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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3국 민족종교 비교...
중국의 민족종교 - 도교
도교는 후한 시절 탄생했다. 민간신앙과 불로불사를 꿈꾸는 신선사상, 그리고 노자의 도가사상이 결합되어 짱 따오 린에 의해 창시되었다.이후 삼국시대에 현학 학파가 노자 사상을 집중적으로 연구하였고, 육조 시대때 상천과 영보와 같은 주요 경전이 작성되었다.당나라에 이르러 중국의 공식적인 종교로 지위를 획득하였으며, 송나라에는 황제 휘종이 도교 경전을 적극적으로 출판하였다. 몽골제국 시대때 많은 경전이 불태워졌지만 명나라 시기에 부활하여 새로운 경전 도장을 40년에 걸쳐 국가사업으로 편찬하였다.정치 철학이자 시스템인 유교, 인도에서 건너온 불교와 함께 묶여 유불선이란 중국의 세계관이 된 도교는 중화 문화의 선봉장으로 동아시아로 번졌으며, 중국의 조공국이었던 베트남과 조선에서 가장 번성하였다.일본의 민족종교 - 신토야요이 시대 때부터 존재한 민간신앙 카미숭배는 야마토 왕조 이후 국가적인 신앙으로 전국적으로 확대되었다. 아스카 시대에 율령이 설립되면서 신토의 제사, 체계, 의식이 발달하였다. 나라 시대에 고사기와 일본 서기가 편찬되고 천황가를 중심으로 신앙 체계가 변천한다. 이후 불교와 결합하여 신불습합이 이루어졌다. 가마쿠라 시대에 막부에 의해 신사들은 보호받았으며, 일본의 몽골침략 승리 이후 신을 부처보다 위로 두는 반본지수적설을 체계화하고 이세 신토를 확립하였다. 무로마치 시대에 불교와는 별개의 교리, 경전, 의식을 갖춘 요시다 신토를 창시한다.에도 시대에 이르러 모토오리 노리나가가 중국 에서 유래한 불교 및 유교 교리의 관점에서 신도를 해석하는 것을 강하게 비판하고 신도 경전에 대한 경험적 연구를 수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국 신화 , 힌두 신화 , 기독교 신화 등 세계 각국의 신화와 구별되는 일본 신화를 중심으로 재편되었으며, 메이지 유신 시절 국가 신토로 일본 제국주의의 선봉 사상으로 역할하였다.신토는 현대 일본 문화의 상징적인 종교이며, 일본인들은 관습과 문화로써 신토와 함께한다.대한민국의 민족종교 - 무속무속은 천신 강림 설화인 단군 신화와 고구려의 주몽, 신라의 박혁거세와 같은 시조 설화들이 결합되어 자연적으로 형성된 민족 종교이다. 청동기 유물에서 무당들의 무구가 발견되며, 고구려는 일찍이 왕의 자문관으로 무당을 두었으며, 신라의 2대왕 남해 차차웅은 무당이라 기록된다.무당들은 국가의 관리로서 국정에 이바지했다. 국가의 중대사를 결정하는데 자문을 했으며, 천재지변이나 질병의 원인을 파악하고 대처 방안을 제시했다.그러나 불교의 수용과 확산으로 무속은 정치적 기능을 상실하고 만다. 불교가 사상적 체계성, 문화적 선진성이 앞서있었기 때문에 지배층의 관심이 불교로 기울어지게 되었으나 팔관회, 기우제, 지배층의 두두리 신앙등 무속의 사회적 기능은 유지되어 있었다.조선에 이르러 무속은 유학자들에 의해 음사로 취급하게 된다. 기우제와 같은 국가 행사에서도 배제되었으며, 무당의 신분은 천민으로 떨어진다. 한양에 거주하는 무당을 벌하고, 무업세를 추가적으로 매겨 높은 고리세금을 감당하게 한다. 16세기 향촌을 기반으로 한 사림 세력은 무속의 말살을 주장하게 된다. 관청의 부근당은 폐지되었으며 지방관들에게 무속의 근절을 요구한다. 이로써 무속은 사회적 기능이 상실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 시점에서 관우신앙이나, 옥황상제와 같은 중국의 신앙이 유입되게 된다. 사회적 기능을 상실하였지만 무속은 민간신앙으로써 평민과 천민을 중심으로 마을 신앙의 형태가 남아있었다. 산신을 비롯해서, 지역신인 두두리 신앙, 팔령신 신앙, 계변신 신앙, 오금잠 신앙 등이 모셔져 있었으며, 사회적 통합과 정체성 확인의 정신적 기초였다.이후 일제강점기에 무속은 미신으로 취급되어 탄압되었다. 해방 이후 남한에서는 근대주의자들에 의해 미신타파운동으로 전국적으로 신당을 파괴하고 무속인을 체포하게 된다. 이렇게 무속은 개인적 기능도 상실하게 된다.왕의 자문관이었던 무당은 정치적, 사회적, 개인적 기능을 모두 상실하였으며 오늘날 오컬트의 형태로 마주할 수 있다.
