이고 젊은층 사로잡아  ‘반도체 의인화’ 광고 유튜브서 2700만 클릭#. 2018년 4월 어느 날. 경기도 파주 출판 단지 한 스튜디오에 60여명 청년들이 모였다. 흰색 셔츠와 검은색 바지로 의상을 맞춘 이들은 허리춤에 신기한 물건을 하나씩 찼다. 일반 플라스틱 보다 가벼운 포맥스 소재와 나무 합판으로 만든 반도체 모형이다. ‘의인화된 반도체’들이 앞으로 자신들이 쓰일 곳을 통보받기 위해 한자리에 모였다. 말하자면 졸업식이다. 만화에서나 나올법한 분장을 한 이유는 SK하이닉스 광고를 찍기 위해서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연예인 하나 없는 이 TV 광고는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서 입소문을 타 대박이 났다. 조회 수가 유튜브 론칭(2018년 4월 말) 3주 만에 1000만을 찍고 2018년 6월 15일 2700만을 넘었다. 통상 광고업계에선 유튜브 조회 수 1000만만 넘어도 빅히트작 소리를 듣는다.SK하이닉스 광고 '안에서 세상 밖으로(1편). / 출처 유튜브◇‘스타’ 없어도 ‘뜰 광고’는 뜬다 스타는 흥행 보증 수표다. 드라마, 영화, 앨범 뿐 아니라 기업 광고에서도 스타는 이름 값을 한다. 기업들은 많게는 수십억을 써가며 톱스타를 광고 모델로 쓴다. 그러나 스타 없이 성공한 광고도 많다. 대표적인 것이 동아제약의 박카스 시리즈다. 최근 동아제약은 '엄마라는 경력은 왜 스펙 한 줄 되지 않는 걸까'라는 카피의 광고로 다시 사람들의 공감을 얻고 있다. 이 광고에도 유명 스타는 보이지 않는다. 유튜브에서 200만명 이상이 본 ‘대한민국 최고의 광고, 최고의 CF 베스트5’란 영상이다. 영상 안에 박카스, 초코파이, 웅진씽크빅, 두산, 포스코 예전 광고를 묶어 놓았다. 5200명 넘는 사람들이 공감 버튼을 누른 이 영상에 등장하는 광고의 공통점은 스타가 없다는 것이다. 박카스 광고 제작에 여러 차례 참여했던 정규영 렛잇플로우 이사는 "유명인을 모델로 쓰면 관심, 주목도 측면에서 유리하지만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모델이 가릴 수 있다"고 했다. "일반인처럼 느껴지는 모델을 쓰면 메시지 자체에 집중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일상 속에서 평범한 사람들의 늘 찾는 제품이란 메시지를 전달할 때 스타가 오히려 걸림돌 노릇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스타 없는 광고'를 찍는 기업들이 꾸준히 늘고 있다. CJ가 작년 론칭한 그룹 광고에도 톱모델은 없다. TV, 섬유 등을 수출하던 나라에서 드라마, 음악 등 문화 콘텐츠를 전 세계로 전파하는 기업으로 성장한 스토리를 풀어낸 영상을 유튜브에서만 140만이 봤다. 베트남, 중국, 터키, 미국 등에 사는 현지인의 자연스러운 일상을 담은 ‘세계인의 일상편’도 주목을 받았다.일반인같은 모델을 주로 쓰는 박카스 제품 광고. /사진 동아제약 광고 유튜브 캡처요즘 최대 광고주는 게임업체다. TV나 포털 광고창을 차지하고 있는 광고의 상당 부분이 게임 특히 모바일 게임 광고다. 장동건, 이정재, 정우성 같은 톱스타들이 한동안 게임 광고 속에서 뛰어다녔다. 그러나 최근 등장한 주요 모바일게임 광고에선 톱스타를 찾아보기 힘들다. 넥슨의 '야생의 땅: 듀랑고' 광고에는 무명의 외국인 배우만 나온다. 컴퓨터그래픽으로 신비한 자연과 게임 장면이 어우러진 펄어비스의 '검은사막 모바일' 광고에도 모델은 없다. ◇스타 없는 광고가 스타 만들기도스타 없이 찍은 광고가 인기를 끌어 광고에 출연한 무명 모델들이 발돋움한 경우도 많다. 대표적인 사례가 임은경과 설현이다. SK텔레콤은 1999년 TTL 브랜드를 선보이며 알려지지 않은 배우 임은경을 기용해 말 그대로 '히트'를 쳤다. 이후 SK텔레콤은 2015년 걸그룹 AOA 멤버 설현을 발탁해 열풍을 일으켰다. 당시 설현 등신 사진이 거리를 뒤덮었고 수많은 아이돌 중 한명이던 설현은 만인의 연인으로 떠올랐다. 당시 설현은 감사의 마음을 담은 편지를 SK텔레콤에 보내기도 했다.SK텔레콤은 광고 모델로 발탁한 설현이 인기를 끌자 등신대를 제작, 입간판 마케팅을 펼쳤다. /사진 SK텔레콤 광고 유튜브 캡처SK하이닉스 광고에 출연했던 모델들도 요즘 제 2의 임은경, 설현을 꿈꾸는 눈치다. 업계에 따르면 영상에 등장한 최혜진 윤태환 장윤석 양하늬씨 등이 요즘 여기저기서 러브콜을 받기 시작했다는 전언이다. 기업이 광고에 인기 연예인을 쓰지 않는 이유는 '돈' 때문만은 아니다. 모델료 수억 원을 호가하는 유명인이나 연예인을 광고에 등장시키면 직관적인 인지도를 높여 홍보 효과를 높일 수 있다. 하지만 스토리가 독창이고 신선하다면 유명 모델이 오히려 메시지 전달을 방해 할 수 있다. 아예 유명인이 등장하기에 부적절한 스토리도 있다. SK하이닉스 광고가 그런 예다. 광고를 제작한 이노션의 안정훈 차장은 "이 광고는 보는 사람들이  '나와 같은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도록 하자는 것을 염두에 뒀다"고 설명했다. 광고에 등장한 '인간 반도체'들은 졸업생, 취업준비생, 신입사원을 염두에 두고 만든 캐릭터다. 스타가 그런 역할을 맡으면 아무래도 현실성이 떨어진다. SK하이닉스는 젊은 세대들을 향해 '모든 첨단기기에 들어가는 반도체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세상을 바꾼다’는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하기 위해 신인배우들을 기용했다.(왼쪽부터)CJ그룹·두산그룹 광고 화면. / 사진 유튜브·오리콤 홈페이지 캡처◇무명 모델도 아닌 아예 일반인 등장 광고도품이 많이 들어도 무명 모델이 아닌 '진짜 일반인'을 광고에 쓰는 기업도 늘고 있다. SK텔레콤은 신선한 이미지를 강조하기 위해 스마트폰 광고에 촬영 현장 메이크업을 담당하던 일반인을 발탁했고 네이버도 자사 서비스 설계 업무를 소개하는 광고에 실제 직원을 등장시킨 적이 있다. ‘두산은 지금 내일을 준비합니다-물 편’에는 카자흐스탄 현지에서 섭외한 어린이들이 등장한다. 손원혁 오리콤 제작 1본부장은 "광고도 결국 진정성의 문제로 귀결된다"고 귀띔했다. 대학생이나 일반인은 전문 모델보다 연출하는 데 있어 어려움이 있지만 기업이 전하고자 하는 바를 진실성 있게 전달할 때 최적이라는 얘기다.  글 CCBB 에디터 절미시시비비랩
프로야구 선수들은 경기 전에 ‘이런 밥’ 먹습니다
CCBBLAB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8.12.04
조회 6408 추천 3 댓글 29
프로 야구 선수들은 경기 전에 뭘 먹을까?KBO 선수들은 뭘 먹을까홈런 기원 홈런볼·부상엔 도가니탕3년 내내 미역 안 쓰기도뜨거운 여름 시원한 홈런과 다이빙 캐치로 관중들의 더위를 식혀주는 스포츠. 바로 야구입니다. 선수들은 열심히 응원하는 팬과 팀의 승리를 위해 수십 미터를 달려가 공을 잡고 27.43m를 전력 질주해 점수를 내죠. 짧으면 2시간, 길면 3시간 넘게 걸리는 경기를 소화하는 선수들에게 강한 체력은 필수입니다.조선 DB체력을 다지기 위해서는 운동은 물론 식단도 중요합니다. 활동량이 많은 선수들은 보통 한 끼에 1500kcal 를 섭취합니다. 일반인 평균보다 500kcal 이상 더 섭취하는 셈입니다. 선수들은 경기장 내 구내식당에서 식사를 해결합니다. 높은 열량과 맛을 동시에 잡아야 하는 구장 구내식당 가격은 5000원 정도. 일반 회사 구내식당보다 1000~2000원 정도 더 비싼 편입니다. 이는 외부 사람들이 이용할 때의 가격입니다. 선수나 구단 직원들은 공짜로 먹습니다. 구내식당은 주로 아워홈, 현대 그린푸드 등 업체에서 운영합니다. 구단 프런트나 각 업체 영양사들이 선수들의 식단을 관리합니다. 그들에게 야구 선수들은 어떤 음식을 먹는지 들어봤습니다.◇고열량 뷔페식..생선 가시도 발라서 제공평일 야구 경기는 오후 6시 30분에 시작합니다. 훈련을 마치고 경기 시작까지 소화를 시켜야 하기 때문에 밥은 보통 오후 3~4시부터 제공합니다. 영양사들은 보통 고탄수화물·고열량의 음식을 뷔페식으로 구성합니다. 원하는 음식을 원하는 만큼만 먹을 수 있도록 한 것이죠.2017년 기아 타이거즈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함께한 김가영 영양사 역시 뷔페로 식단을 꾸린다고 합니다. "선수들이 경기 전에 밥을 먹다 보니 식사량이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영양소를 골고루 섭취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메뉴를 준비해요. 주로 소고기, 닭고기, 돼지고기를 이용해서 메인메뉴 3~4가지와 사이드 메뉴, 후식 등을 준비합니다." 선수들은 면 종류를 좋아한다고 합니다. 김 영양사는 이런 선수들을 위해 잔치국수, 도토리묵이 들어간 김치국수, 짜장면 등을 항상 준비합니다. 선수들이 좋아하기도 하고 탄수화물이라서 선수들의 배를 든든하게 채워주기 때문이죠.2001년 삼성 라이온즈 영양사로 입사해 지금은 삼성 프런트에서 식당 총괄업무를 맡고 있는 안현정 프로. 17년 동안 삼성 라이온즈 선수들의 메뉴를 책임졌습니다. 그는 선수들이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 위주로 준비한다고 합니다. “경기를 앞둔 선수들은 거창한 식사를 하지 않아요. 간단하게 먹을 수 있게 케일 쌈, 밥도그 등을 준비합니다. 한입에 먹을 수 있도록 쌈도 다 싸서 내놓습니다. 생선도 가시를 다 발라서 내놓죠. 선수들은 부상을 조심해야하기 때문에 다칠 수 있는 뚝배기나 칼 등을 쓰지 않도록 하고 있습니다.”기아 타이거즈 선수들이 먹는 메뉴. 다양한 메뉴들이 골고루 나온다. 2017 한국시리즈를 앞두고 김가영 영양사가 준비한 홈런볼 / 김가영 영양사 제공◇홈런 기원하면서 특식 준비, 부상 선수에게 도가니탕우승팀을 가리는 한국시리즈 같은 중요한 경기를 앞두고 특식을 준비하기도 합니다. 기아 타이거즈 김가영 영양사는 선수들의 홈런을 기원하면서 간식에 홈런볼을 넣어 포장해 나눠줬다고 합니다. 이밖에도 수제 컵케익을 만들어 응원의 메시지를 남기기도 했죠.삼성 라이온즈 안 프로는 다친 선수를 각별히 챙겼다고 합니다. “포스트 시즌에 진출했는데 인대 부상을 당한 선수가 있었습니다. 선발 명단에 들어가야 할 선수였어요. 어떤 메뉴가 나오든 그 선수는 도가니탕만 끓여서 먹였습니다. 부상 치료에 도움이 될 만한 식이요법은 다 해주는 편입니다. 그렇게 신경 쓴 선수가 결국 선발 명단에 들었을 때 뿌듯했죠.”잠실구장의 두 주인 두산 베어스와 LG 트윈스는 같은 구내식당을 씁니다. 그러나 함께 밥 먹는 일은 드뭅니다. 두산과 LG의 경기가 있는 날에만 같이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그마저도 LG 트윈스가 출장 뷔페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죠. 이 두 구단의 식단을 책임지는 담당 영양사에겐 몇 가지 징크스가 있다고 합니다. 3년 동안 잠실 구장에서 일하면서 단 한 번도 재료로 미역을 사용한 적이 없다고 한 매체를 통해서 밝혔죠. 또 경기가 길어질 때 간식으로 김밥을 준비하면 이긴다는 속설을 따라 간식으로 김밥도 준비한다고 말했습니다.삼성 라이온즈 선수들이 먹는 메뉴. 한식은 물론 선수들이 힘을 들이지 않고 한 입에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준비한다. / 안현정 프로 제공◇선수들이 메뉴 요청하기도영양사들은 파스타, 짜장면 등 선수들이 요청하는 메뉴를 준비하기도 합니다. 삼성 라이온즈 안 프로는 “선수들이 장어 꼬리만 먹고 싶다든가, 소고기 안창살을 많이 구워 먹고 싶다는 장난 섞인 요구를 하기도 한다”면서 “예산을 초과하는 메뉴는 준비할 수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충분히 해줄 수 있는 메뉴지만 선수들의 건강을 생각해서 영양사들이 자제하는 음식도 있습니다. 게장이나 찬 음식 등입니다. 알레르기와 여름철 장염 때문이죠. 선수들의 건강이 경기력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신경을 많이 쓴다고 말합니다. 두 영양사는 선수들이 밥 맛있게 먹었다고 말해줄 때가 뿌듯하다고 입을 모읍니다. 2017년 10월 3일 은퇴한 삼성 라이온즈 이승엽 선수는 고참임에도 인사를 빼먹는 날이 없었다고 합니다. 식당에 들어올 때나 나갈 때 항상 잘 먹었다는 인사를 했다고 합니다.기아 타이거즈 김가영 영양사는 이범호 선수가 기억에 남는다고 말합니다. “입사 초기에 처음으로 말을 걸어준 선수입니다. 식당에 들어올 때마다 얼굴이 밝아서 덩달아 기분이 좋아집니다. 이범호 선수 외에도 선수들이 ‘밥 맛있어요’ ‘감사합니다’ 라고 해주는 한 마디 한 마디에 힘이 납니다. 또 메뉴 준비가 작지만 선수들에게 도움을 주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선수들에게 힘을 줄 수 있는 식사를 준비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글 CCBB 에디터 하늘시시비비랩
