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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

시험 2006.04.23 17:3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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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무파사

            

'94-09-21             ()
 이른 시간에 서둘러 길을 나섰다.  오늘은             어제보다 더 천천히 걸어야 된단다.  고도가 그 만큼 높아 졌으므로.

어제와는 식물군이 달라졌다.  울창하던 정글이              키가 작은 나무 군으로 바뀌었다.

14km 길을 5시간만에 도착했다.  구름위에             둥실 떠 있는 듯한 Horombo 산장 주위엔 나무라기보단 잡풀이라는 게             더 어울릴 듯한 그런 식물들 뿐이다.  역시 구름 속에 있어 앞이             멀리까지 보이지 않는다.  노랑, 빨강, 흰색의 고산 식물들이             꽃을 피우고 있다.

            


            


숨이 좀 차는 듯하여 식사를 끝낸 후 마음을 가라앉히고 맥박 수를             한 번 재어 보았다.  1분에 94회.  평소와 그리 차이나는 정도는             아니다.

산장 벽에 '한국일보 이OO 92년 X월 X일' 이라는             유치한 낙서가 있다.  쪽 팔린다.

높이 3,720m의 지점이다.  낮잠을 좀 자려고             자리에 누우니 드디어 머리가 지끈지끈 한 게 걱정하던 두통이 시작된다.              이른 바 高山病이라는 것인가 보다.  옆에 있는 미국인 '셔먼' 녀석은             구토 증세가 있다면서 나가서는 한 바탕 게워내고 들어온다.

오늘은 물이 더욱 차가와 양치질을 하는데 입이             얼얼해진다.  구름이 대충 걷히자 발아래 구름 바다가 눈에 들어             온다.  한라산을 두 개 엎어 놓은 높이이다.  백두산 정상이             발 아래 까맣게 점으로 보일 뭐 그런 높이다.  제법 공기 가             쌀쌀하다.  계속되는 두통이  내일 산행을 다소 걱정스럽게 한다.  하지만             노인네들도 하는 데 뭐.

같은 신장에 묵게 된 일본인 아가씨 두 명에게             농을 걸었더니 나증에 오징어 포를 조금 떼서 나누어 준다.  여느             일본애들처럼 영어를 지지리도 못하는 그런 애들이다.  그 중 한             애가 언젠가 미팅에서 만났던 XX를 닮았다.

            



'94-09-22 ()
 4,703m 지점에 위치한 킬리만자로의                 마지막 산장, Kibo 까지             5시간의 행군이다.  걸음은 어제보다도 더 느려야 했다.  아주             천천히 걷는데도 불구하고 숨이 차고 허리가 뻐근해져 온다.  이유가             뭐냐고 가이드에게 물었더니 알고 그러는지 모르면서 대충 둘러대는지             몰라도 산소 부족 때문이라고 일러 준다.  느린 걸음에도 계속             심호흡을 해야 할 정도로 힘이 들고 말이라도 몇 마디 할라치면 숨이             가빠진다.  신기하다.

식물군은 어제와는 또 양상이 다른 고산 사막             지대로 거의 풀 한 포기 보이지 않는다.  바람이 몹시 차가와 모자를             뒤집어 써야만 했다.  5시간의 구보가 이렇게 힘들다니.

고도가 조금씩 올라가면서 머리가 지끈지끈 쑤시고             허리가 뻣뻣해지는 게 꽤나 피곤하다.  걷는다는 게 이렇게 힘든             것인 줄 미처 몰랐다.

드뎌 멀리 산장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15분             정도면 닿을 줄 알았는데 1시간이 걸렸다.  산장에 들어서니             도저히 움직일 기력이 없다.  두통이 너무 심하다.  머리통이             '빠게지는' 듯 하다.  셔먼이 밖으로 나가더니 또 한 바탕 토악질을 해댄다.

오늘밤 12시를 기해 정상 등정에 나선다고 가이드가             일러 준다.  그래야 정상 부근에 도착해서 일출을 볼 수가 있다는                 거다.  지금             이 몸 콘디션으로 간다는 건 도저히 엄두가 나질 않는다.  낮잠을             좀 자두어야만 했다.  산장안의 모든 사람들이 점심 식사 후 자리에             누웠다.  드뎌 침대 여기 저기서 끙끙대는 신음 소리가 흘러 나온다.              나도 할 수 없이 끙끙 앓는 소리를 해댄다.

