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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상플) 첫 눈이 온다구요

ㅇㅇ(1.242) 2016.12.23 22:13:14
조회 5516 추천 95 댓글 18


첫 눈이 온다구요




1991년 12월 10일




“덕선아 진짜 고마워! 내가 이 은혜 꼭 갚을게 정말.”


“됐어 은혜는 무슨. 7시 종로라고 했지? 대신 나 그냥 진짜 나가서 커피 마시고 영화만 본다.”


“당연하지. 진짜 진짜 고마워 떡서나아아”


“야, 근데 너 정말 괜찮겠어?”


“으응 안돼도 어쩔 수 없지. 사활! 나는 이미 돌을 던졌다고. 그 놈의 첫 사랑이 뭔지 내가 이런 짓까지 한다. 흐엉.”


첫 사랑.
울상을 짓는 눈 앞의 친구를 보는 덕선의 입매가 슬그머니 호선을 그렸다.


동기지만 자경과 처음부터 친했던 것은 아니었다.
까무잡잡한 자신과는 달리 도화지처럼 새하얀 얼굴에, 제가 그리도 싫어했던 칼 단발이 자경에겐 그림처럼 참 잘 어울렸다.


꼭 누군가를 닮은, 군더더기 없이 단정하고 차분한 얼굴에 눈길이 갔다, 처음엔. 


4월의 어느 날이었나.
동기 모임으로 끌려갔던 술자리에서 우연히 자경의 옆 자리에 앉게 됐다.

조용하고 여성스러울 것이라 생각했는데, 웬열이었다.


쌍문동에 성덕선이 있다면, 사직동엔 고자경이 있었단다. 둘은 대번에 서로를 알아봤고, 놀랄 정도로 비슷한 점이 많았다.

하지만 자경에게 마음이 깊게 끌리는 데는 다른 이유가 있었다.

덕선처럼, 자경에게도 골목에서 함께 자란 오랜 친구들이 있었다.


자경은 그 친구들 중 하나를 오래도록 짝 사랑 해 왔노라, 덕선에게 담담하게 털어놓았다.

돛대기 시장 같은 학교 앞 호프집을 빠져 나와 덕선은 자경과 함께 캠퍼스를 걸었다.


‘몰랐어 내 마음이 뭔지. 우린 너무 어렸을 때부터 항상 같이 있었으니까.’


‘……’


‘솔직히 걔 말고 다른 애들이라면 몰라도 걘 정말 내 동생 같은 애였거든?

어떻게 동생을 좋아하냐고 미쳤다고 막 혼자 다그치고 마음 접고, 일부러 쌀쌀맞게 대하고 그랬거든’


‘……에구 힘들었겠다’


‘거절 당하는 게 두려운 게 아니라 걔랑 어색해 지는 게, 그래서 우리가 다시는 예전처럼 함께 있을 수 없을 까봐….그게 너무 무서워’



얼굴을 마주보고 이야기 하긴 창피했는지 덕선보다 딱 한 걸음 앞서 조잘거리던 자경이 불현듯 멈췄다.


‘근데 덕선아. 나 걔가 정말 너무, 너무 좋아’


까만 밤을 가르고 뒤돌아 선 자경의 봉긋 솟은 뺨만 하얗게 빛난다.
덕선의 심장 한 쪽이 찌르르르 하게 울려왔다.


자경이 놀라 덕선을 당겨 안은 건, 동그란 두 눈이 어느새 온통 눈물범벅이었기 때문이다.



“근데 너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냐 성덕선?”


자경이 어깨 선을 조금 넘어선 머리를 휘휘 말아 올리며 웃었다.

덕선은 손을 뻗어 자경의 뒷머리를 뒤로 말아 귀밑까지 내려 보였다.