파마하고 출근했다…퇴사 결심시킨 대기업 임원의 한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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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이 애냐?”, LG전자 때려치우고 직장문화 비판하며 탭댄스 추는 남자스타트업 VCNC 인사담당자 조기엽씨대기업 퇴사하고 직장문화 비판탭댄스 추며 행복추구의 치열함 깨달아“직장인의, 직장인을 위한, 직장인 전문 공감방송 ‘직장인의 난’을 시작하겠습니다.”일주일에 2번 팟캐스트 사이트 ‘팟빵’에는 이렇게 시작하는 방송이 올라온다. 남들이 가고 싶어하는 대기업을 때려치우고 탭댄스를 추고 조직 문화가 자유분방한 스타트업에 다니는 조기엽(33)씨가 동료와 함께 운영하는 팟캐스트 방송이다. 방송 이름은 ‘직장인의 난’. 정기 구독하는 사람이 1500명을 넘었다.조씨는 이 방송에서 아직 만연한 우리 기업들의 구태의연한 조직문화를 신랄하게 비판한다. 지난 11일 만난 조씨는 “내가 대기업을 다니면서 당했던 것보다 훨씬 정도가 심한 다양한 사연들이 방송에 소개된다”며 “나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이 우리 기업들의 경직된 조직생활에 스트레스를 받는구나 느낀다”고 했다.2018년 7월 11일 서울 강남 위워크에서 만난 조기엽씨. / jobsN◇춤추러 6개월 동안 미국 돌아다니고 대기업에 취업조씨는 자유분방한 성격이다. 2003년 연세대 심리학과에 입학해 교내 댄스동아리 활동에 열중했다. 고등학생때까지 춤에 관심이 없다가 좋아하는 누나가 춤 잘 추는 사람을 좋아하는 것 같아 무작정 댄스동아리에 가입했다. 그는 “대학시절 춤에 매료돼 공부보단 춤만 추고 다녔다”고 했다.그는 유튜브에 나오는 외국 유명 댄서들을 직접 만나고 싶었다. 그래서 남들이 취업을 준비하던 4학년 1학기때 훌쩍 떠났다. 부모님께는 어학연수라는 핑계를 댔다. 6개월간 캐나다와 미국 곳곳을 돌아다니며 유명한 춤꾼들을 만났다.팝핀현준과 함께 활동했던 대니, 가수이자 댄서 박재범, 미국의 팝핀 댄스팀인 머신건펑크 등도 만났다. “취업 생각은 눈곱만큼도 하지 않고 무작정 6개월간 춤을 쫓아다녔죠. 한국에 돌아와 4학년 2학기 때 LG전자 인턴에 지원했고, 2011년 1월 채용까지 됐습니다. 운이 좋았죠.”◇경직된 조직문화에 질려 4년 만에 대기업 퇴사그는 LG전자 인재육성팀에서 3년 근무했고, 인사평가부서팀에서 1년 근무했다. 그는 한국 기업 특유의 경직된 조직문화를 못 견뎌 했다. 상사들은 그가 낀 두꺼운 뿔테 안경과 복장 등을 트집잡았고 문제아 취급했다. “한번은 파마를 하고 갔는데, 임원이 머리가 그게 뭐냐며 스포츠 머리로 자르고 오라는 거에요. 한 상사는 화가 나면 수첩을 던졌고, 심지어는 부하 직원의 뺨을 때리기도 했죠.”조씨는 퇴사를 결심했다. 그는 “직장 생활을 하면서 사람들이 피폐해지는 것이 보였다”며 “직장 4년차가 되니 조금만 더 있으면 안주해 눌러앉을 것 같아 과감히 사표를 냈다”고 말했다.그는 퇴사를 결심하며 4가지 원칙을 세웠다. 1, 재미있고 행복하게 살자. 2, 남들의 시선을 신경쓰지 말자(남에게 피해주지 않는 선에서). 3, 돈의 가치를 최우선으로 삼지 말자. 4, 회사원을 하지 말자.조기엽씨의 휴대전화에 저장된 퇴사 결심. / jobsN◇공백기에 만난 탭댄스와 팟캐스트 방송시원하게 회사를 때려치운 그는 8개월 동안 원없이 놀았다. 평일 오전 명동에 가서 아이쇼핑을 하고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시켜놓고 온종일 앉아있었다. 무료 강연 등도 찾아다녔다.공백기에 그를 지탱해준 것은 무엇보다 춤이었다. 집 근처 탭댄스 교습장에 등록해 춤을 췄다. “거기 강사들이 탭댄스를 위해 순수하고 치열하게 살더라고요. 난 죽을 둥 살 둥 스트레스를 받으며 일했는데 그들은 춤추는 자체로 행복해 하더라고요. 그들처럼 나도 행복하게 치열하게 살자고 다짐했습니다.” 그는 최근에도 일주일에 2번 퇴근 후 탭댄스를 춘다. 오는 8월에는 대회에도 참가할 예정이다.그는 직장인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팟캐스트 방송도 시작했다. 자신이 겪었던 회사 생활의 부조리 등을 토해내고 싶었다. 방송을 시작하며 뜻이 맞는 사람들을 만났고 지금은 그들과 함께 1주일에 한번 녹음을 해 2~3회분을 올린다. 현재 그의 팟캐스트 방송 ‘직장인의 난’은 구독자수가 1524명이다. 규모는 작지만 올라오는 사연은 하나하나 처절하다. 그는 “사연을 듣다 보면 지금 이 시대에 어떻게 이런 회사가 있을 수 있는지 놀랄 때가 많다”며 “구독자들과 미래에 대한 커리어 고민, 조직문화 고민 등을 나눈다”고 했다.팟캐스트 방송을 진행하는 조기엽씨(왼쪽). / 팟캐스트 직장인의 난 유튜브 캡처2016년 탭 페스티벌에서 조기엽씨(맨 왼쪽)가 동료들과 탭댄스 공연을 하고 있다. / 조기엽씨 제공◇스타트업도 스타트업 나름그는 LG전자를 퇴사한 지 8개월 만에 한 스타트업에 입사했다. 다시는 회사원을 하지 말자는 결심을 깬 것. 그는 “조직문화가 자유롭다는 스타트업 생태계를 알고 싶어 입사했다”고 했다. 조씨는 그곳에 2년간 다니며 인사 업무를 담당했다. 하지만 거기도 조씨가 원하던 곳은 아니었다. “스타트업이라고 무조건 자유롭고 수평적인 것은 아니더라고요. 오히려 조직 규모가 작으니 대기업보다 내부 정치와 파벌이 심했습니다.”그는 또 사표를 던지고 야인(野人)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하지만 다른 스타트업 대표가 그를 찾았다. 예민한 문제에 대해서도 거리낌 없이 토론하는 대표의 모습에 조씨는 ‘한 번 더 속아보자’며 이직했다.그는 현재 커플들이 사용하는 폐쇄형 앱 ‘비트윈’을 운영하는 스타트업에서 인사 담당 밸류 이노베이터로 근무한다. 그곳에서 1년간 일한 그는 “굉장히 만족한다”고 했다. “연봉도 생각보다 낮지 않고, 무엇보다 조직의 사고방식이 젊다는 점이 맘에 듭니다. 여기서는 모두가 책임감 있게 일하고,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자는 원칙이 있어요. 예전 LG전자를 다닐 때 항상 날카롭던 저의 모습도 사라졌죠.”조기엽씨가 커플앱 비트윈의 마스코트와 함께 섰다. / jobsN그의 관심사는 여전히 기업의 조직문화다. 그는 “한국 기업들은 직원들을 통제하고 채찍질해야 성과를 내는 ‘아이’로 보는 것 같다”며 “서로 공통의 목적을 위해 함께 노력하는 어른으로 존중하는 조직 문화가 자리잡혔으면 한다”고 했다.“외국 대기업 사례 연구결과를 보면, 기업 생산성이 높아지려면 직원들의 소속감과 안정감, 리더의 겸손한 태도, 대표와 직원간 가치관의 지속적 공유가 필수적이에요. 대기업이든 스타트업이든 우리나라엔 이런 부분이 약한 게 아쉽습니다.”글 CCBB 에디터 별걸다시시비비랩
유명 웹툰 작가는 어떤 수익구조로 돈을 벌고 있을까?
CCBBLAB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8.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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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MBC <라디오 스타>, <마이 리틀 텔레비전>, JTBC <잡스>모든 사람들의 주 관심사는 역시 돈, 특히 월급일 것입니다. 특히 자신의 월급보다도 더 궁금한 것이 남의 월급 아니겠습니까? 마침 지난달 방송에서 웹툰 작가 기안84가 수입을 언급해 화제가 된 바 있죠. 그래서 오늘은 방송을 통해 우리에게 더 친숙해진, 유명 웹툰 작가들의 월급에 대해 알아보려고 합니다. 웹툰 수입뿐 아니라 드라마화, 영화화 등으로 인한 부가 수입에, 방송 등의 출연료까지! 상상만으로도 어마어마할 것 같아요. 과연 유명 웹툰 작가는 얼마나 벌까요?1. 기안84출처: JTBC <냉장고를 부탁해>기안84는 <패션왕>,<복학왕>과 같은 유명 웹툰으로 유명한 웹툰 작가지만 요즘은 MBC <나 혼자 산다>의 2얼로도 익숙한데요. 이렇게 방송을 통해 친숙해 보이는 기안84는 사실 어마어마한 수익을 올리고 있는 웹툰 작가입니다. 지난달 JTBC <냉장고를 부탁해>에 출연한 기안84는 웹툰 수입이 방송 수입의 10배 정도 되고, 방송은 수입 때문에 하는 게 아니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고정으로 활동하고 있는 방송 수입도 결코 적지 않을 텐데 10배라니 웹툰으로 벌어들이는 수입이 얼마나 될지 감히 짐작하기도 힘들죠. 출처: JTBC <잡스>또, 기안84는 이전에 JTBC <잡스>에 웹툰 작가로 출연해  수입을 간접적으로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처음엔 월 60 정도 받고 시작했지만, 네이버에 연재를 시작하면서 수입이 올라 2년간 연재해서 번 돈으로 어머니 집과 차, 자신의 전셋집을 구입하고 어머니의 빚까지 청산했다고 하네요. 2. 주호민출처: JTBC <잡스>주호민 작가의 웹툰 하면, 역시 <신과 함께> 시리즈부터 떠오르는데요. 전에 라디오 <박명수의 라디오쇼>에 출연해 “내 만화가 유료라 보려면 결제를 해야 한다"라며 “거기서 오는 수익이 꽤 된다”라고 밝혔습니다. 실제로 완결된 <신과 함께>를 판매해 올해 1, 2월 동안 3,770만 원을 벌어들였다고 합니다. 웹툰만으로도 꽤 큰 금액이죠.  “다음 만화 준비할 때까지 일 안 해도 살 수 있는 정도”라고 말한 것도 이해가 가네요.출처: 네이버 블로그 제이J(azsx1201), chacha((p1_____)사실 주호민 작가는 웹툰 자체로도 유명하지만, 천만 영화 <신과 함께>의 원작자로도 유명한데요. 영화 <신과 함께-죄와 벌>, <신과 함께-인과 연>을 모두 성공시킨 만큼 영화로 얻는 부가 수입도 만만치 않을 거라고 예측이 됩니다. 웹툰이 영화나 드라마로 제작될 경우 판권료가 따로 지급되고, 영화에 흥행에 따라 추가 수입이 있다고 하는데요. 1편만으로도 손익분기점을 훌쩍 넘었기에 사실상 추가 수입도 많았을 것 같습니다.3. 이말년출처: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그렇다면, <이말년 시리즈>로 유명한 이말년 작가는 어떨까요?2년 전 연봉 공개로 많은 화제를 불러일으킨 장본인이죠. 이말년 작가는 2016년 MBC 예능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 출연해 대략 연봉을 억대로 받는다고 밝혀 많은 이들의 놀라움과 부러움을 샀습니다. 다만, 그는 이렇게 받게 된 지는 오래되지 않았으며 본편 연재와 외주 작업이 별도로 진행돼 수입이 일정하게 유지되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출처: KBS <박명수의 라디오쇼> SNS같은 해 KBS 라디오 <박명수의 라디오쇼>에 출연해서는 한 달에 얼마 버는지 궁금하다는 DJ 박명수의 질문에 “지금 사는 집이 전세인데 2년마다 오르는 전셋값을 메꿀 수 있는 정도다”라고 답변했습니다. 이처럼 놀라운 수입이지만, 이말년은 처음에는 5~60만 원을 받았었다고 밝혀 유명 인기 작가가 되면서 급여의 갭(gap)이 꽤 커졌다는 것도 알 수 있었습니다. 4.  박태준출처: 박태준 미니홈피, KBS <해피투게더>얼짱이 유행하던 시절, 박태준 하면 모르는 이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얼짱으로 유명했던 박태준이 쇼핑몰 CEO를 거쳐 웹툰 작가로 재도약 했는데요.  쇼핑몰 운영과 오프라인 매장 관리에 웹툰 작업까지 하루가 24시간이라도 모자라게 살고 있는 박태준은 <외모 지상주의>를 연재하면서 유명 웹툰 작가 반열에 올라섰죠. 그렇다면 그의 수입은 과연 얼마나 될까요?출처: tvN 현장토크쇼 <택시>웹툰 작가가 된 박태준은 <외모지상주의>를 네이버에서 연재해오고 있는데요. tvN 현장 토크쇼 <택시>에 출연해 수익 분배 방식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엔 조회수가 높아지면 광고 영향이 있어서 포털사이트와 수익을 나눴는데, 월급 외 인센티브만 1천만 원씩 나왔다고 합니다. 또, MBC <라디오 스타>에 출연해서는 "웹툰 소득으로 은행 VIP가 됐다"라고 말해 모두를 놀라게 하기도 했습니다. 웹툰 외 쇼핑몰 사업도 하는 만큼 별도의 수익도 있겠지만, 웹툰 수익만도 만만치 않아 보이죠?5. 그래서 유명 작가들의 웹툰 수익은?출처: 네이버 웹툰네이버는 수익 프로그램이 다양해지면서 작가들의 수입이 더 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최근에는 웹툰 유료 수익, 광고 수익 외에도 게임·드라마·캐릭터 상품 등 사업 판권료 등 다양한 수입원이 생겼기 때문이라고 하는데요. 네이버 웹툰에 따르면,  “네이버에 연재 중인 웹툰 작가들의 연평균 수입은 2억 2000만 원으로, 월평균 1800만 원을 번다”라고 합니다. 이 수치는 지난해 7월부터 지난 6월까지 정식으로 연재한 작가 300여 명의 수입을 정리한 결과로, 작가의 외부 활동 수익은 반영되지 않았다고 하니 사실상 전체 수익은 저기에서 플러스알파가 될 것 같네요.글 CCBB 에디터 피클시시비비랩
연예인 재벌로 삶을 누리는 양현석 대표는 어떤 삶을 살까?
