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시인사이드 갤러리

갤러리 이슈박스, 최근방문 갤러리

갤러리 본문 영역

[겨울문학대회/순수문학] 이중나선

심사불가(110.9) 2021.02.10 21:35:53
조회 321 추천 18 댓글 7
														


viewimage.php?id=2bafdf3ce0dc&no=24b0d769e1d32ca73fec82fa11d028313f7ca0229f7ff0a914a049d5fe5a9e18ba5a916c47baba519eec0edfc1299aae07e99aa7e1e29d3799a47697d70299e2bb9a




이중나선




1.


 나는 책을 즐겨 읽는 사람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글을 쓰는 사람도 아니었다. 지금도 그렇다. 글이라고는 초등학교 방학숙제로 일기 몇 번 몰아서 써본 게 전부였다. 지금 쓰는 이 글은 아마 두서가 없을 것 같다. 깊이 생각할 것도 없이 그저 내가 겪었던 일을 의식의 흐름대로 적고자 한다. 지금 쓰지 않으면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기억이 흐려지고, 기억이 흐려진 만큼 감정도 구름처럼 사라질 게 뻔하기에. 언젠가 시간이 흘러 내가 좀 더 나이를 먹었을 때 이 글을 본다면 그건 또 다른 느낌이겠지. 사람은 누구나 살면서 한 개쯤 잊지 못할 추억이 생긴다던데 내게는 이 기억이 그런 추억이 될 것만 같다. 잊지 못할 추억인데 왜 생생한 기억으로 머릿속에 남겨두지 않고 굳이 글로 남기냐고 묻는다면 지금의 내가 그 일을 받아들이는 감정이나 생각을 훗날의 나에게 전하고 싶기에 그렇다. 글은 과거와 현재 미래의 소통이라는 말이 있지 않나.


 미래의 나에게는 미안하지만 잘 쓰려고 노력하지는 않겠다. 일기를 굳이 노력해서 잘 쓰려고 한다면 물론 그럴 수 있겠지만 감정의 과잉을 막기 위해서다. 무엇보다 이 글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줄 일도 없을 테고. 이 글을 꺼내 읽어볼 시점의 내가 이 정도는 분명 이해해주리라 믿기 때문이다.


 전역한 다음 해에 일어난 일이니까 내가 23살, 대학교 2학년으로 막 복학했을 때 일어난 일이었다. 3월이었는데 그 해는 유난히 추워서 4월 초까지 눈이 내렸다. 자취방 1층에는 개인 카페가 있었다. 방을 늦게 구하는 탓에 대학가와는 멀리 떨어진 곳에 방을 구했다. 멀어서 그랬는지 밤이 되면 사람이 없었다. 무슨 카페가 노래를 틀어주지도 않아서 그 부분이 신경 쓰였으나 몇 번 다니고 나니 오히려 고요가 편안했다. 테이블도 네 테이블밖에 없었고 카페 사장은 주문을 받을 때 말고는 주방처럼 보이는 공간에서 나오지 않았으므로 카페에서 고독을 즐기기에 안성맞춤이었다. 그녀를 카페에서 만나기 전까지.


 그녀를 이야기하기에 앞서 우선 그 시절의 나에 대한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나는 겨울왕국을 굉장히 좋아했다. 디즈니 영화 ‘겨울왕국’을 말하는 게 맞다. 개봉했을 당시에 극장에서 11번이나 보고 그중에 싱어롱도 두 번 갔었다. 어쩌면 내 첫사랑이랑 극중 등장인물인 ‘엘사’와 닮아서 계속 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나는 엘사를 정말 좋아했다. 엘사를 좋아하면서 이루지 못했던 첫사랑의 아쉬움을 곱씹었을 수도 있겠다. 엘사를 사랑하는 동안 첫사랑의 이미지 위에 엘사가 조금씩 쌓여갔다. 어느새 첫사랑에 대한 감정과 엘사에 대한 감정 사이의 경계가 흐려졌다.


 카페에서 만났던 그녀는 엘사를 닮았다. 그녀를 보자마자 심장이 내려앉았다. 머릿속에 그리던 완벽한 이상형을 현실에서 마주했을 때의 놀라움. 평소처럼 읽을 책 한 권을 들고 카페에 내려갔는데 내가 늘 앉던 창가 자리에 그녀가 앉아있었다. 창밖을 바라보는 그녀의 모습은 모든 게 자연스러웠다. 무심한 듯 보이는 시선, 머그컵을 조심스레 쥔 손, 곧게 세운 허리, 왼쪽 다리 위에 얹은 오른쪽 다리. 그녀와 눈이 마주치자 얼른 카운터로 가서 딸기 요거트 스무디를 주문했다. 심장이 여전히 두근거렸다. 그 순간 왜 그렇게나 두근거렸을까.


 그녀의 이름은 글을 쓰는 시점인 현재까지도 여전히 모르기에 이하 엘사 혹은 그녀라고 칭하겠다. 나는 엘사를 의식하지 않는다는 티를 내려고 그녀를 등지는 자리에 앉았다. 하지만 그녀의 존재감은 등 뒤에서 더욱 크게 느껴졌다. 뒤돌아서 한 번 더 보고 싶은 마음을 애써 참아가며 달콤새콤한 스무디로 마른 목을 달랬다. 내가 금사빠는 아닌 것 같은데 그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이건 뭐지 하는 생각으로 스무디를 내려다보는데 엘사가 보였다. 정확히는 그녀의 뒷모습이 스무디 잔에 비쳤다. 흰색 니트 원피스에 아이보리 자켓을 걸치고 흰 스틸레토힐 구두를 신은 모습이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엘사는 내가 스무디를 다 마실 때까지도 카페에서 나갈 생각이 없어 보였다. 챙겨온 책은 한 장도 넘기지 못한 나를 부끄러워하는 것 같았다. 온 신경이 등 뒤를 향했다. 나는 그날따라 어색한 몸을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카페에 들어온 뒤로 처음으로 그녀를 볼 수 있었다. 출입구로 나가는 걸음마다 아쉬움이 내렸다. 그녀의 뒷모습을 최대한 오래 눈에 담고 싶었다. 살면서 이상형을 만날 기회는 흔치 않으니까. 그렇기에 이 기회가 마지막일 수도 있으니까. 문을 열면서 옆에 있는 그녀를 의식했으나 그녀는 여전히 창밖만 보고 있었다. 엘사로부터 여섯 걸음 멀어졌을 때 뒤돌아보고 싶은 마음을 참지 못하고 결국 뒤돌아보았다.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여유롭게 처음처럼 무심한 시선으로 살짝 고개를 숙이고는 내가 미처 답할 틈도 없이 자신의 컵으로 시선을 거두었다. 귀가 따뜻해졌던 것 같다.


 그 뒤로도 카페에서 엘사를 종종 마주쳤다.




2.


