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얼마나 많은 책을 읽지 못했는가
-움베르트 에코, "미네르바의 성냥갑 1" pp 127-130
토리노의 도서 전시회에 때 맞추어 다양한 계층의 지식인들에게 어떤 책을 예상대로 다양한 대답이 나왔지만 부끄럽다는 이유로 거짓으로 대답한 것 같지는 않았다. 어떤 사람은 프루스트를 읽지 않았고, 어떤 사람은 아리스토텔레스, 또 어떤 사람은 위고, 톨스토이, 또는 버지니아 울프를 읽지 않았고, 어떤 탁월한 성서학자는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 대전"을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읽지는 않았다고 대답하였다. 그건 당연한 일이다. 왜냐하면 그런 책을 첫 페이지에서 끝까지 꼼꼼하게 읽는 사람은 비평판을 만드는 사람뿐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조이스를 읽지 않은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고, 또 어떤 사람은 "성서"를 전혀 읽지 않았다고 자랑스럽게 대답하기도 하였다. 그런 결핍이 유별난 게 아니라 오히려 상당수가 그렇다는 사실을 미처 모르고 말이다. 조르조 보카는 "돈키호테"와 나의 최근 소설을 몇 페이지 읽다가 내던져 버렸다고 말했다. 나는 분수에 넘치는 그런 대등한 평가에 감사의 마음이 넘쳐흐른다. 게다가 책을 너무 많이 읽다가는 돈키호테처럼 머리가 이상해질 수도 있다.
내가 보기는 이 설문조사는 보통 독자들에게 커다란 관심거리일 것이다. 사실 보통 독자들은(후천적 문맹이 아닌 보통 독자의 경우) 일반적 상식으로 반드시 읽었어야하는 어떤 책을 읽지 못하였다는 고민에 언제나 사로잡혀 있다. 따라서 많은 유명한 사람이 엄청난 결핍을 고백한다는 사실은 그들에게 위안이 될 수 있다.
그렇지만 내가 보기에 하나의 의혹, 또는 염려가 남는다. 혹시 보통 독자들이 그런 선언을 속물근성으로 돌리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설문 응답자들이 실제로는 전혀 읽지 않은 척하는 책을 몰래 읽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만약 그렇다면 보통 독자들은 자신의 열등감 콤플렉스를 극복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더 증폭시킬 것이다. 왜냐하면 부끄러움 없이 단눈치오를 전혀 읽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으면서. 그 때문에 야만인으로 간주되지 않는 사람들의 대열에 끼이지 못함을 깨당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로서는 그 모든 응답자들이 정말로 그 책들(그리고 더 많은 책들)을 읽지 않았다는 사실을 증명함으로써 보통 독자들을 위안하고 싶다. 거기에다 만약 내가 질문에 응답했어야 한다면, 내가 애정 어린 관계를 전혀 맺지 못했던 불멸의 작품들을 열거하면서 나 스스로가 깜짝 놀랐을 것이라는 사실을 덧붙이고 싶다.
문학 작품들에 대한 아주 풍요로운 목록인 "봄피아니 작품 사전"을 한 번 보기 바란다. 등장인물과 작가들에 대한 책은 제외하고 말이다. 현재 시판되는 판에서 작품들은 5,450 페이지를 채우고 있다. 한 페이지에 평균 세작품이 들어 있다고 대충 계산해 보면 총 16,350편의 작품들이다. 그 작품들이 이제까지 쓰인 모든 작품을 대표하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실제로 고서의 목록(또는 대규모 도서관의 색인 카드들)을 들춰 보기만 해도, "봄피아니 작품 사전"에 등록재되지 않은 다양한 분야의 온갖 책들이 엄청나게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사전은 5천 페이지가 아니라 5만 페이지가 넘어야 할 것이다. 그런 목록은 소위 전범(典範)을 이루는 작품들, 즉 문하가 현재 기억하고 있으며 교양 있는 사람에게 기본적이라고 간주되는 작품들만 등재하고 있다. 다른 작품들은(합당하든 또는 부당하든) 전문 학자나 박식한 사람, 독서 애호가들만의 탐색 영역으로 남아 있게 된다.