CCBBLAB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8.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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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카와 럭셔리 패션으로 유명한 빅뱅의 GD나 청담동 건물주 싸이와 같은 연예인 부호들 위에는 이들이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그리고 이들이 소속되어 있는 회사 사장님) 연예인 슈퍼재벌이 있습니다. 그는 바로 올해 49세가 된 YG의 수장, 양현석 대표죠. 부동산, 주식, 슈퍼카, 명품시계 등 뭐 하나 빼놓지 않고 국내 연예계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재산을 가진 양 대표는 지난 2013년 재벌닷컴을 통해 그의 재산(2,190억원)이 공개되었습니다. 비록 사드배치 역풍에 직격탄을 맞은 양 대표는 주식가치가 반토막이 났지만 아직도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죠. 하지만 그는 그 어마어마한 재산과 맞바꿀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고 합니다. 다음은 연예인 슈퍼재벌로 2천억짜리 삶을 누리는 YG의 수장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1980년대 안무가 겸 백댄서로 활약하던 양현석은 1992년에 '서태지와 아이들'로 데뷔하면서 한국 대중 음악사에 큰 획을 긋게 되었습니다. 양현석은 서태지와 아이들로 이미 수십억원의 수익을 달성하게 되었죠.그는 현역 가수에서 은퇴하면서 제작자로 변신, YG엔터테인먼트를 설립하고 성공적인 아이돌 그룹들과 뮤지션들을 키우면서 2011년 말, 직상장에 성공합니다.이후 YG의 브랜드 가치를 키우면서 한류 신드롬에 큰 기둥이 되기도 하죠.여기에 물론 가수 싸이의 역할도 컸습니다. 당시 강남스타일 유튜브 동영상 하나만으로 약 60억원의 광고비가 구글로부터 지불되었다고 하죠.양 대표는 과감한 사업투자와 전략으로 차승원과 강동원 같은 톱 배우 스타들을 영입하는데 성공했고, 최근에는 방송사 유명 PD들을 대거 영입하면서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빅뱅과 블랙핑크의 성공적인 국내외 그룹활동에서 싸이의 대박 행보 그리고 톱 배우들의 열연까지, YG의 주가는 고공행진을 이어갔고 약 2%의 YG엔터테인먼트 주식을 보유한 양 대표도 이와 함께 천문학적 재산을 불려나갔습니다.사실, 양 대표는 YG엔터테인먼트 설립과 동시에 부동산에 꾸준히 투자를 해왔습니다. 아래는 그가 서울 마포구 합정동에 소유한 YG 사옥 (115억원)과 491평대 지상 6층짜리 건물 (90억원대)입니다. 마포구 서교동에는 130억원을 호가하는 지하 2층, 지상 4층짜리 상가와 인근에 위치한 529평 상가 (200억원대)까지 모두 양 대표의 이름으로 되어 있다고 하죠.마지막으로 서대문구 연희동에는 약 60평의 단독주택 (12억원대)까지 보유하고 있습니다.마포의 땅값을 움직인다는 양 대표의 부동산 자산은 2013년 당시 한 매체가 약 500억원 안팎으로 추정했는데, 지금은 700억원에 가깝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죠.그럼 그의 슈퍼카 컬렉션에는 어떠한 자동차들이 있을까요? 먼저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도 애용한다는 포르쉐 918 스파이더가 양 대표의 애마라고 합니다. 국내에 몇대 없는 이 스포츠카는 기본이 11억9,500만원, 모든 옵션을 선태하면 약 13억5,000만원에 달한다고 하죠. 이 외에 여러 방송을 통해 양 대표의 '회장님 세단' 마이바흐 62가 공개되기도 했습니다. 대표적인 슈퍼럭셔리 자동차인 마이바흐 62는 삼성 이건희 회장 차량으로 국내에서 유명해졌는데, 연예계에서는 배용준과 양현석이 유일하게 이 차량을 소유한 것으로 알려져 있죠. 지난 2013년에는 양 대표가 차고 있던 시계가 한 번 큰 이슈가 되었죠. 스위스 명품 시계 브랜드 '르샤르 밀' (Richard Mille)이 제작한 이 시계는 'RM 038 TOURBILLON BUBBA WATSON'이란 모델로 해외에서 45만9,500유로 (약 5억6,200만원), 국내에서는 7억원에 거래되고 있습니다.그룹 젝스키스 멤버 이재진은 라디오스타에 출연해 매제 양현석의 한 달 카드 한도를 밝혀 화제가 되었습니다. 카드 이름이나 종류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한 달 한도가 1억원 정도라고 알려졌죠.하지만 양 대표는 씀씀이가 큰 만큼 기부나 선물에도 그 사이즈가 드러난다고 하죠. 최근 K팝스타를 통해 동료 심사위원인 유희열에게 사옥 이전을 축하해주면서 최고급 스피커를 선물했습니다. 당시 옆에 있던 박진영은 자신도 잘 아는 이 고급 스피커가 얼마나 비싼줄 알면서 연신 감탄했죠.양 대표는 기부활동도 왕성하게 해오고 있습니다. 심장병을 앓고 있는 어린이를 위해 연세대학교의과대학과 세브란스병원에 1억원을 전달했죠. 마포구에서는 'YG 밥차 봉사활동'을 통해 수백명의 어려운 어르신들과 아동들에게 무료 식사를 제공하기도 했습니다.2014년에는 YG엔터테인먼트 창사 18주년을 맞이해, 양현석 사장의 숙원 사업이었던 비영리 재단법인 '무주 YG 재단'을 설립했습니다. 그는 이 재단에 개인재산 10억원을 흔쾌히 기부했죠.하지만 이러한 엄청난 재산을 모은 양현석 대표는 한가지 그가 갖고 싶어도 가지지 못하는 것이 있다고 합니다. 그는 힐링캐프에 출연해 "전 재산 다 내놓고 20대 초반으로 돌아가겠냐고 묻는다면 난 바꾼다"고 말하면서 그가 가장 부러운 것은 젊음이라고 했죠.글 CCBB 에디터 피클시시비비랩
백만원 월급쟁이에서 영화배우 수입 1위가 된 더락이 걸어온 길
CCBBLAB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8.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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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락' 드웨인 존슨은 헐리우드 스크린에서 자주 보이고 유명한 배우라는 점은 알지만 그가 가장 많은 수입을 낸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그닥 많지 않을겁니다. 하지만 최근 미국 경제잡지 포브스는 2015~2016년, 총 6,450만달러 (719억5,000만원)로 드웨인 존슨이 전 세계 배우들 중 가장 높은 수입을 받았다고 발표했죠. 또한 그가 출연한 영화들은 통합 60억달러 (6조7,000억원)의 박스오피스 수익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물론 이 영화 수입은 광고나 협찬 계약금 등을 모두 제외한 금액이죠. 하지만 한 때는 그도 최저 임금에 가까운 월급을 받고 생활을 했답니다. 다음은 백만원 월급쟁이에서 영화배우 수입 1위가 된 더락이 걸어온 길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더 락' (The Rock)으로 불리기 전, 드웨인 존슨은 1972년 5월 2일, 미국 캘리포니아 주 해이워드 시에서 태어났습니다.레슬링은 대대로 내려온 가업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의 아버지 로키 존슨은 사상 최초의 흑인 태그팀 챔피언이었고 그의 할아버지 피터 마이비아 또한 최초의 사모안 프로 레슬러였죠. 드웨인 존슨은 곧바로 레슬링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고등학교부터 미식축구 선수로 뛰면서 마이애미 대학 허리케인 미식축구 팀에 장학생으로 들어갔죠. 1991년에는 미국 대학 챔피언까지 하게 되었습니다.하지만 심각한 어깨와 목 부상 때문에 더락은 NFL 드래프트 때 지명을 받지 못했습니다. 1995년, 그는 겨우 캐나다 프로미식축구 리그의 캘거리 스탬피더즈 팀에 입단하게 되었죠. 당시 존슨은 250달러의 주급 (27만원, 월 108만원)을 받으면서 팀에 남아있으려고 고된 훈련을 참아냈습니다. 하지만 결국 3달 뒤에 제대로 된 실력조차 발휘하지 못하고 팀에서 짤리게 되었죠.팀에서 짤린 후 더락은 새로운 직업을 찾다가 그의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활약했던 프로 레슬링에 도전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WWE의 마이너리그에 들어가서 차차 이름을 알리게 되었고 1996년 서바이벌 시리즈를 통해 TV에 데뷔하게 되었죠.그 후 엄청난 쇼맨쉽과 레슬링 스킬로 급부상 하면서 WWE 헤비웨이트 타이틀을 6번이나 들어올리고 태그팀 타이틀도 5번을 수상했죠.그의 인기는 헐리우드 PD들의 레이다에 포착되었고 결국 뉴욕에서 인기 코미디 쇼 'SNL'의 일일 호스트로 발탁 되었습니다. 더락이 출연했던 SNL은 높은 시청률로 히틀를 쳤고 그는 여기서 연기력과 스타성을 동시에 인정받게 되었죠.드웨인 존슨은 2001년, 헐리우드 블락버스터 '미이라 2'와 '스콜피온 킹'에 악역으로 출연하면서 당시 첫 주연으로 가장 많았던 550만달러 (62억원)의 출연료를 받게 되었습니다. 불과 5년 전, 월 100만원으로 생활하던 시절에 비해 상상도 못할 금액이었죠.당시 엄청난 첫 출연료에도 불구하고 자리를 잡지 못했던 존슨은 2003년 '웰컴 투 더 정글'로 제대로 된 액션배우로 인기를 얻기 시작했습니다. 롤링스톤에 따르면 그는 거대한 액션과 코메디 능력까지 겸비한 스타가 될 준비가 되어있다고 평가받았죠.그는 헐리우드 영화배우로서 이름을 알리게 되면서 '더 락'이라는 이름을 버리고 본명인 드웨인 존슨으로 활동을 이어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존슨은 2007년부터 2010년까지 액션과 코미디 장르를 두루 걸치면서 영화에 출연했는데, 계속 프랜차이즈 영화를 갈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불과 몇년 후, 운 좋게(?) 그는 '분노의 질주' 시리즈에 캐스팅 되었죠.존슨이 출연했던 분노의 질주 5편은 전 세계적으로 6억7,600만달러 (7,540억8,000만원)의 매출을 올렸고 그는 2013년 후속편 분노의 질주 6과 작년에 개봉했던 분노의 질주 7에도 출연하게 되었습니다. 참고로 분노의 질주 7편은 무려 15억달러 (1조6,733억원)의 매출을 올렸죠.존슨은 분노의 질주 외에도 '지아이조'와 '저니 2' 등 다른 여러 프랜차이즈 시리즈에도 참여하게 되었습니다.영화배우로서 커리어를 쌓는 동안 드웨인 존슨은 동료 배우들과 스탭들로부터 성실함과 프로다운 모습을 인정받았다고 합니다. 2013년, 마크 월버그와 함께 출연했던 '페인 앤 게인'을 위해 하루에 17끼니를 먹으면서 몸을 만들었다고 하죠.헐리우드에서 제대로 입지를 다진 그는 프로 레슬링에 여러번 돌아와 오래 된 팬들을 위해 그의 녹슬지 않은 쇼맨쉽과 레슬링 스킬을 선보였습니다.존슨은 프랜차이즈 영화 '산 안드레아스'에서 처음으로 재난 장르에도 도전하기도 했었죠.또한 케빈 하트와 콤비를 맺어 '센트럴 인텔리전스'를 통해 2017년 최고 박스오피스 흥행 성적을 낸 코미디 영화를 찍기도 했습니다.이 외에도 자신이 직접 출연과 제작을 맡은 '베이워치', '볼러스', '산 안드레이스 2', 그리고 '닥 세비지'까지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드웨인 조슨은 케빈 하트와 다시 한번 콤비 팀을 꾸려 모험 판타지 영화 '쥬만지' 2편을 개봉하기도 했죠. 이 많은 영화들로 그는 공식적으로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수입을 올리는 배우로 이름을 올리게 되었답니다.글 CCBB 에디터 피클시시비비랩
변호사·의사부터 모델·걸그룹까지 찾는 156.7cm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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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과 마음의 아픔을 잊어요156.7cm ‘꼬맹이’ 폴댄서춤으로 만성통증 이겨내세계대회에도 도전송련진(31)씨는 한국에서 제일 좋은 직장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공기업 한국마사회 통역원을 그만두고 폴(철봉·Pole)을 잡았다. 3년차 폴댄스 전문 강사다. 폴댄스는 세로로 고정된 폴을 잡고 근력과 유연성으로 다양한 동작과 기술을 선보이는 춤이다. 그녀는 SNS에 스스로를 '꼬맹이' 폴댄서라 소개한다. 큰 키는 아니지만 누구 못지않은 근력과 유연성을 갖춘 폴댄서다. 폴댄스 강사 가운데서도 특별하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왼쪽 골반 인대가 제 기능을 못한다. 심할 땐 간병인을 둬야 할 정도다. 아픔도 그녀의 폴댄스에 대한 열정을 막진 못했다. 열심히 연습해 출전권을 따냈고 2017년 12월에 세계대회에도 출전한다.폴댄서 송련진씨 / 본인 제공-폴댄스는 어떻게 시작했나“졸업 후 한국마사회 통역원으로 일했습니다. 단 한 명 뽑았는데 서류와 면접을 거쳐 합격했어요. 업무와 보수가 안정적이었지만 즐겁진 않았어요. 살도 많이 쪘습니다. 그런 제 모습이 싫어 회사생활의 도피처로 춤을 선택했어요. 근력도 키울 수 있는 폴댄스에 빠졌습니다.”통역원 일을 그만두고 생계를 위해 위해 인터넷 쇼핑몰과 스튜디오 대여 사업도 해봤다. 그러나 폴댄스를 출 때 제일 행복했다. 폴댄스에 집중하기로 하고 모든 일을 접었다. 제대로 하려면 돈, 시간, 노력을 투자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폴댄스학원 전문인반에 등록해 2개월간 전문기술을 배웠다. 보조강사도 했다. 4개월만에 전문강사 자격을 얻었다.-강사로서 자기만의 강점이 있다면“어릴 때부터 발레, 재즈댄스, 현대무용 등 다양한 춤의 기본기를 익혔어요. 대학에선 무대예술을 전공했습니다. 그런 점이 수강생들에게 춤의 전문용어와 기술을 가르치는데 도움이 돼요. 요즘 발레폴(발레와 폴댄스를 접목한 운동)이 인기인데 발레 동작에 대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아시아갓탤런트 출연한 모습 / '련진' 인스타그램-폴댄서 강사의 하루는“ ‘폴러스폴댄스’ 홍대점·강서점·강남점에서 수업합니다. 하루 평균 4회 강의를 하고 약 30~40명에게 가르쳐요. 재활기술, 해부학까지 공부할 정도로 몸의 기본 구조에 대한 연구도 합니다. 폴댄스는 몸을 잘 알아야 할 수 있는 운동이거든요. 초·중·고급반으로 나눠 수업하는데 초급반에서 더 인기가 많아요. 기본을 세우는 게 중요한데, 잘못된 건 정확히 지적하거든요. 주말에도 약 7시간 연습합니다.”수입은 일반 회사원보다 조금 더 많다. 수업 시간에 따라 다르지만 한 달에 약 200만원 후반 정도를 번다.다양한 사람들도 만났다. 카지노딜러·간호사·게임회사 직원·기자·변호사·의사 등 직업도 여러가지였다. 열다섯살 소녀부터 54세 주부까지 나이도 달랐다. 취미로 배우다 학원까지 차린 직장인도 있었다. 모델 박경진, 걸그룹 에이프릴에게도 폴댄스를 가르쳤다. 가수 박재범과 방송에서 더블폴(2명이 팀을 이뤄 같이 하는 폴댄스)도 선보였다. ‘너의 목소리가 보여’, ‘아시아갓탤런트’에도 출연했다. 방송출연은 무대에 대한 열정을 다시 찾아줬다.국내 폴댄스대회도 주최했다. /본인 제공-폴댄스의 매력은“몸과 마음의 아픔을 잊게 해줘요. 삶에 활력이 되어줍니다. 원하는대로 동작이 안될땐 ‘이게 뭐라고 멍들고 아프면서 하고있나’ 싶을 때가 있어요. 그래도 재미를 못 잊고 봉을 한번 더 잡고 올라가게 돼요. 복잡한 생각을 잊고 몸의 움직임을 느낄 수 있는 게 매력입니다. 근력이 좋아져 통증도 줄어들어요.”-직업으로서 힘든 점은“몸 관리를 항상 해야 해요. 부상도 잦은 편이라 재활치료에 신경을 써야 합니다. 관리를 하는데도 결과가 좋지 않으면 심적으로 힘들때도 있습니다.” 첫 출전한 국제대회에서 6위를 했다. 두 번째 대회를 앞두고 부상을 당했지만 결과는 2등. 2017년 12월 스위스에서 열리는 ‘POSA(폴댄스 세계선수권 대회)’ 출전을 앞두고 연습중이다. 각국 대표선수들이 나오는지라 부담이 되지만, 열심히 준비해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게 목표다.대회 연습중인 모습 / 본인 제공-폴댄스 대회는 어떻게 이루어지나“예술성과 기술 항목으로 나눠 심사합니다. 피겨, 체조처럼 심사기준이 엄격해요. 각국 폴댄스협회는 폴댄스를 대중에게 알리고 우수성을 홍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대회 개최도 그런 노력의 하나예요. 폴댄스가 올림픽 시범종목으로 채택되는 게 목표입니다.”-어떤 폴댄서가 되고 싶은지“다양한 특기를 갖춘 폴댄서요. 사람을 만나는 직업인만큼 관심사를 공유하고 정보도 주고 싶어요. 그래서 취미가 많아요. 스키, 승마를 하고 한복, 조명, 꽃병, 가구도 만듭니다.   폴댄스 하면 야한 춤이란 생각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춤을 추려면 노출 있는 의상을 입을 수밖에 없어요. 봉을 이용해 기술을 보이는지라 살이 닿는 면적이 넓을수록 안전하거든요. 폴댄스는 힘과 균형의 예술이예요. 몸의 구조를 잘 이해하고 표현력도 뛰어나야 해서 머리를 잘 써야 하는 운동이예요. 몸 쓰고 춤추기만 하면 되는 일이 아니라, 폴댄스도 전문적인 일이란 걸 알리고 싶어요. 사람들에게 폴댄스가 발레처럼 인식되도록 하는 게 목표입니다.”글 CCBB 에디터 김민정시시비비랩