 놀랍게도 나는 그 당시 썸녀가 있었다. 그래서 엘사를 보면 가슴이 뛰면서도 그 감정이 불쾌했다. 썸녀가 있으면서 누군가에게 설렜다는 사실에 놀랐다. 사실 썸녀였는지 그냥 내쪽에서 일방적으로 호감이었는지 잘 모르겠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는 더욱 사랑에 미숙했다. 예나는 나보다 한 살 어렸고 휴학했다가 나와 같은 해에 복학했다. 복학해서 아는 사람이 몇 없었는데 그나마 얼굴 아는 사람이 있어서 참 다행이었다. 2월 초순에 복학한다는 내용을 인스타 스토리에 올렸는데, 스토리를 보고 예나가 먼저 나에게 DM을 보냈다. 이하 대화는 문어체로 쓰기보다는 디엠을 그대로 옮겨 적겠다.


 -오빠 이번에 복학해여?????

 -ㅇㅇㅇ 해야지

 -오!! 저도 이번에 복학해요

 -오 진짜? 다행이다

 -엥 머가 다행이에여ㅋㅋㅋ

 -수업 같이 듣는 사람중에 아는 사람 없을 줄 알았어 ㅋㅋㅋㅋ

 -ㅋㅋㅋㅋㅎㅋㅎㅋㅋㅋ 오빠 인싸잖아요

 -군대 다녀오니까 아무도 없더라고...

 -아........

 -그럴 수 있지 ㅋㅋㅋ

 -괜찮아여 오빠 제가 있잖아요 ㅎㅎㅋ

 -진짜 너밖에 없어 예나야 ㅋㅋㅋㅋ

 -당연하죠 저 신입생일 때 책 물려주셨잖아요

 -아 내 책이 너한테 갔었구나 맞네

 -기억하시는거 맞죠? ㅋㅋㅋㅋㅋㅎㅋㅋㅌ

 -ㅋㅋㅋ 맞지. 개강하고 마주치면 서로 아는척 해주기로 약속하자

 -당연하죠. 인사도 하고 밥도 먹어요

 -ㅇㅋ 너 밥 머 좋아하는데

 -선배님이 사주시는 거면 다 먹죠

 -ㅋㅋㅋㅋㅋㅋㅋㅋ친구비임?

 -ㅋㅋㅋㅌㅋㅋ농담이에여


 이렇게 연락을 시작했다. 이 뒤로도 인스타 스토리를 올릴 때마다 예나한테서 간간이 선디엠이 왔다. 디엠과 전화로 연락을 이어가다가 2월 중순에 만나서 후문 먹자골목에 있는 크림 파스타를 사 먹였다. 맛있게 잘 먹더라. 군대에서 전역하고 막 복학해서 연애도 하고 싶었고 외롭기도 했었는데 신중했다. 예나에게 호감을 느끼긴 했지만 이게 외로워서, 연애를 위한 연애를 하고 싶은 건지 끊임없이 내게 물었다. 연애를 위한 연애를 한다면 예전처럼 금방 내 마음이 식을 것 같았다. 내 마음이 식는 문제에 앞서서 상대방을 존중하지 않는 행동이었다. 상대를 연애를 위한 도구로 보게 된다. 그렇기에 원하는 연애상에 맞추기 위해 상대를 어떤 틀에 가두려 할 것이고, 그 과정에서 점점 서로가 지칠 것이었다. 도구로 보다가 이후에 진심으로 사랑할 수도 있지 않느냐고 물을 수도 있겠다. 도구로 보고 시작한 사랑이 과연 그렇게까지 깊은 사랑으로 발전할 수 있을까 되묻고 싶다. 물론 사랑의 가능성에 0%는 없지만 0에 수렴하지 않을까. 내 주위에서 보고 듣고 내가 직접 겪은 경험적인 생각이지만.


 예나에게 호감을 조금씩 쌓아가는 와중에 예나와의 세 번째 데이트를 마친 날 카페에서 엘사를 처음 만났다. 예나를 좋아하면서 마음 일부분에 엘사가 남은 게 걸렸다. 예나와 있으면 분명 즐거웠다. 밝고 유쾌한 성격이 놀리는 걸 좋아하는 내 성격과도 잘 맞았다. 예나는 특히 환하게 웃을 때 생기는 보조개가 예뻤다. 왼쪽보다 오른쪽 보조개가 더 올라간 점도 특별한 것처럼 느껴졌다. 외형적으로도 예나는 예쁜 편이라는 뜻이다. 예나는 브라운 단발 C컬 펌이 잘 어울렸다. 머리색과 비슷하게 색상을 맞춘 패션도 웜톤인 얼굴과 잘 맞았다. 예나가 주로 입는 옷 중에 가장 좋아하던 패션은 브라운 펌프스 구두, 연한 베이지 부츠컷 슬랙스, 얇아서 안이 살짝 비치는 흰색 목폴라, 바지와 색을 맞춘 종아리까지 오는 롱 로브 코트였다. 예나는 옷을 참 잘 입었다. 그런 예나를 옆에 두고도 완벽한 이상형 앞에서는 흔들렸다. 내가 쓰레기인가 싶었다. 그렇지만 누군들 꿈에 그리던 이상형 앞에서 흔들리지 않을 수 있을까.


 개강 후에는 예나와 더욱 자주 만났다. 문제는 예나와 즐겁게 데이트하면서도 엘사와 카페에서 마주치는 일을 기대했다. 그러면 안 된다는 걸 머리로는 알았는데 가슴이 말을 안 들었다. 물론 이런 일을 직접 겪어보지 못한 사람들이 듣기엔 변명에 불과할 거라는 걸 안다.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서 좋아할 사람의 만남을 기대하다니. 내 잘못이 크다. 흔들리는 마음을 알았으면 일부러 카페로 향하는 발길을 끊었어야 한다. 정말 우스운 일이지만 내 주제에 둘 사이에서 고민했던 것 같다. 예나와 엘사. 사실 그렇게 흔들리는 와중에도 엘사녀와 실제로 대화를 나눈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서로 얼굴이 익어서 가끔 눈이 마주치면 고개를 까딱이긴 한다. 나는 거기서 더 나아가서 인사라도 건네고 싶었다. “오늘도 오셨네요.” 하면서. 그렇지만 소심했던 내 성격에 어떻게 먼저 이상형에게 말을 걸 수 있었단 말인가. 애초에 엘사와 가까워지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런데 좋아하는 마음으로 줄타기할 생각을 했다니 소심한 게 아니라 대범했던 걸까. 그냥 우유부단한 쓰레기였던 것 같다. 예나와 즐겁게 데이트를 하는 날이면 그날 밤에는 죄책감으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엘사와 카페에서 마주친 날이면 더욱 잠들기 어려웠다.


