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2에서의 셜록의 행동과 403에서 밝혀진 유러스의 과거 행동을 비교해봤더니

정말 남매는 남매구나 생각했다. 행동 양식이 똑같아. 영혼의 쌍둥이인줄 알았지.

난 지금까지 셜록과 유러스의 품성은 태생적으로 다르다고 생각했었는데 복습하다보니 생각이 바뀌었어.

유러스가 레드비어드 죽인걸 보고 '쟤는 어릴 때부터 완전히 악의의 덩어리로 태어났나보구나..'라고 생각했지만

이제보니 유러스가 레드비어드를 죽인 건 확신범죄라기보단 미필적 고의였네.

그렇다고 끝까지 빅터가 있는 장소에 대해 입을 열지 않은 유러스의 죄가 가벼워지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빅터의 죽음은 유러스 입장에서는 상정외로 일어난 사고였어.

셰링포드에서 유러스가 셜록에게 선문답하듯이 던졌던 '계산 착오였다' 란 말이 이제야 이해가 가네.

유러스는 셜록을 좋아했기 때문에 남들과는 다른 차원에서 살아가는 자신을 이해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바로 그게 셜록이길 바랬음.

402에서 다른 모든 사람이 곁에 있어도 존 왓슨이 옆에 없다는 것 때문에 처참하게 망가져갔던 셜록이 그랬던 것처럼.

이제보니 두 사람의 행동양식은 소름끼치게 닮았어. 지나치게 무모하지.

셜록은 메리의 죽음이 자신에게서 존을 빼앗아갔다고 생각해서 목숨을 건 도박을 해. 오로지 존이 자신을 구해줄거라고 믿으면서.

유러스 또한 빅터란 존재가 자신에게서 셜록을 빼앗았다고 생각해서 빅터의 목숨, 즉 자신이 살해자가 될 지도 모르는 위험을 무릅쓰고 도박한거야.

유러스도 셜록처럼 믿었겠지. 셜록이 암호를 풀고 자신의 영혼과 빅터의 목숨 모두를 구해줄 거라고.

결론만 말하면 두사람 다 정말 미친 개또라이 짓을 한거야. 뭘 믿고 그걸 확신하는데?

만에 하나라도 자신의 계획이 어긋난다면 누군가가 죽는다는게 확실한데도?

혹자는 셜록은 존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걸었고 유러스는 자신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타인의 목숨을 걸었는데 두 경우가 어떻게 같냐고 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난 거기엔 동의 못하겠다. 남의 목숨이든 자기 목숨이든 누군가의 생명을 도박의 제물로 걸어 위험에 처하게 하는 무모함을 가진 것 자체가 이미 위험이고 죄악이야. 선한 의도가 악한 수단을 정당화 해주진 않아.

또한 실패할 경우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누구의 목숨을 걸었느냐의 문제는 이미 중요하지 않고. 대안이 없는 상황이었다면 유러스도 자기 목숨으로 도박을 했을걸?

다만 유러스의 경우는 자기 외에도 빅터라는 제물 후보가 존재했고, 자신은 남아서 셜록에게 암호를 계속 전달할 필요가 있었어.

그러니 유러스는 상황에 맞는 합리적인 선택을 했을 뿐이야. 빅터에 대한 악감정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겠지만, 그래봐야 우물 안에서 몇 시간, 길어야 하루이틀 정도 골탕먹이는 걸로 끝날 거라 생각했겠지.

물론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심한 계획이긴 해. 그래도 그 정도는 수십년쯤 후에 가족들이 모여서 하는 조금은 유별난 어릴적 에피소드 선에서 마무리될 수 있는 수준이잖아.

중요한 건, 실패를 상정하지 않았으니 유러스는 애초부터 빅터를 살해할 계획이 없었다는 거야.

그러니 빅터의 죽음은 유러스의 악행이 아니고 비극이야. 셜록이라면 자신의 암호를 풀 수 있을거라는 유러스의 계산 착오가 일으킨 사고.

거기다 유러스가 계산 착오를 일으킨 배경 또한 상황을 더 안타깝게 한다.

유러스도 바보가 아닌 이상 다른 차원에 사는 자신의 언어가, 남들보단 조금 뛰어나긴 해도 평범한 차원에서 살아가는 일고여덟짜리 꼬마에 불과한 셜록에게 쉽게 닿지 않을거라는 건 알고 있었겠지. 하지만 유러스는 셜록이 자신에게 특별한 사람이듯, 셜록과 자신의 유대 관계 역시 특별하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유러스는 셜록이 뻔히 보이는 지적 능력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셜록과 유러스 자신을 잇는 정서적 끈을 힌트로 장벽을 넘어 진짜 자신의 모습을 봐줄 거라고 믿은거야. 그래서 암호를 해독할 열쇠도 셜록이 좋아해서 매일 들여다보다시피 하는 비석에다 숨긴거고. 이 얼마나 감상적인 생각인가. 항상 셜록을 면박주는 마이크로프트가 알았다면 기막혀 했을거다.

(그리고 이런 사고패턴은 셜록이 존에게 기대하는 것과 유사하지. 그동안은 존이 그 기대에 부응을 못해서 셜록이 실망감을 표현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시즌4에 이르러서 존이 드라마틱하게 추리에 발전된 모습을 보인 건 그만큼 두 사람의 유대관계가 그동안 둘 사이의 장벽을 얼마나 많이 낮춰왔는지를 의미해.)

결국 두 사람의 도박 사이에 존재하는 결정적인 차이점은 셜록은 성공했고, 유러스는 실패했다는거야.

즉 유러스가 벌인 비극은 셜록이 도박에 실패했을 때 마주하게 됐을 상황이야. 셜록과 빅터 그리고 유로스 자신까지 지옥으로 떨어지는 것.

그러니 402의 말미에서 존은 셜록과 어색하게 의자에 앉아 얘기를 나누며 화해하기에 앞서 셜록에게 크게 화를 냈어야 해.

일이 잘못됐다면 셜록은 물론이고 존, 셜록을 사랑하던 사람들 모두 지옥에 빠지게 됐을테니까.

(심지어 스미스 사건을 셜록에게 물어온 유러스까지도. 유러스야 원래부터 지옥에서 살고있지만.... 밑에는 항상 더 밑이 있는 법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