어린이들 TV 앞으로 불러모았던 '요정컴미'의 근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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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학 졸업 후 리포터·통번역가어린이드라마 ‘요정컴미’역 전성초씨 미국 대학 졸업 후 리포터·통번역가 태양의 후예 촬영 현장서도 활약또박또박한 발음, 뿔테 안경 뒤 빛나던 눈동자. 외계 행성에서 온 것 같은 신비함을 풍기던 열한살 여자아이가 말했다. “안녕 난 컴미야”2000년대 초반 어린이들은 오후 5시면 텔레비전 앞에 모여앉았다. 화면에는 KBS 어린이 드라마 ‘요정컴미’가 흐르는 경우가 많았다. 많은 아역배우들이 자라 배우로 성장했다. 그러나 요정컴미로 최고 인기를 누리던 아역배우 가운데 하나인 전성초(27)씨는 마치 요정처럼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 그녀를 만나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를 들었다.jobsN◇갑작스러운 주연 캐스팅전성초씨 이모부는 MBC PD였다. 테스트 영상을 제작하는데 다섯살짜리 조카를 카메라 앞에 세웠다. 거부감 없이 율동과 노래를 잘 소화해냈다. 1994년 MBC ‘뽀뽀뽀’ 출연을 시작으로 KBS ‘하나둘셋’, EBS ‘꾸러기 안전일기’ 등 어린이 방송에 출연했다. 2000년 어린이 드라마를 기획하던 KBS 노동렬 CP는 똘똘하고 당찬 그녀의 모습을 보고 바로 ‘요정 컴미’ 주연 배우로 캐스팅한다. “정극 연기는 해본 경험이 없어 총괄 감독님을 제외한 제작진이 전체가 반대했대요. 그래도 감독님께서 밀어붙이셔서 주인공으로 출연했죠. 부담감이나 힘든 일은 없었어요. ‘오늘은 뭘 하며 놀지?’ 하면서 현장 가는 걸 신나했죠. 화장하기 싫어하고 치마는 안 입겠다며 도망다니기 바빴어요. 요즘 아역배우들은 혹독한 트레이닝을 거치고 경쟁도 치열하다던데 운이 좋았죠.”이전까지 어린이 드라마의 평균 시청률은 1~2%대였다. ’요정컴미’ 평균 시청률은 10.46%, 순간 최고 시청률은 18.76%. 이례적인 기록이었다. 원래 6개월이던 촬영 기간이 2년으로 늘어났다. “어린이 드라마의 역사를 새로 썼다”는 평과 함께 2002년 476부작 드라마 촬영이 끝났다.“초등학교 5,6학년을 컴미로 살았어요. 학교생활이 어려웠죠. 따돌림이 있었던 건 아닌데 저를 특별하게 보는 시선이 싫었어요. 자유롭고 싶었습니다. 말레이시아 유학 중인 사촌 언니의 사진을 보고 부모님께 ‘유학 보내달라’며 졸랐어요. 초등학교 졸업 후 말레이시아 국제 학교를 다녔어요.”김창완, 장근석 등이 출연한 KBS 어린이 드라마 '요정컴미'연기 경력이 없었던 아역배우 전성초씨의 회당 출연료는 3~4만원이었다. 돈벌이보다는 다양한 경험을 해보기 위해 출연한 방송이었다. 광고 제의는 없었냐고 묻자 “부모님이 그런 쪽으로 전혀 관심이 없었다”고 말했다. 말레이시아에서 유학생활을 마치고 고등학교 때 한국에 돌아와 국제 고등학교를 다녔다.“방송 출연만이 목적이었으면 어떻게든 방법이 있었겠죠. 연예인이 되면 평범한 삶과는 아예 동떨어지는 거잖아요. 아역 때 귀여운 모습을 좋아해주셨던 분들도 얼굴이 조금만 바뀌거나 기억하던 이미지와 다른 모습을 발견하면 바로 돌아서는 걸 많이 봤어요. 대중의 엄격한 시선에 상처받고 싶지 않았습니다. 해보고 싶은 걸 하면서 인생을 즐기고 싶었어요.”◇미국 대학 졸업 후 아리랑 TV 조연출 리포터로한국 수능을 볼 자신이 없었던 그는 미국 플로리다 주립대에 진학했다. 동물을 좋아해 수의사를 꿈꾸며 생물학과에 입학했지만 피를 보면 현기증이 났다. 교양으로 듣던 지리·환경 과목이 흥미를 끌었다. 전과해 2012년 졸업했다. 방학이면 한국에 있는 가족들을 보러 틈틈이 한국을 오갔다. 디지털 싱글 음반을 내기도 하고 아리랑 TV에서 번역 아르바이트를 했다. “사실 2011년에 가수 데뷔도 했어요. 대학교 3학년 겨울방학 동안 한국에 왔을 때였죠. 오랜 지인분이 음반 제작 회사에 들어갔는데 ‘같이 작업해보지 않겠냐’고 제안을 해오셨습니다. 좋은 경험일 것 같아 일주일 만에 콘셉트를 잡고 완성했죠. 가요무대에 서지도 못하고 바로 학기가 시작해 미국으로 갔어요. 슈퍼스타K 출연제의도 들어왔는데 준비가 안됐다는 생각에 거절했어요. 한번도 여러 사람 앞에서 노래해본 적이 없었는데 최근 친구 결혼식에서 축가를 불렀죠. 실력 발휘한 것 같아 흡족해요.”2011년 해외 방송사들을 위한 영문 보도자료를 작성하는 대학생 아르바이트를 시작으로 아리랑 TV와 인연을 맺었다. 졸업 후 아리랑 TV 조연출 겸 프리랜서 리포터로 3년간 일했다. 1년간 아침 라디오 프로그램에 맞춰 매일 새벽 네시반에 출근했다. 직접 방송 대본을 작성하고 편집실에서 영상을 편집하며 밤을 새울 때도 많았다.2013년 아리랑 TV MC로 출연 중인 전성초씨 /아리랑TV 캡쳐“미국 대학을 다니며 환경 NGO에서 인턴도 해봤지만 졸업 후 운명처럼 다시 방송 쪽에서 일했어요. 연기자와 리포터는 다른 영역인 것 같아요. 똑같이 카메라 앞에 서도 리포터는 없는 걸 상상해서 만들어내는 일이 아니잖아요. 예쁘지 않아도 괜찮고 잘 보여야 할 필요도 없습니다. 만약 연예인으로 대중 앞에 선다면 잘 준비해 아역 때보다 나아진 모습을 보여드려야 할 텐데 그럴 자신이 없었던거죠.”◇스텝고충 이해할 수 있었던 촬영 현장 통역가프리랜서 방송인으로 일하며 받았던 월급은 200만원 미만이었다. 스물네살부터 스물일곱살까지 청춘을 바친 일이었다. 진행을 맡았던 프로그램이 없어지자 회의감이 밀려왔다. 어딘가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무렵 지인에게 ‘공짜로 여행할 수 있게 해주겠다’는 제안을 받는다. 태양의 후예 해외 촬영팀이 통역가를 찾고 있었던 것이다.“백수로 우울해하고 있을 때였죠. 태양의 후예 그리스 촬영팀에 현장 통역사로 한달간 합류했습니다. 15년만에 돌아온 드라마 촬영장이었어요. 예전에는 출연자 입장이었으니까 스텝들이 얼마나 고생하는지 몰랐거든요. 직접 제작진과 지내보며 몸소 깨달았어요. 특히 제작비가 많이 드는 해외 촬영은 스케줄이 빼곡해요. 최우선으로 배려 받았던 연기자와 그걸 뒷받침해주는 제작진 둘 다 경험해볼 수 있었던 것도 의미가 있죠.”KBS 드라마 '태양의 후예' 해외 촬영 통역가로도 활동한 전성초씨 /전성초 인스타그램 캡쳐태양의 후예를 시작으로 푸른 바다의 전설, 배두나가 출연한 미국 드라마 ‘센스8’ 등의 촬영 현장 통역가로 일했다. 인연이 이어져 배우 한효주. 추자현의 영어 과외를 가르치고 있다. 실력도 차근차근 쌓는 중이다. 2017년 11월 이화여대 통번역학과 대학원에 합격했다. 앞으로 이변이 없는 한 계속 통번역가의 길을 걸을 생각이다.  “‘’만약 연기를 계속했다면’을 상상해보지 않은 건 아닙니다. 노력한다고 할 수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열두살에 아무것도 모르던 상태에서 바로 드라마 주인공이 됐던 것처럼 운과 상황이 맞아야 하죠. 주인공 컴미일때와 지금과 같은 건 하나에요. 주위 시선 신경 쓰지 않는 전성초로 살고 싶다는 생각입니다. 최근 대학원에 합격했어요. 어학이라는 특기를 살려 전문 통역가가 될 거예요. 제 삶을 사랑하며 살다 보면 또 새로운 기회가 열릴 거라 생각해요.” 글 CCBB 에디터 김지아시시비비랩
'대한민국 소시지 1위'하고 싶다는 이 광고, 불법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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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봐도 속을 만해야 법적 처벌 가능성 있어누가 봐도 속을 만해야 법적 처벌 가능성 있어기만당하지 않으려면 소비자가 꼼꼼히 봐야믿을 만한 기관에서 상을 받은 기록은, 기업이나 제품 홍보에 매우 쓸모가 있다. 하지만 좋은 상은 아무나 받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이 때문에 일부 사업자들은 약간의 속임수를 쓰기도 한다. 좋은 상을 받거나 공신력 있는 매체에 등장한 경험이 있는 양 꾸미는 것이다.시중 판매 중인 한 소시지에 실제 적힌 문구./디시인사이드물론 없는 걸 있다 말하면 명백한 사기 행위다. 이런 시비를 피하고자 업자들은 기술을 약간 동원한다. 사실을 조금 덜 말하거나, 거짓은 크게 밝히고 사실은 조그맣게 적어두는 식이다. 잘만 하면 유쾌하고 위트 있다는 인상을 줄 수도 있기 때문에, 업계에서도 흔히 쓰는 전략이다. 하지만 애교 섞인 장난이라 변명하더라도, 아무튼 근본은 소비자의 혼동을 이끌어내 돈을 버는 작전이라 해석할 여지가 있다. 법의 판단은 어떨까. ◇잘라 말하기 어렵다 대놓고 속이는 건 당연히 불법이다. 하지만 ‘TV에 나올 집’이나 ‘1위 하고 싶은 상품’ 등 방식으로 홍보하는 건 위법이라 잘라 말하긴 어렵다 한다. 최용문 법무법인 수호 변호사는 “소비자가 광고에 속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처벌할 수 있는데, 이런 광고엔 대개 ‘정보는 충분했지만 고객이 잘못 읽은 거다’라고 볼만한 근거 또한 존재한다”고 말했다.네이버 블로그거짓은 크고 분명하게 쓰고, 진실은 작고 흐리멍덩하게 적는 수법 자체를 문제 삼을 수 없을까. 현행 표시광고법에선 사업자가 소비자의 구매선택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실이나 내용을 은폐하거나 축소하는 등의 방법으로 행하는 ‘기만 광고’를 금지한다. 그러나 특정 정보를 은폐·누락·축소한 것만으로 곧장 부당 광고 낙인이 찍히는 건 아니다. 최 변호사는 “보는 사람이 속을 만하다는 건 디자인이나 배치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파악이 가능한 정보”라며 “사전에 ‘이렇게 짜둔 광고는 기만 의도가 있다’고 단정해 말할 순 없다”고 했다. 이와 관련 있는 사례로, 지난 2011~2014년 홈플러스가 경품행사 광고에 개인정보 제3자 제공 관련 약관을 1mm 사이즈로 적어 형사재판까지 간 사건을 들 수 있다. 1심과 2심은 모두 무죄 판결을 내렸다. 사람이 읽지 못할 정도 크기라 단정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대법원은 이를 뒤집었다. 1mm 크기 글씨로는 개인정보보호법상 ‘고지의무’를 다하지 않은 거라 해석했다. 이처럼 법원 판단마저 제각각일 수 있기 때문에, ‘이러면 기만 광고다’고 미리 짚어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꼼꼼히 살피는 습관 들여야 결국 위험을 확실히 피하려면, 소비자가 철저히 조심하는 수밖엔 없다. 최 변호사는 “누가 봐도 혼동할 만하다면 몰라도, 몇몇만 깜빡 속도록 짜둔 광고는 기만이라 말하기 쉽지 않다”며 “광고나 홍보문구를 볼 때 꼼꼼히 디테일을 살피는 습관을 들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글 CCBB 에디터 폴리시시비비랩
양심 따윈 없다, 대놓고 베껴놓고 오히려 큰소리치는 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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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되면 그만이지~' 베껴서 더 잘됐다? 중국 표절 사례중국의 한국 방송 '복사+붙여넣기' 심각실질적인 제재수단 없어, 정부가 나서야 할때중국 동영상플랫폼 아이이치(愛奇藝·iQiyi)는 1월부터 아이돌 서바이벌 프로그램 ‘우상연습생(偶像練習生)’을 방송했습니다. 아이돌 가수를 꿈꾸는 연예 기획사 연습생 100명이 출연해 경연을 펼쳤는데요. 이중 마지막까지 가장 많은 표를 얻은 9명은 최종 멤버로 뽑혀 ‘나인퍼센트’라는 아이돌 그룹으로 데뷔할 예정입니다. 우리나라 Mnet에서 방송했던 ‘프로듀스 101’을 떠올리게 합니다.우상연습생은 제작 단계부터 ‘중국판 프듀’로 불렸습니다. 기획 의도와 진행 방식, 노래, 무대·카메라 연출, 에피소드까지 프로듀스 101을 빼다 박은 것처럼 똑같았습니다. 하지만 아이이치는 Mnet과 판권 계약을 한 적이 없습니다. 표절 방송입니다.2017년 방송한 Mnet 프로듀스 101 시즌 2와 2018년 아이이치 우상연습생 비교. /Mnet '프로듀스 101 시즌2', 아이이치 우상연습생 영상 캡처◇표절 사례 수두룩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지만, 중국의 표절 사례를 보면 ‘너무 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2010년 레이쥔이 창업한 중국 IT 기업 샤오미가 대표적인데요. 샤오미는 ‘애플 짝퉁’으로 불렸습니다. 애플 스마트폰의 본체 디자인, UI(User Interface·사용자 환경) 등을 그대로 베꼈습니다. ‘윤식당’과 유사한 ‘중찬팅’은 방송 첫회부터 동시간대 시청률 1위(1.36%)를 기록했습니다. 아이이치에서 방영한 중국판 ‘쇼 미더 머니’인 ‘더 랩 오브 차이나’도 첫회 방송에서 조회수가 1억건을 넘었습니다. ‘냉장고를 부탁해’, ‘삼시세끼’, ‘효리네 민박’, ‘안녕하세요’는 각각 ‘주방의 비밀’, ‘동경하는 생활’, ‘친애적객잔’,‘사대명가’ 등으로 다시 태어나 인기를 끌었습니다. 2017년 10월 김성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방송통신위원회 및 방송 프로그램 제작사에서 받은 '방송포맷 표절 관련 국내 피해 현황' 자료를 보면, 중국에서 표절 당한 한국 예능 프로그램 수는 29개입니다.중국 후난TV '중찬팅' 배우들이 스타일링까지 윤식당을 따라한다는 지적이 있다. /tvN '윤식당', 후난TV '중찬팅' 캡처한국 예능을 표절했다는 지적에 중국 제작진들은 ‘표절이 아니다’라고 입을 모읍니다. '중찬팅' 총괄 PD 왕티엔은 언론 간담회에서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아이템”이라 해명했습니다. 이어 "'윤식당' 역시 일본의 '카모메 식당'을 참고한 프로그램”이라며 "외국에서 식당을 여는 아이템은 누구나 생각할 수 있다”고 반박했습니다. ‘랩 오브 차이나’ 총괄 CP 천웨이는 중국 언론 봉황망과의 인터뷰에서 “힙합문화는 세계 공통”이라 했습니다. 또 로고와 포스터까지도 똑같다는 지적에 대해 “만약 '랩차이나'의 로고, 포스터를 다른 모양으로 만들면 우리가 힙합문화를 제대로 전달할수 있을지 의문스럽다”고 해명하기도 했습니다.(왼쪽부터) 한국 '쇼미더머니' 시즌5 포스터와 중국 '랩 오브 차이나' 포스터. /각 방송 공식홈페이지◇중국의 도둑질을 막으려면‘표절’은 윤리적인 문제입니다. 법적으로 시시비비를 가리기가 어렵습니다. 어디부터 어디까지를 표절이라 봐야할지 뚜렷한 기준도 없습니다. 표절 판결을 내리는 세계저작권재산기구가 있긴 합니다. 하지만 표절 판단을 받아도 시정 명령 정도만 내릴 수 있습니다. 한국-중국 FTA에 지적재산권 관련 조항이 있지만 중국 정부가 자국 기업을 보호하는 한 무용지물입니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창작자의 양심에만 기댈 수는 없습니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한국 정부가 대응해야 할 때입니다. 최근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이동섭 국민의당 의원이 2018년 1월에 대표 발의한 '콘텐츠산업진흥법 개정안'과 '음악산업진흥법 개정안'이 본회의를 통과했습니다. 2018년 7월 30일부터 이 법이 시행되면 콘텐츠와 음악 지식재산권을 보호하기 위해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이 외교부 등 중앙행정기관 장에게 협조를 요청할 수 있습니다. 방송이든 제품이든 창작자의 노력이 들어갑니다. 법적 조치를 취하기 어렵다고 손놓고만 있다면 중국에 눈 뜨고 코베이는 수밖에는 없습니다. 엔터테인먼트 업계 관계자는 “중국의 한국 방송 표절은 개인, 기업 차원으로 대응하기 어렵다”고 토로 했습니다. 이어 “표절이 비일비재한 만큼 정부 차원에서 여러 경로로 중국 측에 문제를 제기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했습니다.글 CCBB 에디터 욘두시시비비랩