 나는 지금도 그렇지만 상상력이 좋은 편이었다. 눈치가 빠르다는 말도 많이 들었다. 다른 사람의 행동과 말 하나하나에서 그 속에 숨은 의중을 파악하는 재주가 있었다. 물론 아무것도 아닌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일은 경계했다. 그 정도는 학창시절에 이미 끝냈다. 엘사를 조금씩 보면서 어떤 사람인가 유추했다. 항상 천천히 들어 올리는 커피잔에서 여유로움을 읽었다. 대부분 단정한 옷에서 깔끔하고 성숙함을 읽었다. 잡티 하나 없이 깨끗한 유난히 흰 피부에서 자기관리를 읽었다. 언뜻언뜻 스쳐 지나갈 때마다 나는 향에서 차분한 고급스러움을 읽었다. 또렷한 눈빛에서 삶의 열정을 읽었다. 가끔 읽는 책으로 인문학과 과학에 관심이 있다는 것도 알았다. 가끔 나와 읽은 책이 겹치면 말 걸고 싶은 욕구를 꾹 참아야 했다. 관찰하면 할수록 대화는 한 마디도 나눠보지 않았지만 마음속으로는 이미 가까운 사람 같았다. 가끔 휴대폰을 보면서 웃을 때가 있는데 그 순간만 되면 꼭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마음속으로 가깝게 느끼는 것에서 나아가서 실제로 그녀가 어떤지 궁금했다. 상상 속의 그녀가 아니라 현실의 그녀를 알고 싶었다. 그렇지만 매번 이성이 가로막았다. ‘예나한테 못 할 짓 하지 마라. 예나한테 미안하지도 않냐.’ 같은 이성의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크게 들렸다. 차라리 카페에 엘사가 오지 않았으면 좋으려만 생각하면서도 막상 사라지면 아쉬워서 우울할 것 같았다. 내가 카페를 안 가는 방법도 생각했지만 자취방 1층에 있는 카페라고 하지 않았나. 집에 가려면 어쩔 수 없이 지나쳐야 하고, 카페에 가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카페에 엘사가 있는 걸 보면 어느새 카페에 들어와 있었다. 스스로가 미친놈 같았다. 혼란스러운 나날이었다.




3.


 4월 말에도 예나와 나는 여전히 만나고 있었다. 나는 그 시기에 예나와 만나기 전에 항상 오늘은 고백해야지 마음먹고 외출했다. 그러나 막상 고백할 타이밍이 오면 엘사가 생각나서 머뭇거렸다.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예나는 그럴 때마다 얼핏 실망한 기색을 비쳤던 것 같다. 실망이었는지 불쾌감이었는지 슬픔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물어본 적이 없으니까. DDP에서 하는 전시회에 간 날이었다. 밤의 DDP는 인스타 맛집이었다. 우리는 서로 인스타 사진 찍어주기를 좋아했기 때문에 데이트는 주로 사진이 잘 나오는 곳으로 갔다. DDP 계단에서 사진을 찍어주고 있을 때 예나가 물었다.


 “오빠 우린 무슨 관계야?”


 나는 아무 생각 없이 휴대폰을 손에 든 채로 말했다.


 “…썸타는 사이?”


 예나가 포즈 잡는 걸 멈추고 나를 바라봤다. 나도 촬영 자세에서 똑바로 섰다.


 “매일 자기 전마다 전화하고 아침마다 모닝콜 해주고 일주일에 세 번 이상은 데이트하고 안 만날 때는 보고 싶어 죽겠는데 아직 썸밖에 안돼? 나만 보고 싶은 거야?”


 “나도 너 보고 싶어도 보고 싶어.”


 “근데 왜 고백 안 해?”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때에도 엘사를 마음에 두고 있었다. 마음에서 엘사가 차지하는 공간은 예전보다 더욱 커졌다. 침묵이 이어졌다.


 “하 진짜 자존심 상해.”


 예나는 눈물 맺힌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톡 건들면 금방이라도 눈물이 한 방울 톡 떨어져 내릴 것 같았다.


 “미안해.”


 “미안한 것도 질려. 뭐가 그렇게 맨날 미안해? 왜 맨날 미안한 게 그렇게 많은데? 오빠 보면 항상 나 말고 다른 사람 있는 것 같아. 솔직하게 말해줘. 제발 우리 성숙한 연애 하자.”


 “…미안해.”


 나는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예나는 질린다는 표정을 하곤 그대로 뒤돌아서 발걸음을 옮겼다. 미처 잡을 생각도 못 했다. 정신이 든 나는 얼른 뛰어가서 예나를 따라잡았다.


 “꺼져 그냥!”


 예나가 나를 보며 소리쳤다. 나는 뭘 해야 하는지 몰라서 그저 머뭇거렸다. 미안하다고 하자니 더 화낼 것 같았고 다른 말을 하자니 떠오르는 말이 없었다. 그냥 솔직하게 다 말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솔직하게 엘사에 대해 전부 털어놓고 용서받고 싶었다. 어느새 내 눈에도 눈물이 고였다. 그렇지만 엘사 이야기를 하고 나면 예나와 정말로 끝나버릴 것만 같아서 그럴 수도 없었다. 난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도 솔직해질 용기를 낼 수 없었다. 스스로가 미웠다. 예나는 그동안 훨씬 멀리 가 있었다. 자취방으로 걸어가는 동안 예나에게 카톡이 왔다.


 -질리고 지치고 힘들어


 답장은 보내지 않았다. 그날 나는 자취방 근처에 있는 술집에서 혼자 술을 마셨다. 안주로 과일 화채 하나 시켜놓고 참이슬 빨간뚜껑으로 세 병 가까이 마셨다. 더 마셨는지도 모르겠다. 세 병까지는 기억이 확실히 나기 때문이다. 원래 나는 술을 못 마신다. 그렇게 잔뜩 취해서 곱게 자취방으로 가서 잤어야 했는데, 나는 카페로 향했다. 엘사가 있기를 바라며 비틀비틀 걸어갔다. 부슬비가 맞으면서 걸어갈만 할 정도로 부슬부슬 내렸다.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가 뱉으면 술냄새가 푸우 하고 퍼졌다. 그 술냄새에 다시 취하는 느낌이었다. 카페로 가면서도 이게 맞나 싶었다. 카페에서 엘사를 만나면 어쩔 건데? 아무 계획 없었다.


 카페 문을 열자마자 젖은 머리를 털었다. 엘사는 내 모습을 보고 자신이 가져온 우산이 잘 있나 우산꽂이를 확인했다. 나는 곧장 카운터로 가서 해장을 위한 자몽 허니 티를 주문하고 자리에 앉았다. 술기운을 빼기 위해 계속 심호흡했다. 숨을 크게 들이킬 때마다 정신이 아득해졌다. 자몽 허니 티를 한 모금 입에 머금고 가볍게 가글 후 삼켰다. 술맛 밖에 안 났다. 속이 따뜻해지는 느낌이 들자 머릿속이 잠깐 하얘졌다가 정신이 조금 돌아오는 것 같았다. 


 엘사를 쳐다보니 그녀도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홀린 듯 차를 한 모금 더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나서 그녀에게 다가갔다. 내가 다가가는 동안 그녀는 시선을 피하지 않고 나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술기운 때문인지 아니면 긴장한 탓인지 심장 소리가 귀 바로 옆에서 쿵쿵 울렸다. 실제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녀는 나를 딱하다는 표정으로 보고 있었다. 혀가 꼬여서 발음도 정확하지 않은 채로 그녀에게 물었다.