작성자 : 버들꽃고정닉
세계대전 당시 적군의 장례를 치른 사례들..jpg
쓰러진 적에게 경의를 표하다!! 전쟁 중에 전투에서 전사한 적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증오심을 접어두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비록 매우 드문 일처럼 보일지라도, 역사 전반에 걸쳐 여러 차례 일어났던 일이다. 역사상 가장 거대한 규모의 전쟁이었던 두 차례의 세계대전 당시 적군에 의해 명예롭게 장례를 치른 군인들의 사례를 소개한다. 1917년 독일 쾰른에서 영국 전쟁 포로의 장례식을 주재하는 독일군 원수 파울 폰 힌덴부르크. 사진 속에는 다른 독일군 사령관들과 영국 왕립 비행단의 조종사 몇 명이 함께 나와 있다. 1918년 4월 22일, "붉은 남작"으로 더 잘 알려진 독일 조종사 만프레트 폰 리히토펜의 장례식에서 호주 비행단 제3비행대대 대원들이 프랑스에서 열린 장례식에서 명예의 예포를 쏘고 있다.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 항공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에이스(80기 격추) 였던 리히토펜 은 캐나다 조종사 윌프리드 "왑" 메이 중위에게 격추당하기 전날 사망했다. 붉은 남작은 당시 "공중의 기사"라는 칭호를 얻었고, 그의 적들은 그의 묘비에 다음과 같은 비문을 새겼다. "여기 용감한 사람, 고귀한 적, 그리고 진정한 명예를 지닌 사람이 잠들다. 편히 쉬기를." 만프레트 폰 리히트호펜의 장례식이 거행되는 또 다른 순간. 호주 군인들은 그에게 무기를 건네며 마치 자기네 군인이 전사한 것처럼 경례했다. 1939년 10월 16일,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의 포르토벨로 묘지에 모셔진 독일 공군 장병 두 명의 장례 행렬. 두 장병은 영국 전투기의 총격으로 격추되었다. 그들의 관에는 당시 독일의 만자(卍字)가 새겨진 군기가 씌워져 있었다. 1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이 장례식에 참석하여 전사한 적들을 추모했다. 1940년 5월 영국에서 열린 독일 조종사 4명의 장례식에 참석한 영국 공군(RAF) 병사들. 독일 조종사들의 관 중 여러 개에는 독일 전쟁기가 드리워져 있었고, 전사한 적들은 명예 경례를 했다. 1941년 6월 14일 북아프리카에서 독일군에게 격추된 영국군 중위의 무덤을 살펴보는 조종사. 독일군은 그를 묻고 추락한 비행기 바로 옆, 그의 무덤에 하얀 십자가를 세웠다. 십자가에는 독일어로 "공중전에서 전사한 신원 미상의 영국군 중위가 여기에 잠들다"라고 적혀 있다. 1941년 12월 19일 홍콩 전투 중 서부 여단 사령관을 지낸 캐나다 군 장교 존 켈번 로슨의 묘비. 그는 준장으로, 전투 중 전사한 가장 고위 장교였다. 일본군이 도착하여 그의 시신을 발견했을 때, 그들은 그의 용기에 대한 존경의 표시로 군장례를 치렀다. 1942년 5월 31일~6월 8일 사이에 일어난 시드니 만 공격에서 전사한 일본 특수잠함정 조종사 마쓰오 케이우의 장례식. 6월 9일에 호주해군은 시드니 교외의 록우드 크리머트리아 장례식장에서 일본군의 유체를 해군장으로 치루었다. 시드니에선 적국의 군인을 정중하게 장례하는 것에 대해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호주해군 사령관이던 제라드 뮤어헤드 굴드 소장은 다음과 같이 연설했다. 1943년 저지섬에서 열린 두 영국 공군 병장, 버틀린과 홀든의 장례식에 참석한 독일 공군 장병들. 그들의 관에는 영국 국기가 드리워져 있었다. 영국 조종사 버틀린과 홀든의 저지 장례식에 독일 공군 조종사들이 헌화한 화환. 왕관은 만자와 철십자로 장식되어 있었다. 영국 해군기로 뒤덮인 영국 군인의 무덤 앞에 선 독일군 병사들. 배경에는 연합군 포로들이 고인에게 경의를 표하고 있었다. 이 사진이 언제 어디서 촬영되었는지에 대한 정보는 불명. 1944년 7월 10일, 미 해병대원들이 일장기와 함께 사이토 요시츠구 중장을 장례하는 모습. 사이토 중장은 사이판 전투에서 전사했으며, 당시 그는 사이판 섬을 방어하던 일본군 최고 사령관이었다. 그의 장례식은 미 해병대 홀랜드 스미스 장군이 주관했다. 1945년 4월 11일, 오키나와 전투 당시 USS 미주리호를 공격한 가미카제 조종사 이시노 세츠오의 장례식. 미주리 사령관 윌리엄 M. 캘러핸 중장은 조종사를 바다에 매장하는 결정을 내렸다. 유체 위에 임시 일본 해군기를 드리우고, 전통적인 3연발 소총 경례를 포함한 작은 의식이 거행되었다. 그리고 캘러핸은 일본 조종사가 보여준 의무, 명예, 희생 정신에 대해 확성기 시스템을 통해 승무원들에게 연설을 했다. 80년이 흘러 2025년 4월 12일 하와이 진주만에 있는 전함 미주리 기념관에서 엄숙한 의식이 열렸다. 미국과 일본의 고위 인사, 군 지도자, 그리고 이 함선의 초대 사령관 윌리엄 캘러핸 중장의 후손들이 모여 전사한 일본 조종사 이시노 세츠오의 80주년을 추모했다. - dc official App
작성자 : leeloo고정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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