“촌스런 칼 단발, 그 시절 고자경 생각 좀 했지. 근데 너 머리 꽤 많이 길었다. 됐어 이 정도면 많이 나아졌다”


“허이구, 신입생 OT때 성덕선 눈두덩을 덮었던 보라색 섀도우는 잊으셨나 봐요”


“으아아악 고자경 그거 기억에서 삭제하기로 약속했냐 안 했냐 캡 치사하다 너!”


혼자 만족스레 끄덕끄덕 하던 덕선이 사색이 되어가는 것을 보며 자경이 깔깔거렸다.
푸닥거리며 하나 남은 전공을 들으러 가는 둘의 발걸음이 가벼웠다.


잔뜩 흐린 날이었다. 눈이 올 것처럼.




-




수업을 마치고 종로의 한 커피숍에 도착한 덕선이 창가에 자리를 잡았다.

6시 30분. 약속 시간까지는 좀 남았다. 덕선은 손을 들어 따뜻한 물 한잔을 먼저 부탁했다.


멍하니 창가를 바라보던 덕선은 새삼 자경이 대단하다 싶었다.


자경은 용기 있는 여자였다.

마음이란 것은 쉬이 접히는 녀석이 아니었다.

그것은 누구보다 덕선이 잘 알았다.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었지만, 선택은 달랐다.

덕선은 접혀 지지 않은 마음을 안쪽으로 안쪽으로 꼭꼭 밀어 넣었다.

자경은 반대였다. 밖으로 밖으로 밀어내고 드러냈다.



한 달 전 즈음 묘하게 상기된 얼굴로 자경이 말했다.
드디어 고백을 했노라고.


‘왜, 어째서. 두렵다며, 무섭다며 다시 함께 할 수 없으면 어떡하냐며’


소스라치게 놀란 덕선이 속사포처럼 쏟아낸 물음은 비단 자경만을 향하는 것은 아니었다.


‘덕선아. 내가 예전에 그랬잖아. 나는 어렸을 때부터 걔 뒷모습만 보면 그렇게 마음이 짠했다고’ 


‘……’


‘그래서 철 모를 때는 걔한테 맨날 업어달라고 했어. 휑해 보이는 그 너른 등이 너무 보기 싫어서’


‘……’


‘근데 덕선아, 내가 등을 감싸 주는 게 아니라, 걔가 내 등을 감싸주면 좋겠어. 안아주는 게 아니라, 안기고 싶어’



쿵 하고 심장이 떨어졌다.
벼락 같은 깨달음도 함께 왔다.


유공연수원에서 택이 처음으로 자신을 안아 들었을 때,
왜 그렇게 심장이 머리 끝에서 발 끝까지 추락하듯 떨어지는 느낌이었는지.


아지트에서 늘 익숙하게 맡았던 택이 스킨 냄새가 왜 그리도 낯설고 생경하게 느껴졌는지.
앞만 보고 내달리는 택인데도, 발개진 귀 끝과 두 볼을 들켜 버릴까 왜 그리 불안했는지. 


덕선은 문득, 또 그렇게 생생한 날 것으로 마주한 자신의 마음에 어쩔 줄을 몰랐다.
덮을 수도, 밀어낼 수도, 접을 수도 없이 거대하게 밀려오기만 하는 파도 같은 그 마음을 어찌 달래야 할지 몰라 애꿎은 입술을 뜯었다.



‘그래서 고백했지. 좋아한다고. 친구가 아니라 남자로’


‘답은…답은 들었어?’


‘아니. 못된 놈! 못됐어 정말. 차라리 거절이라도 했음 속이라도 시원하겠어’


‘뭐라고 했는데’


‘….평생 대답 안 할거래’


‘뭐라구? 그게 뭐야’


‘내 말이! 그게 뭐냐? 그래서 수를 던졌지 그럼 나 다른 남자 만나겠다고. 그래도 괜찮으면 마음대로 하라고’


‘야아…그래도 다른 남자를 만나면 어떡하냐’


‘그치? 덕선아 그러니까…. 나 한번만 도와주라!!!!’


