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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그물

운영자 2022.06.27 10:00:53
조회 218 추천 10 댓글 0

이십년 전 쯤이다. 신학대학장인 원로 성직자의 소송을 맡은 적이 있었다. 그는 만나자마자 떨리는 목소리로 이렇게 내뱉었다.

“평생 신부 생활을 하면서 정말 심한 인격적 배신을 느꼈어요.”

그의 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나는 조용히 그의 다음말을 기다렸다.

“신도라고 해서 내가 도와준 여성이 있어요. 그 여성이 며칠 전 나를 찾아와서 각서를 써 주지 않으면 내 방에서 나가지 않겠다고 난리난리 치는 거예요. 신부로 살면서 내 평생 이런 일은 처음이예요.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은 주위에 오가고 있지 어쩔 줄을 모르겠더라구요.”

“무슨 각서를 쓰라고 하는 건가요?”

내가 물었다.

“당시 그 여자는 아이 둘을 데리고 사는 이혼한 여자였어요. 그 여성이 미국 사람과 결혼해서 이민을 가게 됐어요. 그때 내가 외국 유학의 경험이 있으니까 절차를 도와줬지.

문서가 전부 영어로 쓰는 거였거든. 그 여성이 미국으로 떠난지 얼마 안되서 친정어머니란 노인이 돈을 가지고 왔더라구. 그걸 미국의 딸에게 보내 달라는 거야. 당시만 해도 한국에서 미국으로 달러를 보내기가 정말 어려웠어요. 한 사람이 일 년에 오천달러 밖에 보낼 수 없었지. 그래서 내가 여러 은행을 전전하면서 많은 사람들의 이름으로 송금해 줬지. 그런데 답답한 건 돈을 부쳐줘도 받았다 어떻다는 답장이 없어. 그 여성이 평소에도 편지 쓰는 것 같은 일을 잘 안해. 그래서 내가 걱정이 돼서 은행에 가서 확인하니까 분명히 송금이 됐으니까 염려하지 말라는 거야. 송금받은 미국은행에서도 그 여자 집에 연락해서 돈을 가지고 가게 한다고 했어요. 나는 그래도 근심이 돼서 내가 송금했다는 영수증까지 편지로 부쳐줬어. 그런데 십오년 만에 갑자기 나타나 내가 그 돈을 떼먹었다면서 난리치고 각서를 써달라는데 정말 환장할 일이지. 추기경까지 나를 부르더군. 추기경한테 진정서가 들어왔다는 거야. 세상 이런 일을 당할 수 있어?”

“각서를 써 주셨어요?”

내가 물었다.

“학생들은 복도에서 오가지 그 여자는 각서를 안 써주면 집에 안 가겠다고 소리치지 내가 정신이 없어서 해달라는 대로 다 해 줬어. 우선 그 자리를 모면하려고. 매일 같이 강의를 하는 데 내가 무슨 망신이야?”

인생을 살다 보면 그런 일들이 주위에 참 많다. 변호사인 나 자신도 여러 번 그 비슷한 모함을 당했다. 그런 일들이 어쩌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지불해야 하는 비용인지도 모른다. 불경을 보면 부처님이 당한 경험도 만만치 않은 것 같다. ‘친차’라는 매력적인 여성이 매일 같이 단장을 하고 저녁이면 부처님 숙소를 배회했다. 그리고 아침이 되면 그 숙소에서 나오는 것 같이 행동했다. 어느 날 그 여자는 대중들 앞에서 법문을 말하는 부처에게 다가가 부처의 아이를 임신했다고 했다. 이천년전의 꽃뱀이나 지금이나 비슷한 것 같다. 부처님도 정말 난감했을 것 같다. 다른 사건이 또 있었다. 부처를 시샘하는 그룹의 모략 공작이었다. 순다르라는 아름다운 여인을 죽여 부처님이 묵는 근처에 암매장했다. 그리고 얼마 후 그 시신을 부처와 연관 시켜 치정 살인극으로 조작하려고 했었다. 그런 공작에 대한 성인들의 대처방법은 침묵인 것 같다. 부처는 분노하는 제자들을 누르면서 말한다. 가만히 있으면 며칠 후에 세상은 잠잠해 질 것이라고. 노자도 참으면 원수의 시신이 강물에 떠내려오는 걸 볼 수 있을 거라고 했다. 성경을 보면 복수는 하나님에게 맡기고 원수를 사랑하라고 가르치고 있다. 변호사를 사십년 가까이 하다 보니까 경전과 좀 다른 면을 발견한다. 악마는 용서와 사랑의 빛을 받으면 더욱 펄펄 뛰며 분노하는 것 같기도 하다. 따뜻한 햇빛이 양초는 물렁물렁하게 녹이지만 진흙은 더욱 단단히 굳게 하는 것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그런 악마성을 가진 사람을 만나는 순간부터 상황 자체가 지옥인 것 같았다. 좀비와 악마들이 세상을 배회하고 다닌다. 그들은 영화 속 같이 핏기가 없거나 특이한 외형을 가지고 있지 않다. 더욱 아름답고 요염한 모습일 수도 있다. 쫑긋한 귀가 튀어나와 있지도 않다.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할 일이 사람을 만나는 일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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