'입이 쩍' 자산 9조원 부자의 하루 평균 생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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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보면 짠돌이 부자들억만장자들은 고급 저택에 살고 초고가 자동차와 전용 제트기를 몰며 호화로운 생활을 할 것 같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유명한 세계적인 갑부들 중에서도 검소함이 몸에 밴 사람들이 있다. 검소한 습관을 가진 5명의 부자들을 소개한다.◇워런 버핏60년 전 3만1500달러 (약 3700만원) 주고 산 집에 아직 거주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CEO는 세계 4위 갑부지만 검소하다. 워런 버핏은 네브래스카의 소도시 오마하의 담장도 없는 평범한 집에 살고 있다. 60년전에 3만1500달러 (약 3700만원)에 산 집이다. 버핏은 돈 문제엔 자식들에게도 냉정했다. 버핏의 막내아들 피터는 1989년 밀워키로 거처를 옮기려했다. 그 과정에서 피터는 처음으로 아버지에게 돈을 빌려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버핏은 "우리 관계가 금전 거래 없이 깔끔했으면 한다"며 부탁을 단칼에 거절했다. 결국 피터는 은행 대출로 이사 비용을 마련해야 했다.워런버핏(가운데) / 사진 플리커그는 2014년 주주들과의 미팅에서 "내 삶은 지금보다 더 행복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만약 집이 6채 8채 있었으면 지금 보다 훨씬 불행했을 것이다. 나는 필요한 것을 모두 가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보다 더 가질 필요가 없다"고 했다.◇잉그바르 캄프라드이코노미석과 시내버스를 자주 이용스웨덴 가구업체 이케아의 설립자인 잉그바르 캄프라드가 2018년 1월 28일, 91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캄프라드는 330억달러(약 37조2240억원)의 자산가로 스웨덴은 물론 유럽 최고 갑부 중 한 명이었다. 동시에 짠돌이로 유명했다. 그는 20년 가까이 93년산 볼보 승용차를 탔다. 또 이케아 푸드코트에서 손님들과 점심을 먹고 출퇴근 때는 버스를 이용했다. 해외출장 때는 항상 이코노미 클래스만 탔다잉그바르 캄프라드/ 사진 플리커그는 값싼 이케아 가구로 꾸민 스위스 로잔 부근의 집에서 30년 가까이 살았다. 평소 동네 슈퍼마켓이 세일할 때를 기다려 장을 보고 값싼 가게를 자주 갔다. 그는 한 스위스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남들이 나를 보고 인색하다고 말하지만 신경쓰지 않는다"며 오히려 회사의 절약 원칙을 따르는 것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또 "당신 회사 직원들은 이면지 사용을 강요받는다던데"라고 묻자 그는 "그게 어때서? 난 종업원들을 위해 솔선수범한다"고 했다. ◇ 마크 저커버그 신혼여행 가서도 맥도날드마크 저커버그는 816억 달러(약 96조원)의 자산가로 세계 3위 부자다. 그러나 그는 평소 티셔츠와 청바지 차림에 소형차나 중형차를 탔다. 폴크스바겐 골프GTI, 아큐라 TSX 등이다. 그는 본인의 똑같은 옷차림을 두고 "무엇을 입을 것인지 신경쓰는 대신 내 주변 커뮤니티를 더 돌보는 것이 낫다"고 했다.마크 저커버그/ 사진 플리커저커버그는 결혼식도 소박했다. 그의 집 뒤뜰에 90여명의 하객이 모였다.청첩장은 없었고 친구와 동료가 대부분이었다. 신부의 드레스도 평범했다. 뿐만 아니라 저커버그는 신혼여행 중에도 소박한 모습을 보였다. 그는 흰색 세 줄이 뚜렷한 '삼선 슬리퍼'를 신고 다녔다. 저커버그가 신은 삼선 슬리퍼는 짝퉁이 아닌 아디다스 제품일지라도 가격은 5만원 이하다. 저커버그 부부는 로마에서 신혼여행을 하던 중 점심으로 약 3파운드(약 5400원) 맥도날드 햄버거를 계단에 앉아 먹었다. 한편 저커버그는 2015년 12월 살아있는 동안 자신의 페이스북 주식 99%를 기부하겠다고 밝혔다.저커버그 부부/ 사진 플리커◇ 종칭허우 회장짠돌이 경영이 중국 최고갑부의 비결?포브스는 2010년 중국 최대 갑부로 종칭허우 와하하그룹 회장을 선정했다. 블룸버그 통신은 종칭허우 회장의 자산을 최소 80억 달러(약 9조256억원)라고 추정했지만 하루 용돈은 평균 20달러(약 2만2572원)라고 보도했다. 음주·도박·골프를 하지 않고 회사 구내 식당에서 매끼를 해결한다.종칭허우 회장/ 사진 플리커그의 근검절약 태도는 회사 경영에도 그대로 나타난다. 와하하그룹의 본사는 중국 항저우시 철도역 오른쪽에 6층짜리 회색 건물안에 있다. 이 건물을 20년 넘게 사용하고 있다. 종칭허우 회장은 빗자루 구입 같은 소소한 경비까지 일일이 직접 챙긴다고 한다. 슈안 레인 차이나 마켓 리서치 그룹 이사는 "그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경비절감"이라며 "경비절감을 통해 모은 돈으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말했다.◇척 피니짠돌이? 기부왕? 찰스 피니의 두 얼굴워런 버핏이 롤모델로 꼽은 척 피니는 세계 최대 면세점 체인 '듀티 프리 숍(Duty Free Shop)'의 창업자다. 척 피니는 미국 뉴저지의 허름한 집에서 태어났다. 고작 10살에 크리스마스 카드를 판매했고 대학생 때에는 샌드위치 장사를 했다. 또 20살에 시작한 면세점 사업에 성공해 40대에 억만장자 반열에 올랐다.척 피니/ 사진 플리커척 피니는 부자였지만 짠돌이로도 악명 높았다. 그러던 어느날 그의 사업체가 법적 분쟁에 휘말려 조사받는 과정에서 비밀장부가 나왔다. 조사 도중 그가 15년간 40억 달러(약 4조5000억원)를 기부한 내용이 드러났다. 척 피니는 기부를 하면서도 늘 익명을 고집했던 것이다.그는 1982년부터 기부 활동을 해 약 9조 5000억원의 재산을 사회에 환원했다. 이후 2017년 말 마지막 재산인 700만 달러(약 83억원)를 대학에 기부했다. 그는 여전히 1만4000원짜리 시계를 차고 다니고 부인과 샌프란시스코 임대 아파트에 살고 있다.글 CCBB 에디터 최현주시시비비랩
부모님 몰래 다녔던 콜라텍, 그곳에서 인연이 시작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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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ck me·위아래춤·시건방춤으로 한국을 뒤흔든 사람의 정체야마앤핫칙스 배윤정 대표국내 최초 사업자등록 한 안무팀 야마앤핫칙스 "후배들이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할 것"시건방춤, 엉덩이춤, 위아래춤. 모두 한국을 뒤흔든 춤이다. 온 국민의 몸을 들썩이게 하는 안무를 만든 주인공은 야마앤핫칙스 배윤정(39) 대표다. EXID, 브라운아이드걸스, 카라, 티아라 등의 히트곡 안무도 했다. 그래서 얻은 별명이 ‘히트 안무 조물주’. 2016년 수많은 스타를 만든 프로듀스 101 대표곡 ‘픽미’의 안무도 그녀의 작품이다.배대표와 전홍복 단장이 함께 이끄는 야마앤핫칙스는 국내 최초로 사업자 등록을 한 안무팀이다. 댄서에게도 소속 회사를 만들어 합당한 처우를 받게 해주고 싶었다고 한다. 최근 야마앤핫칙스를 따라 사업자등록을 하는 안무팀도 늘어나고 있다. 국내 안무팀의 판을 바꾼 배윤정 대표를 만났다.배윤정 대표. 이날 배대표는 제 6회 대한민국 예술문화인대상 안무가 부문에서 상을 받았다. / jobsN◇공부보단 춤이 좋아 몰래 춤추러 다녀고등학생 때부터 춤을 좋아했다. 음악 방송 녹화는 필수였다. 녹화한 영상을 보면서 가수들 춤을 따라 했다. 무용을 하는 친구가 부러워 직접 피자집 아르바이트를 하며 발레학원을 다녔다. 학교에 다니면서 아르바이트를 하다 보니 한계에 부딪혔고 발레학원은 그만뒀다. 대신 수업이 끝나면 부모님 몰래 춤을 추러 콜라텍에 다녔다. 거기서 만난 안무팀이 연습실에 나오라 했다."연습실에서 바운스, 팔 뻗기, 웨이브 등 기본기를 배웠습니다. 종일 벽보고 기본 동작만 반복했어요. 안무팀은 대부분 남자였습니다. 매일 혼나면서 엄격하게 춤을 배웠어요. 한 달 정도 연습하고 바로 무대에 오를 기회가 생겼습니다. 가수 스크림의 ‘천사의 질투’라는 곡 백댄서로 무대에 올랐어요. 너무 긴장 해서 어떻게 했는지 기억도 안 납니다."1990년대 까지만해도 춤추는 사람들을 곱게 보지 않았다. 배 대표도 아빠에겐 비밀로 하고 연습실을 다녔다. "엄마한테만 말했어요. 연습실에서 밤새 연습할 때면 엄마가 윤정이 학원 갔다가 친구 집에서 자고 온다고 거짓말도 해주셨죠. 나중에 제가 TV에 나오자 그때 말씀하셨다고 해요. 춤춘다는 말을 들은 아버지께서 먹을 걸 잔뜩 싸 들고 연습실에 찾아오시기도 했죠."최근 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히트 안무 메들리를 선보였다. / 네이버 TV 캡처◇2007년 야마앤핫칙스 결성20살 때 대학 대신 연습실을 택했다. 성인이 된 후에도 춤에만 몰두했다. 2007년 자신의 안무팀을 결성했다. "연습실에서 동생들과 연습을 하고 있었어요. 동생들이 '언니가 안무팀 만들면 나도 할래요'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핫칙스라는 여성 안무팀을 만들었죠. 당시 돈이 없어서 아는 동생이 이끄는 남성 안무팀 야마랑 연습실을 같이 쓰기로 했어요. 지금 야마앤핫칙스 공동대표 전홍복 단장이에요."안무팀을 결성했지만 2년 동안 일이 없었다. 일이 들어와도 신인 아이돌 몇 팀 안무였다. 그 정도로는 팀을 먹여 살릴 수 없었다. 결국 한두 명씩 그만뒀고 월세도 밀렸다. 2009년까지 해보고 더 이상 일이 없으면 팀을 해체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던 중 카라의 프리티걸과 브라운아이드걸스 아브라카다브라 안무를 맡았다. 그것이 배 대표의 운명을 바꿨다."카라는 원래 야마 팀 일이었습니다. 프리티걸 안무를 같이 짰죠. 다음 맡은 곡이 브라운아이드걸스의 아브라카다브라입니다. 여자로만 구성해서 섹시하게 출 수 있는 안무를 만들어 달라고 했어요. 그런데 남자 댄서들이랑 같이 하면 더 좋은 그림이 나올 것 같아서 야마랑 같이 작업했습니다. 프리티걸이 인기를 끌더니 아브라카다브라가 전국적으로 크게 터졌죠. 이후 야마랑 팀을 합쳐서 남여혼성 안무팀 야마앤핫칙스를 결성했어요."연이은 성공으로 입소문을 타 일이 많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티아라 소속사에서 '브아걸과 카라처럼 1위를 만들어달라'며 안무를 요청했다. 그래서 만든 것이 보핍보핍 고양이춤이다.배윤정 대표가 만든 pick me 안무 / Stone Music Entertainment 유튜브◇온 국민이 따라 추는 안무, 하루 만에 완성하기도배윤정 대표는 빠르면 하루, 느리면 2주 만에 안무를 만든다고 한다. 소속사에서 요청이 들어오면 그때부터 하루종일 그 노래만 듣는다. 안무가마다 춤을 만드는 순서가 다른데 배 대표는 노래의 하이라이트인 코러스 부분을 먼저 만든다. 계속 노래를 들으면 갑자기 안무가 떠오른다고 한다. 예를 들어 시건방춤은 골반 스트레칭하는 모습을 보고 떠올렸다. 보핍보핍은 노래를 계속 들으니 화장지 이름 뽀삐가 생각났다고 한다. 걸그룹이니 강아지 대신 고양이를 연상시키는 안무를 만들자 해서 탄생한 게 고양이춤이다.이렇게 포인트 안무를 잡으면 브릿지(bridge·간주)와 벌스(verse·절·도입부)부분도 쉽게 짤 수 있다고 한다. 1절 안무를 마무리하고 소속사로 보낸다. 수정사항이 생기면 소속사와 조율하면서 고치고 한 번에 수락하면 2절 안무까지 끝낸다. 소속사와 수월하게 작업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노래가 좋으면 안무는 금방 나옵니다. 그러나 곡이 애매한데 곡에 어울리지 않는 안무를 만들어달라는 요청도 있어요. 누가 봐도 귀여운 노래에 섹시한 동작을 넣어달라고 해요. 심지어 어떤 곳에서는 해외 안무팀 영상을 가져와서 똑같이 해달라는 곳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중간에 못 하겠다고 돌려보낸 곳도 있죠.”이런 과정을 거쳐 카라의 루팡, 브아걸 식스센스, 걸스데이 멜빵춤 등이 탄생했다. ‘히트 안무 조물주’라는 별명을 얻고 야마앤핫칙스도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졌다. 프로듀스 101, 마이리틀텔레비전 등에 출연하면서 방송활동도 시작했다. 프로듀스 101의 대표곡 픽미 안무를 포함해 프로그램 내 모든 신곡 안무는 배 대표와 야마앤핫칙스가 만들었다.스테이지631에서 함께 춤을 가르치는 토니안 대표(왼쪽)와 배윤정 대표 / 스테이지631 제공◇"좋은 환경에서 춤을 배울 수 있도록 하고 싶어요"야마앤핫칙스는 국내 최초로 사업자등록을 한 안무팀이다. “지금도 댄서들의 처우가 좋지 않지만 옛날에는 더 심했습니다. 방송국 대기실 바닥에서 자고 눈치 보면서 카드를 받아 밥을 사 먹었죠.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정당한 회사로서 댄서에게 정당한 처우를 해주고 싶었습니다. 당시 가수 활동시간에 맞춰 오후 3시 출근, 밤 10시 퇴근 시간도 정했죠.”사실 야마앤핫칙스는 지금 위기다. 요즘은 댄서 없이 아이돌이 단독으로 무대를 꾸미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게다가 과거 같이 일한 걸그룹 상당수가 활동을 접어 일이 더 줄었다. 야마앤핫칙스 소속으로 데뷔를 준비하던 걸그룹이 성공하지 못해 빚도 생겼다. 배 대표는 최근 2년 동안 힘든 시기를 보냈다고 한다.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마음으로 여러 활동을 하면서 극복중이다. 프로듀스101에 이어 프로듀스48에도 출연했다. 이 프로그램으로 보고 유럽에서 함께 일하자는 요청도 들어왔다. 최근엔 인터파크에서 투자를 받아 스테이지631(stage 631)을 열었다. 전홍복 단장, 토니안 대표와 함께 일반인에게 춤을 가르치는 댄스 스쿨이다.스테이지631은 배 대표가 오랜 꿈을 현실로 만들 공간이다. "댄서나 아이돌을 꿈꾸는 아이들이 좋은 곳에서 교육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습니다. 제가 잘하고 오래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스테이지 631이라는 좋은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안무 교육을 제대로 하고 싶습니다. ‘얼굴과 이름만 걸어 놓겠지’라고 의심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아요. 멘토로서 사무실에 상주하면서 아이들도 가르치고 있습니다. 방송이나 워크숍 활동도 활발히 할 겁니다.”글 CCBB 에디터 하늘시시비비랩