이 자리는 그렇게 해서 만들어졌다.

자경이 사촌 언니를 통해 만든 소개팅의 주인공은 고자경이 아니라 성덕선이다.

물론 자경이도 온다.

하지만 자경이 기다리는 것은 소개팅 할 남자가 아니라, 첫 사랑이자 오랜 짝 사랑 상대인 그의 대답일 것이다.



생각에 빠져 있는 그녀의 테이블을 톡톡 치고 지나간 것은 자경이었다.

덕선을 지나쳐, 두 테이블 정도 떨어진 곳에 자경이 자리를 잡았다.

덕선은 눈을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


애써 웃고 있는 자경의 곁으로 가 한번 꼭 안아주고 싶었지만 눈으로만 마음을 전했다.
미로처럼 선과 선이 교차하는 곳에 그녀가 내려놓은 돌이, 완생(完生)이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자경의 입 모양으로 뭐라 뭐라 말을 하고 있었다.

음악 소리에 묻혀 정확히 듣지 못한 덕선이 고개를 갸웃하자 자경이 창 밖을 가리켰다.



‘덕선아 눈 온다’



황급히 창 밖으로 시간을 돌리자 새하얀 눈발이, 흩날리고 있었다.

덕선은 생각했다.



둔하디 둔한 자신의 마음을 뒤늦게 알아차린 것이 정말로 다행이라고.
조금 더 일찍 이 마음을 알게 됐다면,
함께 보낸 그 오랜 시절과 세월에 겹겹이 둘러 쌓여있는 모든 순간이 아마도 그 사람일 것이라

매 순간 덜컥덜컥 내려 앉는 심장을 감당하지도 못했을 것이라고.



 

택아,


….. 너를 향한 이 마음은 왜 그치지도, 녹지도 않을까.





“성 덕선씨 되십니까?”


“아, 네 맞아요. 안녕하세요. 앉으세요.”


“죄송합니다. 제가 먼저 와서 기다렸어야 하는데, 갑자기 눈이 내려 거의 다 와서 길이 좀 막혔습니다. 반갑습니다. 김 현수입니다.”



한 눈에도 호감을 주는 말끔한 인상의 사내가 서글서글하게 웃으며 맞은 편에 앉았다.
덕선도 자세를 고쳐 앉으며 가볍게 인사를 건넸지만, 이미 눈처럼 흩날리는 그 사람 생각은 차마 떼어내지 못한 채였다.


요기거리가 될만한 빵과 커피를 곁들여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시간은 저녁 여덟 시를 향해가고 있었다.


남자가 미리 예매했다는 영화 시간이 가까워져 오고 있었지만, 자경의 맞은 편은 여전히 빈 자리였다.

처음에는 초조해 보였던 자경의 표정은 오히려 이제는 편안해 보였다.

엉망인 마음을 숨기는데 골몰하면, 오히려 드러나는 얼굴에는 미동이 없어지는걸까.



“덕선씨, 이제 슬슬 일어날까요?”


“아, 네…네”


“네 그럼 제가 계산 마치고 차 가지고 건물 앞으로 오겠습니다. 덕선씨 눈 오니까 창 밖으로 하얀 차 보이면 그때 나오세요.”


“아 네 감사합니다.”



사람을 대하는 데 어려움이 없는 다정하고 좋은 사람이었다.

그러나 덕선은 내내 다른 사람을 생각했다.



흑과 백으로 이루어진 그의 세계를 제외하고는
일상의 거의 모든 일이 서툴디 서툰 행마의 연속. 


속도는 느렸지만, 허 투로 내뱉는 말은 하나도 없었던 소년의.
평소와는 조금 다른 들뜬 목소리가.


내내, 마음에 윙윙거리는 바람처럼 울려댔다.



‘덕선아 우리 영화 볼까’


‘…영화 보자 우리’



펑펑 울다가 전화를 받은 그 순간엔 몰랐다.