 “옆에 앉아도 될까여?”


 그녀는 자신의 커피잔을 들어 올리며 경계하듯 물었다. 그때의 내 모습이라면 누구라도 경계했겠지만.


 “왜요?”


 왜라는 말에 답할 말을 준비하지 않았기 때문에 정신을 가다듬고 머리에 떠오르는 대로 말했다.


 “그냥. 오늘 슬픈 일이 있었는데, 누구한테 말하고 싶은데 말할 사람이 그쪽밖에 없거든요. 우리 카페에서 가끔 마주쳤잖아요. 제가 이러는 거 부담스러우실 거라는 거 충분히 이해해요.  사실상 초면이니까. 만약 부담스럽다고 하시면 바로 사라져 드릴게요. 그게 아니라면 그냥 제 이야기만 조금 들어주세요.”


 그녀는 흥미로운 일이라는 듯 입가에 매력적인 미소를 지었다. 저 미소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지금까지 빠졌을까 상상했다.


 “여기 앉으세요.”


 엘사가 그녀 앞에 있는 의자를 손을 멀리 뻗어 내 쪽으로 조금 밀어내 주었다. 나는 거절만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살짝 얼타고 있었다. 그녀는 왼손으로 ‘여기에 앉으세요.’ 하는 손동작을 취했다. 그제야 나는 조심스레 그녀 앞에 앉았다. 그녀는 내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끝났다는 듯이 양손으로 커피잔을 쥐고 눈을 내 입에 고정했다. 정신을 붙잡지 않으면 그대로 술기운에 기절할 것 같았기에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 마지막으로 크게 심호흡했다.




4.


 초등학생 시절의 나는 악동이었다. 나보다 약한 애들만 보면 꼭 울리고야 마는 그런 아이였다. 3학년으로 올라간 지 얼마 안 된 날이었다. 그날도 나는 항상 그랬듯이 새로운 약한 아이들을 나랑 비슷한 아이들과 괴롭히고 있었다. 당연하게도 남자아이와 여자아이는 울음에 도달하는 역치가 달랐다. 똑같이 놀려도 여자아이는 울지만 남자아이는 참는 예시를 생각하면 될 것 같다. 3학년이 되어서 처음 본 여자아이가 있었다. 나는 그 아이를 울리기 위해서 갖은 노력을 쏟았다. 밀치고 도망간다던가, 놀린다던가. 지금 생각하면 정말 유치하기 짝이 없었다. 내 아들이 만약 나처럼 그랬다면 적당히 죽지 않을 정도로 물리치료를 시도했을 것이다. 중요한 건 그 아이는 단 한 번도 울지 않았다. 우리는 그 아이를 울리기 위해 여러 날 시도했고, 매번 실패했다. 내 친구들은 그 아이를 울리는 것을 포기하고 다른 아이들에게로 다시 돌아갔지만 나는 마지막까지 그 아이가 우는 것을 보고 싶었다. 나는 그 아이를 더욱 집요하게 괴롭히기 위해 그 아이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 애가 자신의 물건에는 자신의 이름을 써둔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래서 이름이 ‘이소연’이라는 것도 알았다. 이소연. 혼자서 머릿속으로 발음해보려니 어쩐지 부끄러웠다. 소연이를 관찰하고 있으려니 나는 다른 모든 게 재미없었다. 놀던 아이들과 어울리는 것도 싫어졌다. 소연이와 대화는 한 번도 해본 적 없었다. 일방적으로 내가 놀리고 도망만 다녔기 때문에. 나는 처음으로 소연이에게 놀리는 것 이외의 말을 걸었다.


 “안녕 이소연. 그 책 재밌어?”


 소연이는 내 쪽을 쳐다보지도 않고 대답했다.


 “나랑 말하고 싶은 거라면 우선 네가 괴롭히던 아이들에게 사과하고 와.”


 가슴이 내려앉았다. 그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동급생 중에 감히 누가 나한테 그런 말을 할 수 있었을까. 나는 항상 반에서 폭군이었고 아이들은 내 눈치를 봐야만 했다. 내 상냥함은 포상이었고 내게 까칠하다는 건 맞아도 좋다는 뜻이었다. 아이들의 시선이 내게 쏟아졌다. 당황스러움에 온몸이 떨렸다. 같이 놀던 아이들은 내가 소연이를 때리기를 기대하는 눈치였다. 나는 처음으로 겪는 중요한 선택의 순간에 놓였고 뭘 골라야 할지 모르는 질 나쁜 장난꾸러기였다. 소연이와 처음으로 눈이 똑바로 마주쳤다. 나를 엄하게 혼내는 그 눈빛은 아직도 생생하다. 나는 알 수 없는 욕을 내뱉으며 고학년 화장실로 도망갔다. 종례가 끝날 때까지 화장실에 울면서 숨어 있다가 반으로 돌아가서 가방만 챙겨서 집으로 돌아갔다.


 집으로 돌아가자마자 나는 부모님께 크게 혼났다. 그간 내가 저지른 일들을 내가 화장실에 숨어 있는 동안 아이들이 담임선생님께 모두 말했고, 담임선생님은 우리 부모님께 일러바쳤다. 부모님께 혼나며 나는 다른 것보다도 이소연이 나를 형편없는 악동으로 봤을 거란 생각에 서러워서 울었다.


 다음 날 학교에 간 나는 누구에게도 인사를 받을 수 없었다. 심지어 같이 놀던 아이들도 나와 눈을 피했다. 나는 속으로 욕했다. 그리고 내가 괴롭혔던 아이들에게 다가가서 하나하나 내가 저지른 일에 대해서 사과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에는 기억력이 훨씬 좋아서 내가 저지른 모든 악행이 생생하게 기억났다. 기억나는 그대로 최대한 구체적으로 사과했다. 그들의 반응은 다양했다. 내가 사과할 줄 몰랐다는 듯 놀라는 아이, 겁쟁이라는 듯 비웃는 아이, 사과와는 무관하게 나를 용서할 수 없는 아이, 넌 별것도 아닌 애일 뿐이라는 눈빛으로 바라보는 아이. 내가 마지막에 사과한 아이는 이소연이었다. 진심으로 미안하다는 말에 이소연은 “이제 그러지 마.” 한마디만 할 뿐이었다.


 이후로 나는 누구보다 조용하게 살았다고 자부한다. 그동안 소연이에게도 말을 걸지 않았다. 3학년 2학기 어느 날엔가 내가 먼저 소연이에게 물었다.


 “그때 그 책 뭐였어?”


 소연이는 무슨 말이지 하는 표정으로 잠시 나를 쳐다보다가, 생각났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나의 라임오렌지나무. 슬프게 읽었어.”


 “고마워.”


 다음 날 점심시간에 학교 도서관에 가서 ‘나의 라임오렌지나무’를 빌렸다. 쉬는 시간마다 틈틈이 읽었고 집에 가져가서도 읽었다. 빌린 지 정확히 2일이 지난 뒤에 다 읽었는데, 초등학교 쉬는 시간이었다. 나는 책을 읽고 사람이 그렇게 울 수도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그렇게 우는 사람이 나였기 때문에. 책을 다 읽자마자 나는 울면서 소연이에게 가서 책이 재밌었다고 말했다. 반에 아이들이 별로 없어서 다행이었다. 소연이는 우는 나를 보면서 조금 당황한 것 같았다.