            


            


한 두 시간 쯤 자다가 도무지             견딜 수가 없어 셔먼으로부터 타이레놀 2 알을 얻어 먹었다.  한             30분 지나자 정신이 좀 돌아 오는 듯하다.  내가 무슨 허영호도             아니고, 4,700m란 고도를 얕 잡아 봤나 보다.  큰 코 다칠 뻔했다.              심한 몸살 감기를 앓을 때처럼 전신이 쑤셔댄다.  열까지             난다.  혹시 말라리아가 아닐까 하는  찜찜한 생각도 든다.

다시 저녁 식사를 간단히 마친 후 수통에 미리             물을 채우는 등 만반의 준비를 갖춘 후 잠자리에 들었다.

피곤이 채 가시기도 전인 11시 30분 쯤 포터             한 명이 들어와 방에 불을 켜며 떠날 채비를 하라고 일러준다.

포터들이 따뜻한 차를 끓여 내왔다.  산소가             부족하기 때문에 물을 많이 마셔야 한다기에 수통에 물을 가득 채우고             등산 회사에서 대여한 두터운 파카와 바지를 줏어 입고, 눈  부위만 구멍이             뻥 뚫린 게릴라 털실 모자를 뒤집어 쓰는 둥 나름대로 무장을 한다.  거기에다 스키용             장갑 까지 끼고 나니 맘은 언제 머리가 아팠냐는 듯이 어서 떠나고 싶어진다.              하지만 여전히 두통 탓에 다시 타이레놀 두 알을 집어 삼켰다.

12시 반 쯤 정상을 향해 나섰다.  칠흙             같이 어두워야 할 밤이었지만 손전등이 필요 없을 정도로 밝았다.  그저께가             추석이었으니까!  달은 여전히 크고 밝았다.

한 걸음 한 걸음을 천천히 떼어 놓으며 숨을             몰아 쉬었다.  이렇게까지 천천히 걷는데도 숨이 가빠진다는 걸             신기해하며,..

지그재그 식으로 계속 올라가는 길은 너무 힘들고             짜증이 난다.  도중에 뒤가 마려워진다.  할 수 없이 멀리                 떨어진 바위뒤로 가서             영하의 공기 속에 엉덩이를 깠다.  냄새가 역하게 난다(sorry,             참아 주세요~).

            


            


다시 올라가다 물을 마시기위해             물통 뚜껑을 열어 한 모금 마시니 입안에서 얼음이 씹힌다.  스키 장갑을             꼈건만 손가락 끝에 감각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얼어 있다.  도중에                 이렇게             힘든 짓을 내가 왜 하려 했을까 하는 후회를 해가며 걍 천천히, 아주                 천천히 발을 옮길 뿐이다.

물을 많이 마셔야 한다는 말을 떠올리며 다시             수통을 입에 가져 갔으나 이번엔 물이 아예 꽁꽁 얼어 버렸다.  이제부턴 물도               마실 수가 없게 되어 버렸다.  얼굴을 뒤덮고 있는 이 털실 모자가             아니었다면 머리속까지 얼어붙어 버렸을 게다.

경사가 굉장히 가파른지라 계속 쉬어가며 오름에도             불구하고 힘이 딸린다.  당장 주저앉고 싶다는 생각을 몇 번이나             했을까?  뒤를 돌아다보니 뒷편의 마웬지 이 낮아 보인다.  이미             5,515m를 넘어 섰다는 얘기다.

시간이 어떻게 지났는지 모르겠다.  어느덧             하늘이 저편에서 희뿌옇게 밝아오고 있었다.

해가 뜨기 약 5분 전 5,600m의 Gilman's point에             겨우 도달할 수 있었다.  그러나 탈진 상태다.  더 이상 움직일             기력이 남아 있질 않았다.  물을 마시고 싶었지만 꽁꽁 얼어붙어             있어 마실 수도 없다.  영하 12℃의 기온이었다.  하지만             아직 갈길이 남아 있었다.  약 200m를 더 올라야 진짜 킬리만자로             정상에 오르게 되는 것.  없는 힘을 억지로 짜내 다시 자리를             털고 일어 선다.

            



정상에서...

            


동이 터오고 있었다.  '두둥~'                  세상이             발 아래 있었다.  작년 추석 때도 균후와 함께 설악산을 올랐었다.              그 때 보던 일출과는 또 다른 장엄한 아름다움이 있다.  옆을             보니 XX를 닮은 그 일본인 아가씨가 올라와 있었다.  또 한 명은 도중에             너무 힘들어 포기했다고 말하는 그 아가씨의 코밑에 투명한 콧물 방울이             귀엽게 망울져 있다.