책 한 권을 읽는 데 얼마나 시간이 걸리는가? 하루에 단지 몇 시간만 독서에 할애하는 보통 독자의 관점에서. 평균 분량의 작품 하나에 4일은 걸린다고 가정해 보자. 물론 프루스트나 토마스 아퀴나스의 작품을 읽으려면 몇 달이 걸리지만, 하루 만에 읽을 수 있는 걸작들도 있다. 그러므로 평균 4일이 걸린다고 하자. 그렇다면 "봄피아니 작품 사전"에 실린 모든 작품에다 4일을 곱하면 6만 5천 4백 일이 된다. 365일로 나누면 거의 180년이 된다. 이런 계산은 틀림없다. 그 누구도 중요한 작품을 모두 읽을 수는 없다.
만약 선택해야한다면 최소한 세르반테스는 읽었어야 한다고 말할 필요는 없다. 무엇 때문인가? 만약에 어느 독자에게 "천일야화"(전체) 또눈 "칼레발라"가 훨씬 더 중요하고 급박하였다면? 더구나 여기에서 고려되지 않은 것은, 훌룡한 독자들은 어떤 작품을 사랑할 경우 오랜 시간에 걸쳐 여러 번 다시 읽으며, 가령 프루스트를 네 번 읽은 사람은 다른 책들을, 아마도 자신에게는 덜 중요한 다른 책들을 읽을 많은 시간을 빼앗긴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독자들이여, 안심하시라. 열 권의 책을 읽든 같은 책을 읽든, 똑같이 교양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 단지 전혀 책을 읽지 않는 사람들이나 걱정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이런 걱정을 전혀 하지 않는 유일한 사람들이다.(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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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줄 요약.
1. 고전은 아주 많다.
2. 그러므로 고전을 조금 읽었다고 열등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
3. 열등감을 가져야할 사람은 책을 전혀 안 읽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들은 책에 관심이 없으므로 열등감을 갖는 일은 없다.(에코식 농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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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 체 할려고 책을 읽는 사람이 많다고 닥달하던 에코가
어쩐 일인지 독자들을 위한 위안을 주는 척하네요.ㅎㅎ
위에 언급된 책 중
위고, 톨스토이, 세르반테스, 천일야화 정도 읽었고
다른 건 읽은 게 없는데......
지금까지 소햏은 주로 서구의 생각과 문학만을 접해왔고
지금 하고 있는 전공도 역시 서구의 것이지만
에코의 썰에 빠지다보면 서구 문화에 대해서도 졸라 무식하다는 걸 실감하는데.
우리 것, 동양의 것들이 오히려 더 이국적이게 느껴지고,
우리 것에 대해선 오히려 더 무식하니 원......
아리랑보다는 오 수제너가
서태지보다는 radiohead가
장영실보다는 J. Watt가 더 친근하게 느껴진답니다.
전공 관련하여 좋아하거나 존경하는 사람
갈릴레오, 아르키메데스, 다빈치, 파인맛, 아인슈타인, 뉴턴,
쿤, 도킨스, 페르마, 에이디쉬, 가드너, 세이건 등등.
좋아하거나 존경하는 문인들
연암, 장정일, 이청준, 박경리, 스타인벡, 김훈,
솔제니친, 황석영, 홍명희, 박경리, 고시니,
포우, 에코, 푸코, 법정, 육사, 헉슬리, 오웰, 웰즈, 필립 K 딕,
김현, 김지하(오적만 좋아합니다.^^;;), 최인훈, 박완서, 생텍쥐페리(어린왕자), 등등
쓰다보니 두서가 없네요.
좋아하는 사람 중에 자신의 이름이 빠졌다고 실망하질 마시길.^^*
아무 뜻도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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