니가 오랜 친구에게만 보여주는.
그 아무렇지도 않은 깊은 다정이, 나에게는 이렇게 날카로운 그리움이 될 것이란 걸.



-



끝내 자경은 그 친구에게서 응답을 들을 수 없었다.
창 밖에 하얀 차를 보고 커피숍을 나서며 잠깐 자경의 자리에 들른 덕선에게 자경은 힘없이 웃어 보였다.



“자경아…..나 영화 못 본다고 하고 다시 올까?“
“아냐 덕선아 괜찮아 나 때문에 그러지마 영화 재미있게 보고 마지막까지 잘 부탁해”



자경아,
너 때문이 아니야.
나 때문이야.


…….나 그 애가 너무 보고 싶어.
할 수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달려가고 싶어.



그러나 덕선은 스스로를 잘 알았다.
저는 자경처럼 그럴 수 없다고.



남자가 예매한 영화는 연말연시에 어울릴법한 잔잔하고 따뜻한 가족영화였다.
잘 웃고 잘 우는 감수성 풍부한 덕선이 좋아할법한 영화였지만, 어쩐지 영화에 집중할 수 없었다.



덕선은 생각했다.
첫 눈이 내려서라고. 그래서 더 생각이 나는 것뿐이라고.

오늘만 이러고 말 거라고.


하지만 두렵기도 했다.


속수무책으로 커다랗게 밀려드는 그리움으로부터 며칠을 도망치고 도망쳐 택에게서 멀어져도.


작고 까만 뒤통수가.
온 세상의 시름을 다 짊어진 듯 힘 없이 축 져진 동그란 어깨 끝마저.


사무치게 보고 싶은 어느 날 밤에는 골목길 모퉁이에 두 발이 꽁꽁 얼도록 서있어야 했다.



저벅저벅 물에 젖은 솜처럼 걸어와,
끼익—하는 마찰음을 만들며 대문 안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몰래 보고 있노라면. 


도망치는데 며칠이 걸렸는데, 순식간에 또 다시 제자리였다.

제 마음이.


그런데 죽을 만큼 애를 써서 유지하는 이 거리보다, 택이 더 멀어져 버린다면.
바보같이 착해서 제대로 된 거절의 말도 못할 택이와 어색한 사이가 되어버린다면.


정말 그때는 죽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택이는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혹시, 아주 만약에라도, 아주 조금은 나와 같은 마음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냥, 그런 허무맹랑한 호기심.
그런 호기심이 저를 죽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결국 영화에는 단 한 순간도 집중하지 못한 채-
오로지 한 사람만이 주인공인 덕선만의 영화가 끝이 났다.
 
“덕선씨, 영화 재밌게 보셨어요?” 


“아, 네네. 덕분에 재미 있었어요.”


“하하. 아닙니다. 덕선씨가 영화 좋아하신다고 해서, 영화를 예매하긴 했는데- 첫 만남에 실례는 아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 절대 아니예요.”


“저는 덕선씨랑 좀 더 얘기 나누고 싶은데, 시간이 너무 늦었죠?”


“아…네. 이제 들어가봐야죠.”



상영관을 빠져 나오며, 별 의미 없는 대화가 오고 갔다.

덕선은 우선 어서 빨리 이 사람과 헤어지고 자경에게 연락을 해야겠다 생각하고 있던 참이었다. 



자신을 부르는 익숙한 목소리들이 들려오기 전까지.


“야, 특공…아니 덕선아!”


“…… 덕선아.“



방금까지 덕선의 영화 주연이었던 그와.
감초 역할 정도를 줄 수 있을 것 같은 오랜 지기, 동룡이었다.



반가운 사람과,
반갑지 않은 순간.



덕선은 한시라도 빨리 이 곳, 이 순간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가능한 빨리.