대박나 번 돈, 4년만에 다 까먹고 남은건 10억빚 뿐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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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박났던 여성복 쇼핑몰에 위기 닥치자 아동복으로 재기한 자매로아앤제인 송현지 대표, 송수지 실장여성복 인터넷 쇼핑몰 펀펀걸로 대박성장 한계에 부딪혔다가 아동복으로 재기매번 출시하는 상품마다 20~30대 아기엄마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는 아동의류 업체가 있다. 이 업체가 지난 9일 대형 인터넷 쇼핑몰인 롯데닷컴에 내놓은 미키마우스 털부츠는 이날 전체 상품 중 제일 많이 팔린 상품이 됐다. 이 업체의 이름은 로아앤제인. 2014년 온라인에서 런칭한 아동의류 업체로 현재는 온라인과 함께 전국 12개 백화점에서 직영 매장을 운영한다.이 업체는 송현지(36) 대표와 송수지(39) 실장 자매가 이끈다. 이 자매는 ‘펀펀걸’이라는 1세대 여성복 인터넷 쇼핑몰을 창업해 대박을 터트렸지만 이후 좌절을 맛봤다. 2018년 11월 12일 서울 성동구 사무실에서 만난 이들은 “그때의 좌절이 많은 도움이 된다”고 했다.디자인을 검토하는 송현지 대표(왼쪽)와 송수지 실장. / 로아앤제인 제공◇1세대 여성복 인터넷 쇼핑몰 창업해 성공‘송송 자매’는 어릴적부터 디자인, 미술과 친숙했다. 인테리어업을 하던 아버지는 생일이나 크리스마스 때 물감이나 팔레트 등 미술도구를 선물로 줬다. 언니인 송수지 실장은 건국대 일본어학과를 나와 독학으로 웹디자인과 그래픽을 공부했다. 졸업 후 인터넷 웹페이지를 만들어주는 에이전시에 근무했다.동생인 송현지 대표는 의상 디자인을 하고 싶어 고등학교 졸업 후 패션 학교인 프랑스 에스모드에 들어갔다. 6개월만에 귀국했고 한양여대 의상디자인과에 입학했다. 송 대표는 대학 2학년이던 2003년 인터넷 쇼핑몰을 차렸다. -대학생이 인터넷 쇼핑몰 창업하기가 쉽지 않았을텐데.“예쁜 옷을 선별하는 감각엔 자신있었다. 엄마에게 300만원을 빌려 20대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여성복을 옥션과 G마켓에서 팔았다. 그때가 인터넷 쇼핑 초창기였다. 나중엔 웹디자이너인 언니에게 부탁해 사이트를 개설했다. 재밌게 해보자는 뜻에서 쇼핑몰 이름도 ‘펀펀걸’이라고 지었다.”-장사는 잘 됐나.“매일 새벽 4시 반에 일어나서 동대문에 가서 옷을 사왔다. 내가 학교 수업을 받는 동안 엄마가 상품 포장을 했고, 하교 후 같이 배송 작업을 했다. 일이 많아지면서 2004년 건대 앞에 사무실을 차렸다. 그때부터 쇼핑몰 방문자 수가 폭발적으로 늘었다. 하루 방문자만 3만명을 넘었고, 2분에 한 벌꼴로 옷이 팔려나갔다. 가장 잘 될 때는 하루에 매출이 1000만원, 한달에 3억원을 찍었다.”-언제부터 자매가 동업했나.“언니는 대학 졸업 후 대형 웹에이전시에서 일했다. 많은 대기업 계열사 홈페이지를 만들었다. 펀펀걸이 성장하며 2004년 사무실을 얻을 때 언니도 동업을 시작했다. 사무실에서 매일 밤을 새다시피하며 일했다. 패션 쇼핑몰 방문자 규모에서 스타일난다에 이어 2위였다. ”-이후 사업이 어려워졌다고 하던데.“2010년쯤부터 대규모 의류 쇼핑몰이 생겼고 광고 마케팅 경쟁이 치열해졌다. 아무리 눈썰미로 좋은 디자인의 옷을 골라 팔아도 마케팅에 밀려 매출이 하락했다. 하락세를 막기 위해 매달 7000만~8000만원을 광고비에 썼다. 하지만 그만큼의 수익이 줄었다. 2004~2010년 6년간 벌었던 돈을 2010~2014년 4년동안 다 까먹고 빚이 10억이 생겼다.”송현지 대표와 송수지 실장의 모습. 오른쪽은 롯데닷컴에서 전체 판매 1위를 차지한 로아앤제인 미키마우스 털부츠. / jobsN·로아앤제인 제공◇직접 만드는 아동복으로 승부수힘든 시간을 보내면서 송 대표와 송 실장은 각자 결혼해 아이를 낳았다. 코너에 몰린 두 사람은 마지막이란 각오로 2014년 여성복 대신 아동용품으로 눈을 돌렸다.-아동용품을 택하게 된 계기는.“더는 물건을 사입해 판매하는 쇼핑몰로는 승산이 없었다. 어디서도 볼 수 없는 디자인으로 직접 상품을 만들어 팔자고 생각했다. 당시 딸에게 직접 옷을 만들어 입히면 사람들의 반응이 좋았다. 승산은 있다고 봤다. 2014년 11월 첫 상품으로 담요를 만들어 인터넷 블로그에서 팔았다. 무채색에 ‘MY BLANKET’이라고 쓴 담요였다. 우리 자매의 두 딸 로아와 제인 이름을 따서 브랜드 이름도 로아앤제인으로 지었다.”-반응은 어땠나.“아이들 담요엔 대부분 만화캐릭터가 그려져 있다. 우리가 만든 담요는 무채색에 심플하면서도 모던한 느낌이라 엄마들이 좋아했다. 지금까지 마이 블랭킷을 1만개 정도는 판 것 같다. 점차 상품을 확대했고, 2015년부터는 옷을 만들어 판매했다.”왼쪽부터 로아앤제인이 처음으로 만들어 판매한 마이블랭킷과 처음으로 만든 아동의류, 최근에 내놓은 의류. / 로아앤제인 제공-제작 판매한 옷도 인기를 끌었나.“우리는 내 아이를 위한 옷을 만들자는 생각으로 일한다. 다른 브랜드보다 좋은 소재를 사용하고 디자인도 내 아이가 입을 때 예쁜 것을 만든다. 신상품이 나오면 전문 아이 모델을 피팅모델로 쓰지만, 딸인 로아와 제인도 착용샷을 찍었다. 내 아이가 실제로 입을 때의 느낌을 고객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다. 로아앤제인이 잘 되면서 자연스럽게 펀펀걸은 문을 닫았다.”-홍보는 어떻게 하나.“펀펀걸을 운영하며 마케팅과 광고로 어려움을 겪었잖나. 광고를 안하고 성장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게 절실했다. 당시 유행이었던 인스타그램을 활용하기로 했다. 제품 착용 사진을 올렸고, 로아와 제인을 키우면서 생기는 일들을 포스팅하며 고객과 소통의 폭을 넓혔다. 현재 인스타그램 팔로워는 3만8000명이다.”실제 착용사진을 찍는 모습. 왼쪽 사진은 송수지 실장이 자신의 딸인 제인(맨 왼쪽)과 동생 송현지 대표의 딸인 로아와 촬영하는 모습. 오른쪽은 로아와 송수지 실장이 촬영을 준비하는 모습. / 로아앤제인 제공◇오프라인으로 나와 12개 백화점 입점인스타그램을 중심으로 엄마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난 로아앤제인은 2016년 2월 오프라인으로 나왔다. 전국의 백화점을 돌며 팝업스토어를 연 것. 송현지·송수지 자매는 “인터넷 쇼핑몰을 하면서 온라인 비즈니스의 한계를 명확히 느꼈다”며 “정체되지 않고 성장하지 않기 위해 오프라인 문을 두드렸다”고 했다.-팝업스토어 반응이 어땠나.“현대백화점 판교점에서 첫 팝업 스토어를 열었다. 하루에 매출 1000만원이 나왔다. 보통 백화점 매장이 하루에 100만~200만원 매출을 거두는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성과였다. 사람이 하도 몰리니 보안요원까지 출동했었다. 이후 백화점들의 팝업스토어 요청이 쏟아졌다. 매달 1~2번 트럭에 짐을 싣고 전국 백화점에 팝업스토어를 열었다. 1년간 20여개 백화점은 거친 것 같다.”-백화점 정식 입점 계기는.“2016년 8월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에서 팝업스토어를 열었는데 행사 기간 일 평균 매출이 1500만원을 찍었다. 유아 의류 팝업 매출 1위였다. 그것을 눈여겨본 신세계백화점 측이 그해 12월 동대구점을 새로 내면서 입점을 제안했다. 이후 롯데 이천아울렛점, 현대백화점 판교점, 천호점,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롯데백화점 중동점 등 12개 백화점에 입점했다. 오는 12월에는 롯데아울렛 기흥점에 입점할 예정이다.”왼쪽은 현대백화점 충청점에서 열린 팝업스토어에 고객들이 몰려든 모습. 오른쪽은 신세계백화점 동대구점에 입점한 로아앤제인 첫 정식 매장. / 로아앤제인 제공-매출은 어느정돈가.“매년 2배씩 늘고 있다. 2016년에 연 매출이 15억원, 2017년엔 30억원이었다. 올해는 60억~70억원을 예상한다. 처음에는 온라인 매출이 대부분이었지만 지금은 절반 이상이 오프라인 백화점 매출이다.”-해외 진출도 계획하고 있다던데.“2016년 중국 유아동복박람회에 참가해 중국 측 바이어들과 만났다. 이후 중국, 홍콩, 사우디아라비아 등에서 바이어들이 제품을 사간다. 올해와 내년엔 해외 진출을 더욱 적극적으로 할 예정이다.”-재기 비결은 무엇이라고 보나.“겁이 없다는 것이 아닐까. 내 아이가 입는 제대로 된 옷을 합리적인 가격에 판다는 것이 소비자에게 먹힌 것 같다. 현재 우리 고객들의 대부분은 로아 또래 5살 아이를 가진 엄마들이다. 고객들의 아이가 클 때까지 우리 브랜드도 함께 커야된다고 본다. 아이가 5살, 7살, 9살이 돼가면 각각의 나이대에 맞는 상품을 만들어 팔려고 한다. 우린 이제 온라인 브랜드가 아니다. 시작을 했으면 끝을 보자는 생각이다. 아동복 분야에서 최고점을 찍어보고 싶다.”글 CCBB 에디터 별걸다시시비비랩
대기업 임원보다 많다는 스포츠 심판들의 연봉은 얼마나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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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 축구나 야구 같은 메이저 스포츠 리그에서는 선수들이 천문학적인 연봉을 타간다는 사실은 누구나 다 알고 있습니다. 특히 글로벌 스포츠스타들 같은 경우에는 몇십에서 몇백억원을 받는데 일반 직장인들은 물론 대기업 임원들한테도 꿈꾸기 힘든 금액이죠. 하지만 이들을 코트 또는 경기장 안에서 규칙대로 경기를 진행시키는 심판들도 예상외로 상당한 연봉을 받아간답니다. 물론, 메이저 프로 스포츠에만 해당하는 경우죠. 다음은 대기업 임원보다 많은 메이저 스포츠 심판들의 평균연봉 톱 7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1. NBA 미국 프로 농구 심판평균연봉: 150,000달러(1억7,300만원) ~ 600,000달러(6억9,000만원)미국 프로 농구의 한 시즌에는 플레이오프를 제외하고 모든 팀들이 82게임을 치룹니다. 그럼 보통 한 경기당 400만원 정도를 수표로 지급 받죠. 심판 교육과정을 막 이수하고 리그에 들어온 루키들은 보통 150,000달러에서 시작하는데, 35년 동아 수천 경기를 심판해온 최고참 조이 크로포드 같은 경우에는 10억원이 넘는 연봉을 받는다고 합니다.2. MLB 미국 프로 야구 심판평균연봉: 95,000달러(1억1,000만원) ~ 370,000달러(4억2,500만원)MLB 웹사이트에 따르면 미국 프로 야구 심판들은 총 162 경기를 소화하는 동안 기본 연봉 외에도 4주의 유급 휴가와 5성급 호텔 숙박비 그리고 1등석 비행기 티켓이 제공된다고 합니다. 하지만 전 메이저 스포츠를 통틀어서 MLB 심판 교육과정을 졸업해 정식 심판이 되는 확률이 가장 적다고 ESPN이 밝힌 바 있죠. 그만큼 경쟁이 치열하답니다. 추가로 트리플A나 더블A의 심판들은 MLB 심판 평균 연봉의 20%도 못받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하네요.3. NHL 미국 프로 하키 심판평균연봉: 120,000달러(1억3,800만원) ~ 270,000달러(3억1,300만원)미국 프로 하키 심판들은 평균 1억에서 3억을 버는 가운데 선심(라인즈멘)도 평균 8,000만원에서 1억8,000만원의 연봉을 타갑니다. 사실 NHL 심판만큼 여러 스킬과 강력한 체력, 그리고 스피드가 필요한 심판직은 찾아보기 드물죠. 흔히, 하키 규칙은 누구나 습득할 수 있어도 하키 심판같이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나 못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4. EPL 영국 프로 축구 심판평균연봉: 85,000달러(9,800만원) ~ 130,000달러(1억5,000만원)영국의 유명 일간지 텔레그램에 따르면 프리미어 리그의 공식 심판으로 뽑히게 되면 기본 연봉 85,000달러에 경기당 1,300달러의 항공료 및 숙박비가 지급된다고 합니다. 그럼 대략 한 시즌에 38 경기에 심판으로 나설 경우 130,000달러를 받게 되는거죠. 하지만 부심들과 챔피언쉽 리그 (2부 리그)의 평균 연봉은 큰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부심들은 경기당 30만원 정도 받고 챔피언쉽 리그에서는 연봉이 고작 650만원에 그칠 때가 있죠.5. NFL 미국 프로 미식축구 심판평균연봉: 40,000달러(1억7,300만원) ~ 150,000달러(5억7,500만원)NFL은 다른 메이저 스포츠의 심판들과는 다르게 대부분 파트 타임으로 일을 합니다. 그 이유는 프리시즌을 포함해 고작 20 경기를 1주일에 한번씩 (주말에) 뛰기 때문이죠. 이 때문에 대부분의 미식축구 심판들은 치과의사, 농사꾼, 회사원, 중소기업 CEO 등 각양각색의 직업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 경기당 수입으로 봤을 때는 모든 스포츠를 통틀어 가장 많이 챙겨가고 있죠.6. NCCA 미국 대학 농구 심판평균연봉: 100,000달러(1억1,500만원)미국 대학 농구 1부 리그 (Division I)의 심판들은 프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경기당 2,000달러를 지급받습니다. 보통 한 시즌에 50 경기 정도 뛰는 이 심판들은 일년 연봉으로 100,000달러를 받게 되죠. 하지만 프로 리그와는 달리 호화로운 숙박비나 1등석 비행기표는 제공되지 않습니다.7. UFC 프로 이종격투기 대회 심판평균연봉: 12,000달러(1,400만원) ~ 90,000달러(1억500만원)2016년, UFC 언더카드 심판들은 경기당 30만원 정도 받으면서 총 1,400만원의 연봉을 타간 반면에 메인카드를 담당했던 심판들은 경기당 150~300만원을 받으면서 1억원이 조금 넘는 연봉을 타갔습니다. 하지만 MMA 최고 연봉을 받는 심판들은 따로 있죠. 올해 무려 30억원을 받는 허브 딘부터 13억원을 받는 존 맥카시 등 이들은 차원이 다른 UFC 심판 연봉을 받고 있습니다.글 CCBB 에디터 피클시시비비랩
아나운서들이 말하는 프리랜서 전향 하게된 현실적인 이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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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나가던 아나운서들이 갑자기 프리 선언을 하는 것을 많이 보았습니다. 사실 프리랜서 전향이 처음 화두가 되었을 때는 하던 일을 잘하지 왜 다른 것에 탐을 내냐면서 한 소리를 했었는데요. 이제는 인식이 달라져 그들의 끼를 맘껏 분출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맘으로 응원하고 있습니다. 프리랜서로 전향을 하면 그들은 한 방송사에 얽매이지 않고 다양한 방송에서 활동할 수 있게 됩니다. 경우가 좋다면 수익은 올라가게 되는데요. 이처럼 아나운서의 프리랜서 전향은 현실적인 문제라고 다들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좀 더 구체적으로 이유를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아나운서는 연예인이 아닌 직장인이다.TV에서 연예인들과 섞여 나오기 때문에 화려한 인생을 살 것 같지만 사실은 월급날을 기다리는 직장인과 다름없습니다. 김성중, 박지윤, 이금희, 손범수 등 이들이 안전한 직장을 떠나 프리 선언을 한 이유는 현실적인 문제인 돈입니다. 밝혀진 내용으로는 아나운서 초봉은 3200만 원 선이며 지상파 3사 중에서 SBS가 가장 높고 KBS가 가장 낮다고 하죠. 이외에 TV프로그램에 출연을 하면 회당 2만원 이하로 받고, 라디오의 경우 5천원 이하라고 하는데요. 최고가 5천원이지 2천원 3천원인 경우가 더 많습니다.그래서 김현욱 전 KBS 아나운서는 외부 행사를 몰래 뛰며 연봉보다 많은 금액을 벌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회사가 알게 되어 감봉에 처해졌던 적도 있는데 외부 행사로 버는 돈이 많았기 때문에 개의치 않았다고 하죠. 그러니 라이징 스타일 때 발 빠른 프리선언으로 자신의 끼를 이용해 직장인에서 벗어나는 것이 좋은 방법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2. 200%로 일해도 똑같은 월급현재 '어서 와 한국은 처음이지?'에서 끼를 발산하고 있는 신아영 아나운서는  SBS에서 3년 동안 직장 생활을 했고, 프리랜서로 4년째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녀는 프리랜서로 활동을 하며 아나운서 연봉(초봉 기준)을 한 달 만에 벌었던 적도 있다고 했습니다.  프리랜서이기 때문에 불안정적이지만, 그때보다는 일에 대한 활력도 높아지고 수입도 나아진 편이라고 하죠.3. 지상파를 위협한 종편의 등장유정현 아나운서가 1999년 프리 선언을 했을 때만 해도 지상파 3사 외에는 나설 공간이 없었죠. 하지만 2000년 이후 종편이 개설되며 채널을 다 돌리기도 힘들 만큼 많아졌습니다.  그 때문에 예전보다 근래에 들어 프리선언을 하는 아나운서들이 늘어난 것인데요. 덕분에 프리 전향을 한 아나운서들의 설자리가 많아 프리로 전향을 열악한 상황엔 처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4. 자신의 능력을 활용할 수 있는 길현재 프리라서 더 잘 버는 KBS 전 아나운서 전현무를 예로 들 수 있습니다. 그는 프리 선언 이전에도 국민 밉상 캐릭터를 얻으며 엔터테이너적인 자질을 인정받았고, 종편에서 영입 제의가 들어왔을 정도였는데요. 그는 2012년 프리 선언 이후 처음에는 연봉 200만원인 시절도 있었지만 현재 나 혼자 산다 등 여러 예능에서 메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2017년에는 MBC 연예대상까지 수상하면 정점을 찍었죠. 나 혼자 산다의 출연료가 아나운서 연봉의 30배라고 하며 현재 수입은 CF와 행사까지 더하면 30억대로 추측되고 있습니다. 정말 프리여서 다행인 케이스가 아닌가 싶네요.5. 중견 아나운서의 위기현재 연예인으로 활동하고 있는  10년 동안 아나운서 일을 하던 오영실에게 지방 발령이 떨어졌었습니다. 10명이 단체로 지방 발령이 난 것은 묵시적 권고사직이었는데요. 그 걸 보면서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했다고 하죠. 이후 다른 길을 찾기 위해 배우의 꿈을 뒤늦게 키웠다고 합니다. 또한 케이블 아나운서 김민아가 말하길 4년 차가 되면 더 이상 좋은 프로그램을 맡을 수 없어서 프리 선언을 하게 되었다고 하죠. 현재 예능프로그램 '자기야' 연예정보 프로그램 '올댓 TV 쇼'등에 출연하고 있습니다.글 CCBB 에디터 스마트인컴시시비비랩