함께 정상까지 가자고 했더니, '와다시와 좃도             무리데스' 라며 숨을 헉헉 몰아 쉰다.  힘들어 못가겠다는 얘기다.

정상까지는 다시 두 어 시간을 걸어야 하는 거리였다.              최대한 느리게 걷는데도 불구하고 숨이 턱밑에까지 차 오른다.              걸으며 때려 쥑여도 다시 이 짓은 하지않겠다며 부질없는 다짐을             해댔다.

하지만 정상까지 간신히 도달을 하자, 아아~!  거기서             바라보는 경치는 실로 압권이었다.  수 십 m 높이와 두께의 빙하가             거기에 있었다.  만년설도 만년설이지만 엄청난 크기의 빙하는             킬리만자로의 하이라이트였다.  빙하는 햇빛에 반사되어 시퍼런             빛을 내뿜고 있었다.  그 뒤로 낮은 산들이 구름과 함께 뒤엉켜             몸부림을 치고 있는 듯 했다.  아아.... 감탄사가 절로 절로 터져             나왔다!(이 빙하도 지구 온난화의 영향으로 매년 조금씩 녹아가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공기가 너무 차가운 탓인지 카메라가             말을 듣질 않았다.  배터리가 얼었나보다.  이 곳까지 이 미친 짓을 해가며 올라왔는데             사진 한 장 제대로 찍을 수 없다니 환장할 노릇이다.

정상에 있는 나무상자에서 노트를 꺼내 이름을             적어 넣었다.  이제 하산하면 나도 정상을 밟았다는 Certificate를 받게             되는 것이다.

하산은 그런대로 쉬울 걸로 생각했는데 그게             전혀 아니다.  아무리 아무리 내려가도 끝이 없다.  머리는             지끈 지끈 거리고 숨은 차고 태양빛은 강렬하고 몸은 피곤하고, 이 고생을             돈 주고 하다니 후회가 앞선다.

정상에서 본 view로 말하자면 지금껏 여행 다니며             가 본 곳 중 최고 중 하나였지만 그 순간만큼은 결코 두 번 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힘든 산행이었다.  난 허영호가 아니잖어?

어떻게 Kibo 산장까지 내려 왔는지 모르겠다.              거의 탈진 상태였다.  포터가 기다리고 있다가 정상을 밟았다고             하니 축하한다며 차 한 잔을 끓여 준다.  차를 마시며 조용히 마음을             가라앉힌 후 재미 삼아 맥박을 함 재어 보았다.  1분에 118회.

그러나 차를 마신 후 곧 Horombo 산장까지 다시             내려가야 했다.  오늘 숙박은 거기서 하기로 되어 있었으니까.  3시간을             다시 내려가며 또 한 번 씰데엄는 다짐을 했다.  이 짓은 다시 하지                 않겠노라고(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언젠가 다시 한 번 등정을                 해 보리라 맘 묵고 있다).

산장에 도착하고 나니 비로소 이제 끝났구나,             내가 이 미친 짓을 해냈구나하는 생각에 긴 안도와 만족의 한숨이 나온다.              정상에서 태극기를 흔들었다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

저녁을 들며 옆자리의 한 탄자니아인 등반자로부터             들은 얘기가 있다.  오늘 아침 우리와 함께 정상 등정에 성공한 사람             중 71세된 일본인 할아버지가 있었다는 것.  그는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불굴의 정신력으로 걸음을 한 번 씩 떼어 놓을 때마다 숨을 헉헉 몰아쉬며             끝내 정상을 밟고야 말았다는 대단한 인간 승리의 이야기였다.

20대인 나도 그렇게 힘들어 했는데 70대의 나이에             그걸 해내다니 쉽게 믿겨지지가 않았다.  그 할아버지의 인간승리를 생각하며 잠자리에             든다.

Oh, thank God!

            


            


'94-09-24             ()
지난밤은 영하의 날씨였음에도 불구하고 아주 곤한 잠을             잘 수 있었다.  시장이 반찬이듯 피곤이 달게 자게하는 약이었나             보다.  하지만 오늘 갈길도 꽤 먼 길이다.

한참을 걷다보니 발                 아래 있던 구름이 어느새 머리위로 올라와 있다.              하늘도 비취색이 사르르 돌던 것과는 달리 그저 평범한 푸른색으로             바뀌어 있다.

그러다 사람 키만한 잡목지대로 들어섰다.  별로             특이할 것 없는 지루한 풍경이다.  흰색의 고산 식물들이 드문드문             피어있을 뿐.  동물들도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조용필은 수 년             전에, '먹이를 찾아 헤메는 킬리만자로의 하이에나가 어쩌구 저쩌구..'             하는 노래를 했었지만.

