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발...거지같은 새끼들...사람이, 존나 우습게 보였지? 응? 너희 같은 놈들 몇 명이 몰려오더라도...나는 못 이긴다."

난장판이 되어버린 폐건물. 피가 흩뿌려져 있고, 살덩어리가 굴러다니며, 아직도 비명을 지르는 채 바닥에 쓰러져 있는 남자들도 여럿 있다.

온 몸에 피칠갑을 한 채, 양 손에 쿠크리를 쥐고 있는 소년. 그 특유의 푸른 머리카락도 끈적끈적한 피에 엉켜붙어 그 색을 잃고 있었다.

"확실히...위상력만 믿고 까부는 애송이는 아니었던 모양이야."

그 모습을 전부 보고도, 노인은 태연했다.

나타는 발걸음을 앞으로 옮긴다. 그때마다 둔기에 얻어맞은 통증과 칼침에 찔린 고통이 함께 밀려오지만 이를 부득 갈며 참아내고 노인에게 향한다.

"이 빌어처먹을 영감탱이...네놈만큼은 곱게 안 죽인다. 일단 질질 끌고 가서, 알고 있는 걸 전부 불게 해주지."
"자네. 영화나 만화 혹은 소설 같은 것, 많이 보았나?"
"쓸데없는 소리 지껄이지 말고──엉?"

갑작스럽게 느껴지는 기척에 나타는 발걸음을 멈추었다. 발걸음 소리, 기이한 목소리, 그리고 익숙한 기척. 그건 사람의 반응이 아니었다.

"보통 그런 매체에서 보면, 말 많은 악당들은 패배하고는 하지. 자신만만하게 준비해 두었던 패도 전부 까발려져, 뭉개지고, 패배하는 거야. ──하지만, 현명한 사람이라면 현실과 허구 정도는 구분할 줄 알아야지."

노인이 손가락을 딱 튕기자, 기다렸다는 듯이 차원종들이 건물의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한다. 인류의 적인 차원종. 그런 차원종들이, 어째서인지 노인을 지키듯 그 앞에 나선다.

"......너, 대체 무슨 수작을 부린 거냐."
"짐승을 기르는 방법은 다 똑같지. 감금하고, 굶겨서, 두들겨 팬 뒤, 밥을 주고, 상처를 치료해주며, 애정으로 보살핀다고 할까. 그러면 짐승들은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아는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기대온다네. 방금 전까지 자기를 괴롭히던 사람이 바로 눈 앞에 있는데 말이야."

입꼬리를 말아올리며 썩은 미소를 지어보이는 노인. 찢어진 입가가 귀밑까지 닿는 그 얼굴은 실로 기괴하기 짝이 없었다.

"......"

"그리고 그건 차원종 또한 마찬가지. 그저 본능대로 움직일 뿐인 짐승을 사역하는 일도 크게 어려운 것이 아니라네. 약간의 협력자만 있으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지. 물론 시간이 조금 걸리고, 또 편식이 심해서 특정한 음식이 아니면 먹지를 않지만. ──이 구로역에는 그런 차원종들에게 먹일 식량들이 충분하지 않은가?"

노인의 말을 잠시 생각해 보다가 결론에 도달한 나타의 표정이 경직된다.

"너, 이 새끼...설마...!"

"아아, 그렇지. ──난민들을 먹이면 되는 거야."

나타는 충격을 받았다. 여태까지 이 바닥을 굴러오면서 사람의 탈을 쓰고 짐승만도 못 한 짓거리를 해 온 인간들은 여럿 보았고, 그놈들 전부 썰어버리며 살아왔지만 이 정도의 인간을 보는 건 처음이었다.

그 눈. 자신과 같은 사람을 보는 게 아닌 눈. 그 눈빛이, 너무나도 섬뜩하고 불쾌하다.

"난민들 따위, 어차피 계속 늘어난다네. 그러니, 특별한 인구조절이 필요한 게야. 내가 뭐 틈만 나면 난민들을 차원종에게 처먹였을 것 같은가? 너무 눈에 띄게 행동하면 클로저들이나 특경대에게 들켜서 일이 곤란해져. 윗선에 연락을 한다면, 적당히 정보 통제를 할 수 있겠지만...역시 클로저들까지 적대하는 건 힘들거든."

"너...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짓을...!"