11년 무명 ‘그 배우’→공장 전전→ ‘쇼호스트’로 새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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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세 신입 쇼호스트 이수완한때 재연배우계의 장동건으로 불린 사나이인기도 얻었지만 결코 이름으로 불리지 못했던 배우4년 전 방송계에서 자취 감춘뒤 공장 알바 등 전전 쇼호스트로 '제2 인생' "40대도 할 수 있다, 보여줄것"이름은 몰랐지만 얼굴을 보니 알 것 같았다. MBC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이하 서프라이즈)’ 재연배우로 친숙한 이수완(41·이중성에서 개명)씨였다. 그는 ‘본명으로 불리지 못하는 연예인’이었다. 각종 시사·오락 프로에서 특정 상황을 재연하는 데 출연하는 연기자를 재연배우라고 한다. 그는 이름 대신 ‘서프라이즈 걔’로 통했다. 재연 장면이 많은 프로그램인 서프라이즈에서 매번 다른 인물을 연기했다. 그러나 사람들이 정작 이름은 모른다는 이유에서 나온 별칭이다. 포털사이트 네이버 연관 검색어조차 ‘서프라이즈 걔’였다.서프라이즈 출연 시절 이수완씨(왼쪽). 오른쪽은 그의 개명전 이름인 이중성 검색 결과/MBC·네이버 캡처어느샌가 방송가에서 자취를 감췄던 이씨는 2016년 공영홈쇼핑 공채에 합격, 연수를 거쳐 2017년 3월부터 근무 중이다. 배우 대신 쇼호스트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한 그를 만났다. ◇끝이 보이지 않았던 ‘무명’의 사슬  방송가를 떠난 이유에 대해 이씨는 “연기, 노래, MC까지 할 수 있는걸 다 해봤지만 보이지 않는 벽에 부딪힌 느낌이었다”고 했다. “가슴에 손을 얹고 최선을 다했다고 말할 수 있다. 새로운 길을 가야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그는 1999년 브로드웨이 42번가로 뮤지컬에 데뷔했다. 2002년 가수 박효신의 ‘좋은 사람’ 뮤직비디오 출연을 시작으로 방송에도 얼굴을 비추기 시작했다.방송인 시절 꾸준히 뮤지컬 활동을 했던 이수완씨/본인 제공방송인 시절에는 일주일 내내 눈코뜰 새가 없었다. 고정 프로그램이 매주 3~4개는 있었고, 한창 일할 때는 16일 연속 밤샘 촬영을 한 적도 있었다. 바쁜 스케줄 덕분에 월 400만원 이상의 수입을 벌어들여 생활이 어렵지는 않았다. 뮤지컬 공연도 꾸준히 병행했다. 그가 재연배우로 활약한 서프라이즈는 애증의 프로그램이었다. 곱상한 외모와 탄탄한 연기력으로 '재연배우계의 장동건'이라는 말도 들었지만 틀 속에 갇힌다는 느낌이 그를 점점 조여왔다. “2002년부터 11년 정도 서프라이즈에 출연했을 거예요.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딱 이 정도 수준의 역할만 할 수 있는 사람으로 취급받는게 싫었습니다. 정말 열심히 노력했는데도 보이지 않는 한계를 넘을 수 없더라고요. 물론 저보다 더 열심히 하신 분도 있으실 겁니다. 그렇다면 제가 그 자리에 있는 것이 민폐라는 생각도 들었어요.”방황하던 시절 가수로의 전업도 시도했으나 별다른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MBC 캡처이씨는 2013년 어느날 주변의 연락을 끊고 잠적했다. “모질게 끊지 않으면 평생 ‘서프라이즈 걔’로 살 것 같았다”고 한다. “(담당 PD의) 연락을 안 받았어요. 붙잡을 게 뻔하니까요. 정말 죄송한 일이었지만 그때는 욕을 먹더라도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방송가에서 자취를 감춘 그는 한동안 혼자만의 시간을 보냈다.  연기 대신 먹고 살 방법을 찾아야했다. 댄스 가수로의 변신도 시도했지만 별다른 두각은 나타내지 못했다. 반평생을 방송인으로 살았던 그에게 ‘바깥 공기’는 냉혹했다. 불혹을 바라보는 나이에 새로운 직업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겉으로 좀 어려보이더라도 주민등록증만 보면 부담감을 느끼더군요. 사회에선 ‘실제 나이’가 정말 무섭더라구요. 중년에 새로운 인생을 산다는게 쉽지 않았습니다.” 3년 가까이 방황이 계속됐다. 공장에서 일하기도 했으며, 생활비가 떨어져 지인들에게 손을 벌리기도 했다. 결혼은 딴 세상 얘기였다. 이씨는 아직 미혼이다.  ◇고민 끝, 목표 향해 돌진 앞으로  방황 끝에 떠올린 직업이 쇼호스트였다. “10년이 넘는 방송 경력을 인정해줄 곳이 생각보다 많지 않았습니다. 인생은 긴데 계속 먹고는 살아야 하잖아요. 타협점을 찾은 직업이 쇼호스트였습니다.” 인센티브 비중이 높은 것도 그에겐 매력으로 다가왔다. “(배우 시절엔) 열심히 해도 결국 실패했어요. 그러나 이 직업은 노력만큼 보상이 따라온다는 점에서 다를 것 같았습니다.”이수완씨/본인 인스타그램결심을 굳힌 이씨는 아카데미를 다니며 본격적으로 쇼호스트를 준비했다. “연예인 출신이라 대충 할 것”이라는 주변의 편견을 노력으로 극복했다. 아카데미에서 가르쳐 주는 홈쇼핑용 목소리 톤과 매너를 공부했다. 시험 대비를 위해 PT(프리젠테이션)를 하루에 5개씩, 총 100번씩 연습했다. 100가지 상품 소개를 준비한 셈이다. “공영홈쇼핑 공고 안내에 ‘즉석 PT’가 있었어요. 이 회사의 가장 잘 팔리는 상품이 문제로 나올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베스트 100’을 시험 전까지 모두 외워야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2016년 연말에 시행됐던 공영홈쇼핑 쇼호스트 공채 시험. 서류전형을 통과한 뒤 하룻동안 자기소개와 자유 PT, 즉석 PT를 각각 2분씩 치렀다. 시험장소는 심사위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지원자 홀로 조명을 받는 적막한 스튜디오. 웬만한 사람은 땀을 비오듯 쏟을 정도로 위압적인 분위기. 불행히도 즉석 PT에선 ‘베스트 100 상품’에서 문제가 나오지 않았다. 고추장이었다. PT로 준비했던 비슷한 상품군을 머릿속에 그렸다. 2분간 용기, 맛, 향, 색깔 등을 다루며 제품을 소개했다.“미리 준비한 멘트 두 가지, ‘얼마나 맛있게요’ ‘그래 이 맛이야~’를 중간에 섞었습니다. 홈쇼핑에서는 잘 안 쓰는 표현인데 약간 튀어보이려고 한 거죠. 열심히 하려는 밝은 모습을 긍정적으로 평가해주신 것 같습니다.” 면접을 거쳐 최종 합격자 8명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지원자는 1200명이 넘었다. 이씨는 연수를 거쳐 지난 3월 정식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41세 신입’이 된 것이다. 매년 계약을 갱신하는 전속 프리랜서다. 공영홈쇼핑 초봉은 3000만원 중반대이며, 2년차부터 실적이 반영되면서 인센티브가 붙는다. 판매 실적이 좋은 쇼호스트는 억대 수입을 올리기도 한다.   ◇41세 신입으로 살아가는 법  허위나 과장 상품 소개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제재를 받을 수 있다. 게다가 공영 홈쇼핑은 이름 그대로 공영성을 강조하기 때문에 자체 심의 규정이 다른 곳에 비해 더욱 까다로운 편이다. 소비자의 판단을 흐린다거나 현혹시키는 표현을 쓰지 말아야 한다. 제품군마다 쓸 수 있는 표현의 한계가 있다. 공영 홈쇼핑은 중소기업청이 설립했다. 직접 만난 이수완씨/jobsN“장어를 예로 들어볼게요. 건강식품이 아닌 음식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건강’에 대해 직접적으로 언급하면 안 됩니다. 스태미너를 챙기기 위해 찾는 상품인데 어떻게 보면 현실과는 모순되는거죠. 가장 큰 장점을 얘기를 못하는 셈이기 때문에 돌려서 표현할 방법을 찾아야합니다. 그것도 떠오르지 않는다면 먹는 시연을 할때 ‘으아~’ 이런 식으로 몸으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상품의 모든 가치를 숫자로 환산해 100이라고 치면 많아야 80까지밖에 못 보여주는 경우가 많아요.” 분야는 좀 다르지만 ‘남자한테 참 좋은데 어떻게 표현할 방법이 없네’라는 산수유 광고도 비슷한 맥락에서 나온 카피였다.  쇼호스트로 '제2인생'을 살고 있는 이수완씨/공영홈쇼핑 제공·본인 인스타그램이씨는 “어떤 직업을 밖에서 보는 것과 안에서 실제 경험하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라며 “적정한 선을 지키면서 상품을 제대로 소개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절감한다”고 했다. 목소리나 톤 같은 방송 기술은 기본이었다. TV로 보면 쉽게 내뱉는 것처럼 보이는 쇼호스트의 말 한 마디 한마디가 알고보니 ‘내공’ 없이는 나오기 힘든 말이라고 한다.  41세 신입은 웬만한 학생 못지 않은 학구열을 불태운다. “선배가 대부분 저보다 어립니다. 10살도 넘게 어린 선배도 있어요. 그러나 보고 배울 점이 많아요. 처음엔 자리에 못 박아놓은 줄 알았어요. ‘왜 저렇게 공부를 할까’ 싶었는데 이제 이해가 가더라고요. 열심히 하는 후배에겐 다정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정말 날카로운 분들입니다.” 생방송인 홈쇼핑 특성상 상품을 완벽하게 숙지해야한다. 방송 시간이 정해지면 그 전에 업체와 미팅을 한다. 방송 전후로 틈틈이 상품에 대한 공부를 한다. “타사 모니터링, 현지 시장조사, 웹서치까지 하다보면 시간이 항상 부족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일주일에 소화하는 방송은 4개 정도. 아직은 메인 쇼호스트를 보조하는 서브 쇼호스트인 이씨는 "빨리 자리를 잡아 메인 쇼호스트가 되겠다"고 했다. ​메인 쇼호스트는 상품을 디테일하게 보여주고 설명하는 역할을 맡는다. 이씨 같은 서브 쇼호스트는 소품을 들고 메인 쇼호스트를 거든다. 처음엔 서브 쇼호스트로 시작, 경력을 쌓은뒤 메인 쇼호스트가 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40대의 성공 보여줄 것” 이씨는 “홈쇼핑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바꾸고 싶다”고 했다. “‘막상 받아보면 양이 적어 먹을게 없다’ ‘질이 안 좋다’ ‘다른 데서는 못 파는걸 처리한다’는 인식이 남아있는 것 같아요.” 당장 눈앞의 판매에 급급해 지나치게 포장하는 행위는 삼가야한다고 생각한다. “정말 좋은데 가격이 저렴한 제품도 많습니다. 특히 ‘상생’을 모토로 삼는 우리는 중소기업 업체 제품을 거래하기 때문에 더욱 믿고 살 수 있는 홈쇼핑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방송계에 대한 아쉬움은 없을까. 그는 “무작정 뛰어든 직업이 아니다”라며 “정말 잘하고 싶고, 잘해야 한다”고 했다. “사실상 처음 해보는 사회 생활인데 선배들 덕분에 많이 성장하고 있습니다. 잘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에요. 어느 정도 반열에 올랐으면 몰라도 지금은 과거의 아쉬움 따위를 생각할 때가 아닙니다. 업계에 이름난 분들처럼 제 이름을 딴 ‘이수완쇼’를 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방송계에 연을 끊고 잠적할 때 느낀게 있어요. 우리 사회에 방황하는 중년이 정말 많습니다. 우리 40대 이상 중년도 ‘제2의 인생’ 도전에 불가능은 없다는 걸 보여주겠습니다. 그래서 저는 잘 할 것이고, 잘 돼야합니다. 비록 인생 1막에선 쓰라린 실패를 안았지만 2막에선 희망을 보여드리겠습니다.” 글 CCBB 에디터 오유교시시비비랩
전지현·설현 뒷모습 대신한, ‘수중 모델’그녀의 고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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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와 광고 속 전지현·설현 뒷모습의 정체수중 모델 겸 기획자 김희진전지현·설현 뒷모습의 주인공"물속에 있을 때 가장 행복”드라마에서 아름다운 인어의 뒤태를 뽐냈던 전지현. 광고에서 시원하게 풀장으로 입수하던 설현. 이 장면에는 비밀이 있다. 화면 속 뒤태가 본인이 아니라는 것. 물속에서 전지현과 설현 모습을 하고 자유자재로 유영하던 사람은 따로 있다. 바로 수중 모델 김희진씨다.톱스타 대역뿐 아니라 수심 10m 대형 수조에서 한복과 웨딩드레스를 입고 화보 촬영을 한다. 때로는 가오리, 상어와 함께 어울려 공연을 선보인다. 김씨는 초등학교 1학년 때 아티스틱 스위밍으로 물과 인연을 맺었다. 이후 국가대표 선수를 거쳐 지금은 수중 모델 겸 기획자로서 각종 촬영을 하고 공연을 기획한다.수중모델 김희진 / jobsN◇얼떨결에 시작한 아티스틱 스위밍‥국가대표까지-아티스틱 스위밍은 어떻게 시작했나요"국가대표를 꿈꾸고 시작한 건 아니었어요. 초등학교 1학년 때 학교에서 수영할 줄 아는 학생 중에 자원을 받았어요. 아티스틱 스위밍이 뭔지도 모르고 지원했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 무렵 국가대표 상비군으로 뽑혔고 고등학교 2학년 때 국가대표가 됐습니다. 대학교 1학년까지 활동했어요. 대학교 2, 3학년 때는 학교 소속으로 대회에 나갔습니다."-수상 경험은"바르셀로나 세계 선수권 대회 팀 11등,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도 11등 했습니다. 매번 예선 문턱을 넘지 못했습니다. 아티스틱 스위밍은 비인기 종목입니다. 선수 시절 지원을 못 받았고 이후 커리어를 이어가면서 돈을 벌 수 있는 길이 없습니다."◇수중모델로 공연과 촬영..공연기획까지대학교 3학년 무렵 선수를 그만두고 진로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 코치로만 남기에는 아쉬웠다. 2009년 졸업 직후에는 심판 자격증을 취득해 활동했다. 이후 수중 공연 아르바이트를 시작했고 나중엔 공연 기획팀도 직접 만들었다.아쿠아리움에서 공연하는 김씨와 팀원들, 한복 입고 수중 촬영에 임하고 있는 모습 / 김희진 인스타그램 캡처-수중 공연은 어디서 했나요"한화 아쿠아 플라넷에서 섭외가 왔습니다. 음악과 컨셉에 맞춰 공연을 했어요. 싱크로나이즈는 물에서 많이 올라올수록 점수가 높아서 깊이 잠수할 필요가 없습니다. 수중 공연은 말 그대로 물속에서 하는 거라 처음에 힘들었지만 곧 적응했습니다. 가령 세계 지구의 날이 있는 5월엔 환경을 지키자는 메시지를 전하는 컨셉의 공연을 합니다. 물의 신, 하늘의 신, 땅의 신이 등장합니다. 이렇게 시즌에 맞춘 공연이 대부분이죠. 