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한국 무협지라 그러면 두 가지 정도의 특징이 있음

1. 주인공은 독자가 감정이입할 수 있는 존재여야 하며, 독자는 주인공의 행보를 통해 대리만족을 얻는다.

2. 배경은 현실이나 역사적 배경과는 동떨어진 원더랜드 같은 동네이다.

1과 가장 들어맞는 포맷은 복수극일 거라고 생각함. 구무협에서 가장 흔한 요소이기도 하고.

2의 경우 소설의 지향성과 의외로 큰 관련이 없기 때문에 호불호가 갈림. 호불호가 갈린다는게 뭔소리냐면

'아 뭔 무협지에 역사배경을 처넣어서 아는척하냐'라는 반응이 나올 수 있다는 거임.

쟁선계는 다들 아시는 대로 1과 2에 해당되는 게 하나도 없음.

잠깐 용대운 얘기를 하면, 용대운의 경우는 매력적인 주인공을 만드는 데 일가견이 있지.

즉 1에 특화된 작품을 쓴다는 건데, 복수극의 주인공 노독행과 로드무비의 주인공 전옥심을 보면 지향성이 다르면서도 그럴싸한 주인공이 등장함.

물론 개인적으로는 로드무비 무협의 최고봉은 사조영웅전이라 생각함.

신기하게도 쟁선계는 복수극이 기본 틀임에도 복수의 비중이 생각보다 크지 않지.

석대원이 복수를 해야 되는 상황 자체가 주변에서 얽히고 설켜서 만들어진 비극이거든.

2번과도 정면으로 대치되지. 당장 악역 집단이 중앙 관료들이기도 하고 역사적 배경이 매우 중요함.

쟁선계의 등장인물 취급과 가장 비슷한 작품은 얼불노라고 봄. 여기는 아예 주인공이 없는거랑 마찬가지잖아?

난 그냥 쟁선계를 재밌게 읽기 위해선 기존 한무랑 약간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는 게 맞다고 봄.

석대원이 안나온다고 짜증나서 '아 주인공이 하는것도 없고 분량도 적냐 이새끼 뭐하는중이냐' 이러지 말고,

'아 뭐 황궁에 금의위는 왜 나와서 난리야 싸우는거나 보여주지' 이러지 않아야 재미를 느낄 수 있다는 거임.

주인공의 행보에 초점을 맞추는 일본 rpg가 아니고, "군상극"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읽었으면 함.

당장 쟁선계에서 석대원을 빼도 이야기 큰 흐름은 그렇게 큰 타격을 입지 않는 것이 사실임.

저번에도 썼지만 삼국지 읽듯이, 수호지 읽듯이 읽으면 당최 빠져나올 길이 없음 ㅜㅜ

이재일 작가는 중국을 배경으로 중국인들이 활약하는 소설을 쓰는 작가인데

한국어 어휘 구사 능력이 정말 엄청나게 풍부함. 이 인간이 왜 토목과를 갔는지 모르겠다.

나 나름 사학과 졸업하고 순수인문학 공부한 문돌이인데도 이재일 작가의 어휘구사능력을 보면 감탄밖에 나오지 않음.

작품 자체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매력적인 요소가 김연아만큼 많다는 말을 하고 싶음.

뭐 쟁선계가 다른 소설들보다 수준이 높다 클라스가 다르다 이런 생각은 아님.

하지만 누가 댓글로 보는 눈이 있는 만큼 재밌는 작품이라고 한 말에는 10000프로 정도 공감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