사람을 납치해서 차원종의 잔해를 이식해 괴인으로 개조시키고, 클로저를 납치해서 위상력을 빼앗고, 기어이 차원종까지 지배하려 드는 인간들. 배후에 유니온이 있는 건 확실하지만, 그 유니온 안에서도 특별한 신분이나 입장을 가진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무슨 생각으로 이런 짓을 하는 거냐고? 뻔하지 않은가. ──세계의 질서와 평화를 위해서지."
"......뭐?"

어처구니 없는 답변에 나타는 한순간이지만 말을 잃었다. 그러나, 노인은 어디까지나 진지하게 말을 하고 있었다.

"위상능력자이니, 차원종이니, 그런 상식 외의 존재가 나오면서 세상이 얼마나 혼란스러워졌는지 아는가? 공권력과 법으로 통제할 수 없는 초인과 괴물들이 판을 치는 세계라니. 정말로 끔찍하기 짝이 없어. 그런 존재들을 허용하면, 이 시대와 세계는 힘의 논리에 따라 움직이게 된다네. 그게 어떤 의미인지 아는가? 질서와 평화의 붕괴를 의미하는 게야. 그 후의 세계야 뻔하지. 무질서와 혼돈. 약육강식의 세계가 찾아올 걸세."

진심으로 안타깝다는 듯이, 혀를 차며 노인은 말한다.

"제대로 배워먹지 못 한 놈들이나 약육강식이나 적자생존을 외치는 것이지, 우리들은 사람일세. 짐승이나 축생들과 동일선상에서 보면 곤란해. 우리들에게는 본능을 억누를 이성이 있으며, 제대로 된 사회의 구성원이 될 수 있도록 충분히 교육을 받을 수 있고, 자신의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지. 모두가 행복한 세상 같은 건 역시 무리겠지만, 적어도 최대다수의 행복을 유지하는 것 정도는 가능해. 그게 가능하기에, 국가라는 것이 존재할 수 있는 거라네. 대다수의 국민들의 '그래도 아직 살 만한 세상이다.'라는 인식이 없다면 금세 내란이 벌어져 이 나라는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졌을 테니까."
"무슨...개소리를 지껄이는 거야...!"

다시 제정신을 차린 나타는, 분노를 토해낸다.

"이딴 짓거리나 하면서, 뭐가 질서와 평화냐?! 그걸 위해서, 나 같은 녀석들은...죽어도 상관없다는 거냐?! 네까짓 놈들이 뭔데, 남의 인생을...제멋대로 판단하고 결론을 지어버리는 건데...!"

얼굴도 모르고, 어디 사는지도 모르는 누군가에 의해 판단되고 결론이 지어지는 인생.

이보다 더 비참하고 납득할 수 없는 일 같은 건 없다. 적어도 나타는, 그런 걸 인정할 수 없었다.

"내가, 너 같은 녀석들 때문에...어떤 일을 해왔는지, 무슨 짓까지 저질러야 했는지...알기나 해?! 나는, 나는──!!"
"──대의(大意)에는 희생이 뒤따르는 법."

나타의 절규를, 노인은 한 문장으로 딱 잘라서 끊어버린다.

"너희들의 희생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행복을 손에 넣을 수 있다. 상식을 넘어서는 힘과 그런 힘을 지닌 존재들은 통제되어야 해. 그게 세상을 위한 일이고, 인류를 위한 일이고, 국가를 위한 일이며, 이 사회를 위한 일이다."

자기만의 생각에 빠져, 다름을 인정하지 못 하는 노인.

융통성 없고, 신념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아집에 사로잡힌 그 추악한 모습이야말로, 나타가 이 세상에서 가장 혐오하는 부류의 인간.

"이야기가 너무 길어졌군. 이제 그만 죽어주게나."

"......빌어먹을!!"

나타는 바로 등을 돌려 도망쳤다. 유리창을 맨몸으로 깨부수고 뛰쳐나가, 피 흘리고, 절뚝거리면서도 필사적으로 도망친다.

'여기서, 죽을까 보냐...! 나는, 절대로...! 죽지 않아! 여기서...비참하게, 죽을 수는 없어...!'

멀어져가는 나타의 뒷모습을 보며, 노인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추한 발버둥질을 치는군."

이윽고 차원종들이 나타를 쫓아 빠른 속도로 이동하고, 구로의 한 구석에서, 목숨을 건 추격전이 벌어진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

오랜만에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