 “재밌었다니 다행이네.”


 그 뒤로 나는 종종 소연이에게 책을 추천받아서 읽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태어나서 처음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내 의지로 읽은 게 소연이 덕분이었다. 


 어느덧 4학년이 되었고, 소연이와 나는 도서부로 다시 만났다. 우연히 만난 건 아니었다. 소연이와 같은 동아리를 하고 싶어서 소연이랑 같은 반인 친구에게 소연이가 어디로 갈 건지 물어봐 달라고 부탁했고, 듣고 나서 나도 똑같은 동아리에 넣었으니까. 덕분에 4학년 1학기에는 도서부로 매주 동아리 시간마다 마주쳤고, 2학기에는 미술부로 마주쳤다. 그런 식으로 6학년 때까지 동아리를 소연이와 같은 곳으로 넣었다. 그동안 나는 책도 좋아지고 그림도 좋아졌다.


 초등학교의 마지막은 6학년은 소연이와 같은 반이었다. 당시 담임선생님은 초임 교사셨는데, 그분과 금방 친해진 나는 몰래 가서 소연이와 짝꿍 하게 해달라고 빌었다. 덕분에 나는 거의 항상 소연이 옆에 앉을 수 있었다. 6학년 졸업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어느 날이었다. 평소처럼 학교 끝나고 아무도 없는 초등학교를 소연이와 산책하고 있었다. 소연이가 한동안 조용하다가 말을 꺼냈다.


 “나 중학교 다른 지역으로 가.”


 충격이었다. 왜냐면 우리 지역은 중학교가 남자중학교 하나, 여자중학교 하나가 끝이었기 때문이었다. 중학교에 올라가도 어차피 지역은 같으니 소연이를 볼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있었다. 나는 크게 충격받지 않은 것처럼 말했다.


 “그래? 어디로 가는데?”


 “그건 아직 모르겠어. 근데 조금 멀리 갈 것 같아.”


 “꼭 가야 돼?”


 “집안 사정 때문에 어쩔 수 없어.”


 심장이 아팠다. 거의 4년 가까이 붙어 다녔는데 이렇게 헤어지게 된다니. 나는 울음이 가슴에서 목으로 울컥 넘어오려는 걸 애써 참으며 말했다.


 “그럼 우리 나중에 어른 돼서 다시 만나자. 지금 우리가 13살이니까. 23살에 다시 만나는 거야. 나 군대도 다녀 온 10년 후에.”


 소연이가 피식 웃었다.


 “서로 어디에 있는 줄 알고 만나.”


 “23살이 되는 해 오늘 여기에 있을게. 만약 네가 하루가 지나도록 안 오면 다음 날부터 내가 널 찾을게.”


 “넌 진짜 그럴 것 같아서 무섭다.”


 소연이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듯 크게 웃었다. 소연이가 웃는 모습을 보고 나도 따라 웃었다. 네가 웃으면 나도 좋다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우린 졸업식날 같이 사진 한 장을 찍고 헤어졌다. 졸업식이 끝나고 집에 돌아온 나는 그날 하루 종일 울어서 탈진했다.


 중학교에 올라갔다. 휴대폰이 생기자 나는 소연이의 연락처가 없다는 걸 항상 아쉬워했다. 평범하게 중학교 3학년이 된 나는 어느 날 하굣길에 소연이를 마주쳤다. 우리 둘 다 서로 눈이 마주치고 놀랐다. 내가 먼저 물었다.


 “너 왜 여기 있니?”


 소연이의 눈이 빨개졌다.


 “나 중학교 다른 지역으로 안 갔어.”


 “그랬구나. 그런데 왜 한 번도 우리 학교로 안 왔어?”


 코가 찡했다. 소연이의 얼굴에 인상이 구겨졌다.


 “처음에는 너 보는 게 무서웠어. 그렇게 영영 못 만날 것처럼 헤어져 놓고서 ‘사실 안 갔어.’ 하고 나타나면 우리의 감동이 깨질 것 같았어. 그러다가 중학교 생활을 하다 보니까 너를 조금씩 잊었고, 새로운 생활에 적응한 것 같아. 너는 어떻게 지냈니?”


 나를 조금씩 잊었다는 그 말이 너무나 아팠다. 가슴에 대못이 박힌 기분이라는 게 뭔지 알 것도 같았다. 감동이 깨질 것 같아서 못 만났다는 건 세상에 대체 무슨 말인가. 지금은 어렴풋이 알 것 같기도 하다만 그때 당시의 여린 나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나는 그동안 소연이만 생각하면서 지냈다. 새로운 여자들이 내게 관심을 표현해도 나는 소연이밖에 없었다. 결국 내 철벽에 지쳐서 매번 여자들이 떨어져 나갔고, 그 뒤에는 또다시 다른 새로운 여자들이 내게 관심을 표현했다. 그렇게 중학교 3년을 보냈다. 소연이 생각과 공부만으로. 이야기하자면 정말 길었다. 그렇지만 나는 모든 일을 덮어두고 소연이에게 한마디만 했다.


 “나름대로 어떻게든 지냈지 뭐.”


 소연이가 피식 웃었다.


 “여전하네.”


 “나야 뭐 그렇지. 너는 더 예뻐졌네. 남자친구도 있겠는데?”


 소연이의 눈이 투명하게 빛났다. 소연이는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왜 울어. 와, 이소연 진짜로 남자친구 있는 거야?”


 눈앞이 흐려졌다.


 “아니, 야. 소연아. 남자친구 있으면 잘 됐네. 울지 마.”


 소연이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나는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소연아 왜 말을 안 해. 난 괜찮아. 남자친구 생긴 거 진짜 축하해. 오래 갔으면 좋겠다.”


 나는 일부러 오래 갔으면 좋겠다며 멋쩍게 웃었다. 엉엉 우는 소연이를 잠시 양팔로 감싸 안았다. 품 안의 소연이는 뜨거웠다. 그렇지만 내 가슴이 훨씬 뜨겁게 느껴졌다. 머리가 아팠다. 나도 울고 싶었다. 소연이는 내 품에 안겨서 미안하다는 말만 반복했다. 문득 고등학교는 어디로 가는지 묻고 싶었다. 우리 지역에 고등학교는 남녀공학 인문계 하나에 남녀공학 실업계 두 개가 있었다.


 “고등학교는 어디로 가기로 했어?”


 소연이는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집안 사정 때문에 실업계로 갈 것 같아. 돈을 빨리 벌어야 해.”


 “그렇게 됐구나.”


 “응.”


 “우리 3년 전에 초등학교에서 했던 약속 기억나?”


 “10년 뒤에 만나자고?”


 “응.”


 소연이가 피식 웃었다.


 “너는 다 기억하는구나.”