-




나란히 골목을 걸어오는 순간이 어색하지 않은 건 동룡덕이었다.
이죽이죽 얄미운 말만 골라서 하는 동룡이 번잡스러움이 오늘처럼 고마울 수가 없는 덕선이었다.



“아! 눈도 오는데 이게 뭐야 아! 추워! 아 특공대 진짜, 형님이 차 태워준다고 하셨는데 말이지.

왜 굳이 매일 타는 2번 버스를! 어? 덕선이 너 간만에 본 나한테 대체 왜 그러는 거니?”


“도롱뇽, 이제 그만 그 입 다무시지.”


“와…특공대 너는 타봤다 이거냐? 나도 현대 그랜저 한번 타보고 싶었는데, 최사범 너도 타봤지 그랜저?”


“으응…저번에 무슨 회장님이 식사 초대하시면서 보내주신 적 있어. 차.”


“이봐. 이봐!!! 나만!!!!!!!! 나만 못 탔어!!!!”


“야!!!!!!!! 고만하랬지!!! 이게 맞아야, 턱 끝까지 고통이 차 올라야 입을 다물지!!!”


“악!!! 특공대 너 이렇게 밑도 끝도없이 폭력적인 경향이 있는거 현수 형님이 아셔야 ㄷ….악!!!!아퍼어 아프다고!!!!”


“들어가! 들어가!!!!!!!!!! 얼른 들어가버려 도룡뇽!!!!!!!!”



우악스럽게 소리를 지르고, 푸닥거리면서 애써, 애써 그 순간을, 그 표정을 지우려고 애써본다.



나를 넘어, 그를 보던 여느 때처럼 단정하고 미동 없는 네 표정.
꾸벅 고개를 숙였다가, 다시 나를 향할 때는 입매를 살짝 올리는 수고로움도 마다치 않는.


….그래, 늘 그렇듯 오랜 친구인 나에게 보여주는 그 다정.
또 도룡뇽에게도, 선우에게도, 정팔이에게도. 늘 인색하지 않은 깊은 다정.


한 바탕 전쟁을 치르듯 동룡를 대문 속으로 우겨 집어 넣어놓고 돌아서니 적막할 정도로 고요했다.

빨리 집으로 도망치려는 발걸음을 붙잡는 것은 나직하지만 거절할 수 없게끔 만드는 힘이 실린 목소리.



– 덕선아, 잠깐 여기 앉았다 들어가자. 오랜만인데.


평상에 제법 소복해진 눈을 털어내고 냉큼 목도리를 풀어서 내민다.


“웬열 최희동 이런 매너는 어디서 배웠대?”


“너…치마 입었잖아. 추울까봐.”



이제는.
모든 걸 다 꼭꼭 감추고 내가 아무렇지 않아야 할 순간.



“첫 눈이다 덕선아 그치.”


“그르네. 참 예쁘게도 내리네. 이거 얼면 내일 길 캡 미끄러울텐데 그나저나 우리 최사범 어쩐 일로 영화를 볼 시간이 나셨대, 제일 바쁠 때 아니야?”



억지로 꾸며낸 명랑.
그래도 나보다 더 무딘 너는 모르겠지. 이런 내 마음.


“….그 정도는 아니다 뭐.”


“으이구 참도 아니겠다. 선우가 그러는데 너 올해만 대국 100번 넘게 했다고.

지독해 지독해 희동이 너 진짜 너 바둑하다 어? 픽?하고 쓰러지면 또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어?

국보 최택, 건강 위기설? 한국 바둑계 이대로 무너지나? 이런 거 뜨고 또 어?”



휘어진다.
눈이 와 잔뜩 흐려진 하늘엔 달도 뜨지 않았는데.
네 눈이, 초승달처럼 꼬리부터 살풋하게 풀어진다.



“지금 나 비웃냐 최희동” 


“아니야 비웃긴. 그냥…오랜만에. 너 이렇게 말 많이 하는 거 보니까 좋아서.”


