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공동명의, 인생딜
지난주 주말, 양가 상견례가 있었다.
무거운 분위기속에서도
즐겁게 식사를 하며, 양가 가족이 담소를 나눴다.
장모님이 너구리 같이 둥글둥글 대화를 이끌어서
헌동네 부모님도 좋아하셨다.
한숨 돌리니, 앞으로 해야할일들이 눈에 들어왔다.
신혼집을 알아보고
웨딩홀도 알아보고
웨딩촬영, 폐백, 피로연, 신혼여행, ....
아씨발 존나 많네.
밀린 방학숙제를 하는 느낌이다.
그것도 두명 몫을.
집에서 놀고 있는 여친봊 더러 가전 제품하고, 가구는 대충 싸구려로 골라 놓으라고 했다.
입을 삐쭉 거리는 여친봊, 아주 저걸 그냥 확 ...
헌동은 지금 자기가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정신이 하나도 없다.
결혼식때 부를 사람들도 챙겨야 된다.
골때리는건 여친봊쪽 하객알바를 불러야된다는거.
친척도 그렇고 친구도 몇명 없댄다.
그도 그럴것이, 연애하는 동안 여친봊의 친구봊들을 몇명 못만나봤다.
기껏해여 길가면서 몇번 마주친 정도.
그때마다 여친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남친?...
하고 묻는 친구봊에게
아~ 아~ 응 ~ 그냥~
하는식으로 얼버무리며 그 자리를 재빨리 빠져나왔다.
그런 여친봊의 행동이 좀 낯설었고,
섭섭할뻔도 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헌동 스스로 생각해도 자기는 삼엽충삘인걸.
암튼 그런 협소인맥 여친봊에게,
예전 다니던 회사사람들 부르면 안된냐니까,
펄쩍펄쩍 뛴다.
캥기는게 있나보다.
자기같은 주갤히키도 쥐어짜면 부를사람이 있는데,
도무지 이해가 안가는 대목이다.
암튼, 가까운 친구놈들 부터, 연락이 오래 전에 끊긴 녀석들 한테 까지
청첩장을 돌렸다.
그리고 오늘은 신혼집을 보러가기로 했다.
공교롭게도 회사가 여친봊집이랑 가까워 그 근처에 구하기로 했다.
공교롭다는 표현은, 그래, 그다지 좋지는 않다는 거다.
부모가 자식 집에 온다는게 이상할것도 없지만은
그래도 아직은 장모될 사람이 부담 스럽다.
저기 여친봊이 온다.
역시 약속시간에 늦었다.
맨날 30분 늦던걸 오늘은 20분 늦었으니 칭찬해 달란다.
휴... 그래... 잘했네...
까페
대충 알아봐둔 신혼집 리스트를 다시 체크한다.
음... 오빠오빠... 여긴 울집이랑 넘 가깝지 그치?
음... 오빠오빠... 여긴 좀 오래된거 같지 않아 그치?
음... 오빠오빠... 여긴 좀 이쁠것 같다 그치 그치?
음... 오빠오빠... 여긴 완전 고급 고급 렁옹시렁 옹시렁 옹시 렁
기준 설정 장애인 여친봊은, 가장 중요한 '돈'을 빼먹고 있다.
모르는척 하는건지, 그냥 상관없다고 생각하는건지.
답답하다.
어차피 우리 아버지 돈이라 이건가?
미경아 미경아, 거긴다 우리가 들어가기 너무 비싸.
힝... 그래.... ?
응. 알잖아. 아버지가 주신돈 xxxxx 정도야.
음... 그르쿠나...
아쉬운듯,
쎄련쎼련 아기자기한 빌라를 리스트에서 지운다.
근데, 오빠
응?
이거 공동명의지?
훅 들어온다.
올것이 왔구나 생각했다.
자기 여친봊이라면 던질법한 수류탄 같은 멘트,
'김헌동. 정신차려라. 어차피 이 결혼 계산기를 두드려야해.
부모님이 주신돈, 공동명의는 아니되오!!!'
으...응 글쎼? 일단 부모님 명의로 해둬야 되지 않을까?
앙? 그러면 세금 더 내야되실건데 오빠 부모님?
다시 예상밖의 공격.
여친봊이 말하고 있는 세금관계가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미리 한수 읽고 들어온 여친봊.
준비를 미리하고 온게 틀림없다.
당황스럽다.
'김헌동!! 물러서지마!! 두뇌풀가동!!'
아니 그러면 내명의로 하지뭐, 상관없잖아?
한수 던지고 여친봊 표정변화를 살핀다.
예상했던대로 도끼눈이 되기 시작한다.
또 온갖 일장연설를 쏟아내서 사람 속을 긁을 태세다.
응! 알겠어!
?!
오. 의외다.
헌동이 예상 할 수 있던, 여친봊의 모션이 아니다.
응당 눈물을 그렁 거리며,
같이 살면서 그렇게 까지 해야해? 같은 대사를 쳤어야 내 여친봊인디?
아, 암튼 뭔가 기선을 잡은것 같아, 기분이 좋다.
역대급 인생딜이었다 생각한다.
맛있는 밥 까지 사주고,
여친봊을 바래다 주고 집으로 왔다.
'그래, 그래 이냔아, 불공정 거래? 안되죠..ㅋㅋ'
발걸음이 가볍다.
집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니,
뭔가 엄청 무거운 냄새가 헌동을 엄습한다.
'..뭐지?'
부모님이 나란히 쇼파에 앉아, 심상치 않은 눈길로 보신다.
뭔가 할말이 있으신것 같다.
불길하다.
'그 거'에 관한 것만 아니었으면 좋겠다.
너 집 너 명의로 한다고 했니?
씨팔.. '그 거' 다.
네? 네.. 그걸 어떻게?
니 장모될 사람 전화왔더라.
이런 씨말려죽을 여친봊!
기어이!
너구리 같은 모녀가 작당을 했음이 분명하다.
아이고 사돈어른 ~, 네네~ 안녕하셔써요~ 암 그러믄요~
아, 네 안그래도 '그 거' 때문에 전화 드렸죠. 호호호호
요즘은 다 그렇게 하는건데 말이죠 호호호, 좀 서운하기도 블라블라 웅시렁 옹시렁
아... 아버지 신경쓰지 마세요. 그건 제가...
긴말 하지말고 공동명의 해라. 그런거 생각안하고 행복하게 살려고
결혼하는거 아니냐.
아버지 말씀이 틀린게 아니다.
하지만, 여친봊의 술수에 넘어간것 같다.
왠지모를 배신감을 느낀다.
아무리 그래도, 부모님이 고생해서 모으신 그돈을...
또 가슴에 먹구름이 양떼 처럼 몰려온다.
네... 아부지... 그럴게요...
아버지 뜻을 거스를 수가 없다.
이런 일에 고집을 꺾으실 분이 아니시다.
헌동도 어쩔 수가 없다고 생각한다.
아버지 돈으로 구하는 집이니까.
헛기침 한번 하시고 안방으로 들어가는
아버지 뒷모습.
저 야윈 어깨에 자기가 얹혀놓은 짐같은게 보이는듯 하다.
헌동의 얄팍한 계산이 부모의 사랑앞에 하찮아진것도 같고.
부끄러웠다.
죄송스럽고.
아버지는,
철없는 막내 며느리도 자식으로 받아들이고 싶으셨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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