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가 움직이는 그 어떤 것, 이를테면 시곗바늘, 아니 시곗바늘의 그림자, 아니 시간 자체보다도 더 조용히 움직이며 잠시 쉬고 있을 때만 늘 사람들이 그의 곁을 지나가다니 말이다.

부러 그 남자 쪽으로 시선을 던지지 않으려 한 것은 참으로 잘못한 짓이다. 그 남자가 있는 곳에 가까워지면 그를 전혀 본 적이 없는 것처럼 다른 사람들의 걸음걸이를 흉내 내어 그곳을 지나치곤 했다는 말을 쓰려니 좀 염치가 없다. 그 순간마다 나는 그의 안에서 "라 프레스." 라고 외치는 소리를 들었다. 곧이어 다시 한 번 들려왔고 아주 짧은 사이를 두고 세 번째로 들려왔다. 내 옆에 가던 사람들은 주위를 살피며 어디서 나는 소리인지 두리번거렸다. 나만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서둘러서 갔다. 마치 아무 소리도 못 들은 것처럼. 마음속으로 생각할 것이 많은 것처럼.

사실이 그랬다. 그 남자의 모습을 떠올리느라 정신이 없었다. 나는 그 남자를 마음속으로 그려보기 시작했다. 너무 용을 써서 땀까지 났다. 어떤 증거도 어떤 유품도 남은 게 하나도 없는 상태에서 죽은 사람을 그려야 할 때처럼, 오로지 마음속으로만 구성해 보아야 하는 그런 경우처럼 그렇게 그 남자를 그려보아야 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어느 고물상에나 나뒹굴고 있는 줄무늬 상아로 만든, 십자가에서 끌어내린 많은 예수상들을 떠올려 본 것이 조금은 도움이 됐던 것 같다. 어떤 피에타상의 모습이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이 모든 것들은 물론 그의 긴 얼굴이 기울어져 있는 각도와 움푹 들어간 뺨에 나 있는 꺼칠한 수염과 약간 위로 젖혀져 있는, 앞을 못 보는 수줍은 표정에 서린 고통스러운 단호함을 마음속에 떠올려보기 위해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