1년 정도 아르바이트로 하다가 2010년 겨울부터 수중촬영 및 기획 회사 ‘제이스포(JSPO)’를 차렸습니다. 지금은 코엑스 아쿠아리움에서 공연하고 있어요."-제이스포에선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수중 공연을 기획하고 수중 광고 및 잡지 촬영 등을 합니다. 모델이 필요한 곳에 후배를 소개하기도 해요. 공연을 주로 하고 있습니다. 2017년 초부터는 경기도 아티스틱 스위밍 팀의 코치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광고 촬영은 어떻게 이루어지나"수심 7~8m의 대형 수조에 들어가서 컨셉에 맞게 포즈를 취합니다. 세탁기 광고부터 방수 제품 광고 등에 출연했는데 광고 촬영이 물에서 하는 것 중 가장 힘듭니다. 첫 광고 촬영 때는 숨을 쉬지 못해 아찔한 상황까지 갔던 적도 있어요. 세탁기 광고 때 드레스를 입고 촬영했습니다. 촬영 때는 중간에 수면 위로 올라가 숨을 쉬는 자가 호흡법과 호흡기를 물고 있다가 촬영 때 떼는 방법이 있어요. 당시에는 자가호흡이었죠. 숨을 쉬려고 올라가는데 다리에 드레스가 엉켜서 올라갈 수가 없었습니다. 허우적거렸더니 촬영팀은 계속 포즈를 잡는 것으로 착각하더군요. 겨우 올라가 숨을 쉬었어요. 죽을 뻔했습니다. 다음부터 더 조심하게 됐죠."◇전지현, 설현 등 톱스타 대역김희진씨가 대역으로 촬영 후 방영된 장면과 극 중 남자배우 집 안 수영장에서 인어 옷을 입고 찍은 사진, 설현이 출연한 TV 광고에서 수영하는 모습 / 김희진 인스타그램 캡처-배우 대역도 했다고 하는데"광고나 드라마 촬영 때 배우가 소화하기 어려운 수중 장면이 있으면 제가 대신 연기를 했어요. 대표적으로 SBS 푸른 바다의 전설 전지현씨와 스프라이트 CF 설현씨 대역을 맡았습니다."-대역 촬영은 어떻게 이루어지나요"섭외가 들어오면 대본을 받아 촬영할 장면을 파악합니다. 이후 촬영장에서 배우와 최대한 비슷하게 옷과 머리 스타일을 맞추죠. 촬영장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배우가 소화하기 어렵거나 위험한 장면이 나오면 제가 들어갑니다. 가령 푸른바다의 전설에서는 전체장면, 전지현씨가 물속에서 멈춰있거나 집안 수영장 장면 등을 제가 대신 촬영했습니다. 워낙 전지현씨가 수중 촬영을 잘해서 놀라기도 했습니다."-대역으로서 가장 힘든 점은 무엇인지"촬영에 들어가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자세하게 설명을 안 해줍니다. 지금은 괜찮은데 처음엔 많이 헤매기도 했어요. 또, 드라마는 한 장면을 방향을 다르게 해서 1~2컷에 끝나지만 CF 대역 같은 경우는 드라마보다 3배 더 오래 걸립니다. 스프라이트 광고 촬영 때 물 위로 올라와서 숨 쉴만 하면 다시 들어가서 촬영 해야했어요. 그래도 촬영 감독님이 생각하는 것과 저의 연기가 잘 맞으면 뿌듯합니다."◇귓병·감기 달고 살지만 행복-직업병이 있다고 하는데.."귓병을 항상 달고 삽니다. 물에서 거의 눈을 뜨고 있어서 눈에도 많은 무리가 옵니다. 가장 무서워하는 것이 감기입니다. 깊은 물 속에 들어가면 수압을 견뎌야 하는데 코가 막히면 그게 어려워집니다. 항상 건강관리를 잘 해야 해요."수중 촬영 중인 김희진씨 / 김희진 인스타그램 캡처-수중모델은 어떻게 하나요"아티스틱 스위밍을 하던 친구들처럼 선수 출신이 많이 하는데 따로 자격증이 필요한 건 아니에요. 일반인도 할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포트폴리오를 만들거나 촬영회 같은 곳에 참여하다 보면 다양한 촬영 기회가 옵니다."-앞으로의 목표는"물속에 있으면 편안합니다. 저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해요. 직업병에 시달리고 힘든 점이 있어도 물속에 있을 때가 행복합니다. 지금처럼 제가 좋아하는 일 하면서 살고 싶어요. 아직 수중 모델 시장이 작습니다. 후배들이 조금 더 많은 선택지를 갖고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 겁니다. 저는 광고 편당 200만원 정도 받습니다. 사실 아직 명확한 보수 기준이 없습니다. 후배들이 일한 만큼 정당한 대우를 받을 수 있게끔 그 기준을 만들어 가려고 합니다."글 CCBB 에디터 하늘시시비비랩 
6할대 불방망이, 시속 100km 돌직구 던지는 여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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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선수 겸 액션배우 박지아씨야구선수 겸 액션배우 박지아씨 최고 시속 100㎞ 강속구 뿌려대합기도 3단, 태권도 2단, 우슈 1단야구하려고 편의점 등 알바까지여기 야구에 미친 젊은 여성이 있다. 단순한 팬이 아니다. 온몸이 비밀병기라 부를 정도의 무예 유단자다. 합기도 3단, 태권도 2단, 우슈가 1단. 우슈 청소년 대표까지 지냈다. 영화에서는 액션 배우로 활약한다. 악당역으로 나오는 남자 배우들 서넛도 눕힐 정도의 실력이다. 하지만 야구, 야구가 좋아서 산다. 야구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것도, 액션 배우를 하는 것도 다 야구 때문이다. 그래도 국가대표 상비군에 올라 태극 마크를 달아서 소원을 절반은 이뤘단다. 나머지 절반은 여자 야구 세계 최강인 일본팀을 꺾는 일이다. 그 주인공인 박지아(26) 선수를 2018년 1월 16일 JobsN이 만나봤다. 아쉽지만 그라운드가 아니라 카페에서 만났다.박지아 선수 / jobsN◇야구하다가 코피에 하얀옷 물들기도 여성 야구선수는 그리 흔하지 않다. 계기가 궁금했다. -야구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일곱살 때 부모님을 따라 야구를 보러갔다. 외야에 앉았는데 앞으로 공이 굴러왔다. 신기했다. 그 공이 내 운명을 바꿨다고나 할까. 다음날부터 오빠와 동네야구에 빠져들었다. 하루는 하얀 옷을 입고 야구를 했다. 코에 공을 맞아 옷이 피로 물들었다. 부모님이 충격을 받고 야구 장비를 다 갖다 버리셨다. 그리고는 발레를 시키셨다. 그런데 발레는 적성에 맞지 않더라.(웃음)”-발레는 몇 달이나 했나.“한 달 배우고 그만뒀다. 발레보다는 ‘활동적인’ 스포츠가 좋았다. 초등학교 때에는 육상부 활동을 하면서 합기도, 태권도, 우슈 등 다양한 운동을 배웠다. 합기도는 3단, 태권도는 2단, 우슈는 초단이다. 우슈 청소년 국가대표로 뽑히기도 했다.”-액션과 무예에 대해 애정이 있겠다. “물론이다. 카메라 앞에서 무술을 뽐내는 것도 좋았다. 하지만 야구가 더 좋다.”-액션배우가 된 것은 계기가 있나.“합기도와 태권도를 배우던 중, 선배가 서울액션스쿨에서 제대로 배워서 액션 배우를 해보라고 권했다. 액션스쿨 모집공고가 뜨자마자 오디션을 보러 갔다. 자기가 할 수 있는 무술을 보여주는 방식이다. 태권도 발차기와 쌍절곤을 준비해 무예실력을 보여줬다. 합격해서 액션배우로서 소양을 배웠다.”박지아 블로그◇남자 사회인 야구에서 시작…“3개월간 공도 못 만져”-제대로 야구를 배운 것은 언제인가.“액션 배우를 하던 중 사회인 야구단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양준혁 선수가 운영하는 곳이었다. 입단 후 3개월간은 공에 손도 못 댔다. 한강에서 스윙연습부터 시작했다. 그 뒤로 투구연습을 배웠다. 수건을 들고 섀도 연습을 하면서 폼을 잡았다. 하지만 사회인 야구단에서는 남자들과 같이 운동해 아쉬움이 있었다. 여자 야구단에 들어가고 싶었다.”이후 박지아 선수는 2014년 CMS 여자야구단에 들어가 1년 6개월 간 활동했다. 정말 야구에 미친 시절이었다. 2015년에는 해외 유명 영화 출연 제안도 받았는데 거절하기까지 했다. “지금 생각하면 오히려 하고 싶죠. 여자 야구도 알리고 액션 배우도 하는 기회였을텐데 아쉽긴 하네요.” 박 선수는 요즘에는 원 소속팀인 ‘이스트 서울’팀에서 나와 독립구단인 저니맨에서 연습 중이다.국제대회 참가와 국가대표 상비군 발탁은 야구선수 박지아에게는 더 할 나위 없는 영예다. 그녀는 2017년 8월 LG컵 국제여자야구대회에 출전했다. 한국 등 7개팀이 출전했고, 한국은 2개팀으로 나눠 블루팀과 레드팀이 나갔다. 박씨는 레드팀 구원투수로 뛰었다. -국가대표 선발전은 어떻게 통과했나.“2017년 4월 국가대표 선발 테스트를 받았다. 80여명이 모여 2주 동안 기초체력, 순발력, 기본기 등을 평가 받았다. 한달 지나고 상비군으로 뽑혔다. 그때 기분은 말로 표현 할 수가 없다. 야구를 하면서 가장 큰 목표가 국가대표였다. 상비군으로 뽑힌 40여명의 선수와 함께 5주 동안 훈련을 받았다.” -팀의 성적은 8개 팀 중 6위에 그쳤다.“아쉽긴 하다. 하지만 태극기를 달고 경기에 나갈 수 있다는 사실이 더 중요했다. 함께 훈련하고 경기를 하다보니 우리나라에도 잘하는 선수가 많다는 것도 알게 됐다. 하지만 우승한 일본팀의 실력을 따라잡기는 쉽지 않았다. 고등학생과 초등학생이 경기하는 느낌이었다. 부럽기도 하고 죽기 전에는 한 번 이겨보고 싶기도 하다.”투수로 출전한 박지아 선수(좌) 국가대표 상비군으로 뽑혀 유니폼을 입고 훈련에 임한 모습(우) / 박지아 블로그◇“안해본 알바 없어…공에 얼굴 맞아도 난 야구광”인터뷰 중 박 선수는 “안 해 본 아르바이트가 없다”는 말을 했다. 아직 한국은 일본 등 여자 리그가 활성화된 다른 나라와 달리, 여자 야구의 저변이 넓지 않다. 마운드에서는 시속 100㎞의 공을 뿌려대고, 타석에서는 6할(2016년 기준)을 기록하기도 했지만, 구장을 나서면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생활인이다. 액션배우로 본격적으로 일하기 전까지 박 선수는 운동을 꾸준히 하면서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했다. 성인이 된 뒤 첫 아르바이트는 야구장 유니폼 판매였다. 그때도 모은 용돈은 배팅장이나 스크린 야구장에서 썼다. 이후에도 식당 서빙, 편의점 등 안해본 아르바이트가 없을 정도다. 국내 많은 여자 야구선수들의 상황이 비슷하다. 다른 여자 야구선수들도 생업이 따로 있다. 박씨는 “친구들한테 일단 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대답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안타깝다”면서 “후배들 때문에 책임감을 갖고 여자 야구를 알리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래도 LG그룹에서 여자야구단을 후원하고 또 전국대회와 국제대회를 열어주는 덕분에 상당한 도움이 된다고 박씨는 덧붙였다. 박씨는 대한야구협회의 여자 야구 홍보대사도 맡고 있다.글 CCBB 에디터 하늘시시비비랩
“최종합격” 기쁨의 눈물이 슬픔의 눈물로 바뀐 황당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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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격 통보 후 하루 만에 '채용 취소' 날벼락'최종 합격' 통보 후 하루 만에 '채용 취소'일방적인 채용 취소 통보 흔해법적 구제 절차 있지만 현실적으로 힘들어 어렵사리 취업 준비해 최종 합격한 기쁨도 잠시. 이내 ‘채용이 취소 됐다’는 통보를 받고 눈물짓는 청춘이 있습니다.MBC 드라마 '자체발광 오피스' 캡처◇하루 만에 깨진 꿈취업준비생 조모(26)씨는 2018년 1월 15일 D사 기술영업직에 ‘최종 합격 했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단 하루 만에 채용 취소 통보가 내려왔습니다. 가족과 친구들에게 이미 합격 소식을 말한 조씨는 황당할 수밖에 없는데요. 조씨는 “다음 주 월요일부터 출근할 수 있냐는 말에 혹시 출근 일자를 조정할 수 있는지 물었다”며 “회사에서 ‘가능하니 이틀 안에 연락 달라’고 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회사는 다음날 오전 조씨에게 전화해 “다른 사람이 출근하기로 했으니 연락 안 해도 된다”고 통보했습니다. 조씨는 믿을 수 없는 사실에 어안이 벙벙해 별다른 말을 못하다 다음날 회사에 다시 전화를 해봤는데요. 달라진 건 없었습니다. 인사담당자는 “(나는) 전달자일 뿐 영업팀에서 정한 사안이라 어쩔 수 없다”고 말할 뿐이었습니다. “어차피 입사해도 서로 안 좋을 것”이라는 말까지 들어야 했습니다. 조씨는 “개인 사정으로 하루 이틀 정도 출근일을 조정하려 했다”며 “월요일이 아니면 안 된다고 하면 모를까, 조정 가능하다 말해놓고 일방적으로 통보하는 건 아닌 것 같다”고 토로했습니다. 조씨는 회사 측과 통화한 녹취 내용을 증거로 노무사와 변호사를 만나 법적 조치가 가능한지 알아보는 중입니다.◇생각보다 흔한 일 이는 조씨만 겪은 일이 아닙니다. 취업 커뮤니티나 네이버 지식인에선 ‘최종 합격 후 채용 취소 통보를 받았다’며 억울함을 호소하는 글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2017년 10월에는 최종 합격 통보 후 출근 일자를 나중에 알려주겠다 해놓고 몇 주 지나 ‘채용 취소’ 통보를 받았다는 글이 인터넷에 올라오기도 했습니다. 채용 취소 통보를 받았을 때는 이미 채용 시즌이 지나 다른 회사에 지원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보통 기업 공채는 상·하반기에 열리며, 입사지원 기간은 3월이나 9월에 몰립니다. 상당수 회사가 상반기 공채를 건너뛰고 하반기에만 뽑거나 격년 공채를 합니다. 한번 시기를 놓치면, 원하는 회사 공고가 또 열릴 때까지 오랫동안 기다려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심지어 경력 사원 합격 통보를 받아 현재 다니는 회사를 나왔지만, 뒤늦게 ‘채용 취소’ 통보를 받아 하루 아침에 백수 신세가 된 사례도 있습니다.MBC 드라마 '자체발광 오피스' 캡처◇구제 방법 있다 해도 현실적으로 힘들어문제는 현실적으로 취업준비생들이 회사에 대항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겁니다. 우리 법과 국가 기관은 약자인 취준생 편이기는 합니다. 취준생은 국가인권위원회에 ‘일방적인 채용 취소와 같은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달라’는 진정서를 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회사 측에 유사한 차별행위가 재발하지 않도록 ‘권고’할 뿐, 인권위가 법으로 강제할 방법은 없습니다. 법으로 해결할 방법이 있긴 합니다. 회사가 합격자에게 정당한 이유 없이 채용 취소 통보를 한 것은 회사의 일방적인 ‘해고 통보’와 같습니다. 2002년 있었던 대법원 판결에서는 회사가 합격자에게 한 최종 합격 통보를 근로계약관계 성립과 동등하다 인정했습니다. 출근 전이었는데 말이죠. 따라서 일방적 채용 취소 통보는 근로기준법상 ‘해고제한 규정’에 해당합니다. (대법원 2000다 25910판결)취준생은 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할 수 있고, 손해가 있다면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도 있습니다. 취준생이 이기면 회사에 ‘복직’할 수 있고, 처음 출근 예정일부터 복직한 날까지 공백 기간의 임금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때 구제를 받으려면 최종 합격 사실을 증빙할 서류나 녹취록이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힘듭니다. 손해 금액을 계산하기도 어렵고, 취업준비생이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걸기도 부담스럽습니다. 게다가 취준생 입장에선 승패를 장담하기 어려운 소송보다는 다른 곳 취업에 시간과 노력을 쏟는 게 그나마 낫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함부로 대하는 회사에 우수한 인재가 모일 리 없습니다. 어떤 사정이건 채용 약속을 일방적으로 깨, 취준생들에게서 신뢰를 잃는 건 좋은 전략이 아닌 듯 합니다. 설령 어쩔 수 없는 상황 때문에 내린 결정이라도, 취준생을 배려해 충분히 설명하고 깊이 사과해야 옳지 않았을까요.글 CCBB 에디터 욘두시시비비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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