“웬열, 나 말 많은 거는 행국이도 아는데 뭐..뭘 새삼스럽게.”



또 붉어진 귀 끝을 들킬까 조마조마해 머리를 부스스 털어냈다.



….너는 알까?
언젠가부터 내가 머리띠를 하지 않는다는 걸.



“덕선아, 영화 재밌게 봤어? 그 분…이랑은 만나 볼 거야?”



너에게 얘기 할까.
그냥, 대타로 나간 거라고.
나에겐 아무 의미도 없다고.


그런데 문득 또 다시 허무맹랑한 호기심이 고개를 든다.


안 되는데.
하지마 성덕선.
진짜, 너 멍청하게 굴지마.



“….만나…볼까?”


승부수(勝負手).
이제는 돌이킬 수 없다.


바닥에 떨군 시선을 들어올려 바라봤다.
가만히 평상 반대편 멀찍한 벽에 꽂힌 택의 시선은 미동이 없었다.



마치 그의 세계에 있을 때처럼.

그의 고요는 상대방을 포함한 모든 것을 압도한다.



마치 수읽기를 하듯 미동 없던 택이 한참 만에 천천히 고개를 들고 덕선을 바라봤다.


어떤 수를 둘지, 결심했다는 의미였다 그것은.


택의 커다란 손이 덕선의 머리를 쓱 하고 쓰다듬었다.
아주 오랜만이었다.
열 아홉. 겨울, 그 언젠가 즈음을 마지막으로 우리는 더 이상 서로의 머리를 쓰다듬지 않았으니까.


“너....바보냐. 나한테 그런걸 물어보고. 류도사님한테 물어봐야지.”



그런 말을 할 때 조차 숨기지 못하는 너의 다정에.
나는 숨이 막혀 죽을 것 같았다.



….패착(敗着).
완벽한 패착이었다.






-



“잘 자라 최사범!”



또 다시 애써 꾸민 명랑으로 인사하고 대문 안으로 도망 오자마자 참았던 눈물이 터진다. 
펑펑 울 수도 없는 늦은 밤이라는 게 차라리 다행이었다.


… 행국아,
누나 꼴이 우스워도 제발 짖지 말아주라.
나 조금만 울다 들어갈게.


.
.
.
.

첫 번째 메시지입니다.



『덕선아, 나야 자경이.
집에 잘 들어갔어? 오늘 나 때문에 고생 많았지.
정말 미안하고 고마워.




덕선아 나 있지, 나 고백 받았다?
…..근데 상대가 윤이가 아니야.


윤이 제일 친한 친구.
나랑도 많이 친한 친구.



근데 나 거절했어.


그리고 나 다시 윤이한테 고백할거야.



너라고.
나는 오직 너라고.


네가 내게 줄 대답을 고르는 데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려도.
그게 평생이 되더라도.

혹은 대답을 듣지 못하더라도.


그래도 변함없이.

나는 오직 너라고.


너도 그러면. 그런거면.

용기 내 단단한 마음으로.
나에게 걸어올 때까지.
변함없이 이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을거라고.』


.
.
.
.




택아.
나도.

너야. 오직 너야.



네가 돌을 놓는 데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어쩌면 영영 착수하지 않더라도.



꿈결처럼 입을 맞댄 그 날부터.
아니 어쩌면 그보다 훨씬 오래 전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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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91년 첫 눈 온날 진짜 12월 10일 맞음

2. 내 이름 고자경 아님


이거 사실 첫 눈 오는 날 쓴 글인데 이제서야 마무리 해서 올려
나샛 이런 글은 처음 써 본다 엉망진창이라도 이해해주길
사범님 시점도 꼭 쓰고 싶은데 상상만으로도 벌써 맴찢 염전밭이다
맘착한 어느 금소니가 달달한 거 하나 써줬으면 좋겠다 단짠단짠은 진리 아니겠니(다정)


수미니들 메리크리스마스 (택이만큼 깊은 다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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