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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대로 하소서

운영자 2022.09.19 11: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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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면에서 사람이 개를 놀라게 하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 작달막한 개가 혼자 싱크대 옆 구석에서 코를 바닥에 대고 킁킁 거리고 있을 때였다. 주인인 듯한 사람이 커다란 호랑이 인형을 몰래 개의 뒤에 놓았다. 무심히 뒤를 돌아다보다가 호랑이를 발견한 개는 소스라치게 놀라 구석에 등을 댄 채 절규하며 짖는 모습이었다. 그 절박함이 화면 속에서 생생하게 전달되어 나오는 걸 보면서 장난이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사회에 끼어 눈치 보며 얻어먹다가 주인의 장난에 절규하는 개의 모습을 보면서 안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십대 중반 암 수술을 받은 적이 있었다. 몸 속에 있다는 작은 암덩어리가 호랑이보다 더 무서웠다. 그날 수술을 받을 때 나의 감정은 호랑이 앞에 선 외롭고 나약한 겁먹은 개와 비슷한 느낌이었다고 할까. 이동식 침대에 누워 수술실로 갈 때였다. 천정의 푸른 형광등 불빛이 휙휙 지나갔다. 위치에 따라 세상이 전혀 달라보였다. 잠시 후 나는 바닥에 깔린 십자모양의 수술대 위에 눕혀졌다. 수술대의 냉기가 그대로 등을 타고 올라왔다. 하얀빛을 튕겨내는 의료기계들이 보이고 대여섯명의 의사들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카메라의 검은 렌즈같은 감정이 없는 눈들이었다. 수술실 전체에 팝뮤직이 쾅쾅 울리고 있었다. 의사들끼리 낄낄거리며 어제 있었던 일을 주고받았다. 나의 죽음이 그들에게 아무 일도 아닌 일상이었다. 나는 이미 죽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다는 서류에 서명을 했다. 그들은 이세상 사람이었고 나는 반쯤은 저세상에 발을 디디고 있는 것 같았다. 의사들이 수술대 위에 누워있는 나의 양팔과 양다리를 묶었다. 서기 육십칠년 유월구일 로마에서 오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십자가에 누운 베드로도 비슷했을 것이다. 중학교 생물 시간에 서너명이 한 조가 되어 개구리 해부를 했었다. 내가 그 개구리가 된 것 같기도 했다. 우리들은 재미로 개구리 얇은 배를 가위로 갈라보기도 하고 창자를 꺼내기도 했었다. 그때 핀으로 팔다리가 박힌 개구리는 얼마나 아팠을까. 우리는 장난 같았지만 개구리는 죽음이고 세상의 소멸이었다. 의사가 마취 주사를 놓았다. 주사기 속의 하얀 액체가 내 몸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이제 다른 세계로 들어가면 돌아오지 못하고 영원히 다른 곳으로 갈 것 같은 불안감이 들었다. 그냥 가기는 싫었다. 뭔가 정산을 하고 가야 할 것 같은 마음이 순간 들었다. 그동안 너무 이기주의로 살아왔다는 후회가 밀물지어왔다. 나는 성공해야 했고 뭔가가 됐어야 행복할 것 같았다. 나는 눈을 가리개로 가린 경주마였다. 채찍질에 따라 그냥 달렸다. 더러 트랙을 벗어나 초원으로 가고 싶었다. 그러나 경쟁을 포기하는 순간 나는 깊은 어둠의 골짜기로 추락할 것 같았다. 이도 저도 아닌 상태에서 나만을 위해 살았다. 이제 나 자신이 없어지는 순간 모든 것이 무의 상태인 것이다. 이럴 거면 남에게 잘할 걸 사랑할 걸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아침에 병원으로 오는 길에 차창을 스치는 들과 하늘을 보았다. 파란 하늘에 떠가는 흰구름이 너무 예뻤다. 평소 보던 구름이 그렇게 아름다운 것이었나 놀랐다. 이른 봄 야산에 풀어지는 연두색들이 가슴 바닥까지 물들이는 것 같았다. 나무잎들이 꽃보다 아름다웠다. 내 눈이 처음으로 열린 느낌이었다. 지구별에 왔을 때 딴 짓 하지 말고 좀 더 구경할 걸 하고 아쉬웠다. 마스크를 쓴 의사가 내 옆에서 말했다. ​

“이제부터 하나 둘 셋 숫자를 세보세요.”​

다른 세계로 가는 카운트다운이 시작된 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인생을 정리하는 마음속 기도를 했다. ​

‘어머니 아버지 가난하고 힘든 속에서도 좋은교육 받게 해주시고 잘 키워주셔서 고맙습니다. 내 어머니라서 내 아버지라서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이제 제가 어떻게 하겠습니까? 저를 그냥 당신의 뜻대로 하소서’​

그 순간 갑자기 수술실 천정이 둘로 쪼개지는 걸 봤다. 그리고 나는 깊은 어둠의 구덩이 속으로 한없이 떨어졌다.​

나는 어두컴컴한 커다란 창고 안 구석에 웅크리고 있는 것 같았다. 왜 그 창고에 있어야 하는지 이해가 안갔다. 갑자기 멀리서 사람들이 수근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순간 눈이 번쩍 떠졌다. 수술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제 마취에서 깨셨군요”​

의사가 나를 보면서 하는 소리가 들렸다. 여섯 시간에 걸친 수술이었다. 당신의 뜻대로 하시라는 마지막 기도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으로 나는 예속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게 된 계기가 된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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