하이에나 따윈 거의 씨가 말라가고 있는 모양이다.  국립공원             입구 사무실 벽에 하이에나 등 각 종 동물 사진을 붙여 놓곤, '위의             동물 을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아래 종이에 언제 어디 쯤에서 봤는지를             기입해서 제출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라고 쓴 메모를 보았었다.              그 만큼 동물들 씨가 말라 간다는 얘길테지.

이따금씩 체구가 작은 검은 독수리와 실험용 쥐만한 들쥐들,             그리고 도마뱀들이 눈에 띌 뿐.  지루한 풍경을 배경으로 걷고 또 걷는다.

문득 눈앞에 도마뱀같이 생긴 동물 하나가 급히 땅을 기어간다.              문득 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몸을 굽혔다.  도마뱀 치고는             속도가 너무 느리다.  일단 잡고 보자는 생각에 손가락으로 놈을             집어 들어 올렸다.

다소 생소하게 생긴 동물이다.  그런데             앗!.....  그 건 TV에서나 보던 카멜레온이었다.  분명 그건 카멜레온이었다.              우연히 킬리만자로 야생 카멜레온을 발견한 것이다.  놈을             정성스레 손에 들고 기념 사진을 한 방 찍은 후 함께 데리고 가기로 결정했다.              가지고 놀면 재미있을 것 같아서(나 나쁜 넘이었다).

            


            


불편해하는 것 같았지만 좀 참으라는 수밖에             별 도리 없다.

고도가 점차 내려가자 길이 온통 진창이다.  비가             내렸었나 보다.  너무나 미끄러워 제대로 걸을 수가 없다.  갈길은             먼데 길은 개판이고 몸은 피곤하니 왕짜증이 절로 난다.

그래도 참을 수 있었던 건 도처에 깔려 있는, 희고 검은색이             섞인 특이한 콜루부스 원숭이 때문이었다.  색깔이 특이해 처음에니             뭔가 다른 짐승인 줄 알았다.  카메라를 꺼내 들었지만 말을 듣지않는             건 여전하다.  카메라를 진창길에다 내동댕이 치고 싶다.  줄곧             C발C발하며 공원 입구까지 내려 왔다.

관리소 직원이 5,895m 정상을 밟았음을 증명하는 Certificate를             발급해준다.  내 이름이 박혀 있어서인지 제법 근사해 보인다.  드디어 정상을 밟고 지겹고             지겨운 등정을 이제 끝낸 것이다.

하지만 곧 포터들과 가이드가 팁을 달라며 징징거린다.              포터 당 10불, 가이드 당 20불 씩을 주기로 했다.  하지만             내 수중엔 다 합쳐 20불 가량만 있을 뿐.  셔먼이 걱정 말라며             모자라는 부분을 선뜻 융자해 준다.

먼지가 풀풀 날리는 길을 똥차로 달려 다시 Moshi의 숙소로             돌아 왔다.  킬리만자로는 여전히 저만치서 흰 대가리를 드러내             놓은 채 그냥 그렇게 서 있다.

오르고 나서 바라보는 산은 새롭게 느껴진다.  오늘밤은             진짜 푹 자 봐야지.

저녁을 먹기 위해 전기도 안들어오는 캄캄한 밤거리를             걸어서 전에 봐 둔 싸구려 식당 으로 갔다.

배가 터지도록 처 먹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이슬람             모스크 앞에 오갈데 없는 거지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있었다.  낮에             본 그 거지도 있다.  어느 할머니는 거적대기를 깔아 오늘밤 지낼             잠자리를 만들고 있다.  나머지는 모두 동상처럼 모스크 벽에 기대앉아             동물처럼 눈만을 반짝이며 지나가는 나를 빤히 응시하고 있다.

이따금씩 털털거리는 자동차들이 지나가며 이들에게 먼지             세례를 퍼붓는다.  이들은 미동도 않는다, 시체들처럼.

낮에 거지들을 대하는 것과는 또 다른 야릇한 감정이 들게             한다.  뭐랄까, 아무 이유도 없이 걍 내 머리채를 쥐어 뜯고             싶은 뭐 그런 느낌이랄까.

저들은 매일밤을 저기서 그렇게 보내는 것이다.  지나가며             그들의 눈을 바로 쳐다볼 용기가 나질 않았다.  내가 저들에게             무슨 죄라도 지은 것처럼.