 “원래 기억력이 좋은데, 너랑 관련된 건 전부 기억해.”


 “고마워.”


 “고맙기는. 번호나 주고 가.”


 소연이는 내 휴대폰에 자신의 번호를 입력했다. 그걸로 소연이와 연락할 수 있다는 생각에 기뻤지만, 남자친구가 있다는 걸 안 이상 마음대로 연락할 수는 없었다.


 “꼭 연락해.”


 소연이가 말했다.


 “알았어. 먼저 연락할 테니까 기다려.”


 내가 손 흔들며 답했다. 그렇게 우리는 조금씩 멀어졌다. 서로를 바라본 채로 멀어지다가 멈칫하고 뒤돌아보려다가 다시 서로를 바라보며 그렇게 조금씩. 아쉬워서 머뭇거렸다가 내가 가까이 가려고 하면 소연이가 한걸음 물러나고 그걸 보고 내가 한걸음 물러나면 소연이가 내게 한걸음 다가오고. 그렇지만 분명하게 멀어지고 있었다. 마침내 소연이가 먼저 골목에 다다랐을 때 소연이는 손을 크게 흔들고 골목 너머로 사라졌다. 가슴이 아팠다. 말 그대로, 가슴이 너무나 아팠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되었다. 그동안 나는 소연이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소연이도 나를 찾지 않았다. 찾았는데 못 만났을 수도 있겠지만. 나보다 좋은 남자가 소연이와 함께할 수 있다면 그게 소연이가 더 행복할 것만 같았다. 소연이와 사귄다는 선배가 누군지 알아냈는데 공부도 잘하고 집안도 잘살고 키도 크고 얼굴도 나보다는 아니지만 좀 생긴 선배였다. 저런 선배라면 나보다 소연이를 더 행복하게 만들 것 같다는 생각에 소연이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나는 스스로 너무나 부족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내가 소연이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믿었다. 물론 그동안에도 나는 소연이 외에 다른 여자에게 마음을 두지 않았다.


 고3 수험생 시절 매일 독서실 마감 시간인 새벽 2시까지 공부했다. 수능이 148일 남았던 날로 기억한다. 독서실은 외곽에 있었고 등록한 학생이 적었다. 1층이 남자 독서실, 2층이 여자 독서실이었다. 나는 고등학교 야자가 끝나자마자 1층으로 쌩 들어가서 그대로 아무것도 안 먹고 새벽 2시까지 달렸기 때문에 2층에 있는 여학생은 한 명도 본 적 없었다. 그 독서실에서 새벽 2시까지 공부하는 학생은 나밖에 없었기도 하다. 며칠 전부터 2층에서 새벽 1시 30분 즈음 의자 끄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의자 끄는 소리를 처음 들은 날에 처음부터 저렇게 빡세게 달리면 오래 못 갈 텐데 싶었다. 그런데 그게 며칠이나 계속되더니 수능 148일이 남은 날까지 이어졌다. 그날도 새벽 1시 40분 즈음 2층에 있는 여학생이 나갔다. 평소처럼 새벽 2시에 공부를 마친 나는 문득 누군가 싶어서 독서실 총무 카운터로 가서 매일 1시 30분 즈음 나가는 여학생이 누구냐고 물었다. 왜냐면 인근 고등학교에서는 공부 잘하는 애들끼리 서로서로 모임으로든 동아리로든 봉사활동으로든 겹쳤기 때문에 아는 사람인가 싶었기 때문이다. 총무님에게 여학생 이름을 듣고 나는 놀라면서도 기뻤다. 이소연이라니.


 그 뒤로 공부가 손에 잡히지 않았다. 독서실에 있으면서도 내 온 신경은 2층의 의자 끄는 소리에 집중되어 있었다. 나는 소연이와 어떻게 해야 자연스럽게 마주칠 수 있을지 온종일 고민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지금까지 나와 소연이는 멀리 떨어져 있었는데, 앞으로 대학에 가게 된다면 서로 더 멀리 떨어지게 될 테고, 그러면 서로에 대한 마음도 점점 멀어지고 식지 않을까. 만에 하나 소연이는 이미 나에 대한 마음이 없다고 해도 내가 소연이에게 가지고 있는 마음이 식는 게 두려웠다. 어떻게든 수능 전에 이 마음을 전하고 끝내고 싶었다. 나는 그때까지 한 번도 소연이에게 솔직한 내 마음을 표현한 적 없었기 때문이다. 거절당하고 사이가 멀어지는 게 두려워서 한 번도 그럴 용기를 내지 못했다. 시간은 새벽 1시 20분. 2층에서 의자 끄는 소리를 들었다. 나는 소연이와 우연히 마주치기 위해 얼른 1층 공용 복도로 나갔다.


 2층에서부터 발소리가 들렸다. 나무 계단을 밟는 사뿐사뿐한 발소리. 계단은 ㄷ자로 생겨서 가운데가 벽으로 가로막혀 있었다. 그래서 아직 발소리의 주인공을 보지는 못했지만, 초등학생 때부터, 9년 전부터 들었고 매일 떠올린 발소리로 주인공을 떠올렸다. 마침내 벽 너머로 다리가 하나 넘어오고, 이어서 발소리의 주인공이 나타났다. 소연이는 순간 걸음을 멈추고 나와 눈을 맞췄다. 소연이가 먼저 피식 웃었고 내가 따라 웃었다. 소연이가 반갑게 입을 열었다.


 “어떻게 여기서 마주치지.”


 “그러게.”


 “연락 한다더니.”


 “연애하는데 방해하기 싫어서.”


 “너는 그래도 돼.”


 나는 무슨 의미인가 생각하다가 궁금한 걸 물었다.


 “돈 빨리 벌어야 한다더니. 왜 그렇게 매일 열심히 공부하는 거야?”


 “이 시간에 가는 게 나인 걸 알았어?”


 “아니, 몰랐는데 이 시간에 나가는 게 한 명밖에 없는데 그게 너였던 것 같아서.”


 소연이가 까륵 웃었다.


 “감동이야. 나 실업계이긴 한데 대학교 가려구. 그래도 대학교는 가봐야 후회가 안 남을 것 같아.”


 “잘 생각했어. 그러면 정시 준비하는 거야?”


 “응. 열심히 하려고.”


 “힘들겠네.”


 “힘들지. 수능도 이제 얼마 안 남았잖아.”


 “응원할게. 넌 항상 열심히 하니까.”


 “그치. 우리 하나 약속할까.”


 “말만 해.”


 “서로 수능 전까지 방해되지 않기로 하자. 만약 수능 공부에 방해받는다고 느끼면 누구든 그렇게 느낀 쪽이 먼저 독서실을 옮기거나 그만두기로 하자.”


 “알았어.”


 나는 어떻게든 소연이를 다시 만났다는 사실에 들떠서 다른 건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 뒤로 나는 매일 소연이가 나가기 30분 전에 미리 나가서 복도에 서 있었다. 수능이 가까워지자 등록한 학생이 많아졌고, 그중에는 소연이와 비슷한 시간대에 나가는 학생들도 있었다. 그래서 2층에서 의자 소리가 들린다고 해도 누가 소연이인지 알 수 없었다. 처음 몇 번은 소연이도 나를 반가워했지만 몇 번 반복되자 소연이는 나를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봤다.


 수능 100일 전이었다. 나는 지금까지의 내 마음을 모두 소연이에게 털어놓고 홀가분해지고 싶었다. 이기적이었다. 일방적이었다. 그렇지만 그렇게 내 마음을 전하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았다. 마지막 기회일 것 같았다. 나는 소연이가 언제 나갈지 몰랐기에 11시부터 공용 복도 벤치에 짐을 챙겨서 앉아있었다. 멀지 않은 곳에 강이 있어서 모기가 많았다. 모기에게 사정없이 뜯기는 것도 모르고 내 정신은 오로지 독서실 2층에 가 있었다. 11시 40분 즈음 학생 무리가 나갔다. 슬슬 추워졌다. 12시 20분 즈음 총무님이 왜 여기에 서 있냐고 물었다. 그냥 누구를 기다린다고 했다. 1시 즈음 한 무리의 학생이 나갔다. 소연이는 없었다. 1시 30분 즈음 몸이 떨렸다. 감기에 걸린 것 같았다. 1시 40분까지만 기다려보기로 했다. 만약 이번에도 소연이를 만나지 못하면 지금까지 좋아했던 모든 마음을 접고 인연이 아닌 셈 치기로 했다. 시간이 계속 흘렀다. 찬 공기가 시렸다. 가슴이 뜨끈했다. 마침내 1시 40분을 선고받았다. 나는 긴 한숨을 쉬고 벤치에서 일어났다. 그때 2층 계단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사뿐사뿐. 발소리만 듣고도 나는 그 소리가 소연이라는 걸 알았다. 소연이가 눈을 마주쳤다. 이번엔 반가움보다 걱정이 더 컸다. 소연이는 특유의 팔자눈썹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내가 널 어떻게 하면 좋겠니.”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어떻게 마음을 표현할까. 오직 그 생각 뿐이었다.


 “언제부터 기다렸어?”


 소연이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방금 나왔어.”


 “거짓말 마. 총무님이 너 한참 전부터 기다렸다고 하던데. 언제부터 기다렸어?”


 “1시간정도.”


 “말을 말자. 나랑 전에 약속 했잖아. 서로 방해 안 되게 하기로.”


 “내가 너한테 방해 돼?”


 “신경 쓰여.”


 “소연아 나 할 말 있어.”


 “잠깐 기다려봐.”


 소연이가 고개를 떨궜다. 나는 뭔가 불안한 일이 생길 것만 같다고 직감했다.


 “네가 무슨 말을 할지 모르겠지만. 그래서 미안하지만 하나 알려줄게. 나 남자친구 있어.”


 가슴에 대못이 박히다 못해 무너졌다. 그렇지만 괜찮았다. 남자친구가 있을 수도 있다는 건 충분히 감수했기 때문에. 그렇지만 말을 꺼내려고 했지만, 목이 메어 말이 나오지 않았다.


 “우리 수능 얼마 안 남았잖아. 이러지 마. 서로 신경 쓰이게 하지 말자. 만약 네가 나 때문에 수능이 망하면 너는 평생 나를 미워할 거야. 반대도 마찬가지야.”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입에서 나오는 대로 말했다.


 “남자친구랑 사귄지 오래 됐어?”


 “네가 나한테 가지고 있는 감정은 어릴 때 좋아했던 감정이 미련으로 남은 거야. 좋아해줘서 고맙긴 한데, 지금까지 나를 좋아했던 시간 때문에 나를 좋아하는 거야. 정신 차려. 만약 한 번만 더 신경 쓰이게 하면, 내가 독서실 옮길게.”


 “알았어. 그래도 어릴 때 약속 잊지 않았지?”


 내 마음을 전했든 그러지 못했든 상관 없었다. 소연이와 계속 이어질 수 있다면 상관 없었다. 연인이 아니라면 친구로라도 오래 옆에 남고 싶었다. 소연이는 내 마지막 물음에 답하지 않았다. 나는 집으로 걸어가는 내내 엉엉 울었다. 앞이 보이지 않아서 인도로 가는지 차도로 가는지 구분할 수 없었다. 차라리 차도로 걸어갔으면 했다. 차라리 차도로 걸어가다가 차가 지나가면 그쪽으로 뛰어들고 싶었다. 그렇지만 내가 집까지 가는 내내 차는 단 한 대도 지나가지 않았다. 걸음마다 소연이와의 추억이 떠올랐다. 독서실부터 집까지 걸어가는 길은 소연이와 초등학교를 다닐 때 같이 산책하던 길이었다. 슬픔에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전하지도 못하고 끝나버린 마음이 비참했다. 다음날 나는 독서실을 옮겼고 그 뒤로 소연이의 모습을 보지 못했다. 우리는 영원히 만날 수 없는 이중나선 같았다.




5.


 “그런데 당신이 소연이를 꼭 닮았습니다.”


 엘사는 내 이야기를 차분하게 처음부터 끝까지 들어주었다.


 “제가 그쪽 첫사랑이랑 닮았다는 이야기를 하려고 그 긴 이야기를 하신 건가요?”


 “물론 아닙니다. 저는 당신 이름도 모릅니다. 그런데 저는 당신이 제 첫사랑인 것처럼 느껴집니다. 지금 만나는 사람이 있는데도 당신을 좋아하는 마음을 못 버리겠습니다. 첫사랑의 미련을 제가 버리지 못한 걸까요. 당신은 제 첫사랑이 아닌데, 당신은 소연이가 아닌데 당신의 이미지 때문에 당신을 사랑하게 되는 것 같아요.”


 엘사는 마지막 커피 한 모금을 마셨다. 맑고 투명한 눈을 했다.


 “지금 만나는 사람한테 잘 해주세요.”


 “그게 끝인가요?”


 “누구나 언젠가는 첫사랑을 놓을 때가 와요. 그때가 바로 연인관계에서 크게 성장하는 순간이에요. 마음속으로 첫사랑을 보내주는 슬프고 고통스러운 마지막 이별. 그렇지만 진정한 끝은 아니에요. 그동안 미련으로 남았던 첫사랑은 진정한 이별 후에 언제나 당신을 응원할 거예요. 첫사랑의 영원한 응원을 받으며 당신의 사랑을 다른 사람에게 표현하세요.”


 “그거면 될까요?”


 “저는 그걸로 충분해요.”


 이후에 나는 정신을 잃었다. 다음날 눈을 뜨니 침대 위였다. 전날 엘사와 대화를 나눈 게 꿈인지 현실이었는지 모르겠다. 분명한 건 그날 이후 엘사를 카페에서 볼 수 없었다. 얼마 후 나는 예나에게 진심을 담아 고백했고, 결국 사귀게 되었다.