저런이들을 볼 때마다 늘 느끼게 되는 것이지만 이 세상은             너무도 불공평하며 복잡 다난하게 돌아가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             느낀다고한들 내가 저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기껏해야             동전 몇 닢 쥐어주는 알량한 선심밖에 대체 무얼?

저들의 삶은 너무 억울하다.

            


            



1994-09-25             ()
아침에 자다 얼굴을 더듬어 보니 아무래도 느낌이 좀 이상하다.              얼굴 표면에 딱딱한 막이 생긴 것 같은 느낌이다.  따갑기까지하다.              거울을 보니 시커먼게 탄 얼굴이 쩍쩍 갈라져 있다.  이미 껍질이             떨어져 나간 부분도 있다.  그새 거울을 볼 기회가 없었던지라             감각이 무딘 내가 여지껏 얼굴 상태가 이 지경이 되었다는 걸 모르고             있었던 게다.

산에서 Cathy가 선스크린 로션을 바르라고 줄 때 내가             백인도 아닌데 그게 무슨 필요 있냐고 사양한 게 큰 실수였다.  산             정상은 햇빛이 너무나 강렬했고 눈빛마저 있다는 걸 간과했던 탓이다.

일단 따가운 피부를 물로 조심스럽게 씻은 후 너덜너덜한             부분은 대충 손으로 뜯어낸 후 로션을 발라뒀다.  거울을 보니             몰골이 우습지도 않다.  이 상태로 바깥에 나가기가 영 쪽 팔린다.              히말라야를 오르던 산악인들의 시켜멓게 탄 피부가 이제 이해가             갔다.  그들의 고충도 대충은 짐작을 할 것같다

입술도 부르터서 갈라져 피가 찍찍 나오고 있다.  산을             너무 우습게 보았다.  그리고 오른손 가운데와 네 번 째 손가락             끝에 감각이 없어졌다.  끝을 망치에 찧은 것처럼 얼얼한 게 감각이             없는 것이다.  동상에 걸린 것 같다.  산의 추위를 너무 가볍게             생각했다.  카메라를 다루기 위해 장갑을 벗었을 때 손가락이 얼어             붙는 것 같았는데 그 탓인 것 같다.

6,000m도 채 안되는 산을 오르고도 이 지경인데 8,000m             가 훨씬 넘는 히말라야를 오르는 사람들의 고충은 얼마나 대단할까?              아무튼 대단한 사람들임엔 분명하다.

창가에 올려 두었던 카멜레온이 똥을 싸고 있었다.  꼭             새똥 같다. 당분간 같이 지낼 거니까 녀석에게 이름을 지어 주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이름이             좋을까 이것 저것 생각해 보았지만 마땅한 게 떠오르질 않는다.  내             주위에 카멜레온처럼 변색하는 인간이 누가 있을까 생각해 보았지만             그 또한 마땅치 않다.

결국 '형호' 라고 이름을 붙여줬다.  별 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고 그냥 그 순간에 형호가 생각났기 때문일 뿐이다.  하지만             이 녀석은 얼마나 순한지 까불성이 심한 형호하고는 별로 닮지 않았다.              그저 이름만 '형호'일 뿐.

오늘 형호는 아무 것도 먹질 않았다.  아니 멕인             게 없었다.  괜히 애꿎은 짐승 하나 못살게 구는가 보다.  조만간                 자연으로 돌려 보내야지.

형호의 출현을 알아 차렸는지 이 놈의 방구석엔 오늘따라 파리 한 마리 안들어 온다.

이제 킬리만자로가 싱그럽게 바라다 보이는 이 마을 Moshi를             떠나기로 했다.  인근 마을 Arusha로 가서 하루를 더 묵은 후 내일             Kenya로 다시 입국하기 위해서다.

Moshi도 그랬지만 Arusha는 참 지독히도 먼지가 많이 날리는             정 떨어지는 마을이다.  차가 한 대라도 지나갈라치면 먼지가 사야를             가려버릴 정도로 뿌옇다.  숨쉬기도 짜증나고 머리칼도 금새 뻑뻑해진다.              머리가 이제 꽤 자랐기에 그 전처럼 고개 숙이고 손으로 쓱썩 쓱썩 문질러             버리면 되던 그 때와는 상황이 다르다.

먹이를 찾아 할 수 없이 길거리로 나섰지만 별로 나와             돌아 다니고 싶지 않은 마을이다.  모래바람이 이토록 지겹게 부는             마을에 이 인간들은 어찌 견디며 사는 건지....

버스표를 구입했다.  내일은 케냐로 재입국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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