 그 해 11월 어느 날이었다. 10년 전에 소연이와 만나기로 했던 그날이었다. 공교롭게도 예나와 사귄 지 200일이 되는 날이었다. 나는 초등학교로 갈까 어서 예나를 만나러 갈까 고민했지만 오래 가지 않았다. 나는 당연하게도 예나를 만나러 가는 길을 택했다. 혹시나 g하는 마음에 내 자취방 앞으로 돌아갔다. 카페에는 엘사가 앉아있었다. 엘사는 나를 보며 처음으로 환하게 생긋 웃었다. 나는 고개를 꾸벅 숙여서 인사했다. 응원해줘서 고마워, 소연아.


-----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에서 얼마 전에 소연이 친구에게 들은 사실이지만, 소연이는 지금까지 한 번도 남자친구를 사귄 적이 없다고 했다. 내가 자기 때문에 미래를 포기하게 되는 게 무서워서 항상 피했다고 했다. 친구에게 소연이는 지금 어디에 있냐고 물으니 지금은 만나고 싶지 않아 한단다. 언젠가 다시 만난다면 그때 고마웠다고 말해주고 싶다. 덕분에 사랑이 뭔지 조금은 알 수 있었으니까. 예나와는 지금까지 잘 사귀는 중이다.




추천 비추천

18

고정닉 15

7

원본 첨부파일 1

댓글 영역

전체 댓글 0
등록순정렬 기준선택
본문 보기

하단 갤러리 리스트 영역

왼쪽 컨텐츠 영역

갤러리 리스트 영역

갤러리 리스트
번호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추천
설문 힘들게 성공한 만큼 절대 논란 안 만들 것 같은 스타는? 운영자 24/06/10 - -
5308901 예전에 친구가 그려준거 [9] 인간미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2.13 189 16
5308880 얼어붙은 목소리 방송이 점점 발전해가는 이유가 궁금하신가요? [21] frozenvoice2020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2.13 711 31
5308806 여왕님 근본은 묶은머리다=개추 [17] vuelie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2.13 357 46
5308399 220.77 신성모독 유동 [20] ㅇㅇ(115.137) 21.02.13 802 25
5308254 정령님의 시간 엘-시 [6] 퀸엘사오브아렌델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2.13 126 16
5307902 낙서) 지난번 얼목 라디오드라마 듣고 그림 [10] Neogury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2.13 365 20
5307812 그림)가족사진 [13] ㅇㅇ(223.33) 21.02.12 392 29
5307781 엘사 드로잉 하나 했음 [25] YokoGally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2.12 480 36
5307715 겨울왕국 갤러리 일동은 앙졸라이트 복귀를 기원합니다. [12] ㅇㅇ(211.36) 21.02.12 687 30
5307699 그림) 이두나와 아그나르 첫만남 [11] 오사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2.12 395 31
5307683 겨울왕국의 클라쓰에 대해 다시한번 알아보도록 하자 [25] 냉탕에얼음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2.12 560 29
5307618 안시 [9] 꺼몽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2.12 134 17
5307564 [문학/초단편] 로미오와 줄리엣 [13] 프3존버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2.12 301 18
5307471 그림) ? [16] 엘사코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2.12 295 29
5307415 [그림] 새해복 많이 받으세요 ! [11] PoytailPoy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2.12 266 33
5307386 02월 12일 설날 엘-시! [10] 눈과얼음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2.12 124 16
5307244 [6/21] 여왕님의 시간 안시 [9] 알리미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2.12 103 16
5307205 두빌스 편곡 미디 완성! [8] ㅇㅇ(59.20) 21.02.12 145 16
5307046 엘——————시 [10] 매티어스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2.12 130 16
5306947 요청짤) 쇼유쉛 옷 바뀌는 장면....? [16] 엘사코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2.11 536 30
5306861 안나와 올라프의 관계에 대한 나름대로의 해석 [17] 엘사코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2.11 415 29
5306835 [문학] 왕을 유혹하는 방법 4화 [14] 인간미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2.11 357 21
5306834 프겜 만들어왔어... [12] FRO2EN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2.11 466 26
5306784 안-시 막트아아ㅏㅏ아아아아아ㅏ아아ㅏ아아아 [10] 얼음보송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2.11 106 16
5306713 (그림)하와와 아기 프붕이 그림 그렸어 봐줘! [12] 엘사나라안나공주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2.11 393 34
5306527 엘——————시 [9] 매티어스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2.11 132 16
5306465 정령여왕넨도뜸 ㅋㅋㅋㅋㅋ [52] 둘리고양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2.11 895 46
5306295 엘——————시 [8] 매티어스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2.11 139 15
5306252 [이륙요청!] 제 296회 예술의 밤은 자유 주제입니다! [12] 예술의밤총대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2.10 294 26
5306249 술 엘사 아이컨택 [12] #카산드라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2.10 548 32
5306200 [그림]아렌델 안나VS 서던 한스 [21] 안나병풍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2.10 519 34
[겨울문학대회/순수문학] 이중나선 [7] 심사불가(110.9) 21.02.10 321 18
5306131 엊그제한 낙서나봐라 [7] 위즐타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2.10 149 15
5306114 [겨문대회/순수문학]잊혀져도 좋을 [11] 겨울문학대회총대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2.10 428 23
5306001 안-시 막트아ㅏ아ㅏ아ㅏ아아ㅏ아아아ㅏ아 [9] 얼음보송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2.10 125 16
5305930 새해 인사 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홍대장 올림. [28] 홍메박_홍대장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2.10 548 58
5305778 낙서) 데굴데굴 [8] 엘사코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2.10 206 20
5305741 엘-시 막트아아아아ㅏㅏ아아아아아ㅏ아아ㅏ아 [9] 얼음보송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2.10 98 15
5305538 념글 저분이 할소리임? [19] Frozen3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2.10 816 37
5305494 업스케일로 새로만든짤 [11] #카산드라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2.10 498 24
5305462 연필로 안나 그리기 [8] 엘사코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2.10 264 22
5305445 엘——————시 [11] 매티어스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2.10 134 15
5305366 설갤하는 애를 받아주니까 망갤화가 빨라지지ㅋㅋ [28] 호랑사또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2.09 890 30
5305159 [얼어붙은 목소리]10방 커버곡 두 곡 공개 [11] frozenvoice2020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2.09 252 22
5305088 여왕님의 시간 안ㅡ시 [12] 안나안나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2.09 144 15
5304854 엘-시 막트아아ㅏ아ㅏ아아아ㅏㅏ아아아ㅏ [9] 얼음보송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2.09 129 15
5304770 Frozen3 얘는 진짜 역겨운듯 [9] ㅇㅇ(223.62) 21.02.09 517 31
5304766 그림#35) 불의 정령을 만나다 外 동글이 그림 [12] 눈과얼음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2.09 332 29
5304480 남의 입장에서 생각해본적이 있을까? [38] 대깨엘룩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2.09 1084 50
5304456 그림) 엘커벨 [20] 엘겅_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2.09 453 54
갤러리 내부 검색
제목+내용게시물 정렬 옵션

오른쪽 컨텐츠 영역

실시간 베스트

1/8

뉴스

디시